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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3. 8. 16.~18.(수~금) - 음력(7. 1.~3.), 일출 05:45~일몰 19:10
●산행지: 두위지맥 1구간 졸업
●산행코스: 만항재-정암산(1,452.4m)-백운산(1,426.6m)-하이원스키장 마운틴탑-꽃꺽이재-1,341m봉-1,441.5m봉-1,370m봉-주목군락지-1,379.8m봉-1,458.9m봉-두위봉(1,470.5m)-죽렴지맥 분기점-지운동고개(1,017m)-질운산(1,173.8m)-새비재(940m)-922.2m봉-778.7m봉-뱃재(657m)-예미산(989.6m)-968.5m봉-수라리재(600m)-영광산(935m)-망경대산(1,087.9m)-996.6m봉-자영재(871m)-964.2m봉-987.5m봉-응봉산(1,013.3m)-882.4m봉-845.4m봉-계족산(889.6m)-486.1m봉-290.5m봉-여우고개-223.4m봉-평창강/남한강합수점
●먹거리: 생수2리터, 생수통, 튀김건빵2, 별뽀빠이2, 사탕5
●준비물: 하계텐트, 경량우모, 바람막이, 상의, 모자, 메트,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팔토시, 말방울,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양말, 여벌옷, 띠지21
●거리: 약 58.1Km
●소요시간: 53.17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시외버스31,400, 택시20,400, 음료8,000원, 뒤풀이1,5,000, 시외버스21,200
●날씨: 21~32, 구름 많고 맑은편
●산행경과:
* 8. 16.(수) : 18.2km
- 09:07 : 만항재
- 10:51 : 정암산(1,453.4m)
- 12:40 : 백운산(마천봉, 1,426m)
- 13:00 : 1,388m봉
- 13:16~34 : 마운틴밸리
- 13:55 : 도롱이연못
- 14:10 : 화절령
* 8. 17.(목) : 24.8km
- 05:19 : 출발
- 05:49 : 1,341m봉
- 06:32 : 1,441.5m봉
- 07:27~38 : 1,200~1,400년 주목
- 07:52 : 1,379.8m봉
- 08:21 : 1,458.9m봉
- 08:56 : 두위봉(1,470.8m)
- 09:12 : 장군봉(1,470m)
- 09:23 : 죽렴지맥갈림길
- 10:16 : 지운동임도/ 단곡재
- 10:48 : 질운산(1,173.8m)
- 11:19~35 : 새비재/ 아라리재
- 12:22 : 922m봉
- 13:06 : 778.7m봉
- 13:29 : 748.5m봉
- 13:39~50 : 뱃재
- 15:04 : 예미산(989.6m)
- 15:31 : 968.5m봉
- 15:45 : 937.5m봉
- 16:06 : 산불초소
- 16:15 : 수라리재
- 17:31 : 영광산(935m)
- 17:51~18:17 : 민박집(마법의언덕)
- 19:12 : 망경대산(1,087.9m)
- 19:48 : 996.6m봉
- 20:12 : 917.5m봉
- 20:22 : 자령치/ 자영재
* 8. 18.(금) : 15.9km
- 05:15 : 자령치 출발
- 05:40 : 964.2m봉
- 06:26 : 987.5m봉
- 07:04 : 응봉산(1,013m)
- 09:02 : 845.4m봉
- 10:57 : 계족산(889.6m)
- 12:07 : 486.1m봉
- 12:55 : 473.6m봉
- 13:21 : 409.2m봉
- 14:24 : 동강/서강 합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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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유지하는 산행이 아닌 가끔 불쑥 내밀어 세 구간을 벼락치기로 한번에 할려니 보통 체력이 요구되는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물이 많이 멕히는 한여름 마루금 사냥에 박배낭으로 무지원 홀산이라니 자칫 중탈 위험이 농후하지요.
새비재에서 식수를 보충할려면 독가촌까지 3~40분 다녀와야 하지만 더운 날씨에 물부족을 겪기 보다는 고생을 덜하는게 낫겠고, 날씨도 도와얄텐데 비박중에 피하기 어려운 소나기라도 내린다면 어쩔것인가
첫날은 화절령, 둘쨋날은 좀더 많이 걸어 자영재 임도 정도면 족할까 시간을 마법의 언덕 임도휴게소에서 조절함 될것같고,,,
실전에선 내내 소나기와의 심리싸움이었습니다.
레인커버를 준비하지 못했고, 비를 견딜 수 있는 텐트가 되지 못하기에 첫날 세시까지 죽자사자 화절령까지 가야했고 비예보에 더이상 진행할 수도 없었네요. 여러 이유를 하나의 핑계에 꿰어 그렇게 정암산, 화절령구간을 임도로 우회했습니다.
그래서 비가 왔냐구요?
만항재 도착 했을땐 이미 상당한 비가 지나갔더군요. 이후론 마지막날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새비재는 도롱이연못에서 4리터 보충한 물로 그냥 통과! 아오리 낙과 하나 주워먹었습니다.
마지막 날도 두시에 광역성소나기 예보라 여기에 맞춰 출발했는데 계족산 오름부턴 구라가 확실시 되니 오히려 날씨가 더워서 늘어지더군요.
마법의언덕 민박집이 외출중이라 잠시 난감했지만 어쩝니까 영업집이라선지 식숫물은 꽁꽁 묶어두어 물레방아 낙숫물이라도 4리터 받았습니다. 마지막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망경대산 이후 자령치까지는 야간산행을 조금 했구요. 자령치 직후 잣나무숲인가요. 정상 이후론 사계청소를 해놓아 마루금을 벗어나지 않는게 그나마 고생을 줄이는 길이었습니다.
체력이 고갈될 즈음 맞닥뜨린 악명높은 계족산은 능선에 달라붙기까지 다섯번 넘게 쉰것 같습니다. 내림길에 계곡과 젤 가까운 곳에서 물소리가 들렸어요. 이후로도 두시간 더 가야하니 물부족을 비켜갈려면 참고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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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위지맥(斗圍枝脈)이란 ?
백두대간 함백산(1,572.1m) 아래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남으로 옥동천, 북으로 지장천을 경계 지으면서 백운산(1,426.6m), 꽃꺽이재, 두위봉(1,470.8m), 질운산(1,173.8m), 새비재, 예미산(989.6m), 수라리재, 영광산(935m), 망경대산(1,088m), 자영재, 응봉산(1,013.3m), 계족산(890.6m), 태봉(437.6m)을 거쳐 서강(평창강)이 동강(남한강)에 합류하는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에서 주왕지맥과 마주보며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4km의 산줄기로 동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서강(평창강)과 동강(남한강)의 두물머리는 주왕지맥의 끝이고, 이를 마주보는 산줄기가 두위지맥이다. 계방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이 주천강을 만나면서 서강으로 불리고, 오대산 우통수에서 흘러나온 오대천이 정선을 지나면서 조양강이 되었다가 영월에 들어와서는 동강이라 불린다. 서강과 동강이 영월읍에서 합류되는데, 이 동강이 한강(남한강)의 본류인 셈이다.
백운산(白雲山)은 남한에 26개 있는데 남한의 백운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 두위지맥 백운산이다. 북한에는 1,600m급도 있다지만, 남한의 함양이나 광양에 위치한 백운산 보다 200m 정도 더 높은 봉우리를 갖고 있는 곳이 두위지맥이다.
♤ 두위지맥 개념도
* 두위지맥을 지나는 동네
* 정선군(旌善郡, 고한읍, 사북읍, 남면, 신동읍)
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한 군으로 북쪽은 강릉시, 북서쪽은 평창군, 남쪽은 영월군, 동쪽은 동해시·삼척시·태백시와 접한다. 임계천과 구절천(九切川)이 만나는 강변과 북평면 남평리 강가에 고인돌군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현으로 668년(보장왕 27)에 잉매현(仍買縣)이라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지금의 이름인 정선으로 개칭되어 명주(溟州)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466년(세조 12)에 원주의 관할령이 되었으며, 이듬해 정선군으로 부활되어 조선 말기까지 계승되었다. 1895년에 강원도에서 충주부 관할로 이전되었고, 다음 해인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다시 강원도 관할이 되었다. 1924년에 서면이 정선면에 병합되었고, 1931년에 도암면이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1935년에 정선면 일부가 평창군 진부면에, 신동면 일부가 영월군 상동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1948년에 신동읍 조동리에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문을 열게 되면서 이 지역의 탄광 개발이 시작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정선면과 동면 사북출장소가 각각 읍으로 승격되어 2읍 5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때 삼척군 하장면 가목리와 도전리가 임계면에, 명주군 왕산면 구절리와 남곡리가 북면에, 신동면 천포리가 영월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1974년에 태백선이 완공됨에 따라 이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탄 공급지가 되었다. 백두대간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가면서 강원도에 이르러 영동과 영서의 분수령을 형성하였는데, 정선군은 영서에 위치한다. 한강기맥에서 뻗어내린 상원산(上元山)·가리왕산(加里旺山)·비봉산(飛鳳山)·벽파령(碧波嶺)·성마령(星摩嶺)·마전치(麻田峙) 등이 군의 우측을 이루었으며, 석병산(石屛山)·중봉산(中峯山)·갈래산(葛來山)·백운산(白雲山)·예미산(禮美山) 등은 좌측을 이루고 있다. 고양산은 군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화암면, 여량면, 임계면의 일부를 형성하였다. 갈래산(葛來山)은 동에서 서로 뻗어내려 우암산, 서운산, 기우산을 이루면서 조양산(朝陽山), 병방산(兵防山)을 끝으로 북쪽은 정선읍과 화암면의 일부가 되고 남쪽은 남면의 북반(北半)을 이루었다. 함백산은 서쪽으로 뻗어 영월로 가는 중간에 백운산(白雲山), 두위봉(斗圍峰) 등이 있으며 그 북쪽은 화암면의 일부를, 남쪽은 신동읍을 형성하였다. 남한강 상류가 관류하고 있는 정선에는 오대천, 석항천, 지장천, 용탄천, 어천, 골지천, 임계천, 송현천, 송천, 봉산천 등 10개의 하천이 있다.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발원한 송천과 삼척시 하장면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여량면에서 합류하고, 북평면 나전리에서 오대천과 합류하여 정선읍에 이르러, 하장면 어리에서 내려오는 어천과 합류하며, 갈래산에서 발원하여 고한읍·사북읍·남면을 관류(貫流)하는 지장천과는 가수리에서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루어 충청·경기·서울을 지나 서해로 유입한다. 내륙 산간에 위치하므로 대륙성 기후의 특성이 나타난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간 지역이 많으므로 고랭지의 분포가 넓다. 따라서 첫 서리가 빠르고 또한 늦게까지 서리가 내리므로 겨울이 길고 식물의 생육 기간이 짧다. 이른 봄에는 태백산맥과 동해의 영향으로 샛바람이 많이 불며 그 피해가 적지 않다. 「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재, 1971년 지정)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아우라지 나루터는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구절천(또는 송천)과 남동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골지천이 여량면 여량리에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나루터인데 예로부터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도로가 확장, 포장되어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여량면·임계면과 신동읍 등지에서 고랭지 채소의 재배가 활발하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영월군(寧越郡, 상동읍, 산솔면, 영월읍)
강원도 남부에 있는 읍으로 강원도에서도 산세가 수려하고 삼림이 울창하기로 이름나 있으며, 지하자원의 매장량이 많다. 2개읍 7개면 57개리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로이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일부였고 4세기 초부터 한산성(漢山城: 지금의 광주)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백제의 세력이 커져 한강 하류지역 일대를 차지함에 따라 이때부터 백제에 속하게 되었다. 당시 이 고장은 100가구가 넘는다는 뜻으로 백제의 백월(百越) 땅이라 불렸다. 그러나 북쪽의 고구려 세력이 낙랑군을 정복하면서 남하하게 되고 또한 반도 동남부에서 일어난 신라의 세력이 팽창하여 북상해 오면서 한강 이남의 중부 지방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 사이에 치열한 경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장수왕 때에 고구려는 국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그 세력을 남으로 뻗쳐 백제의 도읍지인 한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한강 유역은 고구려가 점령하게 되어 백월은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고 내생현(奈生縣)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 통치제도를 정비하면서 내생현을 내성군(奈城郡)으로 개칭하였으며, 9주 5소경 중 명주(溟州)에 속하게 되었다. 후삼국기에 이 지역은 고려에 영속되었고 940년(태조 23) 영월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주천현(酒泉縣)을 폐하면서 원주(原州)에 이속시켰다. 995년(성종 14)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원주와 같이 중원도에 속하였고, 5도양계 이후에는 양광도(楊廣道)에 편입되었다가 1372년(공민왕 21)에 영월 출신 환자(宦者) 연달마실리(延達麻實里)가 명나라에 있으면서 국가에 공이 있다고 하여 영월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1401년(태종 1)에 이 지역은 강원도에 귀속되면서 지군사(知郡事)가 다스렸다. 1457년(세종 3)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어 왔다. 1698년(숙종 24)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을미개편 때 군이 되었으며, 원주·평창·정선 등과 함께 충주부에 편입되었다가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에 다시 강원도로 복귀하게 되었다. 1914년 원주에 속해 있던 수주면(水周面)과 좌변면(左邊面)이 이 지역으로 귀속되었으며, 1915년에는 정선군 신동면 석항리가 편입되었다. 1931년 천상면(川上面)이 군내면(郡內面)으로 개칭되었으며, 1937년 7월 군내면이 영월면으로 개칭되었다. 1960년 1월 1일 영월면이 상동면 연하리를 편입하여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 1월 1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천평리·덕구리가 상동면에 편입되고, 수주면 강림리·부곡리·월현리가 횡성군 안흥면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상동면이 정선군 신동면 천포리 일부의 편입을 받아 읍으로 승격되었고, 하동면(지금의 김삿갓면) 정양리와 남면 흥월리가 영월읍에, 서면(지금의 한반도면)의 북쌍리가 남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상동읍의 녹전(碌田)·석항(石項) 2개 출장소를 통합, 중동면을 설치하였다. 2009년에는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서면이 한반도면으로 각각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6년 11월에는 수주면이 무릉도원면으로 변경되었고 2021년 중동면이 산솔면으로 변경되었다. 북쪽으로 정성군, 평창군, 서쪽으로 횡성군, 원주시, 남쪽으로 충북 제천시, 단양군 및 경북 영주시, 봉화군, 동쪽으로 강원도 태백시에 접한다. 북동부에서 남동부로 영월지맥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남동부에는 백두대간 동서로 뻗어 그 산맥의 여파가 군내 각지에 미쳐 산악이 중첩하며, 북서부에 백덕산(1,350m), 북동부에 백운산(1,426m), 두위봉(1,466m), 망경대산(1,088m) 남부에 태화산(1,027m), 옥석산(1,232m) 등이 솟아있다. 중앙부를 한강 지류인 평창강과 주천강이 한반도면 신천리 부근에서 합류하여 동류하다가, 영월읍 하송리에서 한강 본류와 합류하고, 다시 각동리 부근에서 옥동천이 합류하며, 평지는 주천리와 영월분지 외에는 별로 없다. 군내에 석회암층이 곳곳에 있어 쌍룡,옹정,연당,영월 부근에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해 있고, 진별리에는 고씨동굴 등 석회동굴도 여러 개 발달해 있다.내륙산간지대에 있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큰 내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지하자원의 개발을 목적으로 한 제천-태백을 잇는 산업철도인 태백선이 군의 중앙을 동서방향으로 지난다. 평창-태백, 제천-정선을 잇는 국도가 영월읍을 지나며, 군내 각 지역은 지방도로 연결된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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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만항재-5.8km-정암산-4.5km-백운산-4.4km-꽃꺽이재-5.7km-두위봉-4.5km-질운산-5.2km-뱃재-1.5km-예미산-2.3km-수라리재-3.3km-망경대산-2.1km-자령재-3.5km-응봉산-5.4km-계족산-6.3km-남한강
* 구간거리
- 접속: 2.6km(1.40h)
- 만항재 ~ 수라리재 34km
-. 만항재 ~ 꽃꺽이재 14.3km
-. 꽃꺽이재 ~ 새비재 11.2km
-. 새비재 ~ 수라리재 8.5km
- 수라리재 ~ 평창강/남한강합수점 21km
-. 수라리재 ~ 자령치 5.1km
-. 자령치 ~ 계족산 9.6km
-. 계족산 ~ 평창강/남한강합수점 6.3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사북읍 황실사우나찜질방: 033-592-0008
- 마운틴탑: 3층 아이스티, 레스토랑, 1층 돈까스식당
- 도롱이연못: 약수터, 원두막형 정자
- 화절령/꽃꺽이재: 사각정자
- 새비재: 고냉지채소밭 민가 식수보충 가능, 사각정자
- 수라리재 ~ 예미역 택시: 12,000원, 신동읍(예미역)콜택시: 033-378-0006
- 수라리재(화원리마을버스정류장) ~ 영월역(12-1번): 0.40h, 1,200원, 18:50분 막차
- 영월교통: 070-4185-4120, 영월대중교통정보: 080-850-9486
- 영광산-망경대산 임도 민박집(마법의 언덕): 010-4852-2312(1인 10만, 성수기 15만), 식사, 식수 보충가능
- 봉래초교 입구: 나들가게
- 영월택시: 033-375-8282
- 영월읍 레스트스파24시간찜질방: 033-374-5353
* 서울에서 두위지맥 분기점 가는 길
- 청량리역 ~ 고한역: 07:34, 09:55, ~ 17시, 19:10, 3.17h, 14,300원
- 동서울터미널 ~ 고한사북공영터미널: 06시, 06:30, 07:20, 07:45 ~ 20시, 21:10, 22:30, 2.50h, 29,900~32,800
- 동서울터미널 ~ 태백터미널: 06, 06:30, 07, 07:20, 07:45, 08:10, 08:30, 09:30 ~ 20시, 21:10, 22:30, 3.10h, 33,500~36,800원
- 고한사북공영터미널 ~ 만항재 택시: 2만원, 택시: 033-592-2580
- 태백시외버스터미널 ~ 만항재 택시: 2만8천원, 033-552-4747
- 고한사북공영터미널 ~ 만항마을 버스(57-4번): 07:25, 09:40, 12:50, 18:20, 0.25h, 1,000원
- 만항마을 ~ 만항재: 도보 2.5km
* 영월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영월역, 영월시외버스터미널 합수점에서 도보 이동 가능
(터미널은 신교 건너 첫번째 사거리서 우회전, 역전은 구교에서 직진)
- 합수점 농업기술센터: 영월택시 033-375-8282
- 영월터미널: 07, 10, 10:10, 11:40, 13:10, 15:25, 15:30, 17시, 18시, 19:10, 2.40h, 14,000~21,200원
- 영월역: 08:14, 09:45, 14:28, 17:44, 19:43, 20:36, 2:10h, 11,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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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은 주천강과 합류한 평창강(유역면적 1,773.39㎢)이 골지천을 거쳐온 한강 상류(유역면적 2,447.85㎢)와 합류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동쪽의 한강 본류를 동강이라 부르고, 서쪽의 평창강을 서강으로 부르며, 이 두 강이 합친 이후를 남한강이라 부른다.
