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지맥이라 카더라~~
낙남정맥 대곡산에서 분기하여 삼천포(사천시) 노산공원까지 가는 산줄기로 신산경표의 지맥분류 기준인 30km에 미달 (도상거리 29.6km)하여 지맥으로 분류하지 않았으나, 극성 산꾼들이 끝점을 더 먼데로 수정하기도 하고, 실거리를 기준하면 30km가 넘는다고도 하여 와룡지맥으로 이름을 붙였다.
삼천포(사천)의 명산 와룡산을 끼고 있어서 와룡지맥이 된거는 충분하고, 그 끝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30km를 충족하기도 하고 혹은 모자라기도 한다. 바다로 돌출한 반도 끝으로 가는 지맥이라 여타 산줄기 처럼 가르는 강이나 하천은 이렇다 할게 없으나 좌우로 물을 가르는 분수령임에는 여지가 없다.
지맥의 기준을 30km라 했지만, 공인 측량기관에서의 인증을 받는 일도 아니고, 거리는 재는 사람에 따라 오차가 있기 마련이다. 29.5가 나오면 불합격인가. 두부 자르듯이 30을 고집할 필요는 없음이다. 100이 넘는 지맥도 있고 100이 안되는 정맥도 있는것이다.
거리가 짧기도 해서인지, 정맥에서 갈라지는 분기점부터 시작하지 않고 삼천포 바닷가에서 동쪽 끝 고성만까지 이어 진행을 하는 추세다.
멋진산악회에서 삼천포 노산공원(혹은 삼천포대교)를 출발점으로 하여 감치재 분기봉인 374.5봉에서 대곡산으로 가지않고, 계속 동진하여 고성읍 대곡교까지, 35km를 3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할 계획을 듣고, 매주 일요일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만 일단은, "가는데 까지~" 따라가보자.
낙남정맥에서 통영지맥이 분기하는 대곡산이 이름을 바꿨다. 통영지맥 할 때는 분명 대곡산이었는데 최신지도를 보니 무량산이라, 지리정보원에 알아보니 고성군에서 그 일대 몇 몇 산이름을 새로 교통정리 한 모양이더라.
? 지명의 변경 고시 제2014-645호 지명고시 (2014. 4. 4)
와룡지맥 01 (삼천포대교~비운치)
2015. 12. 20 (일) 산길 : 삼천포대교~각산~새고개~와룡산~비운치 사람 : 멋진산악회 함께 거리 : 14.9km / 06:30
(박성태님 수정트랙)
삼천포는 내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공무원 임용이 되어 첫 발령을 받은 곳이고, 여기서 신혼살림을 꾸렸고 아들이 태어난 곳이니 내 인생에 있어 이만큼 의미가 있는 곳이 또 있으랴. 당시 우리회사에서 삼천포는 사고쳐서 유배(!)를 가거나 나 처럼 신규 임용자가 아니면 갈 일이 없는 곳이다. 공무원증 먹물도 안 마른 놈이 제복을 걸치고 으시대며 폼을 잡았고, 이십여년 도시생활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새색시를 시골에 데려다 놓고, 지나 내나 천지를 모르고 소꿉장난 같은 살림을 차렸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
정확하게 열달만에 아들을 봤는데, 당시 삼천포에는 산부인과가 없어 택시를 대절 해 진주까지 나가 출산을 했다. 한 마당 안에 주인집을 위로 두고 세 가구가 세를 들어 살았는데, 꼴에 그래도 공무원이라고 월급이 또박또박 나오니 옆집 아줌마는 내 월급날만 되면 마누라한테 돈을 빌리러 왔다. 남편이 구둣방을 했는데 당시 잘 돌아가지를 안했는지 2천원도 빌리고 어떤 날은 5천원도 빌려갔다. 먹을 양식이 떨어져서 그랬던 것인데, 2천원이나 5천원으로 한 식구 끼니를 해결한걸 보면 큰 격세지감이다. 물론 빌려간 돈은 때가되면 어김없이 갚았고, 그러면서 우리와 각별한 정이 쌓였었는데, 요즘에야 앞집 아저씨가 구둣방을 하는지 노래방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세상이다.
