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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세미나 22.04.24,일
할렐루야. 이제 그러나저러나 주님이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셔라 마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 때가 왔습니다. 왜? 천지가 움직이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주님 오실 때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 예언 하셨듯이 그 일들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고 있어도 성경에 지식이 없고 하나님의 지혜가 없으면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것만 쳐다보고 있으면. 두려움만 옵니다. 그런데 이때에 우리가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때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성공해서 한 번 주님의 일을 해 보는 것입니까? 이 땅에 우리가 무엇을 한 번 이루어 보는 것입니까? 우리의 소망은 구원입니다. 구원. 그런데 구원이 되려면 부활해야 됩니다. 내 혈과 육을 다 벗겨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생명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 추수 때가 되었으면 부활의 생명이 되는 것이 내 소망이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내가 정말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추수의 때가 왔다는 것을 알면 내가 부활하지 않으면 하늘 보좌로 갈 수가 없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소망은 내가 부활 생명이 되어야 된다. 그 부활 생명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는 화목 직책의 의의 직분의 사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생명들에게. 그러면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그 사명이 이뤄지면 하늘과 땅의 두 권세를 받게 되는데 이 땅에서 노아와 요셉이 은혜를 받았던 그 두 영성의 소유자가 되어야 됩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왜? 마지막 때가 왔기 때문에. 그자들이 이제 요셉의 단입니다. 그들에게 부어졌던 지혜와 총명의 영의 기름이 부어져야 노아가 방주를 예비 하고 요셉이 고센 땅과 식물을 공급했듯이 이 마지막 때 환난의 피난처가 예비 되는 축복이 임합니다. 그들에게.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소망이 무엇인가? 내 생명이 부활의 생명이 되면 다 이루어져 버립니다. 이것이 부활의 생명은 되고 또 부활 생명 되다보니까 하늘의 권세도 또 구해서 받고 이런 것이 아니고, 부활의 생명 안에 이 모든 사명과 지혜와 총명의 영과 하나님의 마지막 사명을 이루는 의의 열매로 세워지기 때문에 다 모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모든 것을 버리면 여러 배로 받고 영생을 보장 약속하는 이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성경을 우리가 다 깨닫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때 그 뜻을 알면 우리가 구하는 것이 결국은 무엇입니까? 내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지는 부활의 생명체가 되어야 된다. 이 부활의 생명은 혈과 육이 없기 때문에 거룩한 생명입니다. 이 거룩한 생명이 되어야 됩니다. 이 거룩한 생명이 되어야 예수님의 지체가 되고 거룩하신 예수님과 한 몸으로 연합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고 우리가 바라야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온전히 이루어진다면 그 모든 것은 성령께서 나를 통해 다 역사 해 버립니다. 그것은 그냥 이것 따로 저것 따로가 아닙니다. 다 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성경에 신약 성경이든 구약 성경이든 하나님의 뜻을 다 기록 해 놓았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 성경을 그렇게 읽고 듣고 설교를 듣고 했어도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의의 열매가 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의의 열매가 될 수 없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부활 생명체가 되지 못했다. 부활 생명체가 되지 못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죄가 사함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됐다는 것입니다. 내 육신의 죄가. 이것이 다 연관되는 것입니다. 전부. 이것은 됐고 저것은 안 되고가 아니고 다 연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신앙생활 했던 모든 것은 다 묵은 곡식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장입니다. 광야와 같은 것입니다. 광야. 우리는 이제 광야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가야 됩니다. 약속의 땅으로. 거기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광야의 과정도 있지만 광야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39~52절의 말씀 안에 그 증거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9절의 말씀부터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모세의 율법으로는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의 열매가 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을 힘입어.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시는 예수님. 그분은 복음의 참 빛입니다. 이분이 전하는 천국 복음 이 새 언약의 말씀을 힘을 입어 그 말씀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결국은 이 예수님이 주시는 이 복음의 말씀 천국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질 때 내가 의의 열매가 된다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전한 천국의 복음 이 하늘의 비밀한 복음들을 내가 깨닫게 된다는 것은 영과 영이 교통하게 되니까 무엇입니까? 깨닫게 된다는 것은 내 안에 부활의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생명으로. 이것이 얼마나 ... 예수님이 주신 이 복음이 너의 몸을 부활시키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있는데 우리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그냥 이 땅에 모세가 준 율법 아래에서 우리가 그 삶을 살아오다 보니까 행위를 통해 종교 교리를 통해 살아오다 보니까 우리는 의의 열매가 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는 무엇입니까? 지옥 자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세상 지식에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내 안에는 세상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의의 열매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내 안의 죄도 해결되지 못하고 나는 부활의 생명도 될 수 없고 나는 결국 심판을 받게 되는 이 정말 불쌍한 생명이 되는데 그런데 이제 이 사도들이 전했던 것이 바로 이 예수님이 전한 천국 복음을 온 땅에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하게 되기 시작하니까 무엇입니까? 이 땅에 생명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 전한 말씀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도 생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예수님이 선포한 이 천국 말씀들이 지금 사도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져서 말씀이 오면서 늦은 비를 통해 우리에게 또 이 말씀이 확정되어지고 생명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 마지막 때 부활의 생명을 통해서 추수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즉 40절에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그러면서 42절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저희가 나갈새. 이 사도들이 이 복음을 이 바울하고 베드로, 바나바하고 이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청하되 그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전해 달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이 사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한 비밀을 증거 하니까 이들 안에 생명이 들어오니까. 