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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5월 30일 목요일
[(녹)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 쓰이도록 하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예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눈먼 바르티매오가 자비를 호소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불러내신 하느님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2,2-5.9-12
사랑하는 여러분,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9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0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자비를 입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12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46ㄴ-52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르티매오는 길에 앉아 있던 눈먼 거지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외칩니다. 사람들이 그를 말리고 비난하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소리칩니다. 이 장면은 신앙의 여정에서 품게 되는 몇 가지 질문에 답을 제시하여 줍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시는지, 더욱이 주위의 방해와 비난으로 우리의 갈망을 좌절시키시는지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 답은 이렇습니다. 단 한 번의 기도나 가르침으로 모든 것이 마술처럼 해결되는 방식은 인간을 진정으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과 시련 속에 인간을 내버려두시는 듯하지만 그 시간은 거꾸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기다리시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갈망과 염원이 더욱 굳어지고 깊어지도록 기다리시는 밀도 높은 집중의 시간인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러오너라.” 하신 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의 소망은 다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쓰인 그리스 말 ‘아나블레포’는 ‘시력을 되찾음’을 의미하지만 ‘위를 향하여(´아나´) 보다(´블레포´)’라는 뜻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물리적 치유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는 것, 곧 초월을 향하여 위로 시선을 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운명을 비관하지 않고 구원을 기다려 온 사람들은, 구원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바로 알아봅니다. 보지 못하던 눈먼 이는 이제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을 알아보고 따라나섭니다. ‘길 위에’ 앉아 구원을 기다리던 눈먼 이는 이제 그분을 따르는 ‘길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주일학교 아이들이 부르는 성가 중에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오 크신 사랑/ 하늘 그보다 높고/ 바다 그보다 깊고/ 우주 그보다 넓은/ 오 크신 사랑” 최근 책을 읽으면서 저는 하느님의 사랑이 신기하고 놀랍다는 걸 새삼스럽게 체험했습니다. ‘시간에 묻힌 한 사제의 삶’이라는 책에서 책의 저자인 신부님은 1963년 군 제대 후에 이민을 고민하다가 여의치 않자, 성당의 신부님께 면담을 청하였습니다. 당시 젊은이의 고민은 3가지였습니다. 계속 이민 절차를 밟으며 기다리는 것,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가 청년의 고향과 깊은 인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고향이 평양인데 징집되어 한국 전쟁에 끌려왔고,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있다가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석방되고 거처를 정한 곳이 청년의 고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그곳 정 부잣집에서 일을 도와주었는데 그 집 아들과 친분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젊은이는 그 아들이 자신의 둘째 형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청년에게 안수해 주었고, 하느님께서 청년이 가야 할 길을 정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청년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던 젊은이의 갈망을 하느님께서는 신비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젊은이가 신부님께 면담했든 1963년은 제가 태어나든 해입니다. 20년 후에 저는 그 신부님께 면담하였습니다. 저는 젊은이처럼 3가지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교사나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사제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신학교에 가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5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영향도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성적표를 가져오라고 하셨고, 당시 잠시 쉬고 있던 아버지가 성당에 나오면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신부님과 면담을 한 후에, 다시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최 씨에, 곱슬머리에, 옥니를 가진 사람은 고집이 세다고 하는데, 신부님이 그 세 가지를 다 갖추었습니다. 신부님은 고집이 세시고, 강직하였지만 속 깊은 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첫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오셨습니다. 임진강 매운탕을 드시면서 본당 사제로 잘 지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본당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아시고, 용돈도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신기하고 놀라운 것인지, 저는 2007년 신부님께서 분가한 성당의 본당 신부가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주었고, 첫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는 직접 찾아와서 격려해 주었고, 원로 사목자가 되어 은퇴하실 때는 신부님께서 분가한 성당의 본당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계시는 신부님께 전화했습니다. 신부님을 사제의 길로 인도해 준 신부님이 저의 아버지 신부님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009년 신부님은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지만, 이렇게 제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십니다.
