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환(ojok1@korea.com, 『주말농사 텃밭 가꾸기』저자)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지요. 그런데 요즘은 병원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가 화장터로 돌아가지요. 좀 과장하자면 콘크리트에서 태어나 콘크리트에서 살다 콘크리트로 돌아간다고 할까요? 사람은 늙어서 어릴 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산다고 합니다. 그 추억이 온통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 아이들이 이 다음에 노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좀 아찔하기는 합니다.
다시 흙을 살려야겠습니다. 흙의 부드러움을 밟고 살고, 흙에 기대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생명력을 느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시골로 내려가기는 힘들 겁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게 흙 한 평 가꾸기입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옥상에서, 마당에서, 자투리 공간에서, 근교 주말농장에서 흙과 함께하는 삶을 누려보았으면 합니다.
낡은 것을 새것으로 순환하는 힘, 흙
흙은 우리의 삶을 순환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순환하지 않는 생명은 생명이기 힘듭니다. 우리 몸도 피도 잘 순환하고, 기도 잘 순환해야 온전히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순환이란 말 그대로 돌고 도는 것인데요, 핵심은 중요한 지점에서 낡은 것이 다시 새것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낡은 피는 간을 통해 새 피로 바뀌듯이 사람살이에서 생기는 낡은 쓰레기는 다시 새 것으로 태어나야 순환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고 쓰레기가 쌓여간다면 우리의 삶은 그대로 썩고 말 것입니다. 그 쓰레기가 다시 새것으로 부활하게 하는 신비의 힘이 바로 흙에 있습니다. 똥이나 오줌이나 음식쓰레기를 흙으로 돌려보내면 훌륭한 거름으로 부활합니다. 그 거름으로 농사를 지으면 다시 그것은 우리의 먹을거리로 돌아오지요.
그래서 흙 한 평 가꾸는 농사를 지으려면 반드시 내 손으로 거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거름을 돈 주고 사와서 농사를 지으면 내가 만드는 쓰레기는 다시 순환되지 않을 테니까요.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지어 먹고, 먹고 생긴 쓰레기를 내 손으로 부활시켜서 다시 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자원으로 쓴다면 사람살이가 참으로 성스럽지 않을까요? 생명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 퍼뜨리기
그런 다음에는 내가 가꾼 흙 한 평에서 내 손으로 많은 생명들을 퍼뜨려 봅시다. 고마운 작물을 먹는데 만 그치지 말고 그들의 후손들을 퍼뜨려주자는 것이지요. 그게 사람과 식물간의 오랜 약속입니다. 그들로부터 먹을거리를 얻는 대가로 그들의 자손을 퍼뜨려주는 거지요. 그런데 요즘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들은 거의 불임 종자들입니다. 그 씨를 받으면 그 작물이 나오질 않지요. 가능하면 토종 종자를 얻어 심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토종 종자를 구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직 다행인 것은 종묘상에서 파는 것들이 다 불임은 아니기에 씨앗을 살 때 씨받아 심어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고 사는 게 좋겠습니다. 귀농본부와 같은 관련 단체를 통해 토종을 구하게 되면 주변 이웃들과도 나누어 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거름도 내 손으로 만들고 씨앗도 내 손으로 받아 키운다면 조그만 흙 한 평이 생명으로 가득한 향연의 장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다 작물만이 아니라, 야생화도 심고, 토종 약초도 심고, 나아가 나무도 심어봅시다. 아주 아름다운 정원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너도나도 예쁜 흙 한 평을 가꾼다면 우리의 도시는 금방 아름다운 녹색의 도시로 순환되어 부활할 것입니다. 그럼, 흙 한평 가꾸기의 예로서 베란다 텃밭 만들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베란다 텃밭 만들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 땅에서 텃밭 만들기가 쉽지 않지만, 좁은 공간이지만 베란다를 잘 이용하면 미니 텃밭을 만들 수 있습니다.
① 배수와 거름
베란다를 밭으로 꾸미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배수와 거름입니다. 일반 밭처럼 고랑을 팔 만큼 면적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베란다 밭의 배수는 잔돌과 모래나 마사토를 이용하면 됩니다. 밑에는 잔돌을 깔고 그 다음엔 마사토나 모래를 깐 다음 거름을 섞은 흙을 덮으면 됩니다. 잔돌과 마사토는 10cm 쯤 바닥에 깔아줍니다.