이들은 무엇입니까?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이고 유대인들이고 유대 종교 아래에서 종교 행위를 하는 자들이었는데 이들이 그 말씀을 들으니까 자기가 이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영의 생명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그들에게 무엇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이 말랐던 그들이 이 말씀을 전해 달라. 다음 안식일에도 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에 그것을 전하게 되면 유대 종교법으로 출교 시켜서 다 쫓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비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에 대한 비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활. 왜냐하면 영생에서 생명의 부활로 가는 그 부활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3절에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이들은 이제 유대 종교를 따르는 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인데 많이 바나바와 바울을 좇으니. 이 사람들이 무엇입니까? 유대 종교를 따르던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했던 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비밀한 증거를 들으니까 그들이 이 두 사도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입니까? 이제 율법에서 무엇입니까?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 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죄가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말씀을 믿으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니까. 해결되는데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인다. 이 말씀이 퍼지기 시작하니까 그 온 성이 그 다음 안식일에는 다 이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이 사도들을 통해 이 말씀. 그것은 지금 무엇입니까? 온 성에 모든 자들이 이 천국 복음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 하는 그 생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들에게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율법 아래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 있던 그들이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함 받는 세례가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이 복음을 듣게 되니까. 지금 그들에게는 죄 사함의 세례가 일어나기 시작하니까 그들 안에 무엇입니까? 자유하기 시작하니까 이 유대 종교 유대인들은 율법이 곧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고 그것이 생명이고 그것 외에는 믿지 않는 그들에게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묵은 곡식을 버리고 새 곡식으로 오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그랬는데 그들 중에서도 유대인들의 어떤 무리들은 그 변화되어 가는 무리들을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그 사도들이 전하는 이 복음을 핍박하고 그들에게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46절에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 유대 종교를 따르는 그 율법에 젖어 있는 그들이 이제 이 말씀을 반박하고 핍박하고 이 새 언약의 말씀을 버리게 되니까 이것을 버리게 되니까 이 복음이 어디로 갑니까? 이방인에게로 갑니다. 이방인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 유대인과 이방인 안에 하나님의 열매를 거둬야 되는데 그들이 이것을 버리지 않으면 이방으로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들이 율법도 받아들이고 복음도 받아 들여 버리면 이 복음이 이방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왜 지금 이 복음을 핍박하고 왜 이 복음을 지금 대적하는가 하면 그들은 첫 사람 아담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아담의 생명들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혼의 생명이요 이 땅의 제사장 나라의 백성이요 그들은 영의 비밀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새 언약의 복음을 대적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들이 미워서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체가 다른 것입니다. 이 생명체가.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의 차이가 다른 것입니다. 이 영의 비밀을 알 수가 없으니까 그들 안에는 영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안에는 무엇입니까? 분노와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왜? 내가 우리가 하나님 믿는 이 하나님을 그들이 지금 대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나오는데 그들은 지금 무슨 죄를 범하고 있는가 하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멸망당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입니까? 이 복음의 빛을 이방의 빛으로 옮겨 버립니다. 이방인들에게. 그래서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택정을 해서 전하게 되니까 이방인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그 말씀 새 언약의 말씀을 들으니까 찬송하고 영생을 주기로 작정한 자들은 다 믿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영의 생명들은 다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우리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7~15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 하여졌느니라.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받는 것입니다. 구원 받는 것인데 그들은 율법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얻게 된다. 이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무엇입니까? 바알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으로 남겨둔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그자들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 우리도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는 율법은 잘 모르지만 이 땅에 교회 생활이 율법의 행위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서 이 새 언약의 천국 말씀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제 우리도 그 안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은 자들은 완악 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안에 율법 아래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 있는 그 제사장 나라의 백성들은 더 완악 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복음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율법을 대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대적해 버리는 것입니다. 대적하니까 그들은 완악 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게 되고 예수를 죽이게 되니까. 그 안의 심령은 강퍅해 집니다. 왜? 그들은 영의 생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생하는 생명이 아니고 육으로 지어진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사망 권세 왕 노릇 하는 자들 밑에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다. 오늘날까지. 지금도 저들에게 유대인들에게는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 지금 이야기하는 유대인은 이스라엘에 살았던 유대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 땅의 교회 율법 아래 있는 그들 전부 다 그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과 같은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의 백성. 