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연대를 열심히 살아온 엔지니어이자
경영자가 한 분 있습니다.
70대에 접어든 지금도 벤처기업을 일으켜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분의
인생 이야기 가운데 몇 부분을 뽑아 보았습니다.
1. 나는 산업화 시대의 일꾼 중의 한 사람으로
오늘이 풍요로운 시대를 여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기업가 정신의 화신인 정주영 회장님,
정인영 회장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행운도 있었다.
그 아래서 세계를 일터 삼아 불철주야 열정을 불살랐고,
세계 일류 상품을 만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여기에는 밤하늘의 별들보다 더 많은 꿈이 있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고심하며 뛰어온 길에는
고비고비 피와 땀이 있었다.
2.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청년들에게 들려준다면
꿈을 다시 꾸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출판을 결심하였다.
앞으로 이야기는 내 이야기라기보다는 이 시대를
이끌어왔던 CEO들의 이야기이고,
소중한 인연들의 이야기이며, 우리나라 산업의 근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꿈을 꾸자. 생생하게 꾸는 꿈은 두려움도 잠재울 것이다.”
3. 1998년 어느 날, 미수된 외상대금을 수금하느라고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출장을 가기 위해 이른 새벽 자동차를 가지고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 장기주차장에 차 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주차할 시간을 염두에 두고 온 길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진 않았다.
그러나 얼마간을 배회하고도 쉽게 자리를 찾을 수가 없자
나도 모르게 초조해지고 말았다.
오헤어 공항 장기주차장은 차량 2만 7천대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하나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량의 행렬은 끊임없이 내 뒤를 이었다.
4. 경전철이 달리는 고가 철로 아래로 조금 전의 주차장이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찾기 힘들던 빈자리들이 옥수수 알갱이를 빼먹은
것처럼 군데군데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걸 모르고 여러 대의 차량이 무리 지어 그 주변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미로 속을 다녀온 모양이다.
저렇게 자리가 있었는데도 몰랐다니 ...’
5. ‘시대는 이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고 있고,
첨단 신기술이 넘쳐나는 세상에 주차공간을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차시스템 하나가 아직 없을까?
주차장에 들어서서 운전자가 마주치는 갈림길마다 좌우나
전진 방향으로 비어있는 주차 공간 개수만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면 시간 낭비 없이 주차하고,
여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이것은 혹시 하느님이 내게
주신 사업이 아닐까?’고 저절로 위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비행기를 놓친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보게 했다.
그러나 곧 현업에 전념하느라고 그 일을 잠시 잊고 지냈다.
6. ‘이 시스템을 개발해서 미국에만 수출해도
미국의 주차면 수가 2억 면이라고 가정할 때 1,200억 달러의
잠재시장을 예측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려서, 미미한 힘이라도 보태야지 않겠는가?
그런 목표가 생기니 하루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1998년 10월, 한국에 있던 옛 현대정공 부하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스마트 파킹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즉시 ‘주차유도 관리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특허청에 발명특허를 출원하게 된다.
연이어 한국과 세계 18개국에도 국제 특허를 출원하였다.
그때 내 나이가 58세였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티아이에스 정보통신’의 모태인
‘티아이에스 테크(TIS, Traffic Intelligence System Technology)'
를 설립하게 된다.
7. 매번 우리는 불가능이 필요한 그런 시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정치든 기업이든 교육이든 예술이든, 그리고
묵묵히 그 앞을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저력이란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도면도 없이 부품들로 움직이는 타워크레인을 조립해 내고,
지원도 되지 않는 중장비 공장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굴삭기를
개발하고, 주변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려 유학을 떠났던
‘자기 확신의 저력’이 그 미래인 나의 작은 오늘을 만들었듯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조직과 주변의 사회관계에서 달건
쓰건 무엇이든 작은 책무부터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해나가는 과정에서 희망이 보이고 꿈이 보이며
목표가 탄생될 것이다.
8.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력서를 쓰는 데 고심하기보다 당장 타향이나
타국으로 홀로 떠나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것이 무전여행이라면 더 좋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두루 방황하면서 일일 근로도 해보고
초근목피로 끼니를 떼워 보기도 하면서
가장 늦은 곳에서 ‘나’를 만나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상에 자기 자신과 이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고 비로소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유철진(전 현대정공 사장),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