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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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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스크랩 스크랩 [감동]새생명전도축제 강사 송솔나무
덩울사랑 추천 0 조회 486 17.10.01 03: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은혜로운 간증?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송솔나무집사 간증 발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여름에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하면 시내 최고급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고 수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누구와 싸우는 소리가 났고 부모님은 제게 무조건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나서 빚쟁이들이 아버지를 찾는 전화였고, 누나와 나는 학교로 찾아 올지도 모를 그들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안으시며 “하나님, 이 아이를 잘 보호해 주십시요”라고 눈물로 기도하셨고, 어머니와 누나는 다음 날 미국 이모네로 갑자기 떠났습니다.
1988년 2월 추운 겨울날, 저는 미국 JFK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데리러 온 이모부는
낡고 작은 차에 짐을 실었고 우리는 좁은 골목을 지나 아주 허름한 2층짜리 다세대 주택 앞에서 섰고, 그곳에서 11명이 1년을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전교 1등을 하던 누나는 바로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늘 꼴찌만 하던 저는

ABC도 몰랐기에 원래는 6학년에 올라가야 하는 나이에 4학년으로 몇달 뒤 들어갔습니다.
무턱대고 아무 반이나 들어갔는데  6학년 반으로 잘못 들어갔고, 끔직한 저의 학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식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피아노를 하는 누나가 줄리어드 프리칼리지에 합격해야 했었습니다.어려운 형편인지라 교회에서 연습을 하다가 피아노 줄이 늘어났다며 ?겨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두 번이나 떨어졌고 세번째에야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악몽 같은 학교생활은 더해만 갔습니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운동도 못하는 동양 아이를 아이들은 괴롭혔고, 쉬는 시간이면 한대씩 툭툭 치고 지나갔습니다.
1달러 25센트의 점심 급식비를 아끼려 어머니는 도시락을 매일 싸주셨는데 아이들은 우유를 내 도시락에 붓기도 했고, 저는 너무 맞아서 귀가 찢어져 피가 나거나 사물함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비난과 놀림을 피할 곳은 오직 화장실이었습니다. 하루는
변기 위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내가 미국에 와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누나는 똑똑하게 만들어 주셔서 엄마의 사랑을 받게 하시면서, 왜 저는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해서 맨날 야단만 맞게 하시는 거냐구요!”
저는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성령님이 처음으로 제게 오시는게 느껴졌습니다.
'얘야~ 내가 여기 있잖아.. 너와 늘 함께 있잖아~ 내가 너랑 친구해주면 되잖니?'
음성이 들리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내 이름도 부르지 않아요. 누나의 동생이라고만 해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실수로 태어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단다. 나는 네 머리카락까지 세는 너의 하나님이란다. 내가 널 만들었단다’
저는 환청인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친구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무작정 믿고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순간 심장이 뜨거워지면서 마음 속 무언가 단단한 반석 같은 게 만들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플루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국에서 몇 달 배운 게 전부였는데 미국에서 들으니 너무 반가워 그 소리를 따라 밴드부실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나보고 플루트를 한번 불어보라고 하셨고, 저는 한국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와 나비야 정도만 겨우 불었는데 불현듯 한번도 불어보지 않은 애국가의 멜로디가 생각이 나서 불었습니다.
나도 선생님도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그 플루트를 주시면서 밴드부에 매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정말 열심히 불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게 기뻤고, 무엇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게 더 좋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줄리어드 프리스쿨 시험을 치고 싶어요”
어머니와 누나는 황당해하며 아무나 줄리어드를 가는 줄 아느냐 레슨비가 얼마나 비싼데 우리 형편에는 불가능하다며 혼을 내셨습니다.
정식 레슨 없이 시험 기회는 단 한번만 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맡은 저는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고, 시험 보는 날, 어머니는 일을 하셔야 했기에 혼자서 뉴저지에서 맨하튼까지 혼자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저는 쟁쟁한 아이들의 옷차림과 악기, 부모님들의 보살핌에 기가 죽었고 어차피 떨어질거라고 생각해서 제스처까지 해가며 열심히 연주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들이 박수를 치면서 웃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5분도 되기 전에 끝났는데 저는 전곡을 다 연주했고 한 교수님이 낡고 싸구려 악기를 보시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일주일 뒤 줄리어드에서 온 우편물을 먼저 잡아든 누나는 비웃으며 “야, 불합격 통지가 어떻게 일주일만에 오니? 창피하지도 않니? 이제 엄마 속 좀 그만 썩이고 또 시험 치겠다는 소리 절대 하지마”
경험이 많은 누나는 줄리어드에 붙으면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연락이 오고, 떨어지면 2주일 뒤에 연락아 온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혹시 아버지한테 온 편지를 보고 우시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갑자가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얘야, 네가 줄리어드에 붙었어. 그것도 장학금을 받고”
저는 그렇게 13세에 줄리어드 프리스쿨에 들어갔습니다. ?
세계적인 플루리스트로서 부와 명예를 다 누릴 수 있음에도 가장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영혼을 울리는 연주로 복음을 전하는 그..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 의 메인 연주와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그..
왕따에서 줄리어드 장학생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빈민촌 거리로.. 8년 동안 전 세계 80개국, 2년 간 일본에서 200회 연주하며 오직 단 한 분의 청중만을 위해 연주하는 그…