유대인이라고 하면 지금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이 아니고 이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교 행위를 하고 있는 자들이 다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왜 그들에게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는가 하면 이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한 복음을 제자들에게는 허락했지만 저들에게는 허락을 안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합니다. 이 땅에 제단에서 예수를 믿고 해도 이 영의 생명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똑같이 유대인들이 하는 관습 율법 아래에 있는 제사를 똑같이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밥상이 무엇입니까? 저희 밥상. 그 율법 제사장 나라들이 밥상이라고 하는 것은 밥 먹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 말씀을 말하는데 그 말씀은 율법 아래 율법의 규례와 율례를 따르는데 그 율법은 복음의 그림자이지 완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말씀인데 그런데 그 율법은 무엇입니까? 정죄하는 그런 직분자들이 받기 때문에 결국 율법은 죄의 권능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무엇입니까? 자기들이 갖고 있는 교훈과 교리, 종교 이것이 자기들 자신의 올무와 덫에 걸려 버리고 하나님의 보응을 받게 되는, 심판을 받게 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이 땅의 제단에서 이 새 언약의 말씀을 모르고 지내 왔던 그 행위로는 우리 역시도 올무에 걸리게 되고 덫에 걸리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응 받게 되어 버립니다. 만약에 이 땅에 주는 그 신학으로 주는, 지식으로 주는 이 복음으로 만약에 구원을 받는다면 새 언약이 무엇이 필요합니까? 이 땅에 신학으로 공부해서 떡을 떼서 주는 복음으로 구원 받으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것으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에게 올무가 걸리고 덫에 걸리고 거치는 것이니까 보응이 되게 한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우리 자체가 무엇입니까?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을. 하나님의 보응을 받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우리가 그 안에 신앙생활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성령을 훼방하게 되는 죄가 그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핍박하게 되기 때문에. 저들이 갖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이 땅에 신학으로 주는 이 복음 이것이 진리라고 하는데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의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이 늦은 비를 통해서 주는 이 하나님 나라의 천국의 비밀들을 주는데 그것을 들으면 그것을 대적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대적하는가? 자기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대적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과 대화가 안 됩니다. 이야기 해 보아야 게임이 안 됩니다. 그냥 깨지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율법사로서 율법을. 예수님이 율법을 정해 주신 분인데 그분 앞에 가서 폼을 재니까 예수님은 계속 하늘의 소리를 합니다. 그러니까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계속 깨지는 것입니다. 계속. 그러니까 그들은 결국 무엇입니까? 저 예수를 놔두면 우리 예루살렘 헤롯 성전이 망한다. 문 닫는다. 백성들이 다 거기로 가면 우리 어떻게 사는가? 자기들의 모든 밥그릇이 다 깨져 나가니까 대적하고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인인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 역시도 지금 묵은 곡식 아래 있다 보면 그 묵은 곡식을 통해서 나는 심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국 이 늦은 비를 통해서 새 곡식으로 먹고 우리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 해지고 해방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보응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10절에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다. 저들이 이 복음을 받지 않음으로 이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이 복음이 이방 땅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일어나니까 율법을 갖고 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으려고 했던 그것을 율법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따르고 행위를 했는데 구원은 이방인 저들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힘들게 일하고 우리는 하나님 잘 믿고 우리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이 억울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습니다. 부활의 생명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이 땅의 지식을 가지고는 부활이 안 됩니다. 우리는 부활이 됐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우리가 부활의 생명으로 휴거가 되어야 되는데 그 부활의 생명 이 말씀이 내 안에 없는데 어떻게 부활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휴거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 믿고 나는 짐승의 표 받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는 그 추수가 끝난 이후는 다 짐승의 표를 받는 것입니다. 나는 후 삼년 반에 절대 주와 복음을 위해서 간다. 버팁니다. 나는 그래도 간다. 삼일만 굶겨 보십시오. 표는 제일 먼저 가서 받습니다. 그들이 그냥 표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을 다 통제해서 주니까 안 먹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버팁니까? 삼년 반을 금식하든지. 삼년 반을 지하에 들어가서 금식해서. 삼년 반 금식하면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나도 보장이 안 됩니다. 삼일 반이면 모르는데 삼년 반이면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내가 안 받고자 해서 안 받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추수의 시기가 정해졌는데 그 추수의 시기 정해진 시기가 지나가면 그 나머지는 쓰레기입니다. 다. 그 나머지 쓰레기 안에서도 잠깐 내가 깜박했다. 좀 다시 꺼내오라. 이렇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그 시간이 되면 추수가 착착 진행되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안 받으려고 발버둥치지 마시고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짐승의 표를 안 받는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이 천국 복음을 저들에게 내가 이 하늘의 비밀을 주었는데 이 덜렁이 같은 이 제자들한테 주었다. 그들도 못 알아듣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에 못 알아듣는데 그들은 은혜로 택함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알게 됩니다. 나중에. 성령을 받게 되고. 그런데 그때 같이 있었던 유대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행여나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듣고 구원 받을까봐 죄 사함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비유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 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11~12절에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그것이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내가 택하지 않은 백성 내가 택하지 않은 열매는 하나도 못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깊이 들어 가보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어떻게 개판으로 살다가 아버지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다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런 이야기하는 그것은 사단이 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성경의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알면 성경은 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아니기 위해서 늘 추수는 여름 타작마당 키로 흔들어서 다 골라냅니다. 