거름은 반드시 완벽하게 발효된 것을 써야 합니다. 실내와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냄새와 벌레도 발생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베란다 텃밭은 화분과 비슷하여 폐쇄된 공간이라 흙의 정화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입니다.
② 흙과 화분
흙은 약간 모래기가 있는 게 좋습니다. 흙과 모래와 거름의 비율은 4:1:1 정도면 됩니다. 여기에다 숯가루를 섞으면 더욱 좋은데 모래와 같은 비중이면 됩니다. 흙은 무겁기 때문에 무게를 줄이려면 인공 흙이나 피트모스라는 재료를 쓰는 것도 좋습니다. 인공 흙은 돌가루를 큰 압력을 가해 뻥튀기한 흙이어서 매우 가벼운 장점이 있습니다. 피트모스는 오랫동안 수목질이 땅속에서 분해되어 퇴적된 것으로 천연유기물질입니다. 그 자체가 거름도 되지요. 인공 흙이나 피트모스가 수입된 재료이기도 하고 또 흙이 아니어서 생태적이지 않다 하여 꺼리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차피 베란다라는 비생태적인 공간에서 자연의 흙을 퍼오는 것도 꼭 생태적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재료를 구태여 거부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어쨌든 주변 꽃가게나 화분 재료 파는 데 가면 인공흙과 피트모스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인공흙과 피트모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둘 다 함께 섞어도 좋습니다. 비율은 1:1로 하여 섞은 것과 같은 비율로 보통 흙을 또 섞습니다.
밭은 간단하게 스티로폼을 이용해 화단처럼 꾸미는 것도 좋고, 그 외 나무상자를 이용해 화단을 만들면 될 것입니다. 화분 밑에는 벽돌 등을 받쳐 통기성을 좋게 합니다.
③ 씨뿌리기
이렇게 만든 베란다 텃밭에는 가급적 잎채소 위주로 심는 게 좋습니다. 베란다는 통풍도 좋지 않고 일조량도 적어 열매나 뿌리채소는 잘 되지 않습니다. 상추나 얼갈이배추, 시금치. 쑥갓, 아욱 같은 작물이 좋습니다. 종묘상에 가서 씨앗을 사다 심거나 아니면 모종을 사다 심으면 더욱 편하고 쉽습니다.
심는 시기는 영하의 날씨가 완전히 가시는 3월 말 춘분 이후에 하면 됩니다. 심을 때는 되도록 좁게 심어 한 손가락만큼 자랐을 때부터 솎아 먹도록 합시다. 크게 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시금치 씨앗처럼 단단한 씨앗은 심기 하루 전 물에 담갔다 심으면 싹이 빨리 납니다. 씨앗을 뿌린 후 씨앗 크기의 2~3배 정도의 깊이로 흙을 가볍게 덮고, 물을 흠뻑 줍니다. 모종으로 심을 때는 모종전체가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에 물을 흠뻑 주고 난 뒤 물이 다 스며들면 모종을 심습니다.
④ 물주기와 통풍
조금씩 자주 물을 주면 뿌리가 항상 젖어 있어 썩기 쉬우므로, 흙 겉표면이 말라 있을 때 한번 흠뻑 줍니다. 물주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통풍입니다. 통풍이 나쁘면 병충해가 생기기 쉽고 싱싱한 싹을 틔우기가 힘듭니다. 베란다 문을 항상 열어 둘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침 저녁만이라도 꼭 문을 열어 통풍을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 베란다 텃밭을 저장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파를 한 단 사다가 베란다 텃밭에 심고 그 때 그 때 먹을 만큼 뽑아 먹으면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보다 신선하고 더 오래갑니다. 대파만이 아니라, 양파도 좋습니다. 생강이나 마늘도 좋지만 물을 주면 싹이 나니까 건조하게 보관하는 게 좋습니다.
베란다 텃밭 한 평에서 흙의 생명력과 함께 생태적 삶에 한 발자국 더 내딛으며 봄을 기다리지만 말고 만들어 볼까요?
첫댓글 누구든 쉽게 따라해볼수 있겠네요.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