그는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2013년 <하나님의 연주자>란 간증책을 발간한 "송솔나무" 집사입니다.
교수들로부터 천재라고 칭송 받았던 그의 인생은 과연 줄리어드 입학 후 탄탄대로였을까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계속됩니다.
오늘의 기도문은 송솔나무 집사님의 책 <하나님의 연주자>에 나오는 감동적

프롤로그로 대신합니다.

♣하나님의 연주자는 ‘연주’라 하지 않고 ‘찬양’이라 한다.

 ‘공연’이라 하지 않고 ‘예배’라고 한다.
연주를 통해 ‘감동’을 주는 자가 아니라 찬양을 통해 ‘은혜’를 끼치는 자다.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자다.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음 하나하나, 호흡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에 실어 전하는 자다.
그는 이 일을 봉사라 하지 않고 사명이라 한다. 실력과 경험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으로 한다. 자기의 상태에 상관없이 순종으로부터 오는

기름부음과 은혜로 한다.
세상 연주는 하면 할수록 피곤하고 지치나 찬양은 하면 할수록
능력이 나타나고 천국 문을 연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성령님의 반응에 민감하다.
사람들의 박수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를 보며 천국의 소리를 들으며
가장 어둡고, 힘든 곳에서 도전을 받는다.
악기는 복음을 전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하며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린다.
스스로 위대해지려 하지 않고 크신 하나님께 사로잡혀 그분께 순종하며 따라간다.

하나님의 연주자는 세상의 큰 무대가 아닌 하나님께서 서라고 하시는 곳이
가장 큰 무대임을 안다. 또한 무대 위에서나 자기 삶에서도 늘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자다 ( 미국 달라스 임마누엘선교회 이사라 목사님 추천 )
기독교사회봉사단 


★폐 64%만 쓰는 연주자의 음악, 구원이 되다

‘세상 음악’에 빠졌다… 하나님의 연주자로 86개국 돌아다니며 연주


이번 주에만 일본을 벌써 세 차례나 갔다 왔다. 오늘 저녁 연주 후 내일 거제로 운전해서 내려가 연주한 뒤 모레 오전 8시 비행기로 도쿄를 거쳐 오히비로에 들어가 또 연주. 바로 다음날 한국에 돌아와 이틀 동안 네 번 연주한다. 그럼 1주일 동안 총 네 차례 한국과 일본을 왕복한 거다.”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송솔나무(38·푸른나무교회) 집사가 지난달 자신의 SNS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 중 일부다. 그는 한류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의 OST 메인 연주자이면서 작곡가다. 일본에서 알아주는 한류 스타라 해도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을까. 

송 집사가 일본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면서다. 그는 4일 후 텅텅 빈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센다이 대피소 등을 돌며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좋아하던 드라마 ‘이산’의 주제곡 ‘약속’을 들려줬다.