동강을 둘러싸는 산줄기를 살펴보면 영월 합수점에서 계족산을 거쳐 이어지는 두위지맥(斗圍枝脈)을 따라 백두대간 만항재에 이르고,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금대지맥과 황병지맥을 분기하고, 오대산 두로봉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강기맥(漢江岐脈)을 따라가다가 계방산 어깨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주왕지맥(住王枝脈)을 따라 영월의 발산에 이른다.
서강을 둘러싸는 산줄기는 영월 합수점에서 국지산을 올라 영월지맥(寧越枝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백덕지맥을 분기하고, 한강기맥에 이르러 백두대간을 향해 올라가다가 계방산 정상을 지나자마자 남쪽으로 꺾어 주왕지맥을 따라 영월의 발산에 이른다. 이 두 강을 에워싸는 산줄기가 겹치는 한강기맥의 계방산 어깨에서 영월의 발산에 이르는 주왕지맥은 동강의 물과 서강의 물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선생님 조선일보 산지 기고문 중에]
한강기맥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고, 주왕지맥은 동강과 서강을 가른다는 말입니다.
서강은 영월지맥과 백덕지맥이, 동강은 황병, 금대, 노목, 두위, 죽렴지맥이 함께 합니다.
♤ 두위지맥 분기점 산패
기존의 두위지맥 분기점 산패는 만항재 매점 뒤쪽에 있었는데, 정확한 지점이 아니라서 부뜰이, 천왕봉운영자님이 보다 백두대간에 가까운 두위지맥 분기점으로 옮겨 설치하였는데, 백두대간 함백산 쪽에서 내려오면 공군부대로 들어가는 임도로 화방재로 진행하게 되는데 군부대 입구에서 왼쪽으로 이정표가 서있다. 함백산 3km라는 방향으로 30~40여미터 들어간 위치를 두위지맥 분기점으로 비정하였다.
♤ 만항재(晩項嶺, 1,330m) 삼시군계(태백시 → 정선군, 영월군)
만항재는 정선군 고한읍 상갈래교차로에서 시작하는 414번 지방도를 따라 오르면 정선군 고한읍,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의 3개 시군이 경계를 이루는 해발 1,330m인 만항재에 닿는다. 만항재라는 지명은 원래 동네말로 능목재(늦은목이재)라고 불리던 이름을 한자로 ‘晩項(만항)’이라고 붙인 데서 비롯됐다. 또 다른 설은 여말선초(麗末鮮初)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 두문동에 은거해 살던 사람들의 일부가 정선에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 지역의 제일 높은 만항에서 빌었다고 하여 처음에는 망향이라 불렀다가 훗날 만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고개로, 정상 주변에는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져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만항재 주변과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시야가 넓고 완만해 야생화를 관찰하며 여유롭게 등반할 수 있는 고개다. 정확히 살펴보면 만항재는 백두대간이 넘는 고개가 아니다.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48.4km로 이어지는 두위지맥을 넘는 고개이다.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옛날 고한 사람들이 이 재를 넘어 황지를 거쳐 춘양까지 가서 소금을 사오기도 했는데, 소금 한 가마를 지고 고한에 도착하면 소금이 녹아 반 가마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정암사(淨岩寺)는 신라시대 진골(眞骨) 출신인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로 자장율사는 신라에 화엄사상을 최초로 소개한 스님이다.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는 의미에서 정암사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 절은 오대산의 상원사, 양산의 통도사, 영월의 법흥사, 설악산의 봉정암과 더불어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다.
♤ 1,311.6m
두위지맥 분기점 산패를 확인하고, 다시 만항재로 내려와 만항재 매점 왼쪽 군부대로 올라가는 임도로 1분쯤 올라가면 차단기가 보이고 군부대 정문이 보인다. 울타리를 따라 좌틀하여 군부대 철조망이 끝나는 위치에서 왼쪽으로 올라서는 펑퍼짐한 봉우리이다. 지맥은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의 경계를 따라 백운산을 넘어 하이원스키장 하이원탑으로 향한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묵묘가 나오고 선답자들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나 봉우리를 하나 넘고, 풍력발전기 NO.14, NO.13을 지나 임도로 내려선다.
♤ 임도삼거리/ 혜선사갈림길
두위봉 안내판이 있고, 또 다른 이정목엔 새비재까지 25km라고 되어있다. 운탄고도는 이곳에서 혜선사 방향으로 내려가고, 마루금은 새비재 방향으로 가는 운탄고도길이 아닌 이정표 뒷쪽에서 좌틀하는 풍력발전기 관리건물로 올라가는 또 다른 임도로 이어진다.
♤ 운탄고도(雲炭高道)
다시 임도에 내려서고 마지막 풍력발전기까지 임도를 따라 걷는다. 이 임도는 만항재에서 함백역으로 이어지는 운탄(運炭) 고도라 불리는 산업도로이다. 운탄고도 길이란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시절에 석탄을 실어 나르던 석탄 운반 길이었다. 운탄고도(運炭高道)란 한국의 차마고도라 하여 1960~70년대에 석탄을 실은 차가 지나는 길로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신동읍과 영월군 상동읍, 산솔면에 있는 백운산과 두위봉 일대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임도중에서 해발 1.000m 높이로 이어지는 백운산과 두위봉 7부능선을 휘감는 둘레길을 개발하여 운탄고도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국 윈난성과 티베트의 차와 말을 교역하던 험난한 차마고도(茶馬高道)에서 유래됐을 지명을 누군가가 만들었는데 구름 위에서 석탄을 운반했던 높은 도로라는 뜻이다. 해발 1천여미터 높이의 길이 질운산을 지나 함백역에 이르기까지 40km가 넘게 비포장길로 이어진다. 이제는 임도의 역할로 관광객들의 트레킹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 1,383.2m봉/ 4등삼각점( 태백 434/ 2004 재설)
임도로 10여분 올라가다가 삼각점봉을 만나보기 위해 양회임도를 버리고 공터에서 왼쪽 숲길로 올라가는데 엄청 가파르다.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좌틀하여 왼쪽으로 내려선다.
♤ 1,378.9m봉/ 폐헬기장
삼각점봉에서 내림길은 마루금 잡기가 애매하다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올라서니 왼쪽으론 절개지가 보이고 갈라진 능선을 따라 암릉구간으로 오른다. 바위절벽에서 조망이 훤히 트인다. 왼쪽으로 장산, 오른쪽으론 풍력발전기가 이어지고 끝나는 지점이 정암산이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 장산(壯山, 1408.8m)
장산은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九來里)와 천평리(川坪里)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백두대간 상의 함백산이 서쪽으로 가지를 쳐 웅장하게 솟구친 산으로 남쪽과 서쪽은 바위와 절벽지대로 이루어져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또한 북쪽과 동쪽은 완사면으로 상동에서 태백 방면으로 가다 경계지점인 칠랑이골에서 좌측으로 쳐다보면 성벽처럼 위용을 자랑한다. 정상에 서면 강원도 일대 산군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 1,378.4m봉/ 만항산
‘배낭주인과 영동양반’이란 산꾼이 만항산이란 코팅지를 붙혀놨다. 오른쪽 아래는 정선군 고한읍 만항마을이 있고 왼쪽 능선 아랫쪽은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로 지나온 길에 이정표에서 보았던 혜선사가 있는 곳이다. 오름길은 흐릿하고 내림길은 뚜렷하다. 왼쪽 능선으로 내려선다.
쉣쉣 쉣! 바람 많은 날에는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정암산으로 가는 도로가 곧 두위지맥 능선길입니다.
♤ 정암산(淨巖山, 1,452.4m)/ 3등삼각점(태백 310/ 2004재설)
국산풍력 4호단지 정암풍력발전단지 표지석이 있는 곳에 올라서고 임도로 더 진행하여 NO.3풍력발전기에서 마루금으로 오르기도 하나 임도를 계속 따르다가 마지막 NO.1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에서 임도는 끝나고 마루금으로 올라서 정암산에 오르는게 수월하다. 정상에는 쪼개진 판떼기 정상표지판이 있고, 왼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표지판과 삼각점이 있다. 정선군 고한읍 만항리와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고시지명은 1,452.4m봉으로만 되어 있고 맥 산꾼들에 의해 언제부턴가 정암산으로 불리는데 만항리에 정암사가 있긴 하나 정암사와는 너무 멀다. 정암사는 백두대간 함백산에서 은대봉 가는 길목에 있는 중함백산 아래에 있다. 이끼낀 작은 바위너덜길이라 길이 보이지 않아 선답자들 시그널의 안내를 받으며 조심스레 하산한다.
고한사북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만항재로 향하며 정암사를 지나게 됩니다.
♤ 정암사(淨岩寺)/ 갈래사(葛來寺)
정암사는 갈래산(葛來山)에 있어 갈래사라고도 불렸는데 『조선지지자료』에 따르면 물한리에는 정암사라는 절이 있는데, 갈래절이라고도 불렸다. 정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자장(慈藏)이 636년(신라 선덕여왕 5)에 당나라에 들어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인 산시성(山西省) 운제사(雲際寺)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후 전국 5곳에 이를 나누어 모셨는데, 그 중 한 곳이 이 절이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하며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정암사에 있는 수마노탑이 최근 보물(제410호)에서 국보(332호)로 승격되었다. 신보는 석가의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 · 염주 등인데, 지금도 사찰 뒷편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봉안되어 있다고 하여, 법당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정선읍지』에는 정암산이 "군 동남쪽 80리에 있다."고 쓰여 있다. 『정선군지』에는 "삼척의 태백산(太白山)에서 와서 군 남쪽 80리에 있으며 영월과 경계를 이룬다."고 기재하고 있으며 『여지도서』에도 삼척 태백산에서 나와 군 남쪽 80리에 있는 것으로 쓰여 있다.
♤ 1,332.8m봉
안부에 NO.9송전탑도 지나고 정암산에서 약 30분 소요된다. 바위가 듬성듬성한 곳을 지나 1,332.8m봉에 오른다. 내림길에 왼쪽에 있는 바위 위로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져 보인다. 방향을 보니 상동읍의 끝머리 태백산-구룡산-옥돌봉-선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직진으로 괜찮은 길이 보이지만 왼쪽으로 10여분 내려서면 길이 살아나며 임도삼거리에 내려선다.
♤ 하이원골프장/ 임도삼거리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임도삼거리이다. 오른쪽에 하이원C.C.가 자리하고, 이정표에는 만항재가 8.3km라고 적혀있다. 백운산 마천봉 마운틴콘도 방향으로 오른다.
♤ 하이원 리조트(high1 Resort)
도로 우측으로 하이원리조트가 보인다. 하이원 리조트는 2006년부터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복합리조트 브랜드이다. 강원랜드 카지노가 있는 하이원 그랜드 호텔 메인타워, 컨벤션 타워를 주축으로 두고 있으며 하이원 콘도는 세개 단지로 나눠 마운틴콘도, 힐콘도, 밸리콘도로 나뉘어져 있고 골프장인 하이원C.C.와 함께 옛 하이원 호텔의 이름을 바꾼 하이원 팰리스 호텔이 있다.
♤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九來里)
영월군 상동읍에 있는 구래리는 태백산 줄기인 민직산과 고직령에서 흐르는 물이 웃냇뜰(상천평)을 굽이 돌아 농거리에서 어평천과 합류한 후, 심산유곡을 이루면서 칠랑이의 아우라지에서 구래천과 어우러져 남한강 상류인 맛대로 이어지며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구래리의 유래는 자장법사(慈藏法師)가 636년(선덕왕 5) 당나라에 들어가 8년간의 고행을 마친 후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왔다. 자장율사는 이것을 봉안하기 위해 '태백산 갈반지(葛蟠地)'를 찾으려고 상동을 아홉 번이나 다녀갔으므로 이곳을 '구래리(九來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본구래, 법호실, 턱골, 여내골, 세송, 물방아골(평화촌), 어평 등이 있다. 고랭지 채소재배, 약초, 산채재배 그리고 마늘, 깨, 옥수수 등의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 전망대3거리(1262m)/ 전망대
삼거리가 나오고 하이원 펠리스호텔/ 골프장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삼거리에는 여러가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마운틴 콘도 방향으로 올라간다. 임도가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가는 위치에서 오른쪽 숲으로 올라선다. 다시 임도사거리에 내려서고 왼쪽으로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 장산(1,408.8m)과 매봉산(1,271m)이 보인다는 안내판이 서있어 찾아본다. 지맥은 마천봉(백운산) 0.9km 방향으로 이어진다.
