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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의성군의 보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10월 22일 (토요 무박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 짙은 안개 후 맑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 좋았지만 여전히 약간의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7도에서 영상 22도
산행인원 : 칠갑산과 K산악회 보현지맥 종주대 총 19명
산행코스 : 검실재(912번 2차선 포장도로)-멧돼지 목욕탕-삼면봉(420.4 삼각점봉 갈림삼거리)-420.4 삼각점봉-418 무명봉-420봉-412 바위 무명봉-뾰족봉(425.9봉)-바위암릉구간-420 이장된 묘지-
420 묘지봉-388 구멍난 참나무-433.2 삼각점봉(생태산, 벤취쉼터)-415 참나무봉-영월정공묘지-질매재(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능선진입-370.8봉-345 무명봉-석불사 갈림삼거리
이정표(해망산정상 610m, 질매재 900m, 석불사 300m)-비안면 방향 첫 조망-묵 헬기장(394미터)-해망산 정상 이정표(벼락바위 760m, 질매재 1.51 Km)-해망산 정상(400미터, 삼각점)-고사목-
296 무명봉-마담재(420미터, 비포장 임도, 아침식사)-366.9봉(삼형제봉)-전망바위-바위암릉구간-350봉(산불감시초소 조망)-적사등로-부처손-304 바위무명봉(조망)-화두산(삿갓봉, 291.7미터, 삼각점)-
271 무명봉-멧돼지 목욕탕-245 아카시아나무봉-멧돼지 목욕탕-264 바위봉-247 무명봉-233 무명봉-둠벙-붉은점모시나비 생태탐방로 안내판-중리고개(1차선 포장도로, 거대한 느티나무)
이정표(주차장A 태양마을 6.85 Km와 안사면사무소 3.92 Km, 주차장B 중하리방면)-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 묘지지대-바위암릉구간-골두봉 800m 이정표-아카시아나무지대-골두봉 400m(조망바위)-
와송(바위솔)지대-굵은 로프구간-개구리 전망바위-골두봉정상(314.8미터, 정상석, 벤취쉼터) 이정표(태양마을 주차장A 5.76 Km와 안사면사무소 2.83 Km, 중하리방면 주차장B 1.09 Km)-아카시아나무
잡풀지대-전망바위-돌담 무명안부-바위암릉(골두봉조망)-이정표(주차장B 중화리방면 2.45 Km와 골두봉 1.36 Km, 태양마을 주차장A 4.40 Km)-210 바위봉-바위암릉구간-이정표(주차장B
중화리방면 3.04 Km와 골두봉 1.95 Km, 태양마을 주차장A 3.81 Km)-254.3 삼각점봉-257봉-의자바위-221 묘지-아카시아나무지대-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이정표(주차장B
중화리방면 3.79 Km와 골두봉 2.70 Km, 태양마을 주차장A 3.06 Km)-이정표(주차장B 중화리방면 3.92 Km, 태양마을 주차장A 2.93 Km와 안사동 석조여래좌상)-돌고개(912번 2차선 포장도로,
안사면사무소, 안사파출소, 안사교회)-묘지지대-이정표(주차장B 중화리방면 4.36 Km와 안사면사무소 0.45 Km, 태양마을 주차장A 2.49 Km)-붉은점모시나비 대체서식지 안내판-너럭바위조망-
능선진입-너럭바위조망-260봉-무명묘지-235.2봉-전망바위-오현(커다란 당산나무) 이정표(정상 1.5 Km, 돌고개 2 Km, 입구 0.5 Km)-전망바위-나무계단-분재형 소나무-너럭바위-무명안부-
328.6 삼각점봉-버섯바위-계단-안전로프-곤지산(330.9미터)-보호수 소나무-신의현 안부-칡넝쿨지대-304.7봉-바위암릉구간-안전로프-바위암릉 우회구간-무명묘지-한골 갈림삼거리
이정표(정상 50m, 곤지봉, 한골 2.15 Km)-비봉산(480미터, 돌탑) 이정표(샘골 3.0 Km와 문암산 1.2 Km, 한골 2.2 Km와 곤지봉)-토끼봉 전망대-무명묘지-잡풀지대-비포장 임도-한골마을-
시멘트 포장도로-2차선 포장도로-문암정-비로재(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큰 고도 차이 없는 보현지맥 산줄기를 따라 조망을 즐기고 많은 사진을 남기며 꾸준하게 진행하여 22.3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태풍의 영향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 줘 생각보다 좋은 산행 조건으로 진행하여 09시간 23분 (03시 47분에서 13시 11분까지)
산행트랙 : 20171022 보현지맥6구간 검실재-비로재.gpx
교통편 : 보현지맥 전용 40인승 버스 이용
단북농업인복지관에서 샤워 후 인근 식당에서 매식 후 귀경
보현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매봉산(태백)에서 시작한 낙동정맥은 주왕산과 통점재를 지나 가사령에 내려서기전 1.1 Km 지점에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가지치고 가사령으로 내려서 침곡산으로 간다.
서쪽으로 가지친 큰 산줄기는 베틀봉(934봉), 면봉산(1121봉), 보현산(1126봉)을 지나 석심산(750.6봉)에 이르러 다시 두갈래로 갈라진다(분기점에서 39.4 Km).
한줄기는 남서진하며 방가산(755.8봉), 화산(828.1봉)과 팔공산(1,192.8봉)을 지나고 가산(901.6봉)에서 북진하여 좌베틀산(369.2봉)과 청화산(700.7봉)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 이르는 길이120.7 Km되는 산줄기다.
석심산(750.6봉)에서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며 어봉산(634.2봉), 갈비봉(672봉), 산두봉(719봉), 구무산(676.3봉), 푯대산천제봉(359봉), 삼표당(443.7봉), 해망산(400봉), 삿갓봉(290.7봉), 골두봉(314.8봉), 곤지산(330봉), 비봉산(579.3봉) 등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팔공산쪽으로 온 산줄기를 마주보며 끝을내는 길이 127.4 Km가 되는 산줄기다.
두 산줄기는 위천을 남과 북으로 애워싸고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다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위천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며 만나게 되는데 위천의 북쪽 울타리가 보현지맥이고 위천의 남쪽 울타리가 팔공지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팔공산 줄기를 팔공기맥(지) 또는 낙동내륙기맥, 금호북기맥등으로 부르고 있는 모양인데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이를 각각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서북쪽 산줄기 전체를 보현지맥으로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나도 그렇게 부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산세로야 팔공산쪽이 더 크고 유명세도 있지만 우선은 길이가 단 6.7 Km이긴 하지만 긴쪽을 장자로 봐야할 것 같고 석심산에서 북서쪽 산줄기만 따로 떼어내서 이름을 붙이자면 그쪽에서 제일높은산인 산두봉(719봉) 이름을 따야 할텐데 이름없는 산이라 좀 어색하고 잘 알려진 보현산(1124.4봉)의 위상도 감안하여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산두봉 줄기를 보현지맥으로 부르고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르는게 좋을 듯 싶다.
보현지맥 북쪽의 물은 용전천, 길안천, 미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보현지맥 남쪽의 물은 위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위천의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의 북쪽물은 위천으로 흘러들어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고 팔공지맥의 남쪽물은 금호강으로 흘러들다 가산을 지나고부터는 낙동강에 직접 흘러든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멋진 종주대와 함께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걸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제 이곳 보현지맥 산행도 오늘 산행이 마무리되면 마지막 구간만 남기게 되고 다음달 초에 한번 더 다녀가면 그 길었던 등로와도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는 곳이기에 조금은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으로 산행을 준비해 본다.
특히 오늘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남아 있던 왕재지맥 마지막 제3구간을 무탈하게 완주한 후 돌아 와 보현지맥 산행을 준비하고 있기에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배낭을 꾸리다 보니 기온차가 심한 산행 날씨에 약간은 신경이 쓰여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 새벽으로는 한기를 느끼고 한낮에는 더위를 느끼는 계절이기에 등산복 하나 선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기에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배낭 무게만 무거워지고 있다.
그래도 그 끝자락이 보인다는 생각에 즐겁게 산행 준비 후 평소와 같이 옆지기의 도움으로 숭실대역으로 이동을 해 장암가는 9시 39분 지하철에 몸을 실고 긴 여행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오늘 밤과 내일 하루도 무탈하게 진행하는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고 소맥 한잔으로 피곤함을 날리고 올라 올 수 있기를 빌어 보는 시간이다.
어둠속에 너무 일찍 산행 들머리인 검실재에 도착을 해 한시간 정도 더 버스에 머물다 새벽 3시 40여분에 산행 준비 후 밖으로 나오니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고 바람이 약간 불면서 한기가 밀려온다.
두꺼운 방한복과 장갑까지 끼고 산행을 시작하여 완만하게 오르니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베어 나오기 시작하고 능선에 올라 자켓과 장갑을 벗어 배낭에 넣고 어둠속에 급하지 않게 후미로 천천히 걸어 해망산을 넘으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마담재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해 아침식사를 즐겨 본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366.9미터의 삼현제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의성군 안계면 일대가 아름답게 펼쳐져 이고 그 뒤로 2년 전 산친구들과 고운 추억을 남겼던 팔공기맥의 냉산과 청화산 그리고 장자봉과 만경산 지나 마지막 봉우리인 토산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며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고 있다.