그물을 쳐서 다 막아 버립니다. 들어오지 못하게 다 막습니다. 왜 성막을 그렇게 구조를 만들어 놓았는가 하면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택하지 않은 자는 들어올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의 말씀을 모른다면 어차피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붙잡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종이든 아들이든 이 말씀을 씨름해야 됩니다. 그래서 13절에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사도 바울은 이 안의 영성이 무엇입니까? 지금 144000 종들은 추수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저들이 어차피 구원을 받지 못하는 저들 안에서 그 골육 가운데 시기 나게 해서 얼마를 구원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 얼마가 무엇인가 하면 144000입니다. 144000. 이스라엘에 가서 유대인이 있는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 땅에 일곱 교회 안에서 그 일곱 산 안에서 하나님의 종 144000은 거둬주어야 된다. 예수님이 다른 양으로 추수해야 되기 때문에. 저들은 우리하고 신분이 다르지만 그래도 하늘나라의 종으로 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택정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해야 되는데 저들은 스스로 갈 수 없으니까 요셉과 우리 같은 사도가 복음의 아들이 없으면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그래서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복음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활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부활. 율법으로는 부활의 비밀이 없습니다. 부활의 말씀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해가 되십니까?
사도행전 13장 49~52절로 갑니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게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유대인들인 경건한 귀부인들과 성내 유력자들.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요 그들은 존경을 받는 부와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 이런 자들은 지금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의 심경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지금 나호바리를 지금 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지금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밭을 지금 훼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을거리를 지금 다 뺏어 갑니다. 왜? 그들이 붙잡아서 다 피를 빨아 먹는 그들을 지금 이 복음을 주어서 끄집어내니까 그들은 철저하게 올무를 씌워서 붙잡으려는데 이 둘을 핍박해서 쫓아내야 됩니다. 이 두 사람을 향해. 쫓아내니까 무엇입니까?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먼지를 털어 버립니다. 영접하지 않으니까 먼지를 털어 버립니다. 영접하지 않으면 먼지 털라고 했습니다.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이 복음을 들으니까 제자들이 무엇입니까?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치게 되니까 그리스도의 지체인 그 빛의 아들들은 그 안에 부활의 생명이 넘칩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이 부활의 생명이. 너도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에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 일서 3장 2~3절의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보십시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타나게 되면 우리가 그분과 같은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재림하실 때 어떻게 옵니까? 신령한 부활의 몸으로 오십니다. 그런데 그 재림하실 때 보면 우리도 그와 같이 연합을 이루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의 계신 것을 그대로 보게 되는데 주를 향해서 이 소망을 가진 자. 이 소망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소망입니다. 부활의 소망.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그들도 거룩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반드시 거룩한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으로 내 몸이 성육신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반은 성전이 되어 있고 반은 덜 되어 있고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80%는 되어 있고 20%는 아직 조금. 이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고 예수님이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에누리라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을 다 찾아보고 에누리가 있으면 그래도 제가 괜찮다고 하고 팁을 줄 텐데 내가 다 뒤져보아도 에누리가 없습니다. 에누리가. 면도칼로 벱니다. 이래서 봐 주고 이런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냉정합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만약에 이 거룩한 몸이 안 되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진짜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것 세상에 나가서 일했으면 돈이라도 벌지, 죽으라고 헌신해 왔는데 이 생명이 없어서 심판의 보응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억울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억울하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냉정하신 아버지입니다. 이 선과 악에 대해서는 냉정하신 분입니다. 그것을 보면 좀 소름이 끼칩니다. 그것을 자신들이 돌아보십시오. 다. 그런데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생명의 말씀이 나에게 들어와서 생명이 되고 기쁨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로입니다. 왜? 예수님이 다른 그 예수님의 지체들 아니고는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들린다는 것은 허락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문이 생깁니다. 조금 있으면 제가 증거 하는데 의문이 무엇인가 하면 이것을 다 같이 듣는 것 같은데 튕겨져 나갑니다. 그것을 제가 한국 땅에 와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잘 오다가 튕겨져 나갑니다. 또 샛길로 갑니다. 또 다른 복음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경에 다 있습니다. 처음에 나는 이 복음을 듣고 어떻게 그렇게 가는가? 그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고백이 끝까지 푯대를 향해서 가야 됩니다. 그 부활을 내가 나도 아직 이루었다 함이 아니요 그 끝까지 갔을 때 주님 오실 때 내가 들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위로해서 서로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가는 데서 서로가 동역자들이기 때문에 서로가 위로하고 말씀으로 서로 나누고 가는 것이지만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무수히 경험하면서 물론 하나님의 택정 받은 자는 끝까지 가서 그 열매를 온전히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이것은 성령이 하시는 것이겠지만 가다가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왜? 그 안에 말씀이 내 안에 생명이 되지 않고 말씀이 머릿속에 머뭇거리는 자가 있습니다. 그자들은 반드시 뛰쳐나갑니다. 그것을 제가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경험하면서. 그렇게도 되는 것이구나. 처음에 몰랐으니까. 다 그냥 후사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습니다. 그것이.