35년 전 그 때는, 사천군에서 들어가는 도로도 기찻길을 따라 겨우 한 차선 포장된 '신작로'였는데 그나마 노후하여 덜커덩 거리며 흙먼지 뽀얗게 날렸다. 당시도 삼천포시였지만, 시가 되기에는 인구가 턱없이 모자랐는데도 어느 끗빨좋은 양반이 힘을 써 억지로 市를 만들었다고 '억지시'라 했다. 마산에서 광주로 가는 경전선 기찻길이 연결을 잘못하여 삼천포로 들어가는 일이 종종 생겨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이 생겼다고 하더라. 그 억지시라는 삼천포에, 지맥도 억지로 만든(?) 와룡지맥을 하러 들어가는 기분이 적지않게 흥분이 된다.
07시 조방앞을 출발했는데, 휴게소 한 번 쉬고도 두 시간이 채 안걸려 삼천포대교 아래 도착했다. 노산공원이냐 대교냐, 출발점을 논하다가 노산공원 전후로 도심지 번화가를 통과하는, 소위 시내발이가 껄끄럽다고 대교로 들머리를 잡았다. 삼천포대교 아래에서는 곧바로 산길로 붙기 때문이다.
남해 창선으로 들어가는 삼천포대교 다리 아래를 기웃거리다가, 여느 지맥처럼 합수점이 있는데도 아니라, 쉽게 올라가자고 대방사 진입로를 찾았다. 저만치 커다란 등산안내도가 보이는걸 보니 각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 모양이다.
각산 등산안내도
대방사(大芳寺)
대방동에 있다고 대방사인지, 연혁이 기록된 간판은 녹이 쓸어 읽어보지도 못하겠다. 여기까지 버스를 올려도 되었었다만, 절집 왼편으로 넓은 길이 계속 올라간다.
[←탕건바위] 이정표를 보고 옆길로 들어갔지만, 탕건바위를 놓치고 말았다. 지나고 보니 왼편 저 아랫쪽에 큰 바위가 보인다. 탕건바위는 지나는 길에 들렀다 가는게 아니라, 갔다가는 돌아 나와야 되는 모양이더라. 넓은 수렛길은 능선을 넘어가고 마루금을 찾아 각산을 향해 올라간다.
각산 등산로
400m 밖에 안되는 각산이지만, 바닷가 해수면에서 시작을 했으니 서비스 고도(!)는 거의 없는 셈이라. 에누리 없이 올려야 되는데, 오늘 산행을 마치고 보니 이 정도는 재롱이더라. 각산을 올랐다가 다시 몽땅 반납을 하고 새고개로 떨어지고, 천왕봉을 오르면 다시 도암재로 뚝 떨어졌다가 와룡산을 오른다. 누구 말마따나 등산 세 번 하는 길이다.
각산산성
애나로, 백제 무왕이 삼천포에 왔쓰까? 삼천포 말 '애나로'는 정말로, 진짜로라는 뜻이다.
백제의 거열성...?? 시방 우리가 경남도계를 하고 있지않냐 말이지. 엇그제 지나간 거창군이, 예전 이름이 거열이라 했다. (거창소개) 신라초기에는 거타(居他), 거열(居列)이라 칭했고 경덕왕 16년 (757년)에 거창군으로 칭하고 염례(稔禮)를 함음현(咸陰縣)으로 남내(南內)를 여선현(餘善縣)으로 개명하여 거창군에 편입 시켰습니다...
세종 지리지 / 경상도 / 진주목 ⊙ 진주목(晉州牧)
천오백년전, 그 옛날 한 때 진주가 백제의 땅이었다는 기록을 접하니 어째 좀 생소한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정치꾼들이 만들어 놓은 지역의 골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건가? 갑자기 객꾼이 딴나라 사람이 된거 같은 기분이 들라하네. ㅎㅎ
큰 칼 대신 스틱 옆에 차고 이순신 흉내를 내 본다. "여 바 라 ~!"
각산산성 루에 오르면 삼천포 앞바다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이순신 장군이 여기 오르신 기록이 있든가 말든가, 저마다 한 목소리 뽑으며 마치 장군이 된양 기개를 뿜어댄다. 동대만 좌우로 창선면이고, 다리 건너편 높은 봉이 창선의 대방산(470m), 맨 뒤에 남해에서 가장 높은 망운산(784m)이 아스라하다. 빨강색 아치형의 다리가 도드라지는게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된다.