다시 화두산과 중리고개를 지나 오르막 등로를 타고 바위 암릉구간을 넘으니 드디어 골두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 후 진행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돌고개가 있는 안사면을 지나 좌측으로 236봉이 보이고 그 뒤 우측 저 멀리 곤지산이 솟아 있으며 그 곤지산 뒤로는 문암산만큼이나 높게 솟아 있는 문암산 갈림봉과 그 우측으로 문암산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좌측으로는 위천 끝자라 건너 팔공기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토봉이 보이는데 2년 전 그곳에 올라 이곳 보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던 추억이 생각 나 잠시 그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안사면 파출소가 있는 돌고개를 지나 붉은점모시나비 대체서식지와 바위 암릉지대를 타고 오르니 짧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잇고 그 계단을 타고 올라 마당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그곳에 지나온 보현지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오현을 지나 솟아 있는 260봉이 보이고 돌고개로 산세를 낮췄던 마루금은 다시 사진 중앙에 뾰족한 골두봉을 들어 올리고 그 뒤로 화두산과 해망산을 일렬로 세우고 있다.
그 보현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하나가 아름답게 이어지며 재회를 꿈꾸고 있는 듯 다가오고 있다.
산세는 높지 않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다시 발길을 멈추고 많은 시간 보내며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왕재지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일찍 귀가하여 저녁식사를 한 후 시간 맞춰 장암으로 나가니 추석 연휴로 한구간을 건너 오랫만에 만나는 산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정시에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불을 밝혀 일어나 보니 벌써 괴산휴게소에 도착을 한다.
볼일을 보고 음료수르,ㄹ 구매해 배낭에 넣고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벌써 산행 들머리인 검실재에 도착을 하였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새벽 3시 30분까지 한시간 이상을 더 쉬었다 출발 하기로 한다.
다시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전날 너무 일찍 일어나 부족했던 잠을 어느정도 보충을 한 느낌으로 몸은 상당히 가벼워져 고민 하나가 자동적으로 해결이 되었다.
검실재(230미터)는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검곡리와 안평면 금곡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검곡리의 또 다른 이름인 검실에서 유래된 듯하다.
검실재는 신평면과 안평면 그리고 안사면의 경계이며 국사봉(520.5봉)과 고도산(494봉) 사이의 420.4미터 고지와 노동령(434.4미터) 사이의 가장 낮은 안부로서 높이는 230미터 정도이다.
검실재는 안평천과 광산천의 발원지에 해당되는데 검실재의 남쪽 계곡은 안평천의 발원지이며 북쪽 계곡은 광산천의 발원지로 검실재를 중심으로 두 하천이 구분된다.
검실재는 중생대 백악기 낙동층군 하산동층의 문암산층원이 기반암이며 문암산층원은 퇴적암으로서 역질 사암, 역암, 탄질 셰일, 자색 실트스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실재 주변에는 매목 수리과에 속하는 맹금류인 말똥가리와 참새목 까마귀과에 속하는 물까치 등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또한 고갯마루 양쪽 산지에는 참나무류가 우거져 있다.
검실재는 신평면 검곡리와 안평면 금곡리를 오가는 길목으로 지방도 927호선인 봉호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현재도 신평면과 안평면을 오가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봉호로를 건설하면서 주변의 산지를 깎아 검실재 고갯마루의 도로 양안에는 단애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단애를 따라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는데 약 4미터 정도의 단애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낙석의 위험이 있어서 철조망으로 펜스를 둘러 놓았다
검실재는 주변의 국사봉, 고도산, 노동령 등의 산지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여 등산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산행 준비 후 밖으로 나오니 안개가 자욱하고 공기는 한기를 느낄 정도인데 바람까지 불어 와 겨울용 방풍 자켓과 장갑까지 끼고 산행을 시작하다 보니 제일 후미로 쳐져 천천히 오르게 되었다.
우곡정이라는 팔각정자를 지나 고갯마루를 넘으면 도로 좌측으로 준.희님의 검실재 산패가 걸려있고 그 검실재라는 이정판이 있는 우측의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멀고도 긴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직은 어둠이 짙은 새벽 3시 50분을 넘어가고 있다.
이슬에 젖어 있는 잡목을 헤치며 오르는 산친구들을 뒤따라 오르다 보니 진행에는 큰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오르게 되고 그렇게 뚜렷하게 남겨진 발자국들을 따르니 금새 멧돼지들의 목욕탕을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오르니 간벌된 소나무 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또 다른 멧돼지 목욕탕을 만나는데 그 목욕탕 주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마다 멧돼지들이 목욕 후 문지른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낮은 산세에 비해 많은 멧돼지들이 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삼면봉인 420.4미터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선두가 쉬고 있어 후미대장에게 알리고 홀로 잠시 우측 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420.4 삼각점봉을 다녀 오기로 한다.
갈림삼거리에서 3분여 오르니 준.희 선생님의 산패가 걸려있고 그 옆으로 삼각점이 박혀있는데 삼각점은 낡아 식별이 불가능한 삼각점이었다.
그 420.4 삼각점봉을 다녀오니 종주대는 벌써 걸어 삼면봉을 떠나 앞으로 진행을 하였고 이 산객 홀로 뒤에 남아 너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며 종주대 뒤를 따른다.
날이 밝았으면 북서쪽으로 뻗어 나간 국사봉과 고도산 줄기를 확인하고 진행을 하였겠지만 이 시간은 어둠속 세상이다 보니 진행하면서 확인하기로 한다.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있는 41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저 멀리 멀어지는 종주대를 쫒아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420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곳에서 종주대 후미를 따라 잡고 함께 어둠속을 걸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420봉을 지나니 등로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412 무명봉을 넘어 내려갔다 오르니 커다란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바위 등로를 지나 오르니 약간의 바위들과 참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425.9 미터의 뾰족봉에 도착을 하는데 자료를 찾아 봐도 찾을 자료가 없고 어둠속이다 보니 보이는 것도 없어 왜 뾰족봉이라 했는지 궁금하기만 한 시간이다.
멀리에서 봤을 때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어 붙은 이름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보지만 그것 역시 이 산객만의 생각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뾰족봉을 넘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 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거대한 바위 암릉들이 이어져 있어 조심하며 걸어 오른다.
그 바위 암릉 구간을 넘어 오르니 이장된 듯한 무명 묘지 자리를 지나고 다시 나타나는 바위와 소나무 봉을 넘으니 사초가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커다란 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 묘지를 통과하고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무명 묘지 한기를 또 만난다.
그 묘지를 지나 진행을 하니 갑자기 기묘하게 생긴 참나무 한그루를 만나는데 어떻게 원형을 만들어 놨는지 신기한 마음에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원형 참나무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이제 보이지 않던 소나무들이 참나무와 섞여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종주대들이 모여 쉬고 있는 433.1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지도에는 아무 이름이 없는 433.1 삼각점봉으로 되어 있는데 포항성모병원에서는 이곳을 생태산 정상이란 산패를 걸어 놔 조금은 헷깔리고 있다.
정상 주위에는 나무벤취 쉼터들이 설치되어 있어 쉬어가기 좋지만 어둠속에 바람까지 불어 한기를 느끼니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진행하다 보면 너무나 많은 출처 불명의 산이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수고함에 비해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기에 조금 더 확실하고 신중하게 고증된 산 이름을 걸어 놨으면 하는 바램이다.
종주대가 모두 떠난 433.1봉에 남아 사진 몇장 더 남기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천천히 내려가니 이곳 역시 커다란 참나무 아래 사초들이 자라면서 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고 있다.
잠시 후 잘 생긴 참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415 무명봉을 넘고 별 특징 없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 고사목이 서 있는 곳에서 등로는 다시 급하게 내려가며 산행에 주의를 요하고 있다.
그렇게 내려가니 영일정공 묘지 한기를 만나고 다시 약간의 참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질매재에 도착을 하는데 질매재는 경북 의성군 안사면 중하리 상방동과 안평면 금곡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전국에 많은 질매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대부분 고개의 지형이 소가 짐 싣는 질매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데 이곳 질매재도 그런 연유로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닌지 혼자만 추측을 하면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는 질매재 앞으로는 출입금지 로프가 설치되어 잇는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마루금은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이 되고 있다.
잠시 잘 정리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이제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로 버리고 다시 우측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한동안 희미한 마루금을 찾아 오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상 370.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아직도 어둠속 세상이다 보니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제한된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능선 같은 봉우리를 넘어 평이하게 잡목을 헤치며 걸어 전진하니 조금씩 어둠의 두께가 엷어지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지만 이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잔디가 자라지 못하는 묘지를 지나 약간의 사초가 자라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345 무명봉에 도착을 하지만 여전히 어둠속 세상이라 사진 한장만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조금 더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발걸음 옮기니 등로 좌측으로 석불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 석불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그리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지방 유형 문화재를 모시고 있는 사찰로서 포교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석불사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자락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서 1971년에 창건되었다.
해망산(굴암산) 중턱의 병풍처럼 둘러싸인 암벽에 있는 3개의 자연 동굴을 이용한 석굴 사찰로서 동쪽에 있는 가장 큰 동굴을 법당굴(석굴 법당)이라 부르고 나머지 동굴은 각각 승당굴과 나한굴이라 하는데 약 40평 넓이의 법당굴 입구에 목조 건물을 세워서 석불사라고 하였다.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석불사는 매월 초하루에 정기 법회를 개최하고 있고 부처님 오신 날과 성도절 및 우란분재 그리고 방생 법회 등의 불교 행사와 지장재일 및 관음재일 등에 법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사회 활동으로 불우 이웃 돕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석불사는 비구니 사찰로 승려 4명이 있으나 수는 일정하지 않고 신도는 약 300명이 있으며 신도회를 조직하여 신행과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본당인 법당굴에 화강암으로 조성된 약 1.5 미터 높이의 석조 여래 좌상을 모시고 있고 승당굴은 산신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과거에는 디딜방앗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나한굴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굴 앞에는 2층의 현대식 요사채가 있으며 3층 석탑과 석등이 조성되어 있다.