그래서 사도행전 14장을 갑니다. 이제. 사도행전 14장에 1절부터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이 또 가서 이고니온에 가서 이 두 사도가 전하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니까 또 그 안에서 그 예수를 믿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또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고. 이것이 항상 있습니다.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해서 이 부활을 믿지 않는 그들을 성령을 훼방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을 안 믿습니다. 이 부활을 안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식으로 말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이것이 심령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굉장히 민감한 것인데 이것을 제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에 머무는 자와 심령 안에 들어오는 자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굉장히 왜냐하면 사단의 회들도 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 세상 사람은 관심이 없습니다. 여기에. 사단의 회들은 이 무리 안에 들어와서 흩트리는 것입니다. 사단의 회들은 이 무리로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것에. 말씀 전하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나는 가서 돈 벌어야지. 살기 바쁘지. 그런데 사단의 회들은 이 하나님의 양 이들을 핍박하고 이들 안에 분란을 일으키고 이간시키고 분쟁시키고 하는 것들이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무리 속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내가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말을 하니까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 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데 그 천국 복음을 전파하니까 그 땅에 무엇이 일어납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세례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주께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왜? 이 말씀을 듣기 전에는 그냥 그 안에 살았는데 그런데 그 성내의 무리가 이 말씀을 전하니까 나누어지기 시작합니다. 왜? 성령의 불과 검이 떨어지니까 그 안에 밭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싸우고. 예수님이 이야기 하셨습니다. 며느리하고 싸우고. 이런. 며느리가 싸운다는 것이 아니고 그 안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태복음10장34~35절)그 안에 밭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성내의 무리가 나뉘면서 유대인을 좇는 자들도 있고 이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알곡과 쭉정이가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그 밭에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떨어지니까 그 안에서 사도를, 말씀을 따르는 자가 나오고 이것을 대적하는 자하고 알곡과 쭉정이가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이 떨어지니까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모릅니다. 같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 땅에 이 제단 안에 있을 때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떨어지면 알게 됩니다. 분별하게 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이제 그 관원들 그들 지도자들이 이들을 능욕하고 돌로 칩니다. 왜? 그들이 있음으로써 자기들 일에 방해가 되고 자기들이 지금 벌여놓은 일들이 다 지금 훼파가 되니까 이제 거꾸로 방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두 사도가 도망해서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계속 이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니까 그 안에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세례들이 나타나니까 열매들이 이 복음을 따르는 자가 있고 이 복음을 핍박하는 자가 있고 나누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조용히 있었는데. 그런데 8절에 보니까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는데 앉은뱅이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는 것을 보고 걸어 본 적이 없는 자인데 바울이 말하는 것을 이렇게 듣습니다. 바울이 가만히 보니까 그자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자는 나면서부터 평생 앉은뱅이로 살았던 자인데 이 바울이 전하는 것을 이렇게 가만히 듣더니 바울이 그를 가만히 보니까 듣는데 그가 그 심령 안에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을 본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밭 안에서 좋은 씨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 전도는 이것입니다. 그 씨를 발견하게 되면 거기다 말씀을 양육시키는 것입니다. 부어서. 그래서 이제 그러니까 그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데 큰 소리로 가로되 그에게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일어나 걷는지라.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그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치유 받는 것이 나타난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바로 구원을 받을 만한 생명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 버리는 것입니다. 바울과 이들이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믿음의 세상 밭에서 이 말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세상 사람인가 하고 있었는데 이 말씀을 들으니까 그 안에 생명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생기니까 성령의 역사로 바울이 일어나라고 하니까 벌떡 일어나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치유되는 것을 보여주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안에 믿음의 증거가 생겨 버립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 많이 했습니다. 저도 30년 오면서 진짜 그야말로 간증을 쓰라면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간증이니까. 쓰라면 책으로 전집을 쓰고도 남을 것입니다. 왜? 그것에 내게 성령의 역사의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확증되었습니다. 다 여기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 없이 온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 증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그 무리가 그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그 무리 중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바울하고 바나바를 보면서 그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 안에 무리들이 그 땅의 무리들이 이것이 이제 그 제사장 신당에서 제사하는 제사장 이것이 이제 점성술가나 그런 자들이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왔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말하는 말이 자기들의 언어들을 수 없는 천국의 언어인데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신. 이들에게도 그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보였습니다. 이들도 보니까 저들이 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신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세상의 세상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니까 그 말씀을 모르게 되니까 자기기들의 어떤 형태로 이들을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 해서 세워서 그들을 세워서 이제 높여서 세우는 것입니다. 세우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들이 세워서 역사하면 무엇이 들어옵니까? 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돈이. 그들이 들어오면 이것이 자기들 사업이 번창해집니다. 