♤ 밸리탑탐방로갈림길
오른쪽으로 벨리탑에서 올라오는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하이원펠리스모텔이 있는 하이원C.C.와 리조트가 있는 벨리탑에서 하이원탑으로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손님들을 실어 나른다. 하이원C.C.는 고한쪽에 있고, 하이원리조트는 사북쪽에 있다.
마운틴탑 뒤로 멀리 두위봉이 바라보입니다.
♤ 백운산(白雲山摩天峰, 1426.6m)/ 2등삼각점(태백 22/ 2004 재설)/ 데크목
백운산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조망테크와 삼각점이 있고 백운산마천봉(白雲山摩天峰)이란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수많은 백운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산 위에 흰 구름이 늘 끼어 있어 백운산이라고 하며 마천(摩天)이란 하늘을 만진다는 뜻으로 아주 높음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산의 지명중에 가장 많은 지명이 백운산, 국사봉, 깃대봉, 옥녀봉 순이라고 한다. 백운산(白雲山)중에(신산경표 기준) 함경남도 부전군의 1,675m부터 평남 숙천군의 126m까지 33개인데, 여기 영월(정선) 백운산은 두 번째 높이인 1,426m다. 북한을 제외하고 남한만 친다면 이곳이 가장 높은 백운산이라고 한다. 남쪽 사면을 흐르는 수계는 남한강의 지류인 옥동천(玉洞川)으로 흘러들며 또한 남쪽 사면의 상동읍 구래리에는 1923년에 개광된 남한 최대의 중석광산인 상동광산이 있다. 북쪽 사면에는 고한읍이 위치하고 고한역을 중심으로 태백선 전철이 동남천 계곡을 따라 달리다가 정암터널을 통해 황지에 도달하게 된다. 고한 지역의 지질은 후기 고생대와 전기 트리아스기의 평안누층군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 평안누층군의 구성 암석은 대부분 사암과 셰일을 비롯한 쇄설성 퇴적암이다. 평안누층군은 만항층, 함백산층, 고한층으로 나뉘며, 상부 고생대층이 널리 분포하고 있어 많은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음을 드러내주는 지형이다. 이정표에 가야할 하이원탑까지 1.8km로 안내되어 있다.
♤ 헬기장
백운산 마천봉에서 1분정도 벗어나면 만나는 장소이다. 마천봉 0.6km 전에 만나는 헬기장은 떼깔좋은 잔디가 깔린 고급스런 헬기장이다.
♤ 1,388m봉/ 군계/ 삼읍면봉(정선군 고한읍,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산솔면 직동리)
이정표에 백운산(1.0km)으로 안내한다. 하이원탑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지맥의 왼쪽이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서 산솔면 직동리로 바뀌는 삼읍면봉이다. 지맥의 왼쪽은 여기부터 산솔면 직동리로 바뀌어 질운산(1,173.8m)을 넘어 새비재(鳥飛峙)까지 길게 같이 한다.
♤ 영월군 산솔면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2리에 가면 태백방면으로 가는 여정에 단풍이 아름다워 단풍산(丹楓山, 1,150m)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다. 그 산 앞자락에 있는 큰 고개는 예전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아 솔고개로 불렸다고 한다. 산솔면이 이 산솔마을의 솔고개 소나무와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 산솔마을은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쉬어가던 영혼을 노송들이 배웅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단풍산 자락에 수령500년의 소나무가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농촌마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월군 동부에 있는 면으로 석항리·연상리·화원리를 관할하던 석항출장소(石項出張所)와 녹전리·직동리·이목리를 관할하던 녹전(碌田)출장소는 상동읍에 속했는데 1986년 4월 석항출장소(石項出張所)와 녹전(碌田)출장소를 통합하여 상동읍에서 분리하여 중동면으로 신설하였다. 1998년에는 석항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21년 11월 2일 중동면에서 산솔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북쪽으로 정선군 사북읍·신동읍·남면, 서쪽으로 영월읍, 남쪽으로 김삿갓면, 동쪽으로 상동읍에 접한다. 면의 대부분이 고산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망경대산(1,088m)·매봉산(1,268m)·질운산(1,172m)·목우산(1,066m)·운교산(925m) 등이 솟아 면을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협곡을 흐르는 옥동천을 따라 소규모 경작만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로는 고랭지채소와 더덕, 황기 버섯류 등을 주로 재배한다. 녹전리 양지마을에는 송이버섯이 유명한 오일장이 있었고 계곡의 맑은 물을 이용해서 송어양식을 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석회석을 채굴하는 등 광물자원이 있다. 평창군과 태백시를 연결하는 태백선이 지나는 석항역이 있는데 이곳은 한때 무연탄 집하장이 있었다. 38번, 31번국가 석항리에서 교차하며 영월읍과 정선군 사북읍, 태백시로 이어진다. 지정문화재는 없으며 유영복 효자각, 김일봉 효부각, 화원리 성황당, 녹전리 성황당이 있다. 그리고 영담(影潭) 김어수(金魚水 1905~1985) 시조시인을 기념하는 공원이 있다.
♤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直洞里)
직동리는 해발 750m의 고지대로 백운산(白雲山) 자락의 두메 산골이다. 산이 높아 옛날에는 호환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곳곳에 호식총(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무덤에 떡시루를 씌우고 삼베할 때 쓰는 쇠챙이를 꽂아 놓은 곳)이 있다. 의병들이 일본군에 의하여 집단으로 피살되었으며, 가까이는 1949년 좌익 빨치산에 의하여 동네의 우익 청년단원 10여 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수많은 의병들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계곡 전체를 붉게 물들였으므로 ‘피(稷)’ 자와 ‘골(洞)’ 자를 써서 직동리(稷洞里)[핏골]로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큰마을, 찰골, 장수골, 상막동, 하막동, 한밭골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직동리의 중심이 되는 곳인 큰마을(大基洞)이 있다. 국도 제31호선에서 직동리 큰터로 들어가는 길 옆에 단풍나무가 많은 단풍산(丹楓山)이 있다. 단풍산 밑에 단풍하리(丹楓下里)가 있다. 큰터에서 찰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고, 햇살이 비치지 않는 음지 쪽에 있는 마을인 음지마을이 있다. 찰골 동쪽에 있는 산촌으로 화전민들이 많이 살던 곳인 연작(連作)이 전해진다. 예전 동학교도들이 정부의 탄압을 피하여 외로 엮은 막을 치고 숨어 살았으므로 ‘움골’ 또는 ‘외막골’, ‘막골’이라고 불렀던 막동(幕洞) 혹은 말골이 있다. 그리고 하막동 동북쪽에 용바우(龍岩)가 있으며, 정선군 백운산을 발원지로 하여 직동리를 거쳐 옥동천(玉洞川)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직동천(稷洞川)이 흐른다. 동북쪽으로 백운산 두리봉의 높은 산줄기가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둠뫼마을이므로 ‘둠뫼→두뫼→두메골’로 불리게 된 두멧골(두무실)이 있다. 또한 막골 위에 있는 상막골(上幕谷)이 있다. 직동리 북동쪽으로 정선군 고한읍과 경계인 백운산(白雲山) 자락에 있는 고개인 화절치(꽃꺾이재)가 있다. 그리고 한밭골에서 정선군 신동읍 함백으로 가는 고개인 새비재(鳥飛峙)가 있다.
♤ 1,384m봉
봉을 넘으면 2016년 이곳에서 개최된 제3차 명상수련회 기념으로 만든 조형물이 있는 공터가 나온다.
♤ 마운틴탑(1,366m)/ 하이원탑/ 군계/ 삼읍면리봉(산솔면 직동리,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 사북읍 사북리)
영월군과 정선군의 경계로 삼읍면리봉이다. 하이원리조트에서 하이원벨리까지 하이원 스키장 마운틴탑의 회전식 전망 레스토랑이 있는 곳으로 케이블카가 사람을 실어 나른다. 데크목 뒤쪽 등로로 내려서서 고한읍과 헤어져 사북읍과 산솔면의 경계를 따라 마운틴콘도, 도롱이연못 방향으로 간다.
식수부적합이라지만 여기서 물을 보충해야 합니다. 2리터 두개를 준비합니다.
♤ 임도사거리/ 도롱이연못/ 약수터/ 원두막형 정자
각종 안내판 많고 엄청 넓은 임도사거리이다. 이정목에는 화절령이 1.1km라고 알리고 있다. 도롱이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 침하로 인해 생긴 연못으로 화절령 일대에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하여 연못에 살고있던 도롱뇽에게 남편의 출퇴근을 무사 기원했던 것에 유래하여 도롱이 연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연못은 고라니,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샘터로 특히 봄철에는 도롱뇽이 알을 낳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연못 주위에는 사계절 내내 야생화가 피어 있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임도를 따라 화절령으로도 향해도 되나 간이화장실 옆 산길로 숲속으로 올라 맥길을 이어간다.
♤ 1,214.9m봉/ 삼각점봉(판독불가)
임도사거리에서 약 20분 소요된다.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가 있다. 임도를 따라 화절령으로 향하기에 주로 생략되어지는 봉우리이다. 판독이 불가한 깨진 삼각점이 있다. 오른쪽 능선 아래로 내려선다.
서둘러서 14:10분에 도착, 야근 마치고 달려와선지 몸살기가 있어 얇은 우모를 입고 누웠는데 잠이 안와 근처 운락초교 자리도 다녀오고, 21시에 카지노에서 불꽃놀이를 하는지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 화절령(花切嶺)/ 꽃꺽이재(花折峙)/ 사각정/ 영월 산솔면 직동리 - 정선 사북읍 사북리
왼쪽은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오른쪽은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로 사북에서 영월로 넘나드는 지름길 임도이다. 화절령삼거리까지 중형버스도 올라올 수 있다. 직진으로는 새비재까지 이어지는 임도로 운탄고도라 한다. 마루금은 조금 앞쪽에서 오른쪽으로 치고 올라간다. 화절령은 백운산 자락에 위치하는 고개로 예로부터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절경을 이루었으며 사음팔경의 하나로 화절미인(花切美人)이라 칭하였다. 이 고갯길은 봄철이면 참꽃(진달래)과 철쭉이 온산에 만발하여 길을 가는 나그네와 나무꾼들이 한 아름씩 꺽어 갔다하여 꽃꺽이재, 화철치(花切峙)라고 불렀다. 지난 시절 이 길이 새카메지도록 석탄을 실어 나르던 때는 초등학교(운락, 1967. 3. 1.~1991. 2. 28.)까지 있던 큰 마을이 있었다. 운탄길 주변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곳에 있던 마을도 사라지고 길위에 트럭도 사라졌지만 화절령 꽃꺽이재라는 이름 만큼이나 아름답고 예쁜 길이 남아 새로이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이정판에서는 새비재까지 17.8km라고 안내한다. 임도가 왼쪽으로 돌아가고 차단기가 보이면 바로 오른쪽으로 올라붙는다. 출발하며 곧바로 띠지가 안내하는 오른쪽 산으로 스며들 수도 있다.
♤ 1,341m봉
화절령에서 30여분 올라선 봉우리로 우틀로 급하게 꺽어서 내려서며 이후론 능선을 타니 다소 수월한 편이다.
♤ 1,441.5m봉/ 3등삼각점(312 재설/ 77. 7 건설부)
화절령에서 약 1시간 거리로 헬기장을 지나 올라선 봉우리이다.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와 선답자들의 띠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1,379.8m봉/ 조망봉
커다란 바위 너덜길을 지나 올라선 바위 봉우리로 전망이 근사하다. 남쪽으로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의 산그리메가 펼쳐지는데 매봉산(鷹峰山, 1,271.2m)과 그 오른쪽으로 단풍산(丹楓山, 1,150m)도 찾아 볼 수 있다.
♤ 1,458.9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선답자의 띠지가 사면길로 안내한다.
천연기념물인 주목을 구경하고 물까지 떠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목 200m, 제2약수터 400m로 600m 내려가면 물을 받아올 수 있습니다.
♤ 도사곡휴양지갈림길
장의자와 민둥산역 4.62km, 도사곡 4.7km, 두위봉이 0.6km를 가리키는 이정목이 서있다. 오른쪽으로 도사곡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200m 아래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樹齡)의 1,200~1,400년 된 주목(朱木) 세 그루가 있는데 사북읍의 신목(神木) 대접을 받고 있다.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에 있는 도사곡은 물이 서쪽에서 흘러 동쪽으로 가는(西出東流水) 것이 그 특징이며 도사들이 도를 닦으러 많이 들어와 살았던 계곡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당파싸움으로 밀려난 귀족들의 피난처로서 약 50호 정도의 집단부락을 이루어 옥수수, 조, 감자등을 심어 연명하였다 한다. 이곳에는 최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호방(戶房)격으로 마을을 이끌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풍기지방으로 이주 하였다고 한다. 과연 등산로 곳곳에는 도사들이 목을 축일 만한 맑고 차가운 샘이 솟고 있다. 도사곡 계곡 너머로는 함백산이 바라보인다.
♤ 정선 두위봉 주목(천연기념물 제433호)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두위봉에 있는 세 그루의 주목나무로 이 주목들은 수령이 약 1,400년 정도 되는 노거수로서, 한국(남한)에서는 가장 장수하고 있는 나무이다. 두위봉(정상 1,466m)의 해발 1,340m 되는 북사면 능선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데, 세 그루가 3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경사지에 서 있다. 두위봉은 대표적인 철쭉산으로서 매년 6월 철쭉 축제가 열리는데,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두리봉의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민간에서는 주목의 붉은 나무껍질이 악귀를 쫒는다는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이 주목들은 2002년 6월 29일 천연기념물 제433호로 지정되었다. 주목은 나자식물(裸子植物:종자식물을 크게 둘로 나누었을 때의 한 무리) 중에서 주목목 주목과에 속하며, 학명은 ‘Taxus cuspidata Sieb. et Zucc.’이다. 대부분 암수가 딴몸이지만, 암수한몸도 간혹 있으며, 주목(朱木)은 나무 껍질이 붉은색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세계적으로 8종 40품종이 알려져 있는데, 동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 북미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 주목과 유사한 것에는 잎이 약간 넓은 회솔나무와 원줄기가 땅에서 기는 눈주목과 설악눈주목이 있다. 빨간 색의 앙증맞은 육질의 열매를 가을에 생산한다. 은행나무처럼 원시적인 식물 중의 하나로써 생물진화과정에서 초기에 나타났다. 고산성 수종으로써 높은 산의 북향과 같은 한랭한 기후를 좋아한다. 자연분포지는 설악산·태백산·오대산·소백산·덕유산·한라산이다. 세 그루 중 가장 큰 나무는 중간에 있는 나무로서 키가 17m, 밑동 둘레 5.85m, 가슴높이 둘레 4.36m, 직경 1.39m에 달하여 한국 주목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비교적 곧추서서 자라고 있는데, 수간이 약간 나선상으로 뒤틀려 있으며, 수형이 매우 아름답다. 주목은 워낙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서 키나 굵기가 다른 수종보다 작은 편이다. 1990년 후반에 산림청 동부지방산림관리청이 두위봉에서 거대한 주목 세 그루를 발견하였으며, 임업연구원의 전문가들이 나이테를 토대로 하여 조사한 결과 경사지 아래서부터 위쪽으로 1,100년, 1,400년, 1,200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나무들은 국내의 어느 나무들보다 나이가 가장 많으며, 전설적으로 알려진 다른 노거수의 나이(용문사 은행나무의 1,100년)보다 더 오래되었다. 주목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모두 보기드문 희귀한 나무로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 1,379.8m봉/ 조망봉
일망무제의 전경을 보여준다. 두무동 계곡과 직동천이 아련하게 보이고 계곡 뒷쪽 중앙으로 영월 김삿갓면의 마대산(馬垈山, 1,052m)이 보인다.
