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21:15~17).
본 단락은 세 번이나 예수아 주님을 부인하고 의기소침한 베드로를 어떻게 예수아께서 회복시켜 주시는지(15-17절)를 설명하고 있다.
15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아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그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아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아께서 처음 베드로를 만났을 때 지어준 이름이다(요1:42). 예수아 주님이 지어주신 베드로(반석)은 예수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주를 세 번이나 부인 함으로(18:17, 25, 27), 그 이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제 주님은 처음 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계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책망하려고 하는 것이아니라 새로운 회복과 사명을 주기 위해서 다정하게 부르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을 잘 따라가다가 신앙의 고비를 만났을 때 처음에 어떻게 주님을 알고 믿었으며 따랐는가를 생각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에베소교회에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고 지적하시고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권고 하셨다(계2:4~5), 그러므로 베드로도 이런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아카파오)하느냐 예수아 주께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다른 제자들은 어떠하든지 예수아 주만을 따르겠다고 자부하던 베드로의 자신감을 의식 하였기 때문이다(마26:33, 35, 눅22:33, 요13:37).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필레오)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아께서는 아가페오적 "신적 사랑, 헌신적인 사랑"으로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필레오 "애정, 우정"인 인간적인 사랑으로 대답 했다고 하여 논란이 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단어의 구분을 요한은 특별히 두지 않고 사용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인간적인 사랑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3:16, 5:20, 14:21, 16:27). 그러나 개혁주의 많은 학자들은 예수아께서 베드로에게“아가파오”신적인 사랑을 물으셨으나, 베드로는“필레오”즉 그보다는 질이 약간 떨어지는 우정, 애정으로 대답 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런 용례를 찾을 수 없다.(요21:15~21) 분명한 것은 베드로는 처음과는 달리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신 것은“아가파오”베드로의 첫 번째 대답: 주님 그러 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필레오”주님은“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두 번째 질문:“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물으신 것은 “아가파오”,베드로의 두 번째 대답: 주님 그러 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필레오” 주님은“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세 번째 질문:“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물으신 것은“필레오”베드로의 세 번째 대답: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필레오”주님은“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요한은 사랑을 표현할 때“필레오”와“아가페오”를 무작위로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신약에서 아가페, 아가페오는 가장 고귀하고도 고상한 사랑을 가리킨다. 필레오는 친근감을 뜻하기도 하고(요11:3, 36, 계3:19),즐겨하는 것에 대한 선호를 가리키기도 한다(마6:5). 이 두 단어가 상호 교환적으로 쓰일 때도 많다.
- 로고스 성경 성구 대사전 -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요한을 예수아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할 때“시몬 베드로와 예수아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라는 표현에서는 필레오를 사용하지만(요20:2).
“예수아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라고 할 때는 아가페오를 사용했다(요21:7절).
(2). 예수아 주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에서“사랑하시는 자가 병들 었나이다” 라고 할 때는“필레오”(요11:3)를 사용하지만 “예수아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할 때는(요11:5)“아가페오”를 사용했고“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라고 할때는(요11:36)“필레오”를 사용했다.
(3).“필레오”라는 동사를 성부께서 성자를 사랑한다고 할 때도 사용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요5:20)를 사용된 성부께서 성자의 사랑을“필레오”를 사용하여 표현하였으며. 예수아 주님이 제자들에게“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16:27)에서의 표현에서는 사랑한다는 단어를“필레오”를 사용하였다.
(4). 요한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한다고 할 때 상호 교한 적으로 사용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아가페오)하사”(요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필레오)하사”(요5:20)
그러므로 요한이 헬라어로 사랑이라는 단어의 사용 용례에서 예수아 주님과 베드로의“사랑에 대화”단어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해석 하는 것은 옳은 해석이 아니다.
16절.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주님은 첫 번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어서 질문하시고 본 절에서는 베드로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를 묻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전 절에 종속시키면서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로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 예수아 주님의 대답 또한 내 양을 치라이다. 17절에도 나타나는 "내 양"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베드로에의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다. 베드로는 일시적으로 주님의 양을 돌보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17절.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아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예수아 주께서는 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아마도 자신이 세 번 예수아 주님을 부인한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 그는 "근심하여" 말했다.그러나 베드로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절히 진심으로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도“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같은 의미의 질문과 대답을 주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세 번이나 부인하여 마음에 상심을 갖고 의기소침 하여 담대한 믿음이 떨어진 베드로의 마음을 확실히 회복시켜 주셨고 베드로가 자신감을 가지고 주님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다.
베드로는 누구의 아들인가
요한의 아들인가 아니면 요나의 아들인가?
개역개정은 요한의 아들 시몬? 아니면, 바요나의 아들 시몬?
개역개정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요21:15), 바요나 시몬아(마16:17)이라고 했다.
흠정역은 요나의 아들이라고 되어있다.
요나의 아들 시몬(요21:15), 바요나 시몬(마16:17)흠정역
바요나는 헬라어로“바리오나스Barionas”인데“히브리어“아들”을 뜻하는“바르bar”와“요나yonah”에서 유래한 것으로“바요나 시몬”은 사도 베드로를 말하며“요나의 아들”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