삼천포와 남해 창선을 잇는 삼천포대교
창선도와의 사이에 늑도, 초양도, 모개도를 디딤돌삼아 5개의 교량(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이 삼천포와 남해군 창선도를 이어준다. 총 길이 3.4km로, 2003년 4월 28일 개통되었으며, 건교부가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각산봉화대
각산 (角山 ×405.9m) 대동여지도에도 角山 표기가 있고, 조선지형도에도 표기된 족보있는 산이다.
각산봉수대는 "사량도의 공수산 봉수를 고성 좌이산 봉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빨간파카 아저씨 왼쪽 너머 보이는 섬이 사량도다. 오늘 같은날 사량도에서 봉수를 올리면 바로 알아 보겠다. 현재는 그 앞쪽에 있는 삼천포 화력발전소에서 봉수가 올라오고 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평상시 1회, 적 출현 2회, 접근 3회, 침입 4회, 전투 5회로 봉화를 올렸다는데, 발전소 굴뚝에서 길게 올라오는 연기는 무슨 신호인고 물었더니, 발전소 잘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란다.
대동여지도의 사량도 공수산 지금은 지리산(지리망산), 옥녀봉 등으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공수산이었다
봉수대라면 이런 파노라마 그림이 나오는 곳이라야...
나무계단길을 내려 간 안부에서 우측 대방사에서 올라 온 길과 만난다.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다시 올라가면 산불감시초소와 전망대가 있다. 감시초소에는 근무자가 셋이나 있다. 사천시에서 노인 일자리 창출은 제대로 하는구만,
우측 아래 도심지에 봉긋 솟은 망산(61.2m)과 노산(25.4m)
금산, 망운산, 금오산
천왕봉은 잘 안보이는데요?
와룡산 위풍도 만만찮다.
각산은 이어지는 세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첫 봉이 봉화대(408.4), 두 번째 봉에 산불초소와 전망대(405.9), 세 번째 봉이 송신소가 있는 봉우리(△396.9)다. 마지막 송신소가 있는 봉에 삼각점(사천302)이 있는 모양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찾기를 포기했다. 여기까지 차가 올라와 있네.
송신소 아래 헬기장을 가로질러 내려가다가 ×347.5봉에서 노산으로 갈라진다. 그러니까 노산을 지맥의 끝점으로 잡으면 각산은 벗어나 있으므로 들렀다 되돌아 나와야 된다는 야그다.
임도가 왼쪽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안부에서 정면으로 올라가면 335봉인데, 왼쪽(북서)으로 갈라지는 능선은 영복원으로 간다. 대곡산 분기점에서 30km를 넘기기 위해 -지맥 기준을 충족- 가장 길게 잡을 경우 영복원으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영복원으로 가는 길은 너무 싱겁다. 능선을 따라 임도가 계속 이어지고 아무것도 볼게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길게 간다는 이유밖에 없겠다.
박성태선생님이 여러번에 걸쳐 확인한 도상거리가 ①무량산~노산은 29.68km, ②무량산~영복원은 31.08km 로 최종 결론 지었다. 거리를 측정한 툴은 Vantage Point, 나들이, 오룩스맵, Ozi Explorer. 이 넷이 동일한 값을 나타내고, GTM은 1km가량 더 나타냈는데, 다섯개 툴 중에 네 개가 같은 값이므로 이를 채택하고, GTM은 제외키로 했다. (GTM은 ①노산까지 30.61km)
그러므로, 지맥의 기준(30km up)을 충족시키려면 무량산에서 영복원으로 가야, 소위 와룡지맥이 되는것이고. 우리처럼 삼천포대교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우리끼리 할 소리지, 다른데 가서는 와룡지맥 한다고 하면 안되는기라. ㅎ
삼천포 시내 번화가 (벌리동 일대)
오계산 선조묘
그런데 영복원 갈림봉인 335봉을 지나 내려가다가 문제가 생긴다. 335봉부터 동쪽 와룡산 방향으로는 일반등산로가 아니고 겨우 토끼길이라 할 만한 길인데, 이마저 그대로 따라 내려가다가 '오계산 선조묘'까지 가서 보니 마루금에서 벗어난걸 알게 된다. 내려오면서도 눈치를 채고 왼쪽으로 구멍을 찾았지만 들어갈만한데가 없었고, 여기까지 와서야 더이상 계속 가다가는 완전히 엉뚱한데로 떨어지겠다 싶어 왼쪽 덤불을 파고 들어갔다.