♤ 두무동 고개
왼쪽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데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두무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두멧골(두무실)로 불리기도 하는 두무동은 동북쪽으로 백운산 두리봉의 높은 산줄기가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둠뫼마을이므로 '둠뫼→두뫼→두메골'로 불리게 되었으며 동네 어귀에 화절치(령)에서 막골로 흐르는 개울이 있는데 이곳에는 3cm정도 크기의 푸른 민물김이 자라고 있다. 특히 샛바람(동풍)이 많이 부는 해는 9∼10월에 많은 양을 채취하여 채를 엎어놓고 그 위에 말렸다가 먹으면 바닷김과 똑같은 맛이 난다고 한다. 즉 큰 뫼(산)에 막혀있는 두메산골 이므로 '두뫼골'이라 한다. 그후 '두뫼골→두메골→두무동'으로 변하였다.
♤ 1,462m봉/ 증산갈림봉/ 군계/ 삼읍면리봉(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 남면 무릉리)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로 지맥의 오른쪽이 정선군 사북읍에서 민둥산과 민둥산역이 있는 남면 무릉리로 바뀌는 군계이자 삼읍면리봉이다. 고한읍과 사북읍 그리고 남면 무릉리는 노목지맥과 두위지맥에 걸쳐 있는 셈이다.
♤ 정선군 남면(南面)
면소재지는 문곡리이다. 민둥산이라는 산이 유명하다. 면적의 87%가 임야로 형성되어 있으며, 표고 400m 이상의 고지대의 특성을 잘살려 고랭지채소, 약초, 옥수수, 고추, 마늘 등이 생산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남면은 증산농공단지 유치, 광공업의 활성화로 제조업이 발달되었으며, 카지노 리조트 배후도시, 고원관광 도시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특히, 전국 5대 억새풀 군락지의 하나인 해발 1,119m의 민둥산, 철쭉 군락지인 해발1,470.5m의 두위봉, 삼내약수, 고병계곡, 자뭇골 자연발생 유원지 등은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전국구 철도인 태백선이 지나가며 역사도 두 개나 있다! 더구나 민둥산은 지선인 정선선이 메인선로인 태백선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이야 옛날 영화로웠던 그 시절만큼은 못하고 KTX에 비해 구식 무궁화호는 굉장히 느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속도로나 KTX 선로 하나 지나가지 않는 정선군에 사는 사람(임계면 주민 제외)이 아직 꾸준히 운행하는 서울행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이리로 와야한다. 오죽하면 면소재지인 문곡리보다 민둥산역을 낀 무릉리가 더 번화할 지경. 그리고 38번 국도 신구간이 개통된 이래 제천/영월/신동에서 사북/고한/태백을 잇는 도로교통의 허브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비록 산간국도지만 414번 지방도나 421번 지방도 같이 급경사 구간과 헤어핀 커브로 도배되다시피 한 정선군 내의 도로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양호한 수준이다.
♤ 1,445m봉
♤ 1458.9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 민둥산역 갈림길
민둥산역 4.62km, 두위봉 0.60km, 도사곡휴양림 4.70km 이정표가 서있다.
♤ 1,465.8m봉
헬기장이 무지 많다.ㅠㅠ
♤ 두위봉(斗圍峰, 1,470.5m)/ 2등삼각점(25 복구/ 77. 7 건설부)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와 삼각점이 있다. 두위봉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남면, 신동읍과 영월군 산솔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형세가 두툼하고 두리뭉실하여 이 지역 주민들이 두리봉이라 부른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두위봉을 이 지역 주민들은 두리봉이라고 부른다. 정선 아리랑의 가사에도 두리봉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두리봉같이 겉이두야 두텁던 정이/ 풀잎에 겉이두 다 떨어졌네. 라는 정선아리랑의 가사처럼 산 모양새가 두툼하고 두리뭉실하다. 산 아래에는 두위봉가는 길가에 있다고 해서 두리곡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그런데 이 곳에는 각기 다른 봉우리에 3개의 두리봉이 표기되어 있어 처음 온 산꾼들은 헷갈리는 곳이다. 지형도에는 이곳을 두위봉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삼각점도 여기에 있다. 두위봉에서 10여분 진행하면 두위봉철쭉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을 정선에서는 두리봉이라 하며 트랭글 뱃지도 여기서 들어온다. 뒤쪽으로 질운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두위지맥 능선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영월 산솔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두위봉에는 총 4개의 등산로가 나 있다. 철쭉제가 열리는 신동읍 단곡계곡 코스, 사북읍 사북리의 도사곡 코스, 신동읍 남면 문곡리 자미원 코스, 남면 무릉리 증산마을의 자뭇골 코스다.
♤ 두리(위)봉 마고할멈의 전설
옛날 두리봉 안골(지금은 어디인지 위치를 확인할 수 없음)에 마고할멈이 살았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깊은 산에는 호랑이가 살면서 사람을 해쳤는데, 새비재에서 이어지는 두리봉 안골에도 세가구의 화전민들이 모여들어 늘 호랑이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골짜기 동쪽 밭이랑 아래쪽에 여러 해전 열살 배기 어린 애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머리만 바위 위에 얹혀져 있어 돌무지로 덮어놓은 호식총이 있어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르는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은 더해 가기만 했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 곳에 사람들은 떡시루를 덮어 창귀가 빠져나와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했는데, 어느 날 화전을 일구던 마을 노인의 실수로 돌이 굴러 시루가 깨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문을 꼭 걸어 잠갔으나 창귀는 마을과 산을 떠돌며 여러 명을 호랑이 밥이 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북 도사곡에서 올라왔다는 할머니가 지팡이 올무를 만들어 새터골(지금의 아라리고개라고 표시한 아래쪽)로 창귀를 유인해 돌무지에 가두었다. 그때부터 화전민들은 편하게 농사를 지었지만 이 할머니의 행방은 알지 못했다.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은 밤마다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이 할머니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창귀를 막아준 이 할머니를 마고할멈이라고 했다.
트랭글 뱃지가 들어오는 가운데 장군봉의 정상입니다.
♤ 정선 두위봉 아래에 있는 장군바위/ 군계/ 삼리봉(산솔면 직동리, 정선군 남면 무릉리 → 문곡리)
정선사람들이 주장하는 두위(리)봉(1,477m) 아래에 있는 멋진 암릉으로 거대하게 우뚝 솟아있는 바위 모습이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의 기개를 닮았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맑은날 정상에 서면, 가리왕산이 가물가물 보일듯 하고, 동쪽으로는 사북읍 너머로 태백산 능선이 멋지게 보이는 곳이다. 헬기장을 지나 장군바위 위에 올라 등로에서 10M 떨어진 정선 두위봉 정상으로 향한다. '부산 김해 카르페디엠' 목판 산패가 있다. 지형도상 두위봉 정상보다 조망이 더 좋다. 등로 아랫쪽으로는 만항재에서 함백역으로 이어지는 운탄고도(황토빛 등로)가 보이고 그 아랫쪽으로는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의 산그리메가 시원스레 보인다. 두위봉 너머로 금대지맥 각화산과 백두대간 능선의 구룡산, 옥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바로 앞쪽 핏대봉산(655.4m), 매봉산(1,271.2m), 단풍산(1,150m)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 자뭇골 갈림길/ 자미원(紫味院)
자뭇골, 자미원 갈림길 이정표가 서있다. 정선군 남면 무릉리가 있는 자뭇골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인다. 가을 억새풀이 장관인 민둥산(1,118m) 자락에 자리잡은 무릉리는 해발 4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마을 가운데 자뭇골은 주목이 많이 자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무릉도원 유래처럼, 냇물을 따라 떠내려 오는 복숭아꽃을 보고 옛 선비들이 인가가 있다고 생각해 하천을 따라 올라가 자리 잡은 이곳이 바로 무릉리인데 삼한시대부터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선군 남면 문곡리에 있는 자미원(紫味院)은 조선시대에 원(院)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다.
블랙야크 100대명산은 정상비가 있는 이곳에서 인증을 하더군요.
♤ 두위봉철쭉비(1,447.8m)/ 군계/ 삼읍면리봉(영월군 산솔면, 정선군 남면 → 신동읍)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1999년에 함백청년회의소(J.C)에 설치한 두위봉철쭉축제 기념비와 돌탑과 안내판이 서 있다. 두위봉철쭉제는 1991년부터 매년 철쭉이 만개하는 시기에 철쭉군락지에서 열리는 축제로 철쭉 군락지와 함께 단곡 계곡과 도사곡 계곡의 정원 휴양지, 1,400여년 된 주목 등을 배경으로 산신제와 환경등반대회 등이 열리고 있다. 돌탑 너머로 단풍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지맥이 오른쪽이 정선군 남면 문곡리에서 신동읍 방제리로 바뀌는 삼읍면봉이다.
♤ 단곡계곡 이정표/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단곡(檀谷)마을
죽렴지맥으로 이어지는 단곡계곡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두위봉에서 장선군 신동읍 방제리로 이어지는 단곡계곡(檀谷)은 안경다리를 지나 두리봉으로 오르는 골 안쪽의 계곡을 말하나, 지금은 구 방제갱 입구의 윗쪽에서 권양기실이 있던 곳 아래의 계곡까지를 말한다. 옛날부터 주변에 박달나무가 많아 붙혀진 지명으로 계곡의 양쪽으로 빽빽했던 박달나무는 함백광업소가 탄광을 개발하면서 아름드리 고목나무는 바둑판, 장식용 응접셋트 등을 만들기 위해 잘려 나가고 작은 나무들마저 잘려나가 지금은 계곡의 이름만큼 박달나무가 흔하지 않으며, 두위봉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물과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이 계곡은 해마다 여름과 가을에는 많은 사람이 즐겨찾는 곳이다. 새비재 아래로 펼쳐지는 고랭지 채소밭과 그 너머로 예미산이 보인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 정선군 신동읍(新東邑)
북쪽은 백운산(白雲山, 883m)과 곰봉(1,015m), 서쪽은 고고산(高古山, 854m), 남쪽은 예미산(禮美山, 989.6m)·질운산(1,172m), 동쪽은 죽렴산(竹簾山, 1,061.9m)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북서부에 심하게 곡류하는 동강이 흐르고 있으며 경지는 극히 좁다. 북쪽으로 정선읍, 서쪽으로 영월군 영월읍, 남쪽으로 영월군 상동읍, 동쪽으로 남면(南面) 등과 접한다. 조선 중엽에는 평창군 동면 관할로 있었으나, 1906년 평창군에서 정선군으로 편입되면서 신동면으로 독립하였다. 1935년 12월 천포리(泉浦里)와 석항리(石項里) 일부가 영월군 상동면 연상리(蓮上里)에, 다시 1973년 7월 1일 천포리 일부가 영월군에 이속되고, 1980년 12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8·15광복 직후까지 정선군 내에서 가장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어서 가구수 500 내외에 불과했으나, 1948년 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설립되어 석탄개발이 시작되고, 산업철도인 함백선이 개통되면서 급격히 발전하여 신흥 탄광도시가 되었다. 무연탄 외에 아연·석회석·고령토 등이 산출되고 카바이드 공장도 있었다. 1993년 석탄산업 합리화로 신동읍 소재 탄광들이 폐광되면서 급격한 인구감소가 발생하였다. 산업은 농업을 주로하며 그외 자연생태를 테마로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벼농사는 예미 부근에서, 밭농사는 하안단구와 질운산·예미산 등의 중복(中腹)에 형성된 평탄면에서 영위될 정도이다. 산물로는 약초·메밀·잎담배가 나고, 육우(肉牛)와 돼지 사육이 상위권에 속하며, 조동리 질운산 자락에는 고랭지 채소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토종꿀의 생산이 비교적 많다. 예미리에 예미농공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관광산업으로는 동강을 주변으로 발달되어 있는데 운치리에 위치한 동강전망자연휴양림은 국내 캠퍼들에게 최고의 야영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조동리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 타입캡슐공원, 함백탄광촌의 추억을 담은 정선 추억의박물관이 소재한다. 문화재로는 정선 고성리 산성(旌善古城里山城: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68), 박씨열녀비(朴氏烈女碑) 등이 있다.
♤ 죽렴지맥 분기점(1,416m)
두위봉철쭉비가 있는 곳에서 5분여 지나면 죽렴지맥 분기점에 닿는다. 질운산 아래 단곡마을에서 최단거리로 접근해 죽렴지맥 분기점에 오른다. 팻말의 표시 글자가 다 지워져 버린 중동면(산솔면) 이정표에 준희선생님과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가 매어져 있다. 죽렴지맥은 정성군 신동읍 쪽으로 직진으로 향하는데 등로가 좋고, 두위지맥은 영월군 직동리 방향인 왼쪽으로 향하는데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분만 지나면 길은 좋아진다.
♤ 죽렴지맥(竹簾支脈)이란
죽렴지맥은 백두대간 함백산 아래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두위지맥이 두위봉을 내려서며 석항천을 사이에 두고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석항천 남쪽으로 가는 산줄기는 두위지맥이고 석항천 북쪽으로 가며 죽렴산(竹簾山, 1,061.9m), 곰봉(1,016m), 고고산(高古山, 852.9m), 능암덕산(813.2m)을 지나 동강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0km 되는 산줄기를 죽렴지맥이라 한다. 신산경표에 맞짱을 떠보겠다며 지맥에 합수점을 강조하는 일단의 사람들은 고고산에서 완택산(浣澤山, 917.6m)을 거쳐 석항천이 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로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능암덕산으로 가서 북쪽 진탄나루터쪽이 아닌 서쪽 능선을 따라 문산교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이는 산줄기를 이해하는 선에서 각자가 알아서 선택하면 될 일이다.
♤ 죽렴지맥 개념도
♤ 서낭당/ 돌탑
죽렴지맥 분기점에서 채 20분 못되게 내려선 지점으로 암릉구간 윗쪽이 맥길이나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 1,118.9m봉
밋밋한 평지라 무심코 지나기 딱 좋은 곳이다.
♤ 단곡재(1,017m)/ 지운동 임도
임도차단기가 있다. 왼쪽으로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지운동에서 오른쪽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단곡마을로 이어지는 임도사거리로 운탄고도 길이기도 하다. 임도사거리에서 임도를 질러 150여m 올라간 다음에 임도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질운산 오름이 시작되며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질운산 정상에 오르니 새비재에서 멧돼지 퇴치용 대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네요.
♤ 질운산(吉雲山, 1,173.8m)/ 3등삼각점(예미 305/ 2004 복구)
임도사거리에서 30분 정도 빡시게 올라야 한다. 질운산은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와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좁다란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삼각점 안내판에 대구 김문암선배님의 질운산이란 목패가 걸려있고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도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질운산이라 불리게 된 유래는 옛날 이곳에 살던 화전민들이 이 산 능선에서 농사를 지으면 길하다고 해서 길운산(吉雲山)이라 하던 것이 변음 되어 질운산으로 바뀌었으며 바위가 없고 땅이 기름져 산 아래에는 수만평의 고랭지 채소밭이 형성되어 있다.
♤ 1,056m봉
질운산에서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오른 특징없는 봉우리로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다.
새비재는 고냉지채소뿐아니라 아오리사과와 홍당무(당근)도 재배하네요.
