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쇠퇴하는 제국
카라칼라 황제에서 마지막에 잠시 나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이르기
까지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73년 동안 황제는23명이나 배출 되며
평균잡아 3년에 1명꼴로 바뀌었으며 제 명에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점점 기울어 갑니다. 한 번에 무너지지 않고 물이 스며들 듯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무너진 한쪽을 쓸어 올리면 다른 쪽이 무너지는
형국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없어지고 부자가 죽고 망나니 아이들로
인해서 재산을 탕진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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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권 서기 211년부터 284년 73년간은. 위기의 3세기로 불리게 됩니다.
3세기의 위기는 , 극복할 수 있었던 위기와 시종일관 대처에 쫓길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차이라 해도 좋아요. 로마인 본래의 사고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시대와 눈앞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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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까지 바꾼 결과 더욱 심각한 위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차이
일 것입니다. 후세의 역사가나 연구자들은 대부분 3세기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을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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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지도자층의 질적 수준 저하
-야만족의 침입 격화
-경제력 쇠퇴
-지식인 계급의 지적 능력 감퇴
-기도교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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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모두 제대로 짚은 지적입니다. 하지만 어느 것도 1천 년에 이르는
로마인의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대두를 제외
하면 나머지는 모두 어느 정도 경험한 위기였습니다.‘정국 불안정’ 로마
황제가 자주 바뀌면서 정책이 지속성을 잃어버린 것은 제국 통치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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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명확한 것은 연대표가 아닐까? 1세기, 2세기 에는 암살은 3건
(칼라굴라/도미티아누스/콤모두스), 1건(클라우디우스)은 심증은 있으나
확실한 물증을 현대에서 찾을 수 없어요. 네로는 자살을 했습니다.
그런데 3세기에 접어들면서 병사는 2건이고 암살과 전사로 일관 됩니다.
누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적어 놓는 거 자체가 일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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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크게 2건의 빅 이슈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 카라칼라의 속 주민에게 특별한 조건이 없이 로마 시민권을 전부 주어
버린 것입니다. 카라칼라 때문에 로마 시민권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매력을
잃었습니다. 매력을 느끼지 않으면 시민권에 딸린 의무감과 책임감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제국 로마가 서 있는 기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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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을 초래했어요.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 현상을 현대식으로 바꾸면 ‘브랜드는 죽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카라칼라 황제의 칙령에 따라 광대한 로마 제국에 사는 자유민은 유대
계든 그리스 계든 북방 야만족의 피를 이어받았든 관계없이 모두 로마 시민권
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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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속 주민에게는 오랜 군 생활을 하면 시민권을 주었는데 이런 것이
큰 의미가 없어 진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잔잔한 문제가 점차 커집니다.
속주세가 없어지면서 재정에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재정의 문제를 더욱 악화
시킨 것은 국경이 무너지면서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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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들의 침략입니다. 파리트아 왕국의 멸망과 함께 사산조 페르시아가
나타나면서 동방의 국경도 위태로워집니다. 2. 알렉산데르 황제의 항소권을
총독으로 이양한 것입니다. 항소권은 황제와 원로원의 권한 이였어요. 항소권을
넘겨줘야 하는 이유는 카라칼라의 로마 시민권의 남발로 인한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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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데르 황제의 통치는 공정하고 온건했습니다. 그것은 울피아누스의 지도
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데르 황제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법률 중, 지금까지 줄곧 황제와 원로원
이 갖고 있었던 사법상의 최종 결정권을 속주 총독에게 이양하는 법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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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률 때문에 기독교도를 탄압하기가 쉬워졌고 법 제정된 지 20년 뒤부터
기독교도 탄압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충신 울리피아누스는 자신의 부하인
근위대 병사들에게 살해됩니다. 모후의 묵인에 힘을 얻은 반대파가 그들을
선동 했을까. 울피아누스라는 든든한 신하를 잃으면서 알렉산데르 황제는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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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제국이 평온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지만,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필리푸스 황제가 보낸 2년은 평온하게 지나갔습니다. 첫째 요인은 국경이
평온했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페르시아는 당연히 움직이지 않았고, 북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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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도 얌전히 있어주었어요. 둘째 아랍인 황제가 원로원에 대해 철저히
겸손하게 굴었습니다. 셋째 정책면에서는 실질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필리푸스 황제는 아무것도 안했어요. 어쩌면 회사에서
눈치만 보고 일을 하지 않는 높은 사람들일 수 있어요. 회사가 평화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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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어려워지면 뚝은 이런 곳에서 터지게 돼있어요.
국경 주변에는 로마를 침략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가 되고 있었는데, 국경 시찰
도 하지 않은 황제로 인해서 로마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로마를
위해서 아직은 영웅이 남아 있었습니다.
3. 363 제국 재통합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에 사로잡힌 260년 이후 갈리에누스 황제가
8년, 그 뒤를 이은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황제가 다시 2년, 두 황제가 합해서
10년을 노력했는데도 이루지 못한 일을 아우렐리아누스는 4년 만에 해냈어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4년에 걸쳐 제국을 재통합한 것은 단순한 영토 회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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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제국 기능의 회복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제국은 통합이 됩니다. 많은
황제가 암살을 당하는 상황에서 제국의 통합을 할 황제가 나타나서 아직까지
로마가 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전까지의 황제들은 침략을 막기에 급급
했으나 아우렐리아누스는 영토 회복을 위해서 공격을 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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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를 공략을 위해서 준비를 하는데 웬걸 잘 나간다 싶으면 암살이 발생
합니다. 아우렐리아누스가 무슨 일로 비서인 에로스를 꾸짖은 모양입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자신에게도 엄격하지만 남에게도 엄격한 것으로 유명했어요.
꾸짖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호된 질책을 받은 에로스는 무서워서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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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해요. 비서는 문서 한 통을 위조
했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를 맡고 있던 몇몇 장교의 이름이 적혀
있고 맨 끝에는 에로스의 이름도 적혀 있는 문건을 장교들에게 보여줍니다.
장교들은 공포로 제정신을 잃은 그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잊어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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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에로스의 안내를 받아 황제의 침실에 잠입한 그들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를 죽입니다. 4년 9개월 동안 제국을 통치한 뒤 맞은 죽음이었어요.
동시대의 연대기 작가가 “아우렐리아누스 시대의 제국은 행복했어요. 시민들은
그를 사랑하고, 병사들은 그를 존경하고, 적들은 그를 두려워했다.”고 기록한
사람이 정말 어이없이 생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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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열심히 하는 황제들도 쉽게 암살에 노출 되었는데 바로 주변의 병사
나 근위병들에게 죽습니다. 황제는 장기간의 집권으로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데, 너무도 쉬운 죽음으로 로마는 점점 기울어 갑니다. 사실상 황제라는 이름
만 거창 할 뿐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들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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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장점은 점점 사라지고, 이곳저곳 단점이 보입니다. 기울어 가는
로마의 모습과 역전을 할 수 없는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12권을 읽으면서 대략 몇 가지의 지식을 건져낸 것 같습니다.
1.목축보다 농경이 산업의 주축을 이루어야 한다(농업과 제조업의 절대 존속)
2.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져 공동체가 페쇄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공동체와
개방적인 관계 맺기(글로벌 화)
3. 블루오션 전략으로 '안'이 아닌 '밖'이 전쟁터가 되어야
"제가 세계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시켜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려요."
(장미란 선수)
2023.3.14.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