석불사 법당굴에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56호 비안면 자락동 석조 여래 좌상이 있는데 고려 시대에 조성된 약사여래불로 왼손에 사발 또는 보주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어느 종교를 믿는지를 떠나 조용한 산사에 들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니 가끔은 그런 산사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석불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고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실루엣이 보여 잠시 등로를 벗어나 조망처로 가 보니 바로 발 아래쪽으로 불빛이 보이는데 아마도 석불사쪽 불빛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넘어 저 멀리 의성군 비안면 자락리와 산제리쪽 산그리메가 아름다운데 특히 바로 앞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어떤 산일까 궁금해 찾아 보니 해발고도 368.5미터인 화장산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조만간 일출이 시작될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두껍게 드리워진 구름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일출은 기대하기 어려운 새벽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비안면 쪽 산그리메를 처음으로 조망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394미터의 헬기장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특이하게도 너럭바위 자체를 헬기장으로 만들어 놓은 듯 보이는데 정상에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은 많이 사라진 듯 보인다.
날이 밝았으면 지나 온 마루금과 진행 방향의 마루금이 조망이 된다고 알았는데 아직은 어둠속 세상이다 보니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헬기장에서 출발하려다 긴 호흡 한번 내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북쪽으로 오늘 어둠속에 걸어 진행해 온 433.1봉과 420봉 능선이 여명이 밝아 오는 빛을 받아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바쁜 발걸음이지만 잠시 더 머물며 사진 몇 장 더 남기고 진행 방향으로 해망산과 삼형제봉을 살펴보지만 잡목 사이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어 아쉬움만 남긴다.
이제 그 394미터의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헬기장을 지나 사초가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여유있게 걸어가니 갑자기 해망산정상이라는 나무 이정표가 서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헷깔린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듯 하여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잠시 등로 좌측 조망처로 가 보니 그곳에 환상적인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으로 마담재 지나 뾰족하게 솟아 있는 삼형제봉이 우측 가장자리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좌측 저 멀리 화두산과 골두봉 그리고 곤지산을 지나 오늘 산행 막바지에 체력을 시험했던 문암산 갈림 분기점인 비봉산과 문암산 능선이 길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곡선을 이어가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그 마루금 좌측으로는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보현지맥의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인 비봉산도 보이고 좌측 끝자락으로는 희미하지만 팔공과 보현 산줄기를 가르는 위천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눈을 돌려 비안면과 안계면 방향을 살펴보니 안계면 가기 전 이름없는 두 봉우리로 이뤄진 나즈막한 200미터급 산봉우리가 아름답고 그 뒤로 희미하게 위천이 보이면서 팔공기맥 산줄기가 뚜렷하게 다가온다.
사진 좌측으로 냉산과 청화산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잡목에 가려 잘 나타나지 않고 그 우측으로 흐르는 장자봉과 만경산 그리고 팔공의 마지막 봉우리인 토산이 그 옛날 추억을 회상시키며 너무나 아름다운 아침을 반겨준다.
오늘은 산행 내내 이 아름다운 풍경을 위치만 바꿔가며 마주하게 될 것이기에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 할 이유는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을 가슴속에 담고 사진으로 남긴 후 다시 등로로 되돌아 와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해망산정상 이정판이 나무에 걸려있고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과 산패들이 걸려있는 실질적인 해망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해망산(해명산 또는 굴암산, 400미터, 삼각점)은 경상북도 의성군의 비안면 자락리와 안사면 중하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약 400미터인데 지명은 1872년지방지도(비안)에 해망산으로 처음 등장한다.
해망산은 한자를 풀이하면 바다를 갈망하는 산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며 해명산 또는 굴암산이라고도 부른다.
해망산은 높이가 400미터로 북서쪽은 화두산(290.7미터)와 골두봉(315.0미터) 등의 산지와 능선이 연결되어 있고 남동쪽으로는 높이 300미터 내외의 산지와 이어져 있으며 해망산의 북동쪽으로는 높이 400미터 내외의 산지와 국사봉(520.5미터) 및 봉암산(452.7미터) 등의 산지와 이어져 있다.
이렇게 해망산과 이어지는 산지들은 광산천의 유역분지를 이루며 또한 해망산의 북쪽 사면은 신평천의 발원지에 해당되며 서쪽 사면은 화신천의 발원지이며 서쪽 사면은 위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발원지에 해당되어 이 산은 세 개의 하천을 구분하는 분수계의 역할을 한다.
조선지지자료(비안)의 내북면에는 해명산과 한글로 해망산이 병기되어 있으며 내사동에 위치한다고 기록되고 있어 해명산으로의 표기자 변화와 함께 고유지명인 해망산과 산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해망산에는 비안면 자락리와 안계면 안정리 및 신평면 중하리 경계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을 통해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자주 만났던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이곳 해망산 정상에도 많이 달려 있어 눈 인사를 나누고 출발하니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삼각점(439)을 발견하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평탄한 능선 등로를 따라 시원하게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며 걸어 전진하니 낙엽 깔린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비안면과 팔공기맥 산줄기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순간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능선 끝자락에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앞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문암산으로 이어지는 보현지맥 마루금도 아름답게 넘실거리고 있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간 고사목 한그루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민초들을 대변하는 듯 하여 씁쓸한 순간이기도 하다.
고사목을 지나 가파른 경사면을 타고 급하게 참나무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가 조금은 유순해지며 소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잡목들이 태클을 걸지만 크게 신경 쓸 수준은 아니기에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안부를 건너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296 무명봉을 넘어 앞으로 올라야 할 삼형제봉의 까칠한 오르막 등로를 살펴보며 내려가니 칡넝쿨로 뒤덮힌 짧은 절개지를 지나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마담재 일명 안전고개에 도착을 해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마담재(280미터, 안정고개)는 비포장 임도로서 등로 좌측의 안계면 안정리와 우측의 안사면 중하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왜 마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정고개라고 하는 것은 이곳이 바로 안정리에 있는 고개이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을 해 본다.
안정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있는 리로서 뒤로 산을 끼고 있고 작은 하천의 발원지가 있으며 수많은 저수지들이 있는 산간지역이다.
안정리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2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600년 전 안중선이 관직을 버리고 정착하여 안정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다른 한 가지는 1300년 전 나구열이란 농부가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나씨와 임씨의 두 성씨의 본관이 안정이어서 안정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자연마을에는 나기, 한갓골, 샛터가 있가 있는데 나기는 고려 공민왕 때 목사로 있던 나재성이 정착하여 나씨들의 본관이라 하여 나기라 칭하였던 말이고 한갓골이란 이름은 이 지역의 산수가 수려하고 골짜기가 깊어서 한갓 골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약간의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 이제 손을 호호불며 따뜻한 국물이 좋아지는 계절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자유 산행이기에 조금 일찍 자리를 일어나 칡넝쿨이 우거진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소나무 등로를 오르니 마루금은 점점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오르려니 숨은 헐떡거리고 산행속도는 나지 않아 힘겹게 진행하여 바위 암릉을 넘으니 드디어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366.9미터의 삼형제봉 중 가장 맏이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아마도 이어지는 봉우리가 세개이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그저 추측일 뿐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쉽다.
다시 약간의 잡목과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본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50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돌아 비안면과 안계면쪽 풍경과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팔공기맥의 냉산과 청화산 줄기가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기 바쁜 시간이다.
비안면은 경상북도 의성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의 중앙을 경유하는 5번 국도를 통해 안계면과 봉양면으로 연결되며 면은 북쪽의 해망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남쪽에는 위천과 지류들이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분포하고 현재 동부리와 서부리 및 옥연리 등 14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신라의 아화옥현 혹은 병옥현이 있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비옥현으로 개칭되었다가 1421년(세종 3)에 안정현과 비옥현 두 현을 병합하여 안비현으로 하였으며 2년 후에 비안현으로 고치고 치소를 비옥현 지역으로 옮기었다.
이후 1895년 대구부 비안군으로 1896년 경상북도 비안군이 되었고 1914년 의성군에 병합되어 비안면이 되었으며 현재의 면은 조선시대 비안현 군내면과 내북면 및 신동면 그리고 외북면 지역으로 1914년 비안면이 신설되었음을 신구대조(의성)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명은 삼국사기지리지에 비옥현은 본래 아화옥현(병옥이라고도 이른다)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고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유사한 기록이 고려사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비안)에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비안)에는 본조 세종 3년(1421)에 비안현이라 고쳐 부르고 5년(1423)에 치소를 비옥으로 돌리고 이어서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라는 기록을 통해 당시 안정현과 비옥현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지역 간 지명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의성지명유래에 세종 3년(1421) 안정과 비옥을 합하여 안비현이라 하다가 세종 5년(1423) 율정 박서생 선생에 의해 안비를 장안에 비유하여 비안으로 바꿀 것을 세종대왕에게 허락 받아 현청 또한 이곳으로 옮겨 라는 기록으로 당시의 갈등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비안)과 여지도서(비안) 및 해동지도(비안) 그리고 1872년지방지도(비안)에는 이칭인 아화옥, 병산, 비옥, 병옥이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비안)의 읍내면, 신동면, 외북면, 내북면과 호구총수(비안)의 현내면, 신동면, 신동면외동, 외북면, 내북도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해당 면 지명들의 변천과 관할 동리를 확인할 수 있다.
뒤따르는 종주대들이 있기에 잠시 더 머물다 자리를 양보하고 부처손이 가득 달려있는 바위 암릉을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오늘 산행 등로에는 특이한 지형과 식물들 그리고 나비가 있다고 알고 왔지만 이렇게 많은 부처손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그곳에도 멋진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니 진행해야 할 화두산 방향과 진행해 온 삼형제봉 모두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안계면 방면과 팔공기맥 마지막 방향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조망을 즐긴 후 비어 있는 산불감시초소를 사진에 담고 본격적인 맥 잇기 산행에 돌입을 해 본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사초와 커다란 참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등로를 만나 걸어가고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 붉은 모래가 깔린듯한 등로가 나타나며 그 주위로는 부처손이 가득한 바위들도 보인다.