♤ 새비재(鳥飛峙, 940m)/ 사각정/ 삼리경계면(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 조동리)
질운산에서 30여분 내려서면 새비재에 도착한다. 아라리고갯길 새비재는 만항재에서부터 운탄고도가 이어져 있다. 새비재는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한밭골에서 정선군 신동읍(新東邑) 함백(咸白)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길이 높고 험하며 산의 형상이 새가 날아가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조비치(鳥飛峙)'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새때가 매봉산의 매에 쫓겨 내려앉는 형국이라고도 하고 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의 행정구역이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鳥洞里)이다. 일설에는 6.25동란 당시 아군 전투기가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골짜기와 능선이 겹겹으로 포개진 모습이 새의 날개를 질러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밭을 일구다 보면 불발탄 등 전쟁 당시의 흔적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곳은 1950년대에 함백광업소가 탄전을 개발하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구가 급증했으며 1970년대에는 중.고교 사회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도회지를 연상할만큼 광산촌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980년대 석탄합리화 산업으로 인해 석탄산업이 쇠퇴하면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1993년도 함백광업소가 폐광되면서 광부들의 삶터였던 조동리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광활한 고냉지채소밭 건너편으로 죽렴지맥 산줄기가 장쾌하게 펼쳐진 모습이 보인다.
♤ 독가촌/ 전략촌
독가촌은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새비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전략촌’이라고도 한다. 오래전 이곳에 정착한 화전민들이 질운산 자락 곳곳에서 밭을 일구면서 살았는데, 1968년 울진. 삼척지구에 무장공비가 출몰한 사건이 있을 때, 정부에서 집을 지어주고 뿔뿔히 흩어져 살던 화전민 30여세대를 집단으로 정착을 시켜서 생겨난 지명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세대가 살았으나, 지금은 사시사철 사람이 살지않고, 봄이면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기 위해 들어 왔다가 가을에 수확을 한 후에 떠난다고 한다. 2000년대 초에 개봉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로 타임캡슐을 묻은 전지현소나무가 있다.
♤ 983m봉/ 군계/ 읍면삼리봉(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 녹전리)
새비재에서 임도를 따라 빠르게 20여분 진행하여 도착한 봉우리이다.
전사에 나오는 송현고개가 산솔면의 솔고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 영월 산솔면 녹전전투
6·25전쟁 당시 '영월 녹전전투'의 영웅인 고(故) 김해수 경감, 녹전전투는 김경감을 포함한 24명의 경찰관이 전사하며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난 김경감은 1948년 경찰전문학교 경찰간부후보생 3기로 입교했다. 영월 녹전전투는 1950년 7월1일 강원도비상경비사령부가 북한군의 대공세로 후퇴하던 중에 발생했다. 당시 치안국(경찰청의 전신)은 '화력발전소(10만㎾ 규모), 상동 광산이 있는 산업중추지대 영월을 반드시 사수하라'는 작전 명령을 내렸고 영월지구 전투부대는 치열한 방어전에 나섰다. 당시 김해수 경감은 전투경찰대 제8대대 제1중대장이었다. 그가 지휘한 47명의 결사대는 7월 8일 산솔면(중동면) 녹전리 송현고개를 넘어 북한군과 마주쳤다. 실탄이 소진되며 북한군의 포위 공격이 시작됐지만 결사 항전했고 북한군 73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정부는 2016년 김해수 경감에게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2018년 7월 김해수 경감을 '이달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강원경찰청은 매년 7월8일 김경감과 영월 녹전지구전투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추념제전을 열고 있다.
♤ 922.2m봉/ 삼각점봉/ 군계/ 읍면삼리봉(신동읍 조동리, 산솔면 녹전리 → 이목리)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가 매달려 있고 삼각점은 이끼가 덮혀져 알아볼 수가 없다. 서레야선배님의 연묘산, 설운산이라는 코팅지가 나무에 달라붙어 있다.
♤ 영월군 산솔면 이목리(梨木里)
영월군 산솔면 이목리는 화원리와 녹전 사이에 있는 마을이며, 옛날 어느 도사가 마을의 형국이 이화낙지형국(梨花落地形局)이므로 배나무를 심으라고 하였다. 원터에 있었던 배나무도 이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보다 배나무가 많았으므로 순수한 우리말로 ‘뱃재’라고 불렀으나 그 후 이목리(梨木里)로 변하였다. 이목리에서 정선군 신동읍 길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뱃재가 있다. 이목리 서쪽인 국도 제31호선 좌측에 회골(檜谷)이 있고, 회골에서 마천교 건너편으로 뻗은 골짜기인 마네골이 있다. 예미산(986.6m)과 운교산(922.4m)이 감싸고 있는 마을이며, 화전민이 많았던 곳이었으나 화전 정리 사업으로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변하였다. 이목리에 상이목, 하이목, 횟골,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큰 절이 있었다는 고장동 등의 자연부락에서 고추, 마늘, 옥수수, 감자, 콩, 고추, 들깨 등을 수확하는 밭농사로 생활하고 있다. 유전리에서 동창이 있었던 이목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창고개가 있다. 상동과 산솔면 일대의 세금을 보관하던 동창이 있었던 선령약수 위쪽의 마을인 창터가 있으며, 창터마을에는 전세와 대동미 등 관곡을 보관하던 20칸짜리 동창(東倉)이 있었고, 이목리와 녹전리 경계인 수라리재를 넘어가면 국도 제31호선 아래 위치한 곳인 선령약수가 유명하다. 선령약수 건너편 돌서덕에는 세아름이 넘는 큰 신배나무 밑에 원터가 있었다. 원집에 식량과 반찬, 짚신 등을 비치하여 수라리재를 넘어 다니는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물건을 이용한 만큼 엽전을 나무에 꽂아 놓았다고 한다.
♤ 845.9m봉
밋밋한 봉우리이다.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 793m봉
살짝 우틀하여 내려선다.
♤ 778.7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져 있다.
♤ 743.8m봉
♤ 748.5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져 있다. 우틀로 꺾어 내려선다.
뱃재 옆에 시끄러운 공장은 광업소인가요 시멘트공장일까요. 펜스도 높게 쳐놨어요. 고개에 오래된 돌배나무가 있음 제격이겠는데...
♤ 뱃재(梨峙, 657m)/ 전봇대
정선군 신동읍 도동리에서 영월군 산솔면 이목리 웅치골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맥꾼 말고는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서낭당 흔적의 조그만 돌무더기가 보이고 고개 오른쪽에 전선주가 있다. 지명 유래는 배나무가 많아 '뱃재'라 부르다가 이목리(梨木里)가 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도동리로 내려가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광석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한덕철광 신예미광산이 있다. 옛날 재를 넘어오던 한 도사가 이곳의 산세가 풍수지리학적으로 이화낙지형국(梨花落地形局: 배꽃이 땅에 떨어진 모습)인 것을 보고 배나무를 심으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고개마루의 큰 돌배나무들도 이때부터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하여튼 배나무가 많아 순 우리말로 '뱃재' 또는 '배나무재'라고 하며 고개 아래 영월군 산솔면 이목리(梨木里)의 본래 지명도 '뱃재'였다. 옛날에는 이목리에서 뱃재를 넘어 함백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 785.8m봉
실제 뱃지에서 10분 정도 올라선 지점인 도상 뱃재를 지나선 봉우리이다. 상당히 가파르고 오름길도 꽤 길다.
예미산 오름은 계족산 오름의 예행연습 쯤으로 보면 될것 같습니다.^^
♤ 예미산(禮美山, 989.6m)/ 여미산(女美山)/ 2등삼각점(예미 21/ 1995 복구)/ 군계/ 읍면삼리봉(영월군 산솔면 이목리,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 천포리)
예미산 오름은 1km 거리에 320m를 올리는데 육산임에도 중간 지점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로프에 의지해서 올라가게 된다. 오르막길에 등로 오른쪽 멀리 정선 남면의 닭이봉(=계봉, 1,028m)을 볼 수 있다면 특별한 행운이 따르는 경우이다. 오르내림길이 다 가파르다. 1915년 조선지형도(뱃재에서 자령치까지)에는 뱃재는 倍峙, 예미산은 女美山, 망경대산의 경은 京이 아니라 景이고 자령치는 재염치로 표기가 되어있다.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천포리와 영월군 산솔면 이목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싸리와 잡목이 무성한 넓은 공터에 2등삼각점이 있고 정상에서 살짝 비켜난 나무에 대구 김문암선배님의 하얀색 산패가 걸려있으며 그 옆에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걸어둔 노란색 산패도 보인다. 산의 북사면에서 발원한 예미천 연변에 예미리가 있고 예미천 하안(河岸) 저지대를 따라서 영월에서 태백을 잇는 38번 국도와 태백선 철길이 나란히 지나가면 북동쪽으로는 폐광이 되어 옛 영화를 잃어버린 함백탄광이 있다. 예미산(禮美山)은 본래 ‘여미산(女美山)’으로 불리던 것이 일제시대부터 ‘예미산'으로 바뀌었다. 예미초등학교 뒤에 있는 창가산에서 예미산을 보면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모습인데다 용주골 샘터가 여자의 음부에 해당하는 곳에서 흐른다고 하여 ‘여미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영월군 산솔면 수라리재에서 보면 산세가 여자가 모로 누워 있는 아담한 모습이어서 ‘여미산'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禮美里)
신동읍 소재지인 예미리는 본래 평창군 동면 지역에 속해 있다가 고종 32년(1895년) 정선군에 편입되었다. 평창군에 속해 있을 당시 고성리(古城里)에 내창(內倉)이 있었고 지금의 예미초등학교 뒤에 외창(外倉)이 있어 주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해 두었으며 노일(魯日)에는 5일장이 열리기도 했다. 예미리(禮美里)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 작업을 하면서 노일, 납돌, 유문동을 합하여 여미산(女美山)을 예미산(禮美山)으로 바꿔 부르면서 불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예미리는 오랜 옛날부터 제천에서 영월을 거쳐 정선 삼척 등지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인 까닭에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거주했음을 지금의 읍사무소 아래 고인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국 당나라때 파락사(派樂使)로 우리나라에 왔던 사신 임의(林義)로 인해 생겨났다는 의림길 등의 지명을 통해 보더라도 오래 전부터 정선 등지의 산간 지방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가사리(佳士里)일대의 광산 개발로 인해 많은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일본 이름을 단 선술집 등이 들어섰고, 병원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후 해방이 되고 백두대간 일대에서 엄청나게 많은 무연탄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60년 초반 국토건설단이 들어와 철도 도로 등을 건설하면서 두메산골인 예미리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함백광업소가 폐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가가 깨끗하게 정비되는 등 폐광과 이농 등에 따라 침체를 보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새롭게 발전해 가고 있다.
♤ 정선군 신동읍 천포리(泉浦里)
몇년 전부터 마을은 천포리 대신 벌처럼 부지런한 마을 주민의 심성을 담아내어 벌마을이라 불린다. 국도 38호선옆 마을 입구에 벌 캐릭터도 붙어 있다. 이 마을은 하노일이라 불리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때 천포리로 개칭됐다. 마을앞 작은 하천은 평상시 바싹 말라있다 장마철에는 천포라고 부르는데서 비롯된 말이었다. 고봉의 산자락을 호미로 또는 쟁기로 갈며 그 땀방울로 고랭지채소밭을 일궈냈다. 장수마을은 영월군 상동읍,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 등 옛광산 마을과 인접해 있다. 1970년대에는 석항이 영월 상동읍에 편입되며 빠져나갔다. 국내의 대표적인 무연탄 생산지 등 흥망성쇠를 반복했던 다른 마을과는 달리 이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사회를 유지하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잔혹함이 이 마을에도 어김없이 해코지를 해놓았다. 마을 한가운데로 뻗어 온 예미산 자락의 정수리에 해당되는 곳에 혈구덩이란 이름을 가진 곳이 있다. 땅속 깊은 곳에 엄지손가락 굵기의 쇠꼬챙이가 박혀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인물이 날 것을 우려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이다. 이곳은 영월을 지나 정선으로 들어서는 관문 격이다. 60년대부터 한창 석탄산업이 부흥기를 맞던 시절, 천포리에서 종합저탄장에 이르는 국도 변에 있던 ‘주막거리’의 옛정취와도 맞닿아 있다. 영월에서 정선을 오가는 많은 이들이 목을 축이며 잠시나마 쉴수 있었던 그런 안온함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마을의 자랑중 하나는 천포리 자연휴양림, 작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한 수백년 세월의 소나무 군락지와 수십년된 참나무가 옹기종기 정다운 시골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 968.5m봉/ 군계(정선군 신동읍 천포리, 영월군 산솔면 이목리 → 화원리)
예미산 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힘들게 올라서는 참나무가 빽빽한 봉우리로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禾院里)/ 소미원(小味院)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화라리(禾羅里)와 소미원(小味院)에서 한 자씩 따서 화원리(禾院里) 지명이 만들어졌다. 수라리고개 아래에는 새벌마을, 잿마을, 점골 등 자연부락이 있는데, 진산(鎭山)에 해당하는 수라리재의 지세가 너무 강하므로 마을의 기를 살리기 위하여 돌단배기에다 조산(造山)인 돌탑을 쌓고 마을 이름도 수라리재의 ‘수(水)’와 대립되는 ‘화(火)를 넣어 화라리(禾羅里)라 하였다. 산솔면 화원리에 있는 소미원은 경북 봉화로 넘어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서낭당 북쪽의 솔모디기 부근에 원집(院舍)이 있어서 붙은 지명으로, 원집은 조선시대 후기로 넘어오면서 인가가 드문 곳에 원(院)을 설치하고 쌀, 반찬, 짚신 등을 준비해 두었으며, 원에는 여러 개의 목로방이 있어 길손들이 이곳에서 잠을 자고난 후 밥을 해먹고 짚신을 신고 가겠끔 편의를 제공했던 곳이었다. 행인들은 그 댓가로 일정액의 엽전을 나무로 된 엽전꽂이에 꽂아놓고 갔다고 한다.
♤ 937.5m봉 갈림길/ 정선군 신동읍 천포리 -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
두위지맥 분기점인 만항재에서 시작해 줄곧 정선군과 영월군의 군계를 따르던 지맥이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급하게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직진으로 이어지는영월군 산솔면 화원리와 정선군 신동읍 천포리의 군 경계를 버리고 온전히 영월군 내안으로 들어서고 이면삼리봉인 망경대산까지 수라리재를 넘어 산솔면 화원리를 통과한다. 이후 또한번 능선을 벗어나 좌틀로 내려서야 한다.
♤ 산불초소
신구 두개의 산불감시초소가 연달이 있는데 구초소는 망가져 뱀이 나오게 생겼고 새로운 초소의 문은 굳건히 잠겨져 있다.
수라리재에서 왼쪽으로 지나온 두위봉의 세 봉우리, 동쪽 멀리 단풍산의 써래를 닮은 봉우리가 바라보입니다. 수라리재 추익환 묘비를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2층 양옥집이 있습니다. 별장으로 쓰였는지 현재는 공가인듯 보이던데 1층 주차장에서 비를 피할 정도는 되어 보였습니다.