큰 슬픔에 빠졌던 이재민들이 그의 연주에 마음을 쓸어내렸다. 잔잔한 플루트 연주와 함께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을 전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었다(롬 12:15). 그리고 이재민들이 임시 주택에 들어갈 때까지 무료로 콘서트를 열겠노라 약속했다. 무려 71회 공연했고, 지금도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


지난 3∼5일 후쿠시마와 고리야마, 센다이에서 개최한 ‘산타 프로젝트’도 그 약속의 연장선이었다.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 피해 지역에서 20㎞를 벗어나 이주를 못한 이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했다. 고리야마에서는 아직도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해 플루트를 불었다. 센다이에선 공립학교 두 곳에서 연주했다. 지역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선물을 전달했다. 현재 일본 나라현에 거주하며 ‘음악 선교사’로 활동 중인 그를 최근 서울 동작구 사당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국내 초청 연주를 위해 잠시 가족과 귀국했다. 

왕따에서 천재 연주자로 

4대째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송 집사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건 1988년 미국에 건너가서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그는 쫓기듯 미국 이모네로 갔다. 공부를 잘했던 누나와 달리 키 작고, 운동 못하고, 말이 안 통했던 어린 솔나무는 왕따였다. 아이들의 조롱을 피해 몸을 숨길 곳은 학교 화장실.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서럽게 흐느꼈다. 

“그때 하나님이 화장실로 저를 찾아오셨어요. ‘나무야,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주면 안되겠니?’ 벅찬 감동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친구 삼아 무작정 그분을 믿고 의지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화장실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플루트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밴드부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분의 권유로 플루트를 불었지요. ‘도레미파솔라시도’ ‘나비야’를 불었는데 선생님이 잘한다며 놀라시더라고요. 내친김에 ‘애국가’까지 불었어요. 바로 밴드부에서 활동하게 됐지요.” 

그날의 자신감은 13세에 줄리아드 프리스쿨(예비학교) 장학생으로 합격하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레슨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고가의 악기를 가졌던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시험 당일, 교수들이 그의 연습용 플루트를 서로 돌려보며 웃었을까. 하지만 그 웃음은 천재를 발견한 환호에서 나온 거였다. 이후 뉴욕 카네기홀, 링컨센터에서 수차례 독주회를 가졌다. 스위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로잔국립음악원에서 플루트를 전공하고, 열방대학에서 제자훈련을 받는 등 실력과 함께 신앙적으로도 한층 성숙하며 음악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도 한순간에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요. 돈이나 명예, 이성 등의 유혹에 넘어지는 사역자들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계속 싸웁니다.” 

순종으로만 달려온 10년의 세월 

유학 중에 그는 악기를 세 차례 도둑맞았다. 처음과 두 번째는 그냥 넘겼는데, 1000만원이 넘는 비싼 악기를 잃어버린 세 번째 상황은 좀 달랐다. 입에선 원망의 소리가 마구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렸을 때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큰 상실감에 하나님을 멀리했다. 이후 대중가수 앨범 및 영화와 드라마 OST에 참여하며 세상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돈을 많이 벌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 가는 것도 잊었다. 7년 동안 가끔 아는 형을 따라 온누리교회 열린예배에 나가는 정도였다. 어딘지 영 개운치 않았다. 

“어느 날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금 하나님께 돌아오고 싶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형이 옆에서 툭툭 쳤는데, 꿈쩍 안했지요. 또 목사님이 ‘지금 하나님께 돌아오려는 영혼이 있다고 하십니다. 용기를 내세요’라고 재차 말씀하시더라고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마음 가운데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무야, 네가 스위스에서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제가 도둑맞은 건 악기가 아니었어요. ‘예수님의 첫사랑을 도둑맞았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2004년,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했다. 그리고 비로소 10년. 하나님 한분만을 보면서 순종하며 달려온 시간이다. 그는 하나님의 연주자로서 전 세계 86개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같은 나라를 10번 이상 간 적도 있다. 일본이 그렇고, 제자 아구스가 있는 인도네시아도 그렇다. 아구스는 무슬림 지역인 인도네시아 쓰마랑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청년이다. 쓰마랑교회의 유일한 플루티스트이기도 하다. 