그러니까 맘몬 신에 잡혀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보면 그들 안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맘몬 신 이 물질에 잡혀 있으니까 그 놀라운 역사 앉은뱅이가 일어났다. 그러면 이것은 엄청만 사람이다. 이들만 잘 pick-up 해서 이들을 잘 우리 사무실에 넣어 놓고 잘 쓰면 이것은 대박이다. 대박. 이것이 계산이 나옵니다. 웃지 마세요. 이 땅에도 다 그렇게 합니다. 다. 계산 다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치유 시켜 놓고도 물 한 모금 안 주게 합니다. 내가 이 심정을 압니다. 바울이 이야기 한 심정을 내가 알겠습니다. 왜? 그러니까 바울이 이들은 그런 계산으로 했는데 바울은 옷을 찢으면서 무리 가운데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고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너희 이 맘몬 신 섬기는 것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내가 구원의 말씀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것이 아니고 그 안에 계산이 나옵니다. 얼마나 엄청납니까? 이렇게 하면 병이 나아서 그러면 이것은 guaranty입니다. 그 사업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생각이. 바울은 무엇입니까? 이 복음 이 하나님의 영광은 너희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못 알아듣습니다. 알아들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16절, 17절.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지나간 세대. 그 때 당시에 있을 때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했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들에게는 모든 족속들에서 열방에 있는 자들에게 자기들의 가는 길을 다니게 하는 것을 놔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맘몬 신을 섬기든 우상을 섬기든 무엇을 하든 제사장 나라의 백성들도 거기다 세워 놓고 맘몬 신 섬기고 그렇게 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내버려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증거 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그렇다고 한들 하나님이 자기를 증거 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을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이 지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시죠? 지금 이 복음이 옴으로써 이른 비와 늦은 비 복음이 옴으로써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이 거둘 결실을 다 선한 일로 거두기 위해서 각자 길을 가게 하는데 택정한 자는 이 말씀으로 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오순절 이전 시대 율법 이전 시대 율법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절기를 통해서 추수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는 이 율법과 복음이 없어도 죄가 있었습니다. 죄가 있어도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율법 이전 시대. 그런데도 하나님은 당신이 거둘 열매들은 다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은 다 했다는 것입니다. 이 지금 복음이 나옴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이 땅에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세례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성령의 선물을 통해 성령의 세례가 임함으로써 이 칠절기와 이 하나님이 추수하는 절기의 열매. 이 열매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바울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그런데 지금 이 땅에 그 당시에 있는 자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왜? 너희가 아무리 맘몬 신 섬기고 우상 섬기고 제사장 나라 유대인들이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 아래에서 또 우상 섬기고 또 부를 챙기고 이런 것을 다 했습니다. 다 해도 하나님이 그 안에 아들과 종과 시민을 다 거뒀다는 것입니다. 전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너희가 어떻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늘에서 비를 내렸다는 것은 이 말씀을 통해서 다 결실했다는 것입니다. 율법 이전 시대에도 하나님이 거둘 자를 다 거둬서 노아를 통해 거두고 또 율법 시대에도 또 다 거두고 복음의 시대에 와서는 이제 또 마지막 때가 되면 또 다 거둘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 놀라운 비밀이 이 사도 바울이 이것을 증거 할 때는 그 안에 여호와의 절기와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함 받는 세례와 이 성령의 세례가 결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것을 전하니까 예수를 믿고 나오는 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열매들이. 말씀을 따르는 자가 있고 말씀을 대적하는 자가 있고 다 나오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전하는 것이 지금 이른 비로 이 복음의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던지니까 이 땅에서 열매가 지금 자기들의 정체성을 따라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늦은 비가 내리니까 우리가 어떻습니까? 결실의 때니까 이제 열매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제는 추수 때니까. 이른 비가 아니고 늦은 비. 추수 때니까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우리 밭이 이 심령 밭이 세상 밭입니다. 여기에 지금 복음이 떨어져서 말씀 떨어지면 좋은 밭이 되고 옥토가 되는데 이 밭에 그 씨가 떨어질 때 이 밭이 어떤 밭이냐에 따라 이 씨를 대적할 수 있고 말씀을 대적할 수도 있고 여러 종류의 고운 가루도 나오고 알곡도 나오고 곡식도 나오고 쭉정이도 나오고 가라지도 다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절기를 통해서. 그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제일 궁금했던 것이 우리 지금 마지막 추수 때인데 누가 죄를 사함 받고 누가 종이 되고 누가 지금 성령의 선물을 받아서 성령의 세례로 아들이 되고 그런 부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맺어져 갈 수 있나? 나 자신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왜냐하면 우리 안의 사람의 속사정은 우리가 모릅니다. 성령만이 압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끼리 보아서 겉으로 보아서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행위로 믿음을 열심히 하고 이러면 믿음의 자로 우리가 볼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 있는 심령까지 우리가 꿰뚫어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예수 이름의 죄를 사함 받고 종으로 가는 자인지 이자가 그것을 대적해서 쭉정이로 가는 자인지 거기에 성령의 선물을 받아서 아들의 영이 임해서 아들로 가는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이름의 죄 사함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는 이 칠절기에 하나님이 거두는 이 열매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가 성령의 오순절 날 성령의 세례가 임했습니다. 그 성령의 세례는 우리가 지금까지 봤을 때 성령의 세례라는 의미가 그 처음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했던 그 성령의 역사는 무엇인가 하면 그 성령이라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는 보혜사 성령이 인을 쳤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인을 쳤다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세례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세례. 최초로. 왜냐하면 예수님이 삼년 반 공생애 기간일 때 세례 요한을 통해서 물로 세례를 줄 때 예수님이 자신은 세례를 주지 않았지만 제자들을 불러놓고 세례 하는 것을 예행연습 시켰습니다. 그런데 예행연습 할 때 무엇입니까? 그들은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고 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를 주는데 그러니까 거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저들은 우리 같이 안 하고 예수의 이름 우리 하고 다른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제자들은 예수 이름의 세례를 줍니다. 