♤ 수라리재(水剌峙, 600m)/ 31번국도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영월군 산솔면에서 세운 수라지재 표시석과 검은 오석으로 된 유래비가 있다. 수라리재는 정선군 신동읍에서 영월군 산솔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망경대산 자락에 있는 해발 600m의 높은 고개이다. 2013년 수라리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석항에서 녹전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국도 제31호선 이었으나 지금은 아래로 수라리재 터널이 뚫려서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옛길이 되었다. 수라리재로 불리게 된 유래를 보면 고려 마지막 공양왕(恭讓王)은 태조 이성계에 의하여 원주군 부론면 손위실에 유배되었으나 한양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하여, 1392년 수라리재를 넘어 8월 7일[음력]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塔洞里)의 수타사(壽陀寺)로 옮겨져서 굴욕의 나날을 보냈다. 이후, 삼척군 궁촌으로 세번째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태조 3년인 1394년 4월 17일에 죽임을 당하였다. 1960~1970년 초 상동 중석광산과 한일탄광이 성황을 이룰 때 석탄과 텅스텐을 운반하는 화물차들이 국도 제31호선인 수라리재를 넘어 탄광촌인 석항리 기차역 집하장으로 모였다. 김삿갓면 모운동에 있던 옥동탄광의 무연탄은 삭도를 만들어서 석항역으로 운반하였다. 수라리재 정상에는 1994년에 세워진 ‘충신 추계추익한선생 신도비(忠信秋溪秋益漢先生神道碑)’가 있고 추익한의 묘비 우측에는 1998년 영모전에 충절사를 건립할 때 추한호 영월종친회장이 세운 ‘우천공충절사봉안기념비’가 있다. 정상에 있는 거리 표지판에는 동해 104㎞, 상동은 28㎞가 남았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2013년에 국도 제31호선인 수라리재터널이 완공되어 산솔면 석항에서 녹전으로 가는 시간을 많이 단축시켰다. 수라리재터널을 촬영지로 만든 재난 영화 「터널」이 2016년에 개봉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군 참호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 영광산(935m)
영광산은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 주위로 석성처럼 쌓아 놓은 석축이 있고 잡목에 덮혀 조망은 전혀 없다. 망경대산과 수라리재 사이의 산으로 국립지리원지도에는 무명봉이나 오록스앱이나 영진지도에는 영광산이란 지명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영월군의 어느 자료에도 영광산의 유래는 찾을 수 없고 산 아래에 있는 소미마을 산책로 안내도에는 ‘큰묘등’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영광산의 다른 이름인 듯 하다. 수라리재에서 1시간 10분 걸려서 가파르게 영광산에 올라선 정상에는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고, 대전 홀산아선배님의 코팅지와 선답자들이 띠지가 어울려져 있다. 우틀로 꺽어 가파르게 내려선다.
영광산에서 임도삼거리로 내려서는 길이 보이지도 않고 험난합니다. 벼랑처럼 위험한 부분도 있습니다.
♤ 임도삼거리(815m)/ 민박집(마법의 언덕): 010-4852-2312
무명봉 하나 넘고 내려서니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왼쪽에 민박집이 있다. 임도를 따라도 마루금을 넘어가나 구불구불 멀게 돌아간다. 임도를 건너 잣나무숲으로 들어서서 오르막을 가파르게 지그재그로 올라선다. 그렇게 올랐다 내려서면 임도 삼거리를 만나고 민박집에서 헤어졌던 임도가 왼쪽에서 올라온다. 마루금은 숲으로 올라가야 하나 얼마 안가 다시 수라삼거리로 내려서게 되니 임도로 진행하기도 한다.
주왕지맥을 하면서도 전사를 찾을 수 있었지만 두위지맥 죽렴지맥도 한국전쟁(6.25)의 전적지였음을....
♤ 영월지구 전투(寧越地區 戰鬪)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영월에서는 개전 초기부터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초기 이 전투를 이끈 주역은 경찰이었다. 1950년 7월 이래 전투경찰 제8대대가 중심이 되어 북한군을 상대로 분전하였는데, 전력의 열세로 영월을 탈환하지는 못하였으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월에서는 전쟁 기간 중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기도 하였는데, 이를 주도한 이들 역시 경찰이었다. 영월경찰서에 갇혀 있는 수백 명의 주민들이 학살당한 정황이 확인된다. 이외 미군의 폭격에 의한 민간인 희생도 잇따랐다. 북한군은 3일 만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부산을 제2의 수도로 정하고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세가 역전되었지만,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였으며, 1951년 1월 4일 수도 서울을 다시 내주게 되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국군은 다시 반격의 기회를 잡기 위하여 절치부심하였으며, 이때 강원도 영월을 중심으로 영월지구 전투가 진행되었다. 영월지구 전투를 담당한 부대는 제3군단 예하 제7사단이었다. 제7사단은 김형일 준장의 지휘하에 1951년 1월 19일 오전 8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망경대산에서 저항하던 북한군 2개 대대 규모의 병력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해당 고지를 점령하였으며, 우측에서는 석항까지, 좌측에서는 주문리까지 진격하여 지역 내의 적을 압박하는 동시에 정선-영월 간의 전선을 유지하였다. 1951년 1월 19일 정진 대령이 이끄는 제3연대는 예미산(禮美山)[989고지]과 이목리에 접하는 전선에서 망경대산을 공격하였다. 이에 대하여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은 거세게 저항하였다. 망경대산을 잃으면 영월에서 석항-녹전리로 통하는 도로를 감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3연대는 포병의 지원하에 세 시간 동안 전투를 수행하여 오후 2시경 망경대산을 점령하였고, 적을 추격하며 산의 서단까지 진출하였다. 제3연대 제2대대는 적 1개 중대 규모의 병력을 격퇴한 뒤, 적을 따라 망경대산 좌측방을 우회하여 주문리까지 추격을 단행하였다. 또 제3연대 제3대대는 점령 중이던 운적산(雲積山)에서 제1대대·2대대의 공격을 지원한 뒤 연대의 예비대가 되었다. 1951년 1월 19일 연대가 거둔 전과는 포로 4명, 사살 72명, 다발총 4정, 소총 16 Ml4Bar 6정의 노획 등이었다. 이현진 대령이 통솔하는 제8연대는 연상리[815고지]에 있는 제1대대만으로 공격을 감행하였고, 북한군 1개 중대 규모의 병력과 격전 끝에 이를 격퇴하고 망경대산 서북쪽 3㎞에 위치한 694고지를 점령하였다. 이를 통하여 제8연대는 제3연대의 공격에 호응하면서 망경대산의 적을 우측방에서 협공하였으며, 그 결과 23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두였다. 반면 제8연대는 5명의 전사자와 3명의 전상자를 냈다. 한편 제8연대 제2대대·제3대대는 제1대대의 공격을 지원하면서 935고지-완택산(莞澤山) 간을 확보하고 북쪽 신병산 방면의 적과 대치하였다. 김도영 대령이 이끄는 제5연대는 점령 중이던 935고지에서 오후 5시 공격을 시작하여 석항으로 진격하였다. 직후 제2대대로 하여금 821고지를 점령하게 하였으며, 동시에 제9사단 제3연대와의 연결을 유지하며 제3대대를 통하여 875고지를 점령하게 하였다. 이를 통하여 제8연대 제2대대와 접선한 뒤 제1대대는 예비대로 배치하여 석항에서 후방 경비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1951년 1월 21일, 제7사단은 영월에서 단양으로 흐르는 남한강 변까지 진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였으며, 점령지 내 잔류한 적군을 격멸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사단장 김형일 준장은 제8연대장에게 명령하여 동부 영월과 계족산(鷄足山)을 신속히 점령한 뒤 퇴각하는 적을 격멸하게 하였다. 이에 제8연대는 즉각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적을 격파하고, 특히 함병갑 소령이 이끄는 제1대대는 계족산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무렵 김필호 소령이 지휘하는 제2대대는 완택산에서 서남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동부 영월을 목표로 돌진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였으며, 직후 퇴각하는 적을 격파한 다음 남한강 연안의 방어진지까지 점령하였다. 그 결과 북한군은 영월을 지키기 위하여 반드시 사수하여야 하는 계족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퇴로마저 차단될 위기에 놓이자 우왕좌왕하다가 분산된 상태로 남한강을 넘어 서쪽 미1군단 지역으로 퇴각하고 일부 패잔병은 북쪽 복덕원 쪽으로 궤주하였다. 한편 제3연대 제3대대는 용봉산에서 안원곡을 목표로 진격하였으며, 제8연대의 계족산 공격에 참여하여 협공하였다. 제2대대는 덕산을 점령한 뒤 이를 제23연대에 인계하였으며, 제1대대는 후방의 예미촌 주문리 지역을 수색하여 패잔병을 처리하였다. 1951년 1월 21일 오후 2시, 연대는 사단장의 명령을 받아 이후 작전을 준비하고자 녹전리에 집결하였다. 영월지구 전투는 중공군 개입 이후 1·4후퇴에 이르기까지 열세에 처하였던 국군이 그 태세를 전환하여 다시 공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전투였다. 국군은 영월지구 전투의 대승리를 통하여 동부전선에서 다시 반격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제7사단은 6일간에 걸친 영월지구 전투를 통하여 일찍이 없었던 전승을 거두었고, 그 덕분에 앞서 덕천에서 고전하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제7사단은 최초의 작전계획대로 영월 남쪽으로 침공한 적을 궤멸시킬 수 있었고, 또 영월까지 탈환하여 정선-영월 간의 진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제7사단은 군단의 반격 작전이 본격화할 때까지 이 지역의 유리한 지형지세를 활용하여 방어전을 지속하고, 차기 작전을 준비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과 함께 영월은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어 활발한 전재 복구에 착수할 수 있었다.
♤ 망경대산(望京臺山, 1,087.9m)/ 3등삼각점(예미 311/ 2004 재설)/ 면계/ 이면삼리봉(영월군 산솔면 화원리 → 연상리, 김삿갓면 예밀리)
정상에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탑,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전망이 좋다. 정상에서 조망이 좋다하여 북쪽으로 죽렴지맥의 고고산(高古山, 852.9m)/ 삼읍면봉(영월군 영월읍, 산솔면, 정선군 신동읍), 남쪽으로 김삿갓면의 마대산(馬垈山, 1,051m)을 찾아본다. 넓은 공터에 장의자도 몇개 마련되어 있다. 망경대산은 영월군 산솔면의 연상리와 화원리, 김삿갓면 예밀리의 경계에 있는 두위지맥 상의 산이다. 망경대산이라는 이름은 단종을 따라 죽은 충신 추익한(秋益漢, 1383~1457)이 산위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았다(望京)’는 데서 왔다는 전설이 있다.
♤ 영월군 산솔면 연상리(蓮上里)
산솔면 연상리는 영월읍 연하리와 석항리 사이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주변을 둘러싼 산봉우리가 연꽃봉우리 형상이고 영월초등학교 연하분교 뒤에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었다. 이에 연꽃 연(蓮)자와 못 지(池)자를 써서 연지동 위쪽에 있으므로 연상리(蓮上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주변에는 고고산(高古山, 852.9m)이 있으며, 석항천이 흐르고 있다. 연상리에 있는 망경대산자연휴양림은 산림욕을 통한 건강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건강체크실, 치유센터, 치유숲길(3.5㎞), 치유광장, 명상공간 등이 조성되었다. 숲 해설을 포함한 산림욕과 연령대별 맞춤형 프로그램, 가족 단위 프로그램, 요가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 중이다. 그리고 현재 연상1리 마을회관 건너편에는 효자 유영복을 기려 ‘유영복 효자각’이 있다. 미구, 손도우골, 궁장동, 북실, 샘말 등의 자연부락에서 밭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연상리는 고고산 자락에 있는 미구마을이 있으며, 옛날 호랑이를 잡는 손우(손오)를 설치하였다고 전하는 궁장동 옆 골짜기인 손도우골이 있다. 돌고개를 지나 미구의 동남쪽에 있는 큰 활 모양의 마을인 궁장동이 있으며,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단배골 오른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인 동지골이 있다. 석항 서북쪽의 북실과 참샘물 사이에 위치한 석항천이 흐르는 마을인 개상골이 있고, 연상초등학교 북쪽에 위치한 석항 북쪽의 마을인 북실이 있다. 옛날 성(城)이 있었던 정선군 신동면 고성리로 넘어갈 수 있는 북실 끝자락, 서낭당 북쪽의 고개인 성문재가 있다. 아울러 내손도우에서 김삿갓면 예밀리와 주문리의 검바위를 지나 싸리재로 넘어가는 고개인 자영치(字嶺峙)가 있으며, 북실 입구에는 소(沼)인 구미소(구무소)가 있다. 물맛이 좋은 샘이 있는 샘말, 샘말 위쪽으로 산 중턱 언덕 위에 넓은 평지밭이 있는 덕골이 있다.
♤ 영월군 산솔면 연상리 고비덕마을
고비는 높은 곳을 뜻하고 덕은 언덕을 뜻하는 말로 여진족 말에서 전해진 것이다. 수라리재 위쪽 높은 언덕 마을인 고비덕에는 단종이 태백산 산신으로 신격화되어 고비덕을 지날 때 충신 추익한(秋益漢)이 머루, 다래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추익한은 단종이 유배되자 과일 등을 따서 진상하면서 어린 왕을 위로하였는데, 하루는 머루와 다래를 따서 단종을 만나러 가던 중, 단종이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단신으로 동쪽 골로 행차하는 것을 보았다. 놀라서 어디로 행차하시는지를 물으니, 단종이 태백산으로 간다고 대답하고 홀연 사라졌다. 이상하게 생각한 추익한이 급히 영월로 뛰어가 보니, 단종은 이미 승하한 뒤였다. 추익한은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절명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 수라리재에는 추계추씨들이 많이 살았고 추익한의 묘역은 2021년 현재 석항리 돌고개에 있다. 추익한의 묘비는 1906년 태백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던 남필원(南弼元)이 지었다. 삼각점이 있는 곳에서 직진하여 거친 숲속으로 들어선다. 북쪽으로 석항 골짜기 너머로 죽렴지맥 산줄기가 건너다 보인다. 내림길은 두 갈래이고 지맥길은 영월군 산솔면 연상리와 김삿갓면 예밀리 경계를 따라 휴양림쪽 임도로 내려선다.
♤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면은 고려 시대에는 밀주(密州)라 불렀으며 1698년(숙종 24)에 하동면으로 개칭되었다. 1895년 충주부 영월군에 속하였다가, 1896년 강원도 영월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으로 그대로 개설되었다. 영월군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하여 2009년 10월 20일에 명칭을 김삿갓면으로 변경하였다. 김삿갓면의 대부분이 산악 지역이며 평지는 거의 없다. 면의 남쪽에 선달산(1,236m)과 곰봉(930m), 마대산(1,052m)이 동남쪽으로 뻗어 있고 북쪽에는 망경대산(1,088m), 운교산(925m), 목우산(1066m)이 동남쪽으로 뻗어 있다. 상동읍에서 발원하는 옥동천(玉洞川)이 각동리(角洞里) 부근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북쪽으로 상동읍·산솔면·영월읍, 서쪽으로 남면, 남쪽으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경북 봉화군 물야면, 남동쪽으로 봉화군 춘양면에 접하고 있다. 김삿갓면은 북쪽 산솔면과의 경계에 있는 망경대산 남쪽 산록에 위치한 주문리에는 납석을 채광하던 옥동광업소가 있었고, 예밀리에는 무연탄을 채탄하던 함태광업소가 있었으나 폐광이 된 이후 부근의 광산촌은 크게 쇠퇴하였다. 김삿갓면은 집촌 형태의 전형적인 농촌의 집촌 취락과, 화전민촌, 광산촌, 관광 취락이 발달한 지역이다. 취락이 발달한 중심 지역은 면사무소가 위치한 옥동리를 중심으로 남한강 본류와 옥동천이 합류하고, 지방도 제88호선과 지방도 제595호선이 교차하는 김삿갓면 서부 지역이다. 김삿갓면 서부 지역 일대는 영월 고씨굴을 비롯하여 대야굴, 용담굴, 맞밭나루, 뱃나드리 등 일찍부터 남한강 하상 교통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하안단구상의 집촌 형태의 취락과 관광 취락이 발달하였고, 옥동천과 면 동부의 옥동천 지류인 내리천과 나란히 개설된 지방도 제88호선을 따라 집촌 형태의 소규모 취락이 발달하여 있다. 산간오지에는 산촌 형태의 화전민촌이 있다. 김삿갓면은 자연환경과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유기농 식품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인정받아 국제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지역 특산물로는 캠벨포도가 있고, 매년 포도축제가 열린다. 인구가 밀집된 주거지는 주로 옥동천 연안에 분포하고, 주변에 경작지가 조성되어 논농사와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옥동리에서는 무연탄이 채굴된다. 진별리(津別里) 여러 곳에 자연관광 명소인 석회동굴이 있다. 그리고 호안다구박물관, 향역사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묵산미술박물관, 난고김삿갓문학관, 만봉불화박물관과 여러 곳의 자연캠프장이 있다. 교통은 지방도 제88호선과 지방도 제28호선이 교차하며 동쪽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서쪽으로 영월읍, 남쪽으로 단양군과 연결되지만 왕복 2차선 곡선 주로가 많아 불편하다. 문화재로는 순의사(純義祠), 영월 용담굴(寧越龍潭窟)[강원도 기념물], 영월 대야동굴[강원도 기념물], 영월 고씨굴(寧越高氏窟)[천연기념물], 각동리 석관묘(角洞里石棺墓) 등이 있고 백우 김상태 의병장 사당인 충절사와 백우 김상태 의병장 전적비 등이 있다.
