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딩리의 가을
김 주 안
낯선 바람의 풍경을 이번에는 어떻게 마주하게 될까. 이 년에 한 번씩 여섯 번의 여름나기를 하던 캐나다를 더위를 훨씬 지내놓고 길을 나섰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전쟁을 지독히 치르고 있는지라 여행용 가방을 꾸릴 수 있으리라곤 아예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뜻밖에 캐나다 국경이 열린다고 하자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열여섯 시간의 비행이나 공항에서 네 시간 기다림도 대수로 여겼다. 어느 때보다 까다로운 출국절차를 마치고 국경이 열리는 첫날 9월 7일에 맞춰 비행기를 탔다. 다행이도 바로 다음날 아들이 매니토바주 위니펙에서 목사안수를 받는 날이었다.
갑자기 불어난 승객들로 인해 그동안 직원 감축을 했던 토론토 공항은 열세 시간의 비행 끝에 내리고 보니 일대 혼란이었다. 네 시간을 기다렸다가 위니펙까지 세 시간을 더 가야하는데 혼란의 여파로 지연된다는 안내가 전광판에 보인다. 기내 탑승 후에도 짐을 싣기 위한 것이라며 다시 두 시간을 비행기는 꼼짝도 않는다. 9월 7일 오후 10시 도착 예정이었는데 이튿날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마중 나온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평생에 한 번 있는 목사 안수식은 꼭 참석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길을 나섰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멀고도 먼 여정이었다.
그렇게 낯선 설렘으로 찾아간 헤딩리는 기대 이상의 선물같은 마을이었다. 헤딩리는 아들이 몇 달 전 웨스트우드 장로교회로 사역지를 정하면서 짐을 푼 곳인데 위니펙 서쪽에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캐나다를 횡단하는 1번 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면서 집채만 한 트럭들이 줄지어 다니는 광경이 이채로웠다. 긴 도로를 달리다가 쉬어갈 수 있게 얼마 전에 지어졌다는 자그마한 호텔이 문지기마냥 동네 입구에 서 있다. 도로 너머에는 해바라기 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꽃들이 거반 져서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여름동안은 노란색 일색으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마을 뒤를 굽이치며 흐르고 있는 어시니보인강은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반짝거렸다. 이십여 일을 이곳에 머물면서 이 강변을 매일같이 걸었다. 너른 축구장을 지나 잔디밭 사이로 난 황톳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시니보인강은 해맑은 얼굴로 늘 맞아주었다.
헤딩리는 4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캐나다 매니토바주에 있는 시골마을이다. 매니토바주 주도인 위니펙에 소속되어 있다가 1993년 주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대도시로부터 분리되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를 좋아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자기들만의 시골마을로 남기를 택했다.
동네 바로 옆에는 축구장이 있어 주말이면 가을 햇볕 속에 축구 시합을 하는 사람들로 잠시 왁자지껄한다. 아이들이 자주 나와서 시합을 하는데 그러면 부모들이 자동차에서 의자를 하나씩 내리고는 축구장을 빙 둘러 앉는다. 그늘 한 점 없는 따가운 뙤약볕인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한다. 그 광경을 보노라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공통분모를 가졌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리도 부모이기에 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 낯선 풍경 속에 서성이고 있지 않은가. 굳이 이국 사람들 속에서 살기를 택한 아들은 어려운 길, 낯선 바람 속에서 온 힘을 쏟고 있다. 쉽고 익숙한 길을 갈 수도 있을 텐데,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된 입장은 늘상 마음이 먹먹하다.
골프장과 축구장 사이 잔디밭에는 가끔 커다란 연을 날리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와서 한번 구경해 보라며 손짓을 한다. 커다란 문어모양을 한 연이 공중에서 너풀너풀 춤을 춘다. 그 외도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기묘한 모양을 한 연이 두 개가 더 공중에서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지면 가까이 고양이 모양을 한 연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다란 줄에 매달려 있다. 엄지손가락을 척하니 보였더니 매우 흡족한 웃음을 짓는다.
주중에는 인적이 없자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백 마리나 될 듯한 갈매기들이 하얗게 잔디밭을 뒤덮고 있다.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하면 순식간에 날아올라 하늘이 온통 흰빛으로 뒤덮이고 만다. 마을 입구에 있는 빨간색 호텔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잡힌 하얀 갈매기 떼들은 그림 한 폭을 옮겨놓은 듯하다.
헤딩리의 가을은 초록에 지쳤는지 곳곳을 노란색으로 물들이며 내려앉고 있었다. 강변의 나무들은 제 몸에 노란 물감을 흩뿌리며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갔다. 나날이 수가 늘어나는 수많은 구스 떼들이 반짝이는 수면 위에서 바람의 소리들과 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가을풍경을 열심히 그려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노을이 질 때까지 강변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하나의 풍경이 되고 만다.