참으로 다양한 볼거리로 눈이 호강을 하지만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는 상황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하는 이곳 등산로에는 적사라고 하는 붉은 흙들이 자주 발견되는데 기반암이 다인층원과 문암산층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등산로 주변의 흙색이 붉어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는 특징이 있는 곳이다 라는 설명이 보인다.
많은 산행을 하고 여행도 해 봤지만 이러 붉은 흙색은 흔하지 않아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 시간이었다.
등로 좌측으로는 바위 절벽을 두고 안계면과 팔공기맥 산줄기를 살펴보며 걷게 되는데 등로에는 여전히 적사와 부처손이 지천에 깔려 있어 독특한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부처손 등로를 타고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멋진 풍광을 친구 삼아 거닐다 보니 작은 바위가 있는 30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잡목 사이로 드러난 진행 방향의 골두봉과 문안산 방향을 살펴 본다.
그리고는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팔공기맥의 냉산과 청화산 줄기 지나 우측으로 장자봉과 만경산 그리고 그 끝자락에 솟아 있는 토산도 살펴보며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금새 또 291.7미터인 삿갓봉 일명 화두산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본다.
이곳 화두산(291.7미터, 삼각점 안계428) 또는 삿갓봉에 관한 자료는 산행하기 전부터 많은 의문점이 생겨 자료를 찾던 중 다음 블로그에서 조은산님이 국토지리원에 문의를 하여 얻은 답변 자료가 확실해 보여 인용해 본다.
화두산 또는 삿갓봉에 대해 요약하면 한 봉우리를 두고 지명고시가 다른 이름으로 각각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국토지리원은 자기들 소관사항이 아니니 해당지명위원회에 알아보라는 이야기이다.
어쨌던 결론은 화두산으로 보면 되겠으며 삿갓봉이라 할 만한 생김은 전혀 안 나오는데 생긴 모양대로 하자면 중리고개 지나 있는 골두봉이 진짜 삿갓 형상이다.
직접 다녀와 보니 조은산님 의견에 더욱 찬성하는 쪽으로 생각이 드는 화두산이었다.
이제 이곳 삿갓봉 일명 화두산부터 선두 3명이서 급하지 않게 꾸준한 발걸음을 이어가다 보니 마지막 날머리까지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271 무명봉을 지나고 잠시 후 진흙탕 물이 고여있는 멧돼지 목욕탕도 다시 만난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등로 좌측 앞으로 시원하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살펴보니 당진영덕고속도로로서 안사1터널로 접어 들기 직전의 도덕2교 위 모습처럼 보이는 곳이다.
예전에 영덕 한번 내려가려면 참으로 고생스럽게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교통이 편리해져서 그렇게 멀리 느껴지지 않는 울진 영덕이 되었다.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가 희미해지고 길찾기에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숲을 지나 잡초들이 사람 키만큼 자라난 등로도 통과하니 갑자기 아카시아 나무지대도 짧게 보이더니 또 다른 멧돼지 목욕탕이 나타나고 이곳 주변의 나무들도 역시 멧돼지들이 목욕 후 몸을 문지른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수종은 이제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변하고 있다.
잠시 후 원통형의 바위가 보이는 26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바위 무명봉을 지나 지나 온 방향의 삼형제봉과 해망산을 조망하고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안계면 방향도 잠시 내려다 본 후 걸어 진행을 하니 소나무에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붙어 있는 247 무명봉도 통과한다.
잠시 멋진 소나무가 보이더니 등로는 금새 아카시아나무 군락지로 이어지고 아주 조심하며 걸어 진행하여 233 무명봉에 도착을 해 걸어 놓은 선답자의 닉 네임을 확이도 해 본다.
다시 잡목들이 배낭을 붙잡고 늘어지는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니 등로 옆으로 멧돼지들이 아침상을 차렸다 이방인들의 출현으로 설겆이도 못하고 달아난 식흔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아카시아 나무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둠벙이 보이고 그쪽으로는 진행이 어려워 우측으로 잡초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그곳에도 역시 둠벙이 숨어 잇고 그 둠벙 가장자리에는 키가 큰 억새들이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둠벙은 옛날 시골에서는 움푹 꺼진 작은 물 웅덩이를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둠벙으로 현재는 흔히 생태연못이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으로 농사를 위해 만들었다.
둠벙은 연못이라고 부르기엔 작지만 근방의 논에 물을 대기엔 충분하기에 먼 곳에서 물을 길어 오기보다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물로 농사를 짓겠다는 철학이 반영돼 있다.
논과 둠벙은 생태적으로 중요한데 전통생태학에 따르면 사람의 거주지 주변에 다양한 식생 완충지대를 둬서 사람에 의한 인공적인 오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정화하도록 만든다.
논 한가운데에 자리한 둠벙 역시 다양한 습지 동물이 사는 공간으로 이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포식자도 찾아와 논과 둠벙은 농촌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 된다.
둠벙은 자연적으로 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물이 필요한 봄과 여름 및 가을에 잘 마르지 않지만 겨울에는 마르는 경우가 많은데 농사를 위해 만든 웅덩이라 겨울에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 둠벙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 효과가 입증된 만큼 더 많은 자연과 인공 둠벙을 만들자는 의견들도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산객이 어릴적 시골에서 자주 봤고 겨울철에는 그곳 둠벙에서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온촌 어디를 가도 이같은 둠벙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듯 보인다.
그 둠벙을 지나 내려가니 포장된 공터 한쪽에 붉은점모시나비 생태탐방로 안내판과 나비 모형도가 설치되어 있다.
이제서야 이곳 등로에서 자주 만났던 기린초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 붉은점모시나비의 주 먹이였기 때문이었다.
그곳 공터를 내려오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그곳에는 1차선 포장도로로 도로 펵이 좁아지고 잇고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되는 지점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에는 벌써 가을이 곱게 물들고 있다.
그 느티나무 근처로 이동을 하니 도로 우측으로 산행 등로인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앞에는 이전표 하나도 서 있는데 안사면사무소까지 3.92 Km거리라는 표시가 반가운 중리고개이다.
중리고개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중하1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서 약 450년 전에 이평이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다 하여 중리라 칭하였으며 그 중리마을 뒷편에 있는 고개라서 중리고개라 부르게 된 듯 하다.
중하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에 있는 리로서 국사봉 아래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며 마을 앞으로는 신평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장하지와 동경지 등의 저수지가 많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장하리, 방골이 있는데 장하리는 임진왜란 당시 김정이란 선비가 피신 와서 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마을 앞에 긴 하천이 흐르고 있어 장하리라 부르게 되었고 방골은 산간계곡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다.
작은 하천의 발원지가 있는데 이 하천은 태자암에서 발원하여 신평천을 따라 낙동강에 합류된다.
이제 오늘 산행 중 약 절반을 진행한 지점으로 긴 시간 쉼 없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을 해 본다.
중리고개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안사면사무소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금새 도로 옆으로 골두봉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작은 이정판이 보이는데 이 이정판은 골두봉 정상가는 길 200미터마다 설치가 되어 있다.
우측으로 날짐승들의 출입을 막는 그물망이 쳐진 황금빛 논 경작지를 바라보며 오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는데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묘지들을 바라보며 오른다.
잠시 후 묘지 위 바위에 올라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오르니 노란 나비 몇마리가 앞에 춤을 추며 유혹하고 있어 살펴보니 방금 전 안내판에서 봤던 붉은점모시나비는 아닌듯 싶다.
다시 오르니 갑자기 등로에는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아카시아 나무 지대를 통과하며 완만하게 오른다.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를 주의하며 오르니 등로는 다시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완만했던 오르막 등로의 경사는 점점 더 심해지며 조금은 힘겹게 걸어 오르는 시간이다.
그렇게 계속 골두산 정상까지 좁혀지는 거리 표시를 살펴보며 오르다 골두봉까지 4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판 옆으로 조망처가 나타나 잠시 지나 온 마루금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강렬한 햇살 아래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지맥 등로 전부가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올라 진행 방향의 골두봉 정상도 살펴보고 와송(바위솔)도 만나 사진에 담다보니 정상까지 2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판을 지나자마자 바위 암릉과 로프구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개구리 입을 닮아 있는 바위 위로 올라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중리고개 지나 화두산이 보이고 그 뒤로 해망산 지나 좌측으로 433.1봉과 420봉 그리고 좌측으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전망바위에서 나와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따라 급경사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약간의 칡넝쿨들과 잡초들이 무성하게 보이는 골두봉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일망무제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골두봉(314.6미터)에 관한 특별한 자료는 찾지 못해 그 골두봉이 속해 있는 도덕리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들이 보인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있는 리로서 높이 313미터의 골두산의 영향을 받은 산간 지역으로 평야가 많은 안계면에 위치하고 있으나 도덕리는 안계면의 동부 구릉성 산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리 시설이 완벽하지 못한 한적한 농촌 마을이다.
미작과 담배 농사를 주로 하고 있으며, 작은 하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주변에는 하덕지, 중덕지와 같은 수많은 저수지들이 있다.
거대한 개천지도 있으며 지방도 912호선를 통해 국도 28호선와 연결되므로 비교적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도덕리는 또한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있는 리로서 산간지역이나 비교적 평야가 많은 안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작은 하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주변에는 수많은 저수지들이 있다.