10분 가량 가시덤불을 파헤치며 사면으로 가다가 진주정공 묘터를 만나고는 더 이상 옷버리기 싫어 묫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나마 이 묫길도 자꾸 우측으로 치우쳐 내려간다. 묵밭을 만나고 왼쪽으로 넘어가니 묘목장이고, 묘목장을 가로질러 나가니 비로소 마루금 트랙에 일치가 된다. 내려가면 왕복 6차선 아스팔트 도로 새고개다.
①마루금 아님 ②마루금
새고개(新峙) 3번국도 새고개 (50m) 지도에 새고개라는 명칭은 없지만 [새고개마을] 표석이 있어 새고개라 한다. 삼천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국도 3호선인데, 삼천포대교가 놓여지면서 남해 미조까지 연결이 되는 3번 국도다. 자세히는 몰라도 예전에 삼천포라 하면, 사천에서 들어오면서 이 고개를 넘고부터 삼천포라 하지 않았나 싶다. 말이 고개지 보기에는 고개스럽지도 않은 평평한 도로다.
신호등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고, 사전에 넣어 온 트랙에 대한 아무런 의심이 없이 삼천포도서관 왼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여기서 부터 마루금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결과를 보고 말하자면, 삼천포 도서관 우측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랐어야 된다. 도서관 왼쪽 시멘트 길을 따라 들어가고 삼천포교회 앞에서 왼쪽 10시방향에 보이는 건물(한국어린이집) 방향을 보고 그 뒷쪽 산자락을 목표로 논 가운데로 난 시멘트길을 가다보니 발 아래로 도랑이 가로질러 흐른다. 비로소 트랙이 잘 못 그어졌다는걸 눈치챈다. "아뿔싸~"
혼자 왔더라면 돌아 나갔을 것이다만, 일행중에 마루금에 애타는 사람은 없다. "그런줄로 알고 가자"가 대세인지라 혼자 땡고집 부릴 상황도 아니다. 한국어린이집을 지나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틀었다. "바로 앞 산자락은 마루금이 아니고, 저 우측 소나무 한 그루와 하얀 별장이 있는 저 능선이 마루금이다" 의견이 일치된다.
그리고 그쪽 마루금으로 최대한 접근하면서, 산자락 들머리가 어딘지 기웃거리고 있으니, 빨간 잠바를 입은 산불감시원이 내려온다. 친절하게 와룡산 등산로를 가르켜 주는데, 그 친절을 무시할 수가 있나. 그것도 산불경방기간에. 지맥이고 나발이고 길 따라 가자.
트랙을 잘못 그렸다
왼쪽 어린이집 뒷편 산자락을 목표로 잡았는데, 마루금은 여기서 계속 직진했어야
도랑이 가로질러 흐른다
저 우측 야트막한 능선. 대성초등학교가 마루금이다
와룡산 정규 등산로를 안내한다
산불감시원이 가리켜주는대로 와룡저수지 아래 와룡골 입구, 활쏘는 궁터가 있는 곳이다. 왼쪽 산자락에 등산안내도가 보인다. 등산로를 짚어보고 산자락 입구에 있는 묘터에서 점심을 먹고 간다.
대방동에서 각산 오름은 일도 아니었다. 고도 70쯤 되는 등산로 입구에서 천왕봉 630까지 도대체 얼마를 올라가는 비탈이고? 더구나 점심 먹고 빵빵 솟은 배를 안고 등산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길이라니. 천왕봉까지 꼬빡 1시간을 고도 높히는 작업을 했다.
와룡저수지
저수지 건너편 능선이 민재봉에서 갈라져 내려 온 기차바위 능선이다. 용강교를 원점으로 우리가 올라 온 길로 올라와 천왕봉, 민재봉을 돌아 기차바위, 사자바위를 거쳐 저 능선타고 내려오면 와룡골을 한 바퀴 도는 원점회귀 코스로 적당해 보인다.