‘인생은 흑자’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게 살았어도,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삶이라 해도 인생은 흑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대가를 지급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는 주님의 은총으로 치유 받아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르티매오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것이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이제 한 분 예수님만 바라보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글인데, 어느 어두운 밤에 한 소경이 초롱불을 밝혀서 다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볼 수도 없는데 왜 그렇게 다니느냐고 하니까, 그 소경은 하는 말이 나는 소경이지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초롱불을 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간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뭔가를 보려고 하고,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 우리 자신이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의 빛, 사랑의 빛, 희망의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믿는 이가 있었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
믿는 이가 있었네
가진 것이 없기에
아무 것도 줄 수 없어도
가진 것이 없으니
감사히 받을 수 있었던
믿는 이가 있었네
볼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었던
믿는 이가 있었네
스치듯 지나가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마음에 고이 품고
우연이라도 그분 만날까
애타게 기다리던
믿는 이가 있었네
수없이 흩어지는
담아낼 수 없는
웅성거림과 왁자지껄 소리
그 안에서 또렷하게
그분의 이름 붙잡았던
믿는 이가 있었네
볼 수는 없어도
외칠 수는 있었던
믿는 이가 있었네
애끓는 울부짖음을
거칠게 밀쳐내는
모진 목소리들 속에서
그분만은 정녕코 그분만은
나의 외침을 품으시리라
믿는 이가 있었네
눈길조차 주지 않는
매정한 사람들의
제 살길 찾는 발걸음 거슬러
그분만은 정녕코 그분만은
나에게 걸음을 멈추시리라
믿는 이가 있었네
그분께서는 정녕코 그분께서는
뭇사람들의
경멸어린 눈길 거두어
애틋하게 보게 하시리라
믿는 이가 있었네
그분께서는 정녕코 그분께서는
뭇사람들의
거칠고 성가신 목소리 삭히어
부드럽게 부르게 하시리라
믿는 이가 있었네
그분께서는 정녕코 그분께서는
그분과 나를 가르던
넘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돌덩이들이
그분과 나를 오롯이 잇는
부드러운 사람들도
새로 태어나게 하시리라
믿는 이가 있었네
마침내 그분께서는
나를 기꺼이 보시리라
마침내 그분께서는
나에게 정성껏 들으시리라
마침내 그분께서는
나에게 살갑게 말씀하시리라
마침내 그분께서는
나에게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리라
믿는 이가 있었네
그분께서 가라 하시니
주저함 없이 설레는 맘으로
그분을 따라 길을 따라 나선
오늘의 성인
성녀 잔 다르크(Jeanne d’Arc)
활동년도 : 1412-1431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아르크(Arc)
같은 이름 : 요안나, 요한나, 잔, 잔느, 잔다르크, 잔다크, 쟌, 쟌다르크, 쟌다크, 조안, 조안나, 조한나
일명 오를레앙(Orleans)의 처녀로 불리는 성녀 잔 다르크(아르크의 요안나, Joanna Arcensis)는 1412년 1월 6일 프랑스 동북부 샹파뉴(Champagne) 근처에 있는 동레미(Domremy)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농부의 다섯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출생한 시기는 백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고, 당시 동레미는 영국군의 침략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했던 그녀는 1425년 13세가 될 무렵에 대천사 미카엘(Michael, 9월 29일)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11월 25일)와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7월 20일)와 함께 나타나 부친의 집을 떠나 프랑스 군대의 사령관을 찾아가고 나아가 오를레앙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 군대를 몰아내라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이 목소리를 하느님이 보내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 ‘음성’의 지시에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표시로 순결 서약을 하였다고 한다.
1428년 5월에 그녀는 샤를 7세(Charles VII)를 도와 부르고뉴(Bourgogne)가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 인해 영국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오를레앙 지역을 탈환하고, 내전으로 분열된 프랑스를 국왕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샤를 7세가 보쿨뢰르(Vaucouleurs)에 파견한 장군을 찾아가 프랑스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언대로 샤를 7세의 상황은 더욱 불리해져, 1428년 10월 12일 그의 거점 지역인 오를레앙이 포위되었다. 1429년 프랑스군이 오를레앙 교외의 헤링 전투에서 영국군에 의해 패배하자 그녀는 3월 시농(Chinon)에 피신해 있던 샤를 7세를 찾아갔다. 샤를 6세의 아들인 그는 백년 전쟁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가 못된 인물인줄 알았으나 계시에 따라 그에게 순종하였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을 인정하게끔 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군사 작전에 나서기 전 푸아티에(Poitiers)로 가서 주교와 학자들 앞에서 최종적인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때 잔 다르크는 ‘음성’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그 ‘음성’은 사실로 인정되었고, 그녀의 주장에서 이단이나 미신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하느님이 파견한 예언자이자 투사로 알려졌고, 그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흰 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1429년 5월 7일 오를레앙에 입성하고 5월 8일에 영국군을 퇴각시킴으로써 프랑스군에 최초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마침내 1429년 7월 17일 샤를 7세는 랭스(Reims)에서 대관식을 올리게 되었고, 이 때 그녀는 왕 옆자리에 앉았으나 그때부터 왕은 더욱 방자해져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으고 활동하다가 1430년 4월에 위험에 빠진 콩피에뉴(Compiegne)를 구하기 위해 출정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받고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그녀는 자신을 이단으로 모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 틈새에서 자신이 들은 계시가 마귀의 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사기극을 벌인 당시의 지도자들은 그녀를 끝내 화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1431년 5월 30일 루앙(Rouen)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해서 조사한 결과, 1456년 7월 잔 다르크에게 화형 판결을 내린 재판을 폐기하고 무효화하는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그녀의 명예 역시 복권되었다. 그리고 잔 다르크는 1909년 4월 18일에야 비로소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제2의 수호성인이다.
