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이충희 시인의 작품 ‘숨통’에 대하여
남진원
이충희(1938–2021) 시인은 강릉사범학교를 노신 후 줄곧 초등교육에 종사하셨다. 강릉사범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신 륜명 선생님을 만나고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강릉사범학교 문예반 시절 스파르타식 문학 수업을 받은 윤명 선생님으로부터 본격적인 글쓰기와 진정한 시인의 길을 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1982년 [현대문학]에서 ‘동해구곡’으로 시 추천을 받은 후 문단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관동ㅁㄴ학회, 해안문학회, 갈 뫼, 산까치 동인등 많은 지역 동인 활동을 하며 문학의 확장성을 넓혀갔다.
강원의 강릉, 삼척 등 영동 지역에서 34년 동안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강릉도서관 문예창작반, 강릉 YMCA에서 문학 창작 강사로도 활동하였다.
관동문학상(1995), 강원문학상(1997), 강원여성문학상(2005), 강릉예술인상(2012) 등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1989년 [가을 회신], 1995년 [먼 불빛], 2000년에 [겨울 강릉행], 2012년엔 [이순의 달빛]등의 시집을 상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본인의 시 쓰기 작업에서 작품의 시어 하나 하나는 절대 함부로 들어와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치열함을 볼 수 있다. 그의 시어들은 시의 느낌 하나 씩을 품고 정갈하게 기다려야 한다. 강우너도민일보 신문 기사에 ‘시어가 적재적소에 자리 잡지 못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퇴고를 반복하는 일이 일상으로 되어 있다’는 기사를 봐도 알 수 있었다.
박명자 시인은 그의 시를 읽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시는 말이 아니고 시가 아니고 한 잔의 피 같은 에너지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손을 대면 손이 대일 듯이 뜨거웠다. 그의 시를 들여다 보면 마치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인의 시세계에서는 버리고 버리면 가벼워진다는 낮은 음자리표 그리고 조용한 겸허의 자세로 삶에 머문다는 사고의 폭이 더 없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또 엄창섭 교수는 ‘모던포엠’에 <아득한 정신 풍경과 느림의 미학>이란 제목으로 쓴 글의 몇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느림의 시학이라는 틀에서 맑은 영혼으로 한그루 시나무를 돌보며 키워내는 헌신적인 열정이 눈물겨워 그 소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가 오면 받아 적고 아니 오시면 마냥 기다리고 그린다는 해명처럼 여유와 너그러움에서 비롯된 느림의 시론에서 꽃처럼 아름답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시의 꽃을 피워 <이순의 달빛>으로 황홀하게 쏟아내는 그의 지난한 몸짓은 더 없이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강릉의 후배 문인들에게 곧은 시 쓰기를 위해 일갈을 서슴지 않았던 문단의 시어머니로, 대비마마로 알려지기도 한 이충희 시인, 칼칼하던 일침이 작품 ‘숨통’에서는 난초의 잎처럼 부드라워짐을 느꼈다.
숨 통
이 충 희
가즈런히 길 낸 신단지 빼곡한 상가 모퉁이
잡초 듬성한 공터를 보자
안도 그 비슷한 느슨함 같기도 한
묘한 편안함 훑고 지나간다
사람 사이에도 이런 느낌 헐렁해서
만만해서 갖은 투정 다 너그러이 수용하는
더러는 허접스런 생각들 슬쩍 흘려도
눈 감아 주는 아니지 감쪽 같이 대신 치워주는
그런 공터 같은 숨통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네
허름해서 표나지 않는 전혀 거리낌조차 없는
죄라는 자각조차 얼씬 않는 그런
사는 일에 치여 눅눅해진 한 귀퉁이도
열어놓으면 가슬가슬 물기 거둬가는
공터의 청명한 햇살 같은 그런
그런 숨통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네
- 강원문학 45집 (강원문인협회 刊, 2013
아파트와 상가 등의 신단지는 건물로 빼곡하다. 숨통이 막힐 정도로 정연하게 서 있다. 모든 게 계획되어 있고 틈이 없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단지 상가 모퉁이에 잡초가 듬성듬성한 공터는 신단지 건물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공터가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 눅눅하고 편안한 것은 ‘듬성듬성함, 느슨함, 공터, 허름함’ 등이다. 선(善)의 지극한 경지는 물과 같다는 노자의 ‘上善若水’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모난 것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수용하고 허접스런 생각도 대신 치워주는 공터 같은 숨통 하나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 좋은 일일까. 화로의 불이 뜨거워지다가 최고조에 달하면 파란색으로 변한다. 이를 ‘爐火純靑’이라 하고 무공의 경지가 극에 달했을 때를 말한다. 어찌 무공만을 이르겠는가. 시 또한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노화순청’의 경지라고 한다. 이충희 시인의 작품 ‘숨통’을 읽고 있으면 아주 편안하고 아늑하여 시인ㅇ의 정신이 극도로 좋은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릉 문단의 어른, 이충희 시인!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라는 미당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나는 이충희 시인이다. 일상적인 후배들과의 만남에서도 사랑과 너그러움, 따뜻한 언어로 감싸는 공터의 청명한 햇살 같은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