① 길 흔적 있으나 마루금 아니고, ②마루금은 길이 없다
날씨는 흐리지만 조망은 이만하면 양호한 편이다. 외룡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며 각산에서 내려 온 길과 마루금을 맞춰본다. 영복원 갈림봉인 335봉에서 30m 쯤 내려와서 바로 왼쪽 덤불로 파고 들어야 맞아지겠다. 길따라 끝까지 ①번을 고집하면 새고개와는 많이 멀어진다.
40~50m는 되어 보이는 넓고 긴 슬랩이 앞을 막는다. 굵다란 로프가 걸려있어 올라가는데 무리는 없다만 한참동안 정신을 집중하며 다 올라서고 보니 사타구니에 하얀 가루가 옴팍 묻었다. 처음엔 이게 어디서 묻은건가 의아스러웠지만 알고보니 흰 로프가 다리 사이에서 비비지며 묻은 로프가루였다. 내리는 빗줄기가 더 굵어져 모두들 배낭을 씌우고 비옷을 꺼내 입는다만, 입으나 마나 물이나 땀이나 젖기는 마찬가지라 그냥 간다.
산성같은 축대를 올라서면 왼쪽 용주사에서 올라 온 길과 합류하고, 더 올라가면 [와룡산 천왕봉] 표석이 있는 ×628.1m봉이다. 바위 뒤에 한 무리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628.1m
천왕봉이나 새섬봉, 민재봉은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아니고, 고시지명도 아니다.
도암재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새섬봉.
천왕봉 오르면서 쌔를 만발이나 뺐는데, 도암재까지 200을 내려가서, 다시 400을 올려야 새섬봉이다. 죈쟝마즐...
도암재 (460m)
상사바위는 지났고, 새섬바위는 앞쪽이다. 천왕봉 남쪽 절벽을 이룬 바위가 상사바위이고, 새섬봉 봉우리 바위가 새섬바위인 모양이라. 상사바위에는 바윗꾼들이 즐겨찾는 암벽이 있다.
상사바위 (천왕봉)
바윗꾼들에게 유명한 '상사바위 슬랩' 난이도 5.10의 중급코스란다
맨 뒷봉이 새섬봉인데, 이 봉우리를 이루는 전체 바위군을 새섬바위로 부르는 모양이다
와룡산 새섬봉(×801.4m)
2013년 국토지리원의 온맵지도에는 이 봉우리에 臥龍山 표기가 있으나, 그 이전의 지리원 지도에는 여기가 아니라 현재의 민재봉이 와룡산이고, 1917년 조선지형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상석에는 [와룡산 새섬봉], [와룡산 민재봉]이라 어물쩡하게 표기를 했다만, 2002년 이후 국토지리원 지명고시 어디를 봐도 변경된 사항이 없다. 높이는 새섬봉이 조금 더 높다만, 반드시 높다고 산이름을 취하는건 아닐 것이다. 한편, 대동여지도에도 臥龍山이 있다만, 대동여지도를 현재의 지도와 맞추기는 무리다.
새섬봉 정상석 옆면에 "먼 옛날 와룡산이 바닷물에 잠겼을 때, 새 한 마리만 앉을 수 있었다 하여 새섬봉이라 한다" 언제인지도 모를 예전 바닷물에 잠겼을 때, 약 한첩, 종지 하나, 작대기 하나 꽂을 만큼만 남았다...는 유래는 전국 곳곳에 흔하다. 이것도 원조가 어딘지 따져봐야 겠다만, 우리나라의 유래는 다른데 것을 적당히 벤치마킹한 경우가 흔하다.
'새섬'이라는 명칭이 옛부터 전해 온다면 필히 무슨 유래가 있을법 한데, 더 찾아 보든지, 찾지를 못했으면 돌에 새기지나 말든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적어 놓은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鳥島(조도)를 우리말로 새섬이라 하고 진도군 조도면 역시 새모양이라 그렇다는데, 거꾸로 새섬을 한자 鳥島로 추정하고 새 鳥를 근거로 하여 끼워맞춘 유래가 틀림없다. 초가를 엮는 새(띠 茅)가 많아 새섬이라 하는게 오히려 설득력 있지 않나.
새섬바위(새섬봉)
수정굴[0.30km]
새섬봉을 내려서면 이 후 민재봉까지는 큰 오르내림 없이 평탄하다. 수정굴은 전에 수정광산이 있던 자리라 한다.