산책길에 강 인접해 살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났다. 점점 더 구스들이 늘어나서 그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이방인을 위한 친절인지 한 단어씩 말을 하며 손가락을 귀에 대고 시끄럽다는 시늉을 한다. 그래도 구스들이 내는 소리들이 그리 싫지 않은지 줄곧 유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돌아오려 하자 ‘뷰리플 데이’라면서 두어 번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었다. 하늘은 높고 들판은 평온했으며 나뭇잎들은 바람결에 온몸을 맡기며 노란 가을 속에서 한없이 팔랑거렸다.
하루는 헤딩리에 걷기 좋은 트레일 코스가 있다며 다녀오자고 한다. 집에서 나와 아시니보인강을 건너 헤딩리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트레일 코스는 원래 그랜드 트렁크 퍼시픽 철도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1894년부터 1972년까지 운행되다가 중단 된 곳에 주민들을 위한 트레일 코스를 조성한 것이다. 강을 건널 때 사용되던 철교는 아직 남아 있고 철로를 걷어낸 자리에는 10킬로미터 상당의 트레일 코스를 두었다. 건강과 즐거움을 책임질 것이며 아울러 소중하게 사용해 달라는 문구를 담은 팻말이 보인다.
아직은 따갑게 남아 있는 가을햇살을 받으며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남편 이렇게 한가족이 또 다른 낯선 벌판을 마주하며 트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등줄기는 땀이 흐르고 숨은 턱에 차오르는며 떼를 지어 달려드는 야생모기들이 주는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돌부리에 채여서 뒤뚱거리다가 움푹 패인 구덩이에 발목이 빠져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기도 한다. 가도가도 그리 녹녹치 않은 길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는 광활한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그 고통들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고도 넘쳐났다. 고요 속에 가득한 이 평화로운 바람을 뭐라고 이름지어야 할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마음의 묵은 찌꺼기들이 일순간 사라지면서 내장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빨간 신호등과 푸른 신호등이 같은 길 위에 놓여야 하는 까닭을 이곳에서 또 한 번 깨닫는다.
작년에 결혼한 아들은 새 식구를 맞아들였다. 한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아직은 서툴고 뒤뚱거리며 때로는 휘청거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있는 모양 그대로 낯선 땅에서 낯선 바람을 맞으며 숨은 차지만 걷고 또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이 트레일 위에서처럼 등줄기에 땀을 적셔가며 고통을 이겨가며 이곳 헤딩리의 가을로부터 새로운 풍경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다.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남쪽 헤딩리는 동화나라같다. 빨갛고 노란 혹은 초록색 지붕들이 커다란 나무 사이사이에 언듯언듯 박혀있고 자그마한 창문을 둔 하얀 도서관이 예쁜 간판을 내보이며 그림같이 서 있다. 아무 특별한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대도시를 막 벗어난 시골 마을. 그러나 언젠가 한번쯤 보았으면 좋겠다 싶었던, 편안하고 여유로운 고요와 평화로움이 가득 넘쳐나던, 내 마음에 유난했던 마을이다. 길옆 자그마한 편의점에서는 주민들이 식료품을 사러 멀리 나가야하는 불편을 덜어주며 특히 커피를 직접 볶는 집으로도 이름이 나있다. 아들은 즐기는 커피라면서 갓 볶은 에스프레소 한 봉지를 사들고 나온다. 자동차 문을 열자 창밖에 있던 헤딩리의 가을이 진한 커피 향과 함께 와락 코끝으로 밀려든다.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한 페이지 더 보태진다.
벌판을 수런대며 건너오던 바람의 소리도 가을을 불러들이던 노란색 풍경도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헤딩리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그 모든 것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특히 새 식구와의 생활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서툴지만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다 보면 시간은 또한 그 모든 것들의 경계를 허물 것이리라.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가지며 마음을 기억해 주는 데까지 간다면 더한 욕심은 내지 않기로 한다.
헤딩리의 가을을 만들었던 반짝이는 강물과 구스 떼들의 아우성치던 소리의 기억들, 존재를 과시하던 여릿한 들국화 한 송이까지 지내놓고 보면 어느 것 하나 생생하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서툰 언어를 학습해 가며 이국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아들의 팽팽한 몸짓이 풍경 저 끝에서 떠오를 때마다 부모는 명치끝이 아려온다. 어쩌면 평생 안아야할 가슴 저림이겠지만 가야할 길이라고 여기고 행복해 하며 열심을 다하는 아들을 보며 마음을 다독이기로 한다.
헤딩리의 가을은 그렇게 낯설고 생경한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 갈 힘을 생기게 했다. 결코 녹녹치 않은 길이지만 걷고 또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다. 내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낯선 바람의 풍경을, 아들의 새로운 인생이 숨차게 시작된 헤딩리의 가을을 오래도록 그렇게 기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첫댓글 김주안 작품방에는 안 들어가요 올려보니 이곳이 되었습니다.
작품 좋습니다
아드님이 목사 안수한 날 얼마나 기쁘셨겠어요
난 한국에 있어서 못참석해 아쉽고 미안했어요
진실씨 유티브에서 설교하는 모습보니 기쁘고 너무 잘하여 한국인이 캐나디언들 앞에 서서
목회자의 역활을 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웠어요 축하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헤딩리마을 가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