거대한 개천지도 있으며 28번국도가 가까이 있어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자연마을에는 고도전, 황천골, 만사동, 상덕이 있는데 고도전은 높은 고도산을 북으로 이웃하고 앞산은 화두산이며 산협이라 밭농사를 주업으로 하여 왔으므로 붙은 이름이고 황천골은 이 깊은 승골에 들어오면 죽는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만사동은 한 농부가 아들의 복을 빌고 큰 노동에 몇 년을 두고 빌어 붙은 이름이고 상덕은 조선 말에 덕동에 살던 한 사람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덕동의 윗동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제일 먼저 등로 좌측인 서쪽을 살펴보니 길게 뻗어 있는 당진 영덕간 고속도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우측으로 안계면이 보이면서 드넓은 평야지대에는 황금빛 들판과 푸른 녹지대가 함께하며 살기 좋은 고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 안계면 들판 넘어로는 위천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각기 다른 산줄기를 이어가고 있는 팔공기맥의 장자봉과 만경산 그리고 토산이 보이고 우측 위쪽으로는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보현지맥 마지막 높은 봉우리인 비봉산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안계면은 경상북도 의성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의 중앙을 경유하는 28번과 912번 지방도를 통해 비안면과 안사면으로 연결되고 면의 북동쪽은 곤지봉, 골두봉, 해망산 등 산지가 분포하며 남서쪽으로 낮은 구릉성 산지가 뻗어 있다.
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위천 유역에는 안계평야와 같은 넓은 충적평야가 분포하고 현재 토매리와 위양리및 안정리 등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조선시대 비안현의 정동면과 정서면 지역으로 1914년 두 면을 통합해 안계면이 신설된 사실을 신구대조(의성)를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과 의성지명유래의 기록을 통해 안계면이라는 면 지명이 과거 이곳에 있던 안계역과 안계원에서 유래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삼국시대에 아시혜현 혹은 아을혜가 있던 곳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안현현으로 개칭되었다가 이후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정현으로 개칭되었다.
한편 안계라는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비안)에 안계역은 현 북쪽 29리에 있으며 안계원은 현 북쪽 28리에 있다로 처음 등장하며 유사한 기록이 여지도서(비안)에 실려 있다.
전부지명소인 안계는 해동지도(비안)와 대동여지도의 안계역, 1872년지방지도(비안)의 안계역, 안계시로 표기자의 변화 없이 존속되었으며 특히 대동지지에는 안정창이라는 기록이 있어 과거 군현 지명이 창고 지명으로 존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지지자료(비안)의 정서면에 안계역과 한글로 안계역이 병기되어 있고 안계동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동일 문헌의 비안군 정동면 동리촌명에 안정동과 한글로 안졍동이 병기되어 있는 것을 통해 역원지명에서 유래한 촌락지명 안계동과 일부 표기자가 변화되어 존속되고 있는 안정동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동면과 정서면 지명은 여지도서(비안)와 호구총수(비안)의 정동면, 정서면 기록을 통해 해당 면 지명들과 관할 동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곳 안계에는 전국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잇는 쌀 생산지로도 유명한데 그 주된 평야가 바로 안계평야로서 안계평야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과 단북면 및 다인면에 형성된 평야를 말하는데 의성군 안계면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안계 평야가 위치한 안계 분지는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장방형 침식 분지로 대구 분지와 유사한 형태로서 화강암질 편마암과 만경산층과 문암산층으로 이루어진 해발 고도 500미터 내외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분지저에는 중생대 퇴적층과 충적지가 분포하는데 금당리층과 다인층은 하상 비고 20에서 30미터의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위천을 따라 약 10 Km에 걸쳐 제방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에 식량 증산 정책의 일환으로 공사가 시작되어 6·25 전쟁 이후에야 완성된 것이다.
위천 강가에 위천 제방 및 주선 제방 등이 완성됨으로써 황무지와 늪이 산재하고 해마다 침수 피해를 입었던 위천 하류의 안계 평야가 곡창 지대로 바뀌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사로국이 조문국(의성 지역에 있었던 삼한 소국)을 침범한 것은 이 안계 평야의 넓은 들판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확보함과 동시에 조령과 이화령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 기지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가 조문국을 병합한 이후 아시촌(현 안계면)에 소경을 둔 것도 안계 평야의 이러한 전략적이고 경제적 중요성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안계 평야는 안계면 위양리에 있는 개천 저수지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고 있는데 1982년부터 낙동강의 양서 양수장에서 물을 끌어와 개천 저수지에 저수하게 되면서 안정적인 농업용수를 확보하게 되었다.
안계 평야는 영천 금호 평야, 경주 안강 평야와 함께 경상북도의 3대 평야 중 하나로 경상북도의 대표적 미곡 산지이다.
안계 분지 내의 구릉지에 안계미 도정 공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품질이 뛰어난 의로운쌀과 의성 황토 쌀 등 의성의 대표적인 브랜드 쌀을 생산하고 있다.
팔공기맥 산행을 하면서 이곳 식당에서 경상도 음식에 관한 편견을 깨버렸던 좋은 기억이 있기에 이번에도 기대를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서쪽으로는 안계면의 거대한 저수지인 개천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개천지 좌측 위로는 희미하지만 팔공과 보현을 가르는 위천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위천 뒤로는 팔공기맥의 냉산과 청화산 줄기가 제법 거대한 산군을 이루며 지난날의 추억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저 냉산 갈림삼거리로 오르면서도 너무나 힘들게 올라 냉산은 다녀오지도 못하고 겨우 어렵게 맥 잇기 산행에 집중했던 아픈 기억이 있기에 언젠가 한번 시간 내 저 냉산과 청화산을 둘러보고 그 아래 천년도 넘은 고찰인 도리사도 한번 돌아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걸어 진행을 하면서는 두번 다시 처다 보기도 싫다고 투정을 부리지만 지나고 나면 이렇게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어 그날을 생각할 수 있으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맥 잇기 산행이다.
이제 같이 진행하던 선두 두명도 뜨거운 햇살을 피해 골두봉 정상에서 내려가 버리고 혼자 남아 조금 더 살펴보니 나무 벤취 쉼터 뒷편에 준.희님과 독도는 우리땅이란 닉을 사용하는 이경일님의 산패가 걸려있다.
내려가기 아쉬워 한번 더 골두봉 정상에서 사방팔방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사진에 담고 마지막으로 이정표 넘어 진행 방향으로 곤지산과 문암산 갈림봉인 비봉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문암산을 사진에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소나무 등로를 타고 골두산을 내려가 본다.
약간의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금새 뚜렷한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가을을 만끽하려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만개하여 활짝 웃고 있다.
잠시 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는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로 변하면서 등로에는 잡풀들이 우거져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 와중에도 노란 산국이 만개하여 긴 산행에 지쳐가는 산객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잠시 웃음으로 화답하며 걸어가니 조금 더 가시나무 지대가 나타난다.
그 아카시아 가시나무 지대를 지나 둔덕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황홀한 조망과 풍경을 즐겼던 골두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이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
어렵고 조심스럽게 그 아카시아 가시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평온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다양한 모양과 형태를 보이고 있는 소나무들을 친구 삼아 발걸음을 옮겨 본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여전히 안계평야와 위천 그리고 팔공기맥 마루금이 보이는데 그 풍경은 이 산객이 걸어 온만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잠시 후 진행 방향으로 살펴보니 소나무 위로 236봉과 우측으로 곤지산 그리고 문암산 갈림 분기점과 그 우측으로 문암산까지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소나무 아래 자라고 있는 약간의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신경 쓰이는 등로를 따르니 바람이 불어 오는 작은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선두 세명이 배낭 내려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하기로 한다.
진행 방향으로 문암산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을 살펴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 역시 부처손 일명 바위손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이 산객이야 이런 임산물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관심이 있는 종주대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부처손은 부처님의 손이라는 뜻으로 잎이 오므라졌을 때 그 모습이 주먹을 쥔 손 모양과 비슷해서 붙여졌는데 왜 하필 부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하기만 했다.
자료를 찾아 보니 이 식물이 약재로 쓰이면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북돋워 주는 작용을 한다는데 그래서 붙여진 이름은 아니고 부처손이란 한자명인 보처수(補處手)에서 온 이름으로 호랑이 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한자로 표족이라고도 한다.
부처손은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철에는 성장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꼭 얼어 죽은 듯 보이나 봄에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 새파랗게 바뀌면서 만년초, 불사초, 장생불사초, 회양초라고도 한다.
또 잎이 붙은 모양이 주먹을 쥔 것 같고 잣나무잎 같다고 권백이라고도 한다.
부처손은 제주도와 울릉도, 남부, 중부, 북부 지방의 돌 틈에서 자라며 키는 약 20㎝ 정도이고 잎은 길이가 1.5~2㎜이며 잎 끝이 실 같은 돌기로 되어 있고 4줄로 빽빽하게 있으며 달걀형이다.
가지는 평면으로 갈라져 퍼지고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은 흰빛이 도는 녹색이다.
습기가 많을 때는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건조할 때는 안으로 말려서 공처럼 되는 것이 특징이며 포자는 길이가 0.5~1.5㎝, 직경이 2㎜로 잔가지 끝에 1개씩 달리며 네모지다.
바위손이라고도 하나 바위손은 따로 있으며 사실 이 두 식물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식물도감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바위손은 부처손보다 뿌리가 적어 엉키지 않고 원줄기라 해서 뿌리에서 나온 줄기가 곧게 뻗으면서 양 옆 잔가지가 뻗으나 부처손은 뿌리가 엉키고 곧게 뻗는 원줄기가 없이 뿌리에서 바로 잔가지처럼 나와 잎들이 속생하는 것처럼 빽빽하게 난다.
부처손과에 속하며 바위손이라고도 하고 관상용으로 쓰이며 잎과 줄기,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는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북인도 등지에 분포하며 꽃말은 비련 또는 슬픈 사랑이다.