♤ 모운동(暮雲洞)/ 탄광촌
김삿갓면 망경대산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동네인 모운동은 옥동광업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았던 부촌이었다. 구름이 모이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모운동은 영월의 대표적 폐광촌이다. 1980년대 1만 명이 모여 살았던 모운동에는 극장과 우체국·병원·이발소·세탁소 등이 있었다.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꽃과 벽화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하였다. 동발제작소와 옹달샘·폭포·전망대 등이 있는 관광명소이다. 1989년 폐광되기 전까지는 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다는데 지금은 그 영화를 찾아볼 수 없고 둘레길만 조성되어 있다. 이곳이 탄광이 시작된 것은 1957년이었으며 한참 전성기 때는 엄청난 인구가 살았으며 굴을 파지 않고서도 노천에서 석탄을 캐는 그야말로 노다지 탄광이 더 많았다고 한다. 여기서 생산된 석탄은 주로 삭도를 설치하여 케이블카로 밤낮없이 석항역으로 운반되었으며 트럭으로는 예밀리와 옥동을 거쳐 영월역으로 실어 날랐는데 차량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닌 모운동 야경은 불야성 그 자체였다고 한다.
♤ 망경산사(望景山寺, 740m)
영월면 김삿갓면 망경대산 중턱 해발 800m에 만경산사가 있다. 망경산사(望景山寺)는 경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망경산사 앞에는 만봉 불화박물관이라는 웅장한 건물이 있고 그 뒷쪽에 가정집을 연상케하는 大雄殿 현판이 붙어있는 아담한 망경산사가 자리를 잡고있는 절집이다.
♤ 망경대산 정상밑 공터/ 아래 임도
망경대산에서 500m(10분) 정도 내려선 곳에서 다시 왼쪽 자령치 방향으로 내려선 곳이다. 임도를 따라 2분쯤 가다가 오른쪽으로 올라선다.
♤ 1,019.8m봉
완만한 등로를 따라 내려선다.
♤ 망경대산3거리
왼쪽으로 망경사로 이어지는 MTB코스라고 표시를 해놓았는데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 진동재
영월군 김삿갓면 예밀리에서 산솔면(옛 지명:중동면) 연상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도상에는 진동재로 표기하고 있으나 고개에는 그 흔한 이정표 하나가 없고 그저 밋밋한 안부이다.
♤ 996.6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 917.5m봉
특징없는 봉우리이다.
망경대산에서 어둑어둑해져 자령치까지 내일을 위해 야간행군을 하였습니다.
♤ 자령치(字嶺峙, 871m)/ 자영재
자령치에 오르면 멀리 선달산, 어래산, 소백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준령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령치는 망경대산(望京臺山, 1,087.9m)과 응봉산(1,013m) 사이에 있으며, 동서로 길게 뻗은 망경대산 능선을 넘어가는 고개로 궁장동에서 임산도로를 따라 자령치와 망경대산의 망경산사로 갈 수 있으며, 영월군 김삿갓면 예밀리와 주문리의 검바위를 지나서 산솔면 연상리 싸리재로 넘어가는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산도로가 있다. 자령치에서 임산도로의 왼쪽으로 내려서면 망경산사를 거쳐서 모운동이나 예미촌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고비덕으로 갈 수 있다. 직진으로는 궁장동 삼거리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와 망경대산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망경산사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다. 자령치에서 망경산사로 이어지는 임산도로 구간에는 잣나무가 넓게 조림되어 있고 잣나무 숲길을 내려서면 평탄한 고랭지밭과 망경산사와 만봉불화박물관이 있다. 앞에 보이는 세갈래 길중에서 맨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서 맥길을 이어간다.
♤ 영월군 산솔면 연상리 궁장동(弓長洞)
영월군 산솔면 연상리에 있는 궁장동(弓長洞)은 돌고개를 지나 미구(美九)의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로 망경대산이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계곡 사이로 활(弓) 모양으로 형성된 곡류천(曲流川)이 높고 낮은 산봉우리에 둘러 쌓인 채 손도우골을 지나 석항천과 합류하여 남한강 상류의 지류를 형성하며 이곳 지형이 커다란 활모양을 하고 있어 궁장동이라고 하는데 계곡이 깊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여름철에 관강객이 많이 찾아오는 계곡이다.
잣나무가 너무 조밀하게 식재된데다 미역줄나무도 가세되어 박배낭을 메고는 바닥으로 기어서 지나야 합니다.
♤ 964.2m봉/ 4등삼각점(예미 435/ 2004 재설)/ 삼읍면리봉(김삿갓면 예밀리, 산솔면 연상리 → 영월읍 연하리)
임도삼거리에서 20여분 올라선 봉우리이다. 대전홀산아선배님의 코팅지가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등로가 보이지 않으면 소나무 숲을 밀고 계속 헤쳐 가다보면 등로가 나온다. 지맥이 오른쪽이 영월군 산솔면 연상리에서 영월읍 연하리로 접어드는 지점이다.
♤ 영월군 영월읍 연하리(蓮下里)
1914년 영월군 상동면 연하리로 개설되었다가 1960년 영월면이 영월읍으로 승격되면서 편입되어 영월군 영월읍 연하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당시 인접한 연상리(蓮上里)에 연꽃이 서식하는 연못이 있었는데, 위치상 연못 아래에 있기 때문에 연하리(蓮下里)라는 지명이 정하여졌다고 전한다. 영월군 상동면 연하리로 연하리는 지리적으로 볼 때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 서쪽으로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동쪽과 남쪽은 각각 영월군 영월읍 연상리, 김삿갓면 진별리와 인접하여 있다. 연하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영월군에서 가장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영월읍에 있는 대표적인 산인 삼척산, 완택산, 응봉산이 둘러싼 분지이다. 그리고 영월읍을 관통하는 석항천이 있다. 이로 인하여 산과 하천의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계곡과 폭포가 많다. 연하계곡, 용소폭포, 연하폭포, 연하굴, 큰동장골, 작은굴, 미구지골, 어부랭이골, 지심이골, 큰골 등이 대표적인 지역이다.
958.7m봉을 찾았다면 이후로는 등로가 정비되어 수월합니다. 저는 한참 아래로 향하다 다시 맥길로 기올라왔습니다.ㅠㅠ
♤ 958.7m봉
등로 오른쪽으로 죽렴지맥의 삼읍면봉인 고고산(852.9m/ 영월군 영월읍, 산솔면, 정선군 신동읍) 왼쪽으로 완택산이 바라보인다. 완택산과 그 너머로 주왕지맥 접산의 풍력발전기가 보이고, 아랫쪽 골짜기에는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연하역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 987.5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 소금치
평탄한 안부가 나온다. 이곳이 지역주민들이 소금치라고 부르는 고개이다. 소금장수들이 넘나드는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고개로 염치라고도 한다.
여기서 합수점을 향한다며 응봉산과 계족산을 포기하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우람한 산줄기를 놓아두고 약한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습니까만은 원칙도 모르는 사람들이니 달리 할말은 없습니다.
♤ 994m봉/ 읍면삼리봉(영월읍 연하리, 김삿갓면 예밀리 → 진별리)
옥동천과 남한강의 합수점으로 진행하는 덕가분맥 분기봉이다. 지맥의 왼쪽이 영월군 김삿갓면 예밀리에서 진별리로 바뀌는 지점으로 별다른 특징은 없다. 994m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능선은 김삿갓면 옥동리 덕가산으로 이어진다.
♤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津別里)
진별리는 남한강 상류에 있는 마을로 1914년에 ‘나루두둑’이라고 부르던 진구리(津邱里)와 베리골이라 부르던 별이곡(別梨谷)에서 진 자와 별 자를 따서 진별리(津別里)라 부르게 되었다. 진별리는 옛날 소금, 생선 등을 판매하던 나룻배가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었으며 그 건너편에는 영월 고씨굴이 있다. 모처녀바위에서 고씨굴로 가다가 왼쪽으로 들어가 벼리(벼랑) 밑에 있는 마을인 베리골이 있다. 마을 앞 너럭바위 사이로 개천이 돌아흐르는 풀무개에서 꽃절개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마을인 돌앞개가 있다. 그리고 봄에 꽃이 피면 어린이들이 참꽃을 꺾으러 왔다는 돌앞개 북동쪽에 있는 곳인 곶절개(화절치)가 있으며, 곶절개 위의 목장으로도 이용되는 늪이 있는 넓은 들녘인 늪둔지가 있다. 둔지로 올라가는 입구가 되는 동대골 어귀의 넓은 밭이 있는 곳인 둔지머리가 있으며, 통나무를 세우고 덕우를 받친 둑다리를 이용하여 건너 다닌 데서 유래한 모처녀바위(각씨바위) 강 건너편 마을인 다리편이 있다. 고씨굴과 각동교 사이에 여울물 소리가 우는 것처럼 크게 들리는 데서 유래한 울여울이 있고, 울여울 동쪽에 의병과 왜구들이 싸울 때 핏물이 흘렀다는 작은 골짜기인 핏골이 있다. 진별리는 꽃절, 고습어구, 가리골, 베리골, 진구리, 돌앞개, 지푼개, 당골, 양주터 등의 자연부락에 주민들이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생활하고 있다.
정상석 뒤로 가야한다고 공부는 열심히 잘 해두었는데 실전에서는 알바를 했습니다.ㅠㅠ
♤ 응봉산(鷹峰山, 1,013.3m)/ 3등삼각점(예미 312/ 2004 재설)/ 영월읍 연하리 - 김삿갓면 진별리
응봉산은 영월군 영월읍 연하리와 김삿갓면 진별리의 경계를 이루며 백두대간상의 함백산이 모산으로 망경대산과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자리잡은 산으로 북사면에는 연하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재령치에서 서쪽으로 패인 계곡길은 상타련으로 내려서는 길이며 하타련을 지나 꽃밭머리로 내려설 수 있다. 재령치에서 남쪽으로 10여분 거리의 무명봉을 넘어서면 응봉산 정상 밑 평탄한 안부에 이르며 10여분 더 오르면 응봉산 정상이다. 정상은 신갈나무가 우거져 조망이 터지지 않으며 콘크리트로 된 삼각점이 있다. 오른쪽 능선길이 좋으나 지맥은 정상석 뒤로 직진으로 내려서야 한다.
♤ 882.4m봉
응봉산에서 약 40분 진행하여 올라선 봉우리이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 847m봉
큰바위가 있는 봉우리로 오른쪽으로 살짝 우회한다.
♤ 816.9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철쭉나무 잡목봉이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맨 처음 가게를 만나면 어떤 음료수를 사먹을까, 뒤풀이로는 무얼 사먹을까 산행중 제일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
♤ 845.4m봉/ 4등삼각점(예미 440/ 2004 재설)/ 읍면삼리봉(영월읍 연하리, 김삿갓면 진별리 → 영월읍 정양리)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설치한 노란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여기부터 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오른쪽 빼곡한 철쭉밭으로 들어 뚝 떨어져 내려선다. 지맥이 영월군에서 좌우 모두 영월읍으로 진입하여 영월읍 연하리와 정양리의 경계를 따른다.
♤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正陽里)
정양산(正陽山)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을 고려하여 지명을 정하였다고 하며 1914년 실시된 행정구역 개편 때 공순원(公順院), 추동(楸洞, 가래골), 원동(院洞) 등이 정양리에 편입되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정양리가 되었다가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서 영월읍에 편입되어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동쪽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서쪽으로는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남쪽은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 북쪽으로 영월군 영월읍 연하리와 인접하여 있다. 영월읍에 있는 대표적인 산인 계족산(鷄足山) 자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계족산의 지맥이 뻗어내려 온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의 명당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정양리에는 정조(正祖)의 태(胎)를 묻었던 태실(胎室)이 있었다. 한편, 지리적으로 볼 때, 충청북도 단양이나 강원도 정선으로 가는 지름길에 해당되어 행인들의 편리를 위한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정양리는 강원도 영월군이 지닌 지정학·지리적 중요성을 잘 보여 주는 곳의 하나이다. 정양리의 중요성은 삼국시대부터 인식되어 고구려가 정양리까지 남하하여 왕검성(王儉城), 일명 정양산성(正陽山城)을 쌓았다는 사실, 그리고 정양리에 여행객과 관원을 위하여 국가에서 설치한 원(院)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정양리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적지로는 태봉(胎峯), 왕검성 등이 있다.
♤ 885m봉
우틀로 진행한다. 남한강 너머로 영월지맥의 태화산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마음에 여유가 있는 편에 해당한다.
계족산 오름은 낙엽이 많은 가파른 능선을 네발로 기어오르고, 계족산 내림은 낙엽과 급경사로 발을 디딜 자리가 없어 힘겹게 내려섭니다.
♤ 계족산(鷄足山, 889.6m)/ 정양산(正陽山)/ 3등삼각점(예미 301/ 2004 재설)/ 영월읍 연하리 - 정양리
계족산은 영월읍 동쪽에 병풍을 친듯 화성(火星)의 모습으로 수석처럼 우뚝 솟은 산이다.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연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닭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계족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백두대간 함백산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친 한개의 능선이 두위봉, 망경대산, 응봉산을 거쳐 남한강에 막혀 더 이상 뻗지 못하고 지맥을 다하여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영월읍의 동쪽에 위치하며 산자락에는 고구려의 산성인 왕검성(=계족산성=정양산성)과 정조대왕태실비 등의 유적이 있으며, 영월화력발전처가 자리하고 있다. 계족산의 땅 기운이 모여서 하나의 혈을 이룬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터가 발전소 뒤에 있는 태봉(胎峰:임금의 태를 묻은 곳)이다. 명당은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하는데 합수거리에서 합쳐진 동.서강이 태봉 앞을 곡류하여 흐르므로 이곳은 영월에서 손꼽히는 명당이라고 한다. 영월읍에서 88번 지방도를 따라 승용차로 20분 거리인 정양리에 도착하면 영월화력발전처가 있으며 발전소 담장이 끝나는 곳에 계족산 산행 안내도가 서있고,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계족산 정상엔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가 매달려 있다. 정상에서 태화산과 그 뒤로 소백산 연화봉을 조망하고 뒤돌아 나간다. 정상에서 능선으로 직진하는 일반 등로는 발전소로 가는 길이니 지맥은 뒤돌아 나가야 한다. 즉, 계족산에서 일반 등로는 직진으로 내려가고 지맥길은 10여미터 빽해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계족산 10m 직전에서 우틀(북쪽)로 진행한다.
계족산 이후 하산길은 능선을 버리지 않고 무조건 리지로 바위 봉우리를 타고 넘어서야 합니다.
♤ 422m봉
계족산에서 사정없이 뚝 떨어져 표고 430m를 단번에 내려꽂는다. 지맥은 좌틀하여 정양리와 덕포리의 경계를 따른다.
♤ 486.1m봉/ 삼리봉(영월읍 정양리, 영월읍 연하리 → 덕포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하얀 돌둘이 있는 봉우리이다. 봉을 넘어서며 좌틀로 가야한다. 무심코 직진으로 내려서면 알바이다.
