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시대
711년 이탈리크의 아랍인과 베르베르 족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 남서부를 정복했다. 이때부터 거의 800년 동안 스페인 지역에서 이슬람 왕국이 존재하였다.
8세기경 북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무어인(베르베르 무슬림)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정복했다(711년~718년). 이 정복은 무슬림의 우마이야 제국의 확장 활동의 일환이었다. 오스트루리아스와 나바라, 아라곤의 세 개의 작은 북쪽 산간 지방만이 겨우 남아서 독립을 유지하였다.
무슬림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킬 자유가 주어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차별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차츰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커졌으며 귀족 계급부터 신분의 제한과 모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6] 10세기와 11세기에 많은 이들이 개종을 하게 되면서 알안달루스(알달루시아)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을 믿게 되었다.[7]
남부 지방에 있는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는 무슬림 스페인의 수도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하며 발달된 도시였다. 지중해 무역과 문화 간 교류가 꽃을 피웠다. 아랍과 북아프리카의 풍부한 지적 유산이 유럽으로 전해져 왔다. 무슬림과 유대인 학자들은 서유럽의 고전 그리스 문화를 되살리고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하였으며, 이런 활동을 통해 스페인의 로마화된 문화가 아랍 문화와 유대 문화와 섞여 스페인의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한편 다른 유럽 지방은 중세의 암흑기로 종교적으로나 문화적, 과학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었다. 11세기까지 안달루시아는 작은 도시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고, 이들은 외교와 전쟁을 번갈아 가며 생존해 나갔다.
무슬림 통치의 종말과 스페인의 통일
- 레콘키스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종교적 관용 정책이 약화되어 종교적 탄압이 있었으며 이로 이해 북쪽의 기독교 세력들은 13세기 초부터 남진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레콘키스타(국토 회복 운동)라고 한다. 그 시작은722년의 코바돈가 전투이다. 기독교 군대의 승리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슬람 군대들은 피레네 북쪽으로 옮겨가면서 세력을 확장했지만, 지금의 프랑스 투르 근처에서 전투로 패하면서 두에로 강과 에브로 강과 함께 피레네 산지를 낀 남쪽 지방(현재의 스페인)으로 후퇴하게 된다. 이 전투를 투르 전투 혹은 투르 푸아티에 전투라고 부른다. 이슬람 군대는 당시 유럽을 통틀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던 갈리시아를 수호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739명의 군대가 강제로 쫓겨났다. 나중에 프랑크족 세력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그들 세력이 나뉘어 성장하게 된다. 카스티야 왕국을 비롯한 아라곤 왕국, 그라나다 왕국, 나바라 왕국 등 네 개의 왕국이 이들에 해당한다.[8]
한편 종래 800년간 스페인을 다스린 무어인의 알 안달루스는 주변의 토후국들과 경쟁하느라 결국에 기독교 세력의 팽창을 도와주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다만 1085년 톨레도를 점령하면서 북쪽 지역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계속해서 국토 회복 운동이 남쪽 방향으로 향한다. 종교적으로 이때까지는 극심한 탄압이 이뤄지지 않아서 몇 안 되는 모스크나 이슬람 사원만이 교회로 바뀌었다. 이미 무어인이 스페인 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어인의 예술과 건축, 음식 등 고유의 문화는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9] 막대한 위력을 떨치던 이슬람 세력은 기독교 세력에게 코르도바 지역을 시작으로 1236년 지금의 세비야까지 내주고 만다. 잠시 동안 여러 상황을 겪은 스페인은 유럽 전체를 집어 삼킨 흑사병으로 1348년무렵에는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10] 이슬람 세력을 지원하던 마리니드 왕조는 13~14세기에 다발적으로 무슬림의 규약을 부활시키기 위해 재침공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마리니드 왕조는 13세기 중엽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 남부와 지금의 모로코를 통치하였다.[11]
1469년 아라곤의 왕위 후계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으로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왕국이 성립됐다. 두 사람의 공동 왕국 출범 이후 1478년에는 카나리아 제도를 복속하고 1492년 기독교 세력이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스페인은 내 781년의 무슬림 지배는 종식되고 통일되기에 이른다.[12] 이 시기에 스페인에는 팔렌치아 대학과 살라만카 대학 등이 설립된다. 이들 학교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된 대학이다.
1492년은 스페인에 여러 의미를 지닌다. 통일을 이룬 해일 뿐 아니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스페인 내 유대인 박해가 시작된다. 철저한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되기 위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을 색출하여 화형에 처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이슬람교도와 유대교 신자를 추방하였다.[13]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흥 군주로서 지위를 확립하면서 지역 귀족과 합세하여 왕족의 권위를 세운다. 이런 과정에서 Espana(에스파냐)라는 단어가 출현하게 된다. 에스파냐라는 단어는 고대에 스페인을 지칭하던 히스파니아(라틴어: Hispania)에서 유래했으며,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 모두를 통칭하기 위해 쓰이기 시작한다. 스페인 전체에 통합과 더불어 안정기가 찾아오면서 종교, 정치, 군사 등 전반에 발전을 거두게 되며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훗날 수많은 식민지를 복속한 국력 신장의 계기는 이때 다져진다.
위키피디아에서 퍼왔습니다. 스페인인들의 대다수가 이탈리아에서 온 라틴계라고 하나, 실제로는 무어인일것입니다. 스페인인이 완전히 이슬람교도를 물리쳤다고 한 해가 1492년입니다. 그때 과연 무슨일이 있었나요? 바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는 이슬람교도를 물리친것이 아니라 기독교로 개종한것입니다.
그들은 아슈케나짐의 영향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했을것입니다. 조선을 망하게 한 세력들은 분명 그래도 학문과 재력이 있고 나라가 전쟁중인 스페인을 뽑았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국에게 토사구팽당합니다.
레콩키스타운동은 이슬람교를 몰아내고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운동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