항암효과가 있고 피를 맑게 해준다는데 이 산객은 전혀 관심도 없고 이렇게 산행 열심히 하고 밥 잘 먹으면 그것이 최고의 건강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열심히 두 발로 맥 잇기 산행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진행 방향으로 돌고개쪽 건물들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로 이어진 보현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더 사진에 담고 내려간다.
소나무 등로를 따라 급격하게 낮아지는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니 다시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소나무 등로를 따르고 곧이어 안부 우측에 낮은 돌담이 쌓여 있는 무명 돌담 안부도 통과를 해 본다.
돌담 안부를 지나 오르니 바위 암릉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골두봉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보현지맥 마루금이 멋지게 이어져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조금 더 멋진 조망이 터지고 잠시 후 골두봉에서 1.36 Km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도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진행 방향으로 태양마을 주차장A까지 4.40 Km남아 있다는데 어느 마을 어느 주차장을 말하는지 헷깔리기만 하다.
그 이정표를 지나니 다시 바위 암봉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고도를 확인하니 221 바위봉이다.
그 바위봉에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254.3 삼각점봉이 우뚝 솟아 잇고 그 뒤 저 멀리 곤지산과 문암산 갈림 삼거리 분기점 그리고 문암산이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안부 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오르고 계속 이어지는 부처손이 자라고 있는 바위 암릉을 타고 올라가 본다.
그렇게 오르니 다시 적사가 펼쳐져 있고 잠시 후 파란 부처손이 가득 매달려 있는 전망바위에 올라 이번에는 등로 우측의 북동쪽으로 국사봉과 고도산 줄기를 살펴본다.
국사봉(521.1미터)은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와 안사면 안사리 및 중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국사란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대덕에게 부여하던 존호 또는 법계를 말하는데 의성에 있는 국사봉은 옛날 임금의 스승으로서 덕이 높은 도승이 이 산의 자락에 절을 지었다 하여 유래되었다.
국사봉의 동쪽 사면은 광산천의 분수계에 해당되고 서쪽 사면은 신평천의 분수계에 해당되며 국사봉의 북쪽에 있는 봉암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국사봉은 신평천과 광산천의 유역 분지를 구분하는 분수계를 이룬다.
신평천과 광산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산지는 높이가 대부분 350미터 전후로 낮은데 반해 국사봉은 높이가 의성에서 다소 높은 편에 속하는 521.1미터이다.
국사봉을 구성하고 있는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인 낙동층군 하산동층의 역질사암, 역암, 탄질 셰일, 자색 실트스톤으로 구성된 문암산층원이고 주변 산지의 기반암도 퇴적암층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만 높게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국사봉 주변에는 매목 수리과에 속하는 맹금류인 말똥가리와 참새목 까마귀과에 속하는 물까치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산지 대부분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국사봉은 등산객들에게 인기 있는 산 가운데 하나이며 고도산과 함께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2010년 11월 27일 안사면의 고도산 산악회에 의해 개설된 등산 코스는 중하 3리에서 시작하여 국사봉과 목사골을 거쳐 고도산 지나 고산 초등학교로 이어지며 거리는 약 8 Km 정도에 소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국사봉과 고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멋지고 아름다워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번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국사봉과 고도산 줄기를 살펴보고 다시 암릉을 따라 오르니 인공적인 성을 쌓듯 자연 바위들이 층을 이루며 정상부를 지탱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오묘한 자연을 살펴보며 그렇게 오르니 태양마을 주차장A까지 이제는 3.8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오늘 우리 종주대가 걸어 온 보현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골두봉 넘어 해망산까지 그리고 그 해망산에서 좌측으로 틀어 국사봉과 고도산 방향으로 삼형제봉과 뾰족봉들이 보인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조금은 여유있게 진행을 하니 254.3 삼각점보에 도착을 하고 안계424라는 삼각점 측정번호도 확인을 해 본다.
주위로는 키 작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자라면서 조망을 가려 보이는 것이 없기에 조금 더 높은 언덕으로 오르니 그곳에서는 진행 방향으로 곤지산과 문암산 분기점 그리고 문암산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어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출발해 본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참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능선으로 이동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석현지가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안사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912번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며 그 우측 뒤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236봉과 곤지산 그리고 저 멀리 문암산 분기점과 우측으로 문암산 정상부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일출 후부터 계속 봤던 풍경이지만 조금 더 가까워진 지점에서 살펴보는 조망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게 만들고 있다.
석현지 뒤 저 멀리에는 팔공과 보현이 만나는 위천 합수점이 보이는 듯 두 줄기를 가운데 모아 하나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그곳 254.3 삼각점봉에서 즐기고 정상을 출발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번에는 등로 우측으로 국사봉 아래 안사리 마을과 그 뒤로 펼쳐진 국사봉과 고도산 줄기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잠시 후 내려가는 등로 중앙에 의자를 닮아 있는 바위를 만나 사진에 담은 후 개인적으로 의자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의자바위를 지나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니 아카시아와 참나무 등로가 보이고 잠시 후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묘지 한기도 통과를 해 본다.
묘지를 지나 평이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가는데 임도 옆으로는 와송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에 떨어진 솔갈비가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고 그렇게 조금은 빠르게 걸어 돌고개로 향한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그 임도는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곧이어 좌측으로 농기구 보관 창고를 지나 갈림삼거리 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한다.
도로 우측으로는 이제 안서면 민가들이 보이기 사작하고 앞쪽으로는 돌고개 지나 올라야 할 전망암과 260봉 오르는 등로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골두봉에서 2.7 Km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안사교회라는 커다란 이정판도 교회 십자가 철탑에 붙어 있다.
그렇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안사면사무소와 파출소 그리고 교회와 민가들이 보이는 912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돌고개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휴식을 취한다.
돌고개(석현, 180미터)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와 안계면 도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석현고개이라고도 하는데 석현은 이 고을의 관문으로 바위고개를 넘고 다녔다 하여 돌고개라 부르던 것이 한자어로 된 이름이다.
돌고개는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와 안계면 도덕리 사이를 오가던 고개로 북서쪽의 260미터 고지와 남동쪽의 250미터 고지 사이에 있는 높이 120미터의 낮은 부분이다.
돌고개의 남쪽 계곡은 위양천의 발원지로서 이 하천의 최상류부에 해당되는 돌고개 주변에는 석현지라는 저수지가 조성되어 위양천의 곡저 평야에 조성되어 있는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한다.
돌고개 주변 지역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층군 하산동층 문암산층원과 다인층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암산층원은 돌고개의 북쪽에 분포하며 역질사암, 역암, 탄질셰일, 자색 실트스톤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인층원은 돌고개의 남쪽에 분포하는 것으로 자색 내지 담록색 실트스톤, 사암, 역질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암산층원이나 다인층원과 같은 낙동층군에 해당되는 중생대 퇴적암층은 침식 저항력이 매우 낮아 주변 산지의 높이가 매우 낮은 구릉성 산지의 특성을 보인다.
돌고개는 예전부터 산으로 가로막힌 양쪽 지역을 오가는 교통로 역할을 하였는데 안사면 면소재지와 안계면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안계면 면소재지에서 안사면 면소재지로 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현재는 지방도 912호선(안신로)이 지나가고 있는 돌고개는 주변 지역과 고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거의 평탄하며 고갯마루에는 안사면의 안내석과 안사면사무소, 안사 농업 협동조합, 쌍호 초등학교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돌고개를 지나는 도로의 서쪽에는 좁은 평지를 따라 밭이 조성되어 있으며 남동쪽에는 무덤들이 있으며 그 아래로 곡저 평야가 발달하고 있는 경관이 펼쳐져 있다.
오늘은 기온도 내려갔고 일본에 상륙한다는 태풍의 영향인지 강한 바람까지 불어 식수도 많이 남아 있기에 돌고개에서 잠시 휴식 후 고갯마루 좌측으로 올라 홍시로 익어가는 감 하나 맛보고 곧바로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약간의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올라 묘지들을 만나고 그 묘지지대를 타고 진행을 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뚜렷한 등로가 열려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바위지대가 나타나는데 바위 위에는 철봉과 제법 굵은 줄이 설치되어 있고 그 바위 아래에는 모기장 같은 물건들도 보이는데 잠시 후 이곳이 붉은점모시나비 대체서식지라는 안내판과 태양마을 주차장A가는 방향에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이제서야 지금까지 만났던 이정표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모든 등산 안내판이 등산이나 산행을 위한 용도가 아닌 이곳 붉은점모시나비와 관련된 내용으로 제작 설치가 되어 있다는 느낌으로 조금은 아쉬운 지자체의 이정표 설치 작업이다.
붉은점모시나비가 궁금해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는데 오느 선답자는 이 붉은점모시나비의 모습이 일장기를 닮아 있어 한때 일본으로 비싼 갑세 수출까지 했다는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앞날개의 길이가 봄형 약 40 mm, 여름형 약 50 mm로서 날개는 백색 반투명으로 검정색 무늬가 있으며 뒷날개에 검은테가 있는 붉은색 무늬 2개씩이 있는데 수컷은 배 전체에 긴 털이 있다.
연 1회 발생하며 5월 상순에 나타나서 중순에 최성기를 이루고 하순에는 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양지바른 풀밭에 살며 나무딸기, 엉겅퀴, 기린초 등에서 꿀을 빠는데 유충은 기린초를 먹으며 알 속에서 초령 유충으로 월동한다.
유충은 이른 봄에 알껍질을 뚫고 나오며 한국, 아무르, 우수리, 중국 북동부, 시베리아 남부 등지에 분포하고 한국에서는 2012년 5월 31일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이라니 모두 합심하여 종 보존에 동참을 해야 할 것 같다.