그런데 그 예수 이름의 세례를 주는데 능력이 없습니다. 무엇이 없는가 하면 성령의 기름이 안 담아져 있으니까. 예수님이 예행연습을 시켰습니다. 훈련을. 나옵니다. 요한복음에.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고도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기 시작하니까 내 안에 내가 말하고 있던 이 방언이 다른 방언 성령이 말하기에 따라 내가 묵은 곡식 아래 있었던 그 증거 하는 것이 아니고 새 곡식으로 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지요? 그래서 그때는 그 성령의 인침을 받는 그 오순절 날 세례는 우리가 예수의 이름 곧 보혜사 성령으로 죄를 사하는 세례를 임함으로써 우리의 육적인 몸이 벗겨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벗겨진다는 것은 다른 방언으로 증거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갖고 있었던 이 땅의 지식이 아니고 성령의 기름을 받아서 전하기 시작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우리 몸이 벗겨지는 그리스도의 할례가 내 안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무엇입니까? 유월절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내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그 유월절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육이 죽고 영이 살아야 되는데 육이 죽는 그 절기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과할 수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하면 아브라함의 4대손들밖에는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양과 다른 양들. 그들은 남자의 부활 생명과 여자의 부활 생명으로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때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 성의 24 보좌를 완성해야 되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이 있는 만왕의 왕이 있는 왕궁으로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그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도 유월절을 통과해야 됩니다. 유월절. 종들도 무엇입니까?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어야 됩니다. 자기가 먹고 있던 묵은 곡식을 버리고 새 곡식으로 갈아입는 이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씻어주어야 됩니다. 종들도 정결해져야 됩니다. 예수의 피로 정결해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 통과 유월절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성령의 기름 복음 예수님이 전한 천국의 말씀이 기름 부어져야 됩니다. 부어지기 시작하면 내 안에 있던 갖고 있던 종교 지식과 내가 갖고 있던 교리들이 이제 버려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육적인 몸을 벗기는 것입니다. 시작되었는데 그래서 이 종교 교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성령의 기름이 담아지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벗겨져 나가면 예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월절에 여호와의 유월절에 대한 이야기가 4~6절에 나오고 또 무교절에 대한 이야기가 무교절에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2장 1~15절에 보면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비밀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때 보면 우리가 이것만 하나 풀어도 내가 한 시간을 풀어야 되는데 우리가 지금은 fact를 이야기해서 기억을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 어린 양을 취해서 그 양을 먹게 되는데 어린 양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이 예수님을 잡아먹습니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말씀. 4절에 보면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 하나를 취하여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다. 지금 이 어린 양 이 말씀인데 이것이 나중에 주님의 때에 말씀을 먹어야 되는데 이 말씀을 너희가 지금 식구가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그 하나 취해서 나누어 먹으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웃집 사람까지 지금 와서 같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같이. 유월절에 대한 비밀입니다. 그런데 그 양을 먹고는 집 좌우 문설주하고 인방을 바르고. 그것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표가 인 쳐지는 것입니다. 구원의 표가. 왜냐하면 나중에 죽음의 사자들이 왔을 때 그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으면 그 죽음의 사자들이 넘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passover. 그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제 그것을 먹기 시작하면 그 날 밤에 유월절 날에 이제 어린 양을 잡아서 먹기 시작하면 그 불에 구운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 물에 삶아 먹지 말고 머리와 정강이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 이 무교병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님의 살과 뼈 떡입니다. 생명의 떡. 누룩이 섞여 있지 않은 떡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 언약의 말씀입니다. 천국의 말씀. 이것을 이제 먹게 됩니다. 먹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 다음 날까지 남겨 두지 말고 아침에 다 소화를 해야 되는데 이렇게 먹을 때 이렇게 먹는 것이 무엇입니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그 무교병하고 이것을 먹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구원의 복음이 임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 전신갑주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전신갑주가. 할렐루야. 이제 대화가 좀 되니까 속이 편합니다. 대화가 안 되면 설명하려면 저기 가서 또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이해가 되시죠? 영으로 읽으시고 이것을 지금 깊은 영역인데 이것을 내가 계시의 영을 받아서 영으로 읽어야 됩니다. 이것만 설명하려면 또 한 시간 걸립니다. 내가 이야기를 하려면. 그래서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나가는데 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우리도 유월절을 맞아 죽었는데 그 안에 무교절에 우리는 무엇을 먹습니까? 말씀을 먹습니다. 말씀. 기름을 채우는 것입니다. 채우면 내 안에 전신갑주가 입혀지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됩니까? 그 온전한 빛의 갑옷을 입게 되는 자는 초실절의 첫 이삭의 한 단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빛의 갑옷을 입으면 그가 고운 가루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을 죽었는데 이 말씀을 먹는데 고운 가루가 안 되면 생 이삭이 되는 것입니다. 초실절의 생 이삭이 됩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부활 생명과 남자의 부활 생명들을 다 거둬가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첫 이삭의 한 단은 초실절의 한 단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서 가버립니다. 그런데 생 이삭은 남겨두어야 됩니다. 이해가 되시죠? 진짜 이것을 전하려면 우리 후사님들이 지금 이제 기름이 부어져서 다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면 이 15절에 보면 무교병 무교절에 어떻게 되는가 하면 7일 동안 무교병을 먹게 되는데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그 갖고 있는 누룩을 집에서 제해야 되는 것이 묵은 곡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리고 무릇 첫날부터 7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집니다. 유교병을 먹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집니다. 끊어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심판 받아 버립니다. 그 유교병은 무엇입니까? 유대 종교 교리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주는 교훈들. 