"제가 악기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세상에나! 입을 대는 헤드 부분은 녹슬었고, 키패드는 도화지 같은 것이 대신 끼워져 있더라고요. 키를 지탱하는 철사 대신 플라스틱 밴드와 고무줄이 있고. 그 플루트를 가지고 독학했다는 겁니다. 아구스가 제대로 레슨 한번 받고 싶다고 청하더라고요. 6일 동안 호텔에서 매일 레슨을 해줬어요. 전공자용 플루트도 선물했지요. 석 달에 한 번씩 인도네시아에 가서 무료 레슨을 했답니다. 2년 전부터는 인터넷으로 강의했고요." 

쓰마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열었는데, 믿지 않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플루트에 복음을 싣고 이슬람권을 비롯, 북한 중국 베트남에까지 들어갔다. 그곳에서 꼭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악기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연주할 때 3∼5가지 악기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연주할 때는 은으로 만든 알토 플루트죠. '허준'에서 부른 악기입니다. 다음은 세계에서 2대밖에 없는 18K 플래티넘 헤드로 제작한 플루트. 마지막은 흔한 나무 재질로 된 휘슬(낡아서 버렸던 것을 본드 붙여 사용 중이다)입니다. 어떤 것으로 연주할 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지 아세요? 휘슬입니다. 돈으로 따지면 알토 플루트는 2000만원, 두 번째 것은 억대, 휘슬은 1만5000원 정도로 어디서든 구입이 가능해요. '동이' 녹음할 때 휘슬로 불었어요. 이 악기 하나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협연하러 비행기를 타고 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과 은 같은 악기가 아니에요. '누구 손에 붙들린 악기인가'라는 거죠. 연주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듯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연주하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소리가 납니다. 하나님이 연주하시면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진짜 친구'를 만나라고 합니다. 진짜 나를 사랑해주는 진정한 친구요. 겉모습을 보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값어치를 인정해주는, 내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진짜 친구 말입니다."

매니저이신 하나님 

100명 미만의 교회를 갈 때는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대신 300명이 넘는 교회에선 무조건 300만원을 받는다, 일은 무조건 들어오는 순서대로 한다, 매니저를 두지 않는다….

10년 전 하나님의 연주자로 본격 나서며 그가 세운 철칙이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왜냐? 매니저이신 하나님과 계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미자립교회 세 곳에서 와달라고 요청이 와요. 중간에 큰 교회에서 불러주면 솔직히 생큐죠. 그런데 전 안 가요. 10년 동안 하나님이 그것을 가르쳐주셨어요. 하지만 이런 교회가 있어요. 사례비를 안 받는다고 하니 저를 쉽게 생각하는 거죠. 연락도 없고 무성의해요. 제가 오히려 전화해서 못 간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귀하게 생각해주는 곳에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한 겁니다. 사례비를 줄 수 없지만 간절히 사모하면 어떻게 안 가겠어요? 매니저 없이 그분과 동행하면서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실 그는 열악하다. 재정적 어려움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연주자로서 '최악의 조건'을 갖고 있다. 덧니에 왼손 새끼손가락은 한 마디가 짧다. 사고로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은 오른쪽 다리는 왼쪽에 비해 70%밖에 못 쓴다. 연주 때 오래 서 있는 게 힘들다. 게다가 그는 폐의 64%밖에 못 쓰는 심한 천식 환자다. 2006년부터 복용하는 천식 약이 우울증과 불면증, 공황장애를 유발해 연주를 마치고 피곤해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7년 전에는 의사로부터 플루트를 그만두고 시골에서 요양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 구원받았어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답해요. 그러면 '구원받았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고 또 물으면 그냥 믿는대요. 막연히 믿는 건 믿음이 아니에요. 구원받았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냐고요? 성령이 내 안에 계세요. 성령이 있는 걸 그럼 어떻게 증명할까요?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세요. 이게 정답이에요. 성령 충만하다면 전도를 해야 합니다. 삶으로 한가하게 간증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그는 지난해 간증집 '하나님의 연주자'(규장)를 출간하면서 이런 다짐을 했다. "내 직업은 연주자가 아니라 사명자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악기를 잘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진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쓰임받기 위해서다. 세상의 연주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 연주하는 '하나님의 연주자'들이 더 많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란다."(227쪽) 비록 연약한 육신이지만 그가 '초인적' 삶을 살고 있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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