안내판을 지나 멋진 분재형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걸어 오르니 바위 암릉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잠시 그 바위 암릉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254.3 삼각점봉과 그 우측 저 멀리 골두봉이 보이고 좌측 옆으로 국사봉과 고도산으로 분기되는 산줄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강한 햇살이 머리위로 떠 오르고 나무 그늘 없이 진행하는 등로는 열기로 뜨거워졌는지 조금씩 무더위를 느끼기 시작하고 가능하면 나무 그늘속으로 들어가 진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동쪽으로는 여전히 드높게 뒤따라 오는 국사봉과 고도산 줄기를 살펴보고 조금 더 오르니 방금 전 만났던 안내판과 동일한 모시나비에 관한 안내판이 서 있다.
길게 이어지는 바위 암릉을 타고 걸어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고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전망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살펴보니 도덕리와 보양리 마을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그 좌측 위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보현지맥 상 골두봉과 해망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안계면과 다인면 그리고 단북면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평야지대와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흐르는 팔공기맥 산줄기의 냉산에서 토산까지의 마루금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 암릉을 만나 오르는데 와솔이 보이고 산우님 한분이 채취하기에 도움도 주면서 진행을 해 본다.
바위 암릉을 지나 올라 154미터인 무명봉 정상부에 도착을 하니 등로는 직진의 좋은 ㅈ등로를 버리고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는데 바로 아래에는 잔디가 사라진 벌거벗은 묘지 한기가 있는 곳이었다.
묘지를 지나니 산부추가 예쁜 보라빛 씨앗을 품고 자식 농사에 열중하고 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산부추 지대를 지나니 다시 앞이 열리는데 이제 올라야 할 곤지산과 문암산 분기점 그리고 문암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다가 와 있다.
잠시 조망을 즐기고 다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또 다른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235.2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가지가 많은 소나무 한그루가 그 정상을 지키고 있다.
그 235.2봉을 지나 거대한 바위 암릉으로 이뤄진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또 다시 드넓은 안개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중간에 많은 저수지와 나즈막한 산지들도 보이며 그 뒤로 아름다운 팔공기맥 상 좌측의 냉산과 청화산 그리고 산세를 낮춘 장자봉과 우측으로 조금 높아진 만경산과 토산이 위천을 가운데로 가두며 길게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산친구들과 아름답고 고운 추억을 남겼던 그곳이고 특히나 이곳 의성이 고향인 산친구 두명과 함께 걸었기에 더욱 뜻깊이 걸었던 구간이었다.
이제 길고도 멀었던 보현지맥 산행도 그 끝자락이 보일듯 말듯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사진 남기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소나무 등로를 찾아 걸어 진행을 하니 강한 바람이 불며 솔잎이 떨어져 고통을 선사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무더위를 날려버려 많은 땀 흘림없이 산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거대한 노거수 당산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지도 상 오현을 통과하는데 제법 깊은 안부로서 이정표를 보니 아직도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듯 보인다.
오현은 지도를 보면 좌측의 안계면 양곡리와 우측의 안사면 안사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보이는데 이곳 의성에 있는 오현에 관한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다만 오현은 대부분 까마득한 고개라는 뜻이거나 낙엽활엽 소교목인 머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머귀나무가 보이지 않아 전자의 뜻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지만 그 역시 오래전 머귀나무가 있었다면 다라질 상황이기에 그저 생각만 해 본다.
오현을 지나 통나무 계단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다시 이어지고 한동안 그렇게 오르니 등로 옆으로 벤취 쉼터 하나가 보이는데 누가 이곳까지 올라 쉬었다 갈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넓은 마당바위에 올라서고 그곳에서도 안계평야와 진행방향의 보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는 여유도 가져 본다.'
다시 소나무와 바위가 섞여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제법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시기 시작한다.
잠시 후 짧은 나무계단과 데크를 만나 오르고 그곳에서도 그림처럼 펼쳐진 조망을 감상한 후 다시 오르니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가 아름답게 서 있다.
누군가의 욕심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지 말고 천년 만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 남아 있어 주길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분재형 소나무를 지나니 다시 넓은 너럭바위 위로 오르고 이제 올라야 할 328.6 삼각점봉과 곤지산이 바로 코 앞으로 올려다 보이는데 그 9부 능선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직벽 바위 띠가 산 정상부를 두르듯 둘러쳐져 있어 이색적인 풍경도 선사하고 있다.
잠시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뒤돌아 서서 지나온 방향을 보니 국사봉과 고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저 멀리 멀어지고 그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이 우측 골두봉으로 이어지며 펼쳐져 있다.
너무나 많이 같은 풍경을 보니 이제 그 감흥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지맥 산행을 하면서 오랫만에 마음껏 조망과 풍경을 즐겨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국사봉 아래 안사리 방향의 황금들녘과 민가들이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과를 그려내고 있다.
다시 약간의 사면 등로를 따라 안부로 내려갔다 완만하게 오르니 크게 위험하지 않은 등로 좌측으로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살펴보니 바로 아래로는 바위 직벽이 있어 안전 시설을 해 놓은 듯 보인다.
다시 그림같은 소나무 등로를 만나 힐링하듯 걸어가니 벤취 쉼터 하나를 지나 328.6 삼각점 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특별한 것도 없이 삼각점과 산패만 걸려 있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바위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만나고 잠시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역암으로 이뤄진 바삿바위가 보인다.
어느곳에서 보면 버섯처럼 보이고 또 어느 방향에서 보면 남근석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모양보다는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역암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더욱 눈길을 잡는다.
아마도 오래전 이곳도 바다였다가 무슨 이유로 융기되어 지금처럼 산이 되었다는 증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버섯바위를 지나니 등로에는 길게 설치된 나무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타고 올라가 본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는 다시 굵은 로프가 등로 좌측으로 설치되어 있고 조심하며 오르니 금새 간벌된 나무들이 주위에 널부러져 있고 정상에는 종이코팅지 한장으로 이곳이 곤지산 정상임을 알리는 것이 전부인 곤지산 정상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로 배낭 털이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이곳 곤지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곤지산 자체보다는 잠시 후 만날 보호수 때문에 더욱 잘 알려진 산처럼 보여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곤지산(곤지봉, 330.9미터)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과거 이 산에 물이 샘솟는 구멍이 있어 큰 습지가 형성되었는데 이 습지가 말라 건지가 되었다고 해서 곤지봉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전하며 곤지봉은 곤지산으로도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곤지봉으로 불리고 있다.
곤지봉은 높이가 330.9미터로 매우 낮은 구릉이며 산지의 남쪽 사면은 안계면 양곡리에 속하는 동시에 위천의 북쪽 분수계에 해당되며 북쪽 사면은 안사면 만리리에 속하여 신평천의 남쪽 분수계에 해당되어 위천과 신평천을 구분하는 분수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곤지봉의 북쪽을 흐르는 신평천은 의성군 안사면 중하리 해망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안사면 쌍호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곤지봉의 남쪽 사면은 위천으로 유입되는 소지류의 발원지인데 소지류들의 최상류부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사면 아래 곡구를 따라 빼곡히 축조되어 있으며 이 저수지들은 위천의 북안에 조성되어 있는 평야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곤지봉의 북쪽은 용천봉, 문암산과 능선이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높이 330미터 내외의 구릉지로 이어지고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산지 대부분이 높이 300미터 내외의 낮은 구릉지인데 이것은 곤지봉 주변 지역을 이루고 있는 기반암의 특성에 의한 것이다.
곤지봉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층군 하산동층 문암산층원과 다인층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암산층원은 곤지봉의 북쪽 사면에 분포하며 역질사암, 역암, 탄질셰일, 자색 실트스톤이고, 다인층원은 곤지봉의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 것으로, 자색 내지 담록색 실트스톤, 사암, 역질사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암산층원이나 다인층원과 같은 낙동층군에 해당되는 중생대 퇴적암층은 침식 저항력이 매우 낮아 산지의 높이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는 특성을 보이는데 곤지봉 일대가 이러한 기반암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곤지봉에는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나 암석이 노출되어 있는 곳이 많아 식생은 불량한 편이다.
곤지봉 정상에는 삿갓 모양의 소나무가 홀로 서 있는데 수령은 350년 정도이며 2000년 2월 17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곤지봉의 정상부 전체를 통틀어 한 그루만 서 있기 때문에 안계면 뿐만 아니라 의성군 서부의 많은 곳에서 산 정상부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이 소나무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에 전설이나 구전되는 이야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옛날 한 농부가 이 소나무의 가지를 땔감으로 잘라 지게에 지고 집까지 잘 갔으나 결국 부정을 타서 집 마당에 들어서자 지게가 갑자기 무거워지며 그 무게에 눌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전설을 통해 이 나무가 수명이 오래되어 사람들로부터 영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으며 덕분에 사람들의 손에 의한 인위적 훼손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딱따구리, 해충 등의 피해로 인하여 나무에서 뻗어 나온 7개의 가지 가운데 3개의 가지만 남아 있다.
곤지봉 정상의 나무 외에도 북서쪽에 위치한 문암산에 문바위로 불리는 독특한 바위가 있어 이 일대로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곤지봉과 문암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안계면을 대표하는 주요 등산로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등산로는 곤지봉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서부터 곤지봉에서 문암산과 다인면 달제리로 이어지는데 길이는 약 5.7 Km 정도이다.
주차장에서 곤지봉의 정상까지만 왕복할 경우 등산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로 매우 짧기 때문에 좀 더 장거리의 산행을 즐기고자 하는 산악인들은 곤지봉만 오르지 않고 북서쪽 능선을 따라 문암산까지 오른다.