♤ 영월읍 덕포리(德浦里)
영월군 군내면 지역으로 크게 웃말(上里), 중말(中里), 아랫마을(下里)로 구성되어 있다. 1914년 일제 시대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나루터(현재 동강교) 위쪽인 상덕촌(尙德村)과 그 아래쪽 밀적포(密積浦)에서 '德'자와 '浦'자를 따서 '德浦里'라 하였으며 '德'은 '크다'는 뜻이다. 조선 성종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정에서 바라다 본 덕포리의 풍경을 『강 건너로는 상덕촌(尙德村)이라는 마을이 있어 초가집과 울타리들이 뽕나무 사이로 숨었다 보였다 하며, 그 남쪽 밀적포(密積浦)에는 나무들이 울창하여 마을의 연기와 물기운이 은은히 가리우고 어른거려서 그곳을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고 묘사하였다. 덕포리 자연마을로는 상리, 중리, 하리, 대내, 옹기점말 등이 있다. 상리(上里)는 약물내기, 대내, 봉래중학교 부근의 마을로 덕포리의 가장 위쪽에 있다. 중치골은 上里인 봉래중학교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는 이곳을 통하여 군부대나 대내로 올라갔다. 중리(中里)는 영월 기차역과 동강다리 부근이다. 윗말과 아랫말의 중간에 있다고 하여 중마을(中里)이라 한다. 전통적인 충절의 고장 영월을 상징하는 한옥양식의 영월 역사(驛舍)가 있는 곳이다. 옹기점 마을은 금용아파트가 있는 중리와 덕포 하리에 있었다. 진흙만으로 초벌 구이를 해서 만든 윤이 나지 않는 질그릇과 유약인 오짓물을 발라서 구운 오지그릇을 통틀어 옹기라고 칭한다. 옹기는 그 종류와 기능도 다양하였다. 간장을 담그는 큰 대독, 된장·막장을 담가놓는 중도리독, 장아찌를 박아놓은 작은 항아리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뚝배기, 시루, 소줏고리, 물동이, 술독, 화로, 장군, 굴뚝, 소래기 등 그 사용용도에 따라 다양했다. 이곳에 있는 옹기점에서는 주로 장독과 물동이, 시루 등을 많이 만들었는데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발전소로 가는 기차굴 밑에 있는 하리의 옹기점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상리의 옹기점은 해방 후 몇 년간만 옹기를 구워 내었다. 하리 옹기점말은 상리에 있었던 옹기점보다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시루, 물동이, 뚝배기, 단지 등을 만들었으며, 그 옆에는 하리서낭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소나무가 서 있다. 숲말은 여우고개와 봉래국민학교 부근의 마을로 옛 지명은 밀적포(密積浦)였으며 숲이 울창하다하여 '숲마을'이라 한다. 부싯돌배리는 숲마을 서쪽 합수거리에 있는 부싯돌처럼 생긴 바위이다. 부싯돌이란 석질이 단단하고 강도가 강하여 성냥이 귀했던 시절에 마른 쑥과 함께 불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도구였다. 이러한 부싯돌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강가의 벼랑이므로 '부싯돌배리'라 한다.
♤ 봉래산(蓬來山, 802.6m)/ 별마로천문대
봉래산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와 삼옥리에 위치한 산으로 영월읍의 북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이 단종 복위운동에 실패하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에 나오는 산으로 유명하며, 영월 8경의 하나이다. 산 밑으로는 어라연계곡을 거쳐온 동강의 물줄기가 흐른다. 강변에는 금강정과 낙화암이 있다. 낙화암은 단종이 승하한 후 그를 모시던 궁녀. 관비. 궁비. 무녀 6명과 시종 1명이 통곡을 하며 치마를 뒤집어 쓰고 동강으로 떨어져 순절한 곳으로 '낙화암(落化巖)'이란 비석이 남아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봉래산이 표시되어 있다. (영월군읍지)에는 "군으로부터 5리에 있다."고 쓰여 있다. (영월부읍지)와 『여지도서』는 "부의 동쪽 3리에 있다. 평창 두만산에서 와서 읍치(邑治)의 청룡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영월의 신사(神社)를 관리하던 일본인 후쿠다는 봉래산에다 쇠못을 박아 혈을 끊기도 하였다. 봉래산 기슭에는 큰 산 밑에 있다 하여 묏둔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일설에는 옛날 사냥꾼들이 이곳에서 매를 날려 꿩사냥을 했기 때문에 '매둔지'라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산의 기슭인 속골에는 송산사(松山寺)라는 절이 있다.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산사'라고 한다. 산 기슭의 동굴 속에는 성인암(聖人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영월군읍지』와 『영월부읍지』에 "부로부터 동쪽으로 5리에 있으며 봉래산 자락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군내면 영흥리에 소재한다고 쓰고 있다.
군부대 참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장의자에서 잠시 숨좀 고르는데 산모기가 집중 공격을 하네요.ㅠㅠ
♤ 473.6m봉/ 태봉(胎峰)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벤치도 마련되어 있고 쉼터로 조성되어 있다. 왼쪽으로 발전소쪽 하산길이고 엄나무고개를 지나 정종대왕 태실비가 있는 태봉으로 이어지는 태봉 표찰이 있으며 지맥길은 경계를 떠나 오른쪽 덕포리 내안으로 접어든다.
♤ 444m봉
내림길 중간 정도의 봉우리이다. 서강과 동강이 만나 남한강이 되는 합수거리를 내려다 보고, 묘지를 지나고 길이 없어지면 직진으로 내려야 편하다. 굳이 종산의 공동묘지로 들어설 필요 없이 직진으로 내려 우틀하면 된다.
♤ 409.2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달려 있다. 얼룩무늬 교통호 발칸포 진지가 구축되어 있다. 좌틀하여 이정표상의 덕포숲길 방향으로 내려선다. 동네가 가까워오니 주민들 둘레길 수준이다.
♤ 290.5m봉/ 4등삼각점(영월 425/ )
운동기구에서 조금 더 진행한다.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은 안내판에서 4등삼각점으로 확인한다. 좌틀로 향하다 이내 왼쪽으로 내려선다.
봉래초교 입구에 나들가게가 있어 게토레이 중짜 두개, 포도쥬스, 캔커피, 비엔나아스크림을 사먹고....
♤ 여우고개/ 육각정
여우고개에 내려서기 직전 두위지맥의 마지막봉인 223.4m봉은 아파트를 건설하는지 공사판이 되어 있다. 여우고개로 내려서서 4차선 도로를 건너 마루금은 "여우고개 덕포7리" 표지석 뒤로 이어지나 밭을 만들면서 절개지가 생겼는데 올라갈 수가 없다. 봉래초등학교 방향으로 들어간다. 중리에서 하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은 하동, 영춘으로 가는 길목으로 예전에는 숲마을이라 할 정도로 나무들이 울창하여 날이 어두워지면 여우가 자주 나타나서 '여우고개'라 하던 이야기가 있으나, '여우'란 '작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작은고개'라는 뜻이다.
♤ 봉래초교
봉래초교 정문이 보이면 오른쪽 골목으로 올라간다. 밭이 나오고 돌아보면 봉래초등학교와 우리家 아파트가 내려다 보인다.
♤ 223.4m봉
우회해서 잡목숲을 헤치고 올라서던 두위지맥의 마지막봉인 223.4m봉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중장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루금은 500m정도 남은거 같은데 모두 뒤집어 놓은 건설현장이 되었다. 왼쪽으로 내려가 밭을 건너 서낭당거리 느티나무를 구경하고 왔던 길을 뒤돌아 내려가 공사장 정문을 나서 철길을 아래로 우회하는 길을 택한다.
♤ 서낭당거리/ 느티나무
봉래초교 뒤 숲마을에 있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당집은 없어졌지만 지금도 그곳에는 당목이었던 큰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남아있다. 마을 보호수인 아름드리 느티나무에서 우틀하고, 철도길을 건너고, 차도를 건너서 제방길 계단을 오르면 동강이 나온다.
♤ 동,서강합수점/ 남한강/ 큰팔괴나루터/ 영월드론전용비생시험장
영월 드론비행시험장까지 진행하여 드론비행시험장에서 동강 서강 남한강 합수점 인증을 하고 두위지맥을 마무리 한다. 동서강이 합치는 합수거리 동쪽에 덕포비행장이 있었다. 넓은 갯벌이었는데 축대를 쌓아서 헬리콥터와 정찰기 등이 착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곳에 있던 군부대는 72년 수해로 군인 막사 전체가 수몰되어 대내로 옮겼다. 그 후 이곳 모래밭에서는 많은 군장비들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첫댓글 방구돌에서 떨어지셨나?
산줄기타러 왔응게 박수 보냅니다.
마천봉에서 놀았던 시절을 소환해 봅니다.
비실이대선배님! ^^ 사모님깡 두분 모두 별고 없으시죠?
두위를 5년 전에 지나셨군요.
시원하다고 해서 휴가 쓰러 갔더니 금대지맥 만치로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소나기가 와도 걱정이었지만 잠깐 좀 시원하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구요.
두군데에서 물을 1.8리터 통으로 두개씩 챙겨 물걱정은 크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허리띠가 쓸려서 따가울 정도로 땀을 많이 뺐어요.^^
이 참에 기회삼아 몸무게를 조금 더 내려야 쓰겠습니다.
9월에 서봉지맥을 하고 10월에 백덕지맥을 했음 하는 계획을 가져보고요.
대구 인근엔 칠봉, 삼태, 웅석, 구암, 선암 등 가야할 곳이 아직 많아서 행복합니다.
지맥 공부는 6~70km 30개 정도 해두어서 언제든 출발만 하면 됩니다.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더운날 그리 먼 거리를..
고생 무지 하셨어요..
근데 택시비가 버스비보다 적게 들었네요... 앞으론 택시를 주로 타셔요.
고문님~!!
고한사북에서 시간을 줄이려고 택실 이용했구요.
올땐 영월역에서 기차 탈걸 그랬어요.
고문님, 아름다운강산대선배님, 계족산 내림에선 배창랑대선배님 띠지도 보았습니다.
엉성하게나마 더 이상은 늦출 수가 없었고 계획대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더운 날에 두이지맥 멋지게 해치우셨네요.
두위산은 물론 질운산 예미산 등 진을빼기에 충분한 산들이 여러개 있고 마지막에 계족산은 올라 갈때도 힘들지만 내림길에 질려버렸던 기억도 납니다.
무엇보다도 분기점산패를 확인해주셔서 더 방갑습니다.
무지원으로 장거리산행을 해내심을 무한히 응원하며 두위지맥 졸업 축하합니다.
부뜰이성님!^^
분기점 산패를 찾을 수 있을지 자신하진 못했어요.
조금 위로 들어가서 풀숲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더니 눈에 뜨이더군요.
산패 설치하시느라 두분 운영자님이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질운산하고 두위산, 응봉산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구요.
예미산, 망경산은 조금, 영광산 보통, 계족산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제 풍물시장 나가서 5천원에 레인카바 하나 장만해 두었습니다.
그게 꼭 잡목지대를 통과하다 휘까닥 벗겨져서 어디서 없어지더군요.
스틱도 촉이 다 닳아서 서비스를 보내고 하나 더 구입해야 할것 같구요.
이제 몇개 남지 않으셨지요. 여름엔 조금 쉬엄쉬엄 가십시요, 감사합니다.^^
저는 뭐가 먼지 잘몰라서 그냥 응원만합니다. 고산에 눌랑누님 친구분이라서 응원 몽땅보내구요.
늘 안전산행 기원합니다.
눌랑누님이 제 고향친구인가요?^^
고산에도 정맥, 지맥, 기맥 산행을 하는 친구가 있는 모양이군요.
뭐가먼진 잘 모르겠지만 남들이 하니깐 나도 해보자 하고 맥산행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방식으로 지맥을 할 것인가 고민 끝에,,, 자료를 폭넓게 찾아보지 못하는 바쁘신 맥꾼들을 위해 앞서가신 선배님들 후기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시간을 아껴 감을 넓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후기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미력이나마 제 후기가 참고가 되어 보다 많은 분들이 맥길에 들어서는데 매력을 얻도록 완성도가 높은 지맥산행 후기가 연신 나와준다면 더 바람이 없겠습니다.^^
와...그냥 혼자서 이 더운날 무거운 짐을 들고~
대단합니다
진짜 수고많으셨습니다.
하나하나 방대한 자료을 집대성하셔서 여기에 관한 자료는 다 구할수 있겠네요
더운날 두위지맥 졸업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오 ^^
지나고나니 조금 더웠나 싶습니다. 특히 오름길에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
비상약과 함께 정제염 세알 가지고 가서 둘쨋날에 두알 먹구 마지막날 한알 먹었습니다.
실리카겔이 없으니 정제염이 만지면 흐물흐물하게 녹더군요.
선답하신 선배님들 후기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한군데로 모은것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여정이고 산행기입니다.
더운 날씨에 소중한 시간을 산에다 몰빵하는 여정,
산에 대한 간절함이 퐁라라님의 산행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네요.
소나기와의 심리싸움이라는 말씀이 피부로 와 닿습니다.
응봉산과 계족산을 포기하는 분들에 대한 따끔한 언급도 백퍼 공감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화절령에서 보았다던 '아버지'는 마음을 무지 아프게 찔러 옵니다.
무더운 날씨를 딛고 넘어선 산줄기라 더욱 값진 여정으로 보입니다.
늘 산으로 인해 이 세상 살아가는 맛이 더욱 쫀득해지기를 기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범산선배님! 격려말씀 감사합니다.^^
꾸준한게 아니고 간헐적으로 나서는 산행이라 자신이 없어 좀더 여유있게 잡긴 했는데 다행히 계획대로 졸업할 수 있어서 기뻣습니다.
처서에 비가 장맛비처럼 내리는군요.
오늘은 문걸어 닫고 하루종일 방구석에 쳐박혀 죽렴지맥을 공부하였는데 아직 미완성입니다만 분기점에서 죽렴산-마차재-고성고개-미구치-고고산-능암덕산-진탄나루까지 죽 둘러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오랜만에 진행된 두위지맥 길이었군요.
강원 오지 산간을 지나는 원시림도 만나는 큰 흐름의 산줄기이기도 합니다.
물도 많이 필요하고 체력관리상 무리않게 진행해야 하는 때입니다.
삼일간 만만치 않은 구간 진행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어지는 안전한 여정되세요.~
냅! 방장님^^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맘은 그렇습니다.
마법의언덕 민박집에서 1.8리터 두개 준비해서 자령치에서 발 씻고 자고도 마지막에 약 700cc 남았습니다. 아낀다면 1.8리터 한병으로도 가능했겠구요.
계족산을 거은 다 내려와서 계곡과 멀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486.1m봉으로 올라가는 지점 같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계곡으로 넘나든 흔적이 있었습니다만 직접 확인하진 않았으나 귀가 약간 어두운 편인 저에게도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두위지맥 연삼일 산행으로 마무리 하셨네요
원시 자연이 살아 있는 산줄기로 생각 됩니다
운탄고도도 언젠가 걸어보고 싶은 곳이지요
망경대산 우리는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하신 이현진님도 만났네요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이야기도 조금 나누고 사진도 남겼네요
창원에서 여기까지 와서 멋진 통나무집 사시는 모습이 부렵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우리도 얼마전 마무리 하여 더 기억이 남은 지맥 입니다
나홀로 무사히 완주 축하 드립니다^)^
와룡산선배님!
대구지맥 따끈따끈한 띠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마법의언덕 민박집에서 식사를 할려고 했었구요. 체력이 고갈되면 민박도 고려대상이었습니다.
두위지맥 수라리재 옆 영광산이 베일에 가려 있군요. 정상부 석축도 용도가 궁금합니다.
한국동란 영월전투사를 보니 망경대산, 예미산, 계족산, 완택산 일원이 나와 영광산 아래 보충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