와룡산 민재봉 (797.8m △삼천포21)
여기가 오리지날 와룡산이다. 위치로 보나 산세로 보나 새섬봉이 설악이라면 민재봉은 지리산이다. 예전 지도에 계속 여기에 와룡산 표기가 있다가 2013년판에 새섬봉으로 표기를 이동했는데, 높아야 정상이고 높은 놈이 산이름을 가져가야 한다는 어느 불뚝고집이 발동한건지, 지리원 인쇄작업자의 단순 실수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 이 산 전체 무디기를 와룡산이라 치자.
조망은 새섬봉이나 마찬가지로 사통팔달이겠는데 구름이 짙게 덮히고 비까지 내리는 판이라 눈에 뵈는게 없으니 그림으로만 보고가자. 뒤에 쳐진 사람들 기다리려니 비는 계속 내리고 추워서 안되겠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용두마을은 와룡저수지행이고, 지맥은 백천재 방향이다. 사남면계를 접한다.
『여지도서』(고성) "와룡산(臥龍山)은 관아의 서쪽 60리에 있다. 모려곡(茅廬谷)과 남양동(南陽洞)이 있다. 무이산에서 뻗어 나온다."고 하였다. 『호구총수』에서 하이운면(下二運面)의 동리 중에서 와룡동(臥龍洞)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고,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에는 "운흥사는 관아의 서쪽 100리에 있다. 와룡산 남쪽에 있다."라고 수록하고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 그리고 『여지도서』(고성)에 모두 와룡산을 수록하였고, 『대동지지』(사천)에는 "와룡산은 진주 그리고 고성의 경계에 있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조선시대에는 서쪽에 인접한 사천시 와룡산에서 비운치(飛雲峙) 그리고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지를 하나의 산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정표의 [백천재] 방향이고, 사남면계다.
5분 후, 다시 좌우로 갈라지는데, 왼쪽은 백천재, 오른쪽 [진분계]가 지맥이다. 길이 상대적으로 험하다만 지맥길 치고는 준수한 편이다. 온전히 사남면으로 들어가면서 진분계는 비운치가 있는 계양리의 마을이름이다.
백천재는 사남면계, 지맥은 진분계로 간다
비운치를 건너 봉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우측에 보이는 봉현저수지 윗 마을이 진분계
봉암산이 높게 솟아 오른다
출입금지
산에서 다 내려오면 임도에 떨어지는데, [출입금지] 간판과 못 들어오게 대나무로 막아놨다. 먼저 내려간 선두조는 감시원에 걸려 약간의 싱갱이가 있은 모양이나 지금은 아무도 없네. 바로 건너편 낮은 둔덕은 생략하고 왼쪽 길을 따라 나가니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가는 비운치다. 이 도로를 경계로 사천시와 고성군이 나뉜다. 즉, 길 건너편은 고성군이다.
비운치 (160m)
界陽里 마을 이름에서도 경계임을 알 수 있고, 진분계 역시 옛날 진주와의 경계라는 뜻의 지명이다.
두량저수지에 있는 두량횟집
늘 그랬듯이 멋진산악회는, 태워주고 씻겨주고 먹여주는 산악회라 어찌 내가 좋아하지 아니할 수 없지 않겠노...? 오늘 메뉴는 붕어찜으로 낙찰이 되고, 또 그 쪽 방면 전문가께서 안내를 한다. 어딜 가는고, 다 가서 내려보니 두량횟집이라. 여기는 진주시계하면서 객꾼, 학봉과 들렀던 곳이다. 일제시대에 축조된 두량지 한 가운데로 진주시와 사천시가 나뉘는데, 그 못 둑이 사천에 속해있어 관리를 사천시에서 하는 모양이다.
소주에 프로폴리스를 타 마신다. 노란 막걸리에 노란 소주, 장어 국물도 노랗고, 어느게 소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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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은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산
첫댓글 요즘 와룡지맥을 가시는 가시는 분들이 아주 많은듯합니다.
아울러 마지막 지점을 어디로 잡을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고
산꾼들의 발걸음이 쌓여가면 그 답이 나오리라 생각되지만
후답자들의 고민은 피할수 없나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