성 요셉 마렐로(Joseph Marello)
신분 : 주교, 설립자
활동지역 : 아퀴(Acqui)
활동연도 : 1844-1895년
같은이름 : 마렐루스,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마렐로(Josephus Marello)는 1844년 12월 26일 이탈리아 북서부의 토리노(Torino)에서 아버지 빈첸초(Vincenzo)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마렐로(Anna Maria Marell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은 토리노에서 아스티(Asti) 근방의 산 마르티노 알피에리(San Martino Alfieri)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그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동정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고, 이 신심은 후에 그가 성소를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충실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12살 때 아스티의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그의 선한 품성과 거룩한 생활은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다.
19살에 발진티푸스에 걸렸을 때 그는 살려주시면 꼭 사제가 되겠다고 성모님께 약속했고, 무사히 병이 나아 1868년 9월 19일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그는 열성을 다해 사제다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처음에 그는 아스티 교구에서 주교의 비서로 일했고, 이어 교구청의 행정을 조정하는 사무처장의 직책을 수행했다.
그는 사목직 안에서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와 교리교육에 헌신하며 젊은이들의 윤리와 종교 교육을 충실히 도왔다.
또한 어려운 시기를 맞은 교회를 위해 교황과 그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통해 평신도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면서 그는 카르투지오회에 들어가 전적으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에 대해 고심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교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일깨우며 단념하도록 설득했다. 주교는 성 요한 마렐로의 전인적인 헌신과 열망이 새로운 수도회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당시 혁명 법의 여파로 아스티에서 질식하다시피 쇠퇴한 남자 수도회의 소생을 알리는 시작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성 요셉 마렐로는 1878년 3월 14일 하느님 말씀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을 돌본 성 요셉의 모범을 따르는 ‘성 요셉의 봉헌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새로운 수도회의 신부와 수사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성 요셉의 헌신을 전파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며, 지역 교회의 직무를 충실히 돕는 임무를 맡겼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 그는 자신의 주교를 돕는 비서로 동행했는데, 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가 된 조악키노 페치(Vincenzo Gioacchino Pecci) 추기경은 이때 그의 덕성과 재능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황에 즉위한 레오 13세는
그를 아퀴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그는 1889년 2월 17일 주교품을 받았다.
성 요셉 마렐로 주교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자신의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교리교육과 젊은이들의 신앙교육 그리고 본당사목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 필리푸스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 선종 30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사보나(Savona)에 갔다가 1895년 5월 30일 선종하였다.
1993년 9월 2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아스티에서 그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애덕의 모범으로, 젊은이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 꾸준하면서도 소리 없이 노력한 모범으로 그를 제시하였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모든 사목자와 전 세계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이 그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2001년 11월 2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펠릭스 1세 (Felix I)
활동년도 : +274년
신분 : 교황,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펠리체
성 펠릭스는 로마인이며 그의 부친이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269년 1월 5일에 교황 디오니시우스(Dionysius)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고, 카타콤바의 순교자 묘지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도록 명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는 로마 순교록에 순교자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복자 야고보 베르토니(James Bertoni)
활동년도 : 1444-1483년
신분 : 신부
지역
같은 이름 :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이탈리아 파엔차(Faenza) 출신인 야고보 베르토니(Jacobus Bertoni)는 아홉 살에 성모의 종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수도 서원을 앞두고 부친의 중병으로 연기하였다가, 몇 년 뒤에 서원하여 가장 훌륭한 수도자의 모습으로 살았다. 그는 죄를 철저히 미워하여 매일같이 고해성사를 본 사람으로 유명하다. 외관상으로 그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매우 여위었다. 사제로 서품된 뒤에 그는 수도원내의 여러 직책을 맡아 모범적으로 수행하다가, 39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66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