잠시 쉬면서 배낭털이를 끝내고 볼 일도 보고 여유있게 출발을 하니 앞서 진행하던 두 사람의 뒷모습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너무나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다.
등로 주위에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지만 등로만큼은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진행에 전혀 문제가 없어 힐링하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큰 오르내림이 없이 평지 같은 등로를 타고 소나무 향을 맡으며 걸어가니 또 다시 벤취 쉼터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곧지봉(327.8미터)라는 이정판이 서 있는데 그 뒤에는 방금 전 곤지산에서 설명을 한 보호수 한그루가 서 있다.
350년 된 소나무이라니 그 장고한 세월동안 살아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보호를 받아야 될 수령처럼 보이는데 살펴보니 각 가지마다 썩어 시멘트로 땜방을 해 놔 그 장구한 세월동안 살아 온 인생 역정이 보이는 듯 하다.
그 보호수 옆에서 다시 안계평야와 그 뒤로 흐르는 위천을 찾아 보지만 위천은 보이지 않고 팔공기맥 마루금만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좌측 사진에는 잘려있는 부분으로 냉산과 청화산이 있고 가운데 낮게 뾰족한 장자봉과 우측으로 만경산 그리고 마지막 토산까지 조금은 더 선명하게 다가와 있다.
저곳을 걸으며 이곳 보현지맥을 살펴보며 그 이름 하나 맞추기 위해 지도를 펴 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호수에서 한동안 더 머물며 멋진 조망과 풍경을 둘러보고 다시 출발하니 ㄷ등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편안하게 걸어가니 갑자기 소나무들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리더니 진행 방향으로 마지막 문암산 갈림 분기점인 480미터봉과 그 우측으로 문암산 가는 산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더 구경하고 내려가니 바위계단처럼 생긴 안부가 있는 신의현을 통과한다.
선의현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정확한 자료는 없는데 등로 우측의 안사면 만리리의 지명유래에 선의재가 보이고 그 의미는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신빙성은 모르겠다.
선의현은 좌측 양곡리와 우측 안사리 또는 만리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선의현을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열리더니 금새 잡목 등로로 바뀌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절벽바위가 있는지 낭떨어지 형태로서 조망은 시원하지만 계속 만났던 풍경이다 보니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게 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칡넝쿨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강풍이 몰아치는데 아마도 일기예보에서 예보한 태풍의 영향인듯 하다.
좌측 절벽 바위 방향에서 불어 오는 바람으로 모든 식물들이 우측으로 휩쓸려 흔들거리고 있어 산행하기에는 덥지 않아 참으로 좋은 조건이다.
지나 온 방향으로 곤지산과 국사봉 능선도 한번 더 살펴보고 진행하니 다시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한동안 그 소나무 등로속을 미로 찾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걸어가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에 304.7미터봉 정상에 도착을 해 증명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이제 오늘 산행도 마지막 봉우리만 남겨뒀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는데 실제 진행을 하다 보니 문암산 분기점인 비봉산 오르막 등로가 장난이 아니어서 무척 고생을 한 기억 뿐이다.
그 능선상에 있는 304.7봉을 지나서도 한동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키 큰 산죽지대를 지나 서서히 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문암산 분기점 가는 오르막 등로이다.
처음에는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금새 거대 바위 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도저히 진행이 어려워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지해하도록 되어 있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암릉 오르막 등로를 우회하며 힘들게 오르니 그동안 흐르지 않았던 땀방울이 굵게 흐르며 등로를 적시기 시작한다.
어렵게 바위 암릉 구간을 우회도 하고 로프를 잡고 힘들게 오르니 무명 묘지 한기가 반겨주고 다시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한골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제 정상까지는 5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잠시 더 힘을 내 걸어 오르니 작은 돌탑이 중앙에 있고 좌우측으로 이정표와 이정판이 설치되어 있는 문암산 분기점인데 정상에는 480미터의 비봉산이란 정상판도 보인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곳 비봉산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하여 아쉽기만 한데 실제적인 비봉산은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500미터급 산으로 그곳이 실질적인 보현지맥의 마지막 높은 봉우리가 될 것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토끼봉 전망대라는 이정표가 보여 잠시 올라가 본다.
특이할 것 없는 바위봉에 등로 좌측으로 안계평야가 제한적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전망대란 이름으로는 부족해 보이지만 이곳까지만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멋진 풍경이 될 듯 하다.
토끼봉전망대를 내려 와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본다.
토끼봉 전망대에서 내려 와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고 잠시 후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능선 등로가 끝이나고 잡목과 잡풀이 우거져 있는 묵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달제리 한골마을 방향으로 편안하게 걸어 본다.
우측 저 멀리 다음 구간에 넘어야 할 보현지맥의 마지막 높은 봉우리인 비봉산도 올려다 보이면서 이제 보현지맥 산행도 그 마무리가 보이는 듯 다가와 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논인 듯 보이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면서 논인지 묵은 밭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농사 지을 젊은이가 없어 많은 농경지가 묵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우측 보이지 않는 문암산 분기점인 비봉산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문암산 줄기와 그 끝자락에 문암산이 이제서야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다시 이어지는 묵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여유있게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그곳에서는 오늘 힘들게 넘어 온 마지막 문암산 분기점인 480미터의 비봉산과 그곳에서 이곳으로 내려 온 보현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반대쪽에서 오를 땐 그토록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고 바위 암릉도 많더니 이곳에서 올려다 보니 어머니 품처럼 유순한 모습으로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잇는 듯 보인다.
아마도 그 봉우리를 넘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지나 온 문암산과 문암산 분기점을 살펴보고 다시 내려가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묵은 비포장 임도를 지나 농기구와 강아지 집들이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해 한숨을 길게 내쉬어 본다.
밭 경작지가 보이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다인면 달제리 한골마을의 민가와 그 옆으로 창고 건물들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비로재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데 도로 옆에는 가지가 찟어질 정도로 매달려 있는 감나무가 인상적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홍시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군침만 흘리며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본다.
달제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있는 리로서 의성군은 산간지역이라 대부분 하천의 달원지가 많으나 달제리는 마을 복판에 달제천이 흐르고 저수지인 달제지와 금제지가 있어 밭보다는 논이 발달한 이 지역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다.
달제라는 지명은 서울로 과거 보러 가는 사람이 이 마을에 쉬어가면 통달한다 했던 달동과 인근의 양지산을 바라보면 금이 날 듯 하고 산 모양이 길게 제방과 같았다는 금제를 합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에는 웃대골, 달동 거릿마을, 공사봉산, 샘골, 한골 등이 있는데 달동 거릿마을은 지형이 연꽃이 물에 떠있는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샘골은 약샘이 부근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한골은 문암산 밑의 큰 고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으로 전원주택처럼 보이는 멋진 민가들이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창고 건물이 보이는데 그 창고 건물 안에는 수확한 감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마도 곶감을 만들기 위한 감 수확이 아닐까 생각되는 풍경이다.
잠시 후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등산로입구 이정표를 만나고 잠시 주위를 살펴본 후 찾는 산악회 버스가 보이지 않아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올라 가 본다.
잠시 더 올라가니 드디어 산악회 버스가 보이고 그곳에서 산행을 마치고 배낭을 정리해 본다.
도로 좌측으로는 문암정이라는 2층 팔각정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밭 경작지에 겉절이 무우가 심어져 있고 그 아래 둑에는 익어가는 감나무들이 붉게 익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고즈넉하기만 하다.
시원한 소맥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배낭을 정리한 후 잠시 도로 좌측으로 보이는 문암정이란 2층 팔각정으로 올라 본다.
문암정이란 팔각정 2층에서 좌측인 남쪽을 살펴보니 다인면과 단북면 그리고 안계면에 걸쳐 있는 안계평야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팔공기맥의 냉산과 청화산 그리고 장자봉과 만경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만경산 우측으로는 팔공기맥 마지막 봉우리인 토산도 보이고 그 토산 우측으로는 보현지맥의 날머리인 위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도 보이는데 확실하게 구분은 하기 어렵다.
그렇게 한동안 그 문암정에서 조망을 즐기고 내려 와 산악회 버스에 올라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이제서야 모든 종주대가 도착을 해 간단한 샤워와 식사를 위해 단북면으로 향한다.
단북면 단북농업인복지관에서 2000.-원으로 샤워만 간단히 하고 그 옆에 있는 식당에서 된장찌개 비빔밥과 쇠고기 두루치기로 식사를 하면서 소맥 몇잔 하니 이제서야 하루가 마감되는 기분이다.
함께 산행을 한 종주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시간이 오후 4시인데 약간의 막히는 도로를 타고 장암역에 도착을 하니 저녁 8시 20여분이 지나고 있다.
이렇게 또 한구간의 보현지맥 산행을 마치고 귀가를 해 사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니 길었던 하루가 또 다시 저물어 가고 있다.
이제 11월 초가 되면 마지막 구간을 다녀 와 멀고도 길었던 보현지맥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보현지맥 산행이 끝나면 곧바로 진행하다 중단한 고흥지맥과 새로 시작해야 될 여수지맥과 화원지맥에 들게 되면 올 겨울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남아 있는 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기대를 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보현길 무사히 다녀오셨군요.
저는 두구간이나 결석을 했으니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구간 건너뛰고 마지막 구간에서 만나요.
네 부뜰이님
한달 넘게 뵙지 못하니 오래되었네요
마지막 구간에서라도 뵙고 탁배기 한잔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전날 왕재에 이은 보현지맥으로 이어지셨군요.
쉼없는 마루금 답사길이군요.
등로상에는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나옵니다.
부뜰이님과도 정겨운 만남이 기대됩니다.
남은 구간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제 다 오셨네요. 저도 이 길을 가야 하는 디.. 부럽습니다. 수고하셨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