이것을 유교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주는 것은 누룩이 안 섞였습니다. 그런데 유교병은 누룩이 섞여 있습니다. 이 누룩을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에서 끊어져버립니다. 심판 받는 것입니다. 심판.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어야 됩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말씀이 먹어져서 내 안에 이 말씀이 생명이 되어서 기름이 채워져서 내 말씀이 차고 넘쳐야 됩니다. 차고 넘치기 시작하면 내가 전신갑주를 입고 빛의 생명이 되니까 내 자체가 안에 부활의 생명의 형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입에서 무엇이 나갑니까? 빛이 나갑니다. 진리가 나간다는 것입니다. 진리. 그자가 초실절에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을 이루어 부활되는 자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을 때 그분은 영으로 오셨는데 하늘 보좌로 갈 때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이 되었습니다. 부활이 되었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과 그의 몸인 지체들이 연합이 되어 버렸다. 연합이 되어서 하늘 보좌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지금도 중보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재림 때 그 예수님의 그 지체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 그들이 온전히 다 열매가 되어서 혼인 잔치 때 나와 합방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무엇이 됩니까? 만왕의 왕 심판 주의 권세가 세워져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림에 오셔서 들어가실 때는 몸이 상함을 받았기 때문에. 온전함이 아니고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고 옆구리에는 창 자국이 있는 그 모습. 그 모습은 아직 예수님의 몸이 완전하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들어가서 재림 하실 때는 이 예수님의 지체 몸과 연합이 되어야 그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권세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야 이 땅에서 만왕의 왕으로 통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뜻입니다. 비밀이고.
그래서 이 초실절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초실절이 되면 복음의 씨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은 무엇이 됩니까? 영의 생명은 어떻게 됩니까? 부활할 수 있는 몸으로 성육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초실절에 부활할 수 있는 그 몸이 성육신이 되는데 이 생이삭은 성육신이 안 됩니다. 영의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혼의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의 피로 씻어져 정결하게는 입혀지지만 예수님의 몸과 연합을 이룰 수 있는 영의 생명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초실절에 그 고운 가루가 되어서 그 기름을 섞어서 소제가 되어서 여호와께 드리고 그 포도주를 그에게 전제로 그 포도주 한 힌을 쓸 것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성찬식을 통해서 떡과 포도주를 준 그 예수님의 지체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들은 첫 이삭의 한 단으로써 하나님 앞에 생명의 떡 떡덩이로 소제로 드려지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몸과 같이 거룩한 떡덩이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한 몸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첫 이삭의 한 단으로 이미 초실절에 들림을 받아 들어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갈 때 그의 지체들의 이름이 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는 무엇입니까? 온전한 열매가 되어서 그분이 재림할 때 그분과 한 몸이 되는 장성한 자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데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해가 되면 아주 그냥 기름 부음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씨는 고운 가루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껍데기가 안 벗겨집니다. 생 이삭이 됩니다. 왜냐하면 고운 가루는 바스라지고 가루가 되어야 떡이 되는데 가루가 되어야지 거기에 기름을 부어서 떡을 만드는데 생 이삭은 이것이 벗겨지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열매는 있습니다. 곡식은 있는데 껍데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곡간에 넣어서 썩혀서 껍데기가 나중에 다 썩어서 벗겨져야 됩니다. 그런데 쭉정이들은 껍질은 곡식 같은데 그 안에 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다 어디 갔습니까? 사단에게 다 뺏겨 버렸습니다. 다 믿음을 팔아먹었습니다. 이것은 가라지가 아닙니다. 쭉정이입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추수 때 여름 타작마당에 휙 하니까 껍데기는 휙 날아가 버립니다. 알곡은 안으로 들어오는데. 가라지 하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서도 고운 가루가 초실절에 고운 가루로 맺어져 나오는 자는 반드시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고, 또 생 이삭은 그들은 반드시 곡간으로 들어가야 되고, 그래서 오순절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오순절이 되면 이 떡덩이 첫 이삭의 한 단 이들은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임해서 화목 제물이 되어 버립니다. 화목제가 되는 것입니다. 화목제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들의 영이 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나팔절 때 예수님이 재림할 때 화목제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화목 직책의 사명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임해야 방주가 예비 됩니다. 고센 땅이 예비 됩니다. 마지막 때 환난의 피난처가 예비 됩니다.
그런데 이 종들은 속죄제가 되어 버립니다. 계속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껍질을 벗기니까. 이 곡식 껍질을 벗겨야 묵은 곡식을 이 굵은 베옷을 갈아입고 베옷으로 갈아입어야 됩니다. 껍질을 벗겨야. 그것이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예수님의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빛의 갑옷으로 갈아입는다. 다 연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종들도 무엇입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세례는 통과해야 됩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성령의 약속을 받은 아들들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가는 것입니다. 아들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율법 아래에 있는 종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후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 종들은 속죄제 때 이 속죄제로 드려지는 종들은 예수님이 지상 재림 할 때 시온 산에 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으로 연합을 이루는 144000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알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은혜로 택하심으로 남은 7천인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공중 재림 때 휴거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화목제의 성물로 드려지기 때문에 반드시 화목 직책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반드시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이루고자 해서 이루고 싫어서 안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뜻에 따라 그 열매는 이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할렐루야. 우리는 마지막 때 화목제로 드려지는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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