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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간화선看話禪 수행修行 체계體系
선(禪, jhāna, 자나)은 ‘jhāyati’ 즉 ‘명상을 방해하는 심리적 요소를 태워버리다’의 뜻이다. 선에는 4가지 단계가 있다.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된 상태를 선정이라고 한다면, 불선(不善)한 행위와 심리적 상태를 분별(審)하고 관찰(査)하여 여읜 후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가 제1선이고(savitakka, savicāra), 선악을 차별하는 기능을 놓아버린 후,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는 제2선(pīti, sukha), 마음속에 무시이래로 쌓여있던 고통, 한(恨), 스트레스, 응어리가 이미 풀린 상태에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운 것이 제3선이고(sukha), 몸과 마음이 고통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 등의 모든 감정으로부터 초월된 상태가 제4선이다(upekhā). 이 4선이 바로 평정한 마음의 상태이고 법(法, 4성제)을 있는 그대로 냉연히 바라 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이다.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18> 선(禪)과 정(定). 등현스님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불교신문3491호/2019년6월1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선禪은 디야나(dhyāna) 혹은 쟈나(jhāna)라고 하는 인도 명상법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불교에서 선禪은 좌선坐禪을 가리키기도 하고 선정禪定의 약칭이 되기도 한다. 본질은 마음을 가다듬고 앉아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법이다.
선(禪)은 불교의 총부이며, 골수이다. 그런데 그것이 불립문자(不立文字)고 불급언전(不及言詮)이고, 말로 이치를 캘 수도 없다. 그러기에 스스로 체인(體認)해야 하는 실제 문제에 부닥쳐야 한다. 즉 사탕은 어떤 작용에 의하여 달고, 명약은 어떤 작용이 있어서 쓴가, 이렇게 연구하는 것이 과학의 방식이라면, <선>은 사탕을 직접 먹어보고 달다고 감지하고, 명약을 직접 먹어보고 쓰다고 각지(覺知)하게 되므로, 달다든지 쓰다든지 하는 강석(講釋)은 둘째로 하고, 곧 달고 쓰고를 자각케 하는 방침을 취한다. 이런 의미에서 선을 근본과학이라고 했다.
(중략)
<선>은 동양 민족이 그 긴 역사에 남긴 일대 문화적 유산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역사적 존재만이 아니고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정신생활에 약동하는 현실체다. 그러나 그 발현에는 융체 기복을 면치 못했다 하더라도 역사의 전환기에는 늘 고조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과 같이 물질 욕구에만 얽매인 시대에 심신의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에서 더 큰 보람은 없겠다. (無門 慧開 原著, 宗達 李喜益 提唱,『무문관無門關』 pp. 2~3.)
1. 간화선看話禪 수행修行
간화선看話禪이란 불교 수행방법 중 하나로 ‘간看’은 본다는 뜻이고 ‘화話’는 화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간화선이란 간단히 ‘화두話頭를 본다’는 뜻이고, 화두라는 과제를 가지고 참구參究하는 참선參禪 수행법이다. 또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 화두는 ‘이야기의 말머리’란 뜻도 있는데, 선종禪宗 조사祖師들의 말이나 이야기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간화선은 중국 당대當代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송대宋代 중기에 이르러 정립되었는데, 스승이 제자를 지도 인도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적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간화선은 깨달음에 이른 고인古人의 언구言句나 행위行爲를 학인들에게 제시하고, 그 기연機緣의 내용을 깨우치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오조 법연 이후 간화선은 ‘평범한 일상적 마음이 도道’라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 중점을 두었는데, 간화선은 당말 · 오대로부터 시작되어 남송 중기 오조 법연의 문하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1) 수식관數息觀
‘고요함, 적멸, 사마디(삼매)’를 목표로 하는 사마타(奢摩他, Samatha)나, ‘있는 그대로 본다’는 위빠사나(비파사나毘婆舍那, vipassana), 명상법 등은 인도의 전통수행법이다. 이들 명상 수행법은 좌선坐禪을 기본으로 하는데, 화두를 참구한다고 하지만 간화선 수행 역시 좌선, 즉 앉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처음 선을 하는 초보자들에게 있어 고요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좌선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짧은 시간 앉아 있기도 어렵지만 정신을 집중하여 화두를 보는 데에는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온갖 번뇌 망상에 시달려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가만히 앉아 있기를 요구하는 것도 힘들지만 정신을 집중하여 화두에 집중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잠깐 화두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다시 온갖 잡념에 시달리게 된다. 화두 참구 또한 생각이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잡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화두를 잡았다고 해도 다른 생각들이 잇달아 떠올라 화두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 자체가 장애인 것이다. 생각은 무서운 것이다.
생각은 시비를 낳고, 분별을 낳으며, 생각은 너와 나를 구분하며, 생각은 관념을 낳는다. 생각은 욕망을 낳고, 망상을 초래하며, 생각은 편견을 낳고, 생각은 선입견을 초래한다. 생각은 아집을 낳고. 생각은 분노와 공포를 낳는다. 그리하여 생각이 때로는 천국이 되며, 때로는 지옥을 초래하는 것이다. (崔仁浩 『길 없는 길 2 불타는 집』P. 22.)
이때 필요한 것이 <수식관數息觀>이다. <수식관>은 ‘수數’를 세면서 호흡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다. 수數라는 강력한 ‘망상妄想’을 일으켜 또 다른 망상들을 제어制御하는 것이다. 호흡에 맞춰 수를 세다 보면 춤을 추던 생각들, 이리저리 떠다니던 모든 망상들이 일시에 멈춘다. 수식관은 또 일정하게 호흡을 가다듬는데도 유효하지만 정신집중에도 도움이 된다. 수식관은 화두 삼매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정신집중精神集中, 전심치지專心致志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꾸준히 하다보면 호흡도 안정되고 생각도 줄어들어 화두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자세나 호흡이 안정되고 좌선이 익숙해지면 화두참구 과정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간소화된 화두들로부터 시작하는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이 그것이다.
2)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은 처음 수행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된 간화선의 입문 단계이다. 간화선 수행은 화두를 통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초보자들에게는 그 과정이 매우 어렵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수행의 초기 단계에서는 비교적 간단하고 직관적인 화두를 통해 참구參究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화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是甚麽)>가 있다. 이 화두는 자신의 존재, 마음, 그리고 현재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다. 수행자는 단순히 이 질문에 대한 이론적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끊임없이 질문을 유지하면서 그 의심疑心을 깊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분별심이 점차 사라지고, 순수한 의심만이 남게 되는데, 이를 ‘의단疑團’이라고 한다.
이러한 화두 수행은 단순한 사고 활동이 아니라, 전 존재를 걸고 수행하는 실천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화두를 들고 앉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화두를 유지해야 한다. 걷고, 먹고, 말하고, 일하는 모든 순간에 화두를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수행자는 점차 화두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간화선 수행의 첫 단계인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외짝손소리 [隻手之聲]
2) 동쪽 산이 물위로 간다. [東山水上行]
3) 날아가는 비행기를 멈춤 [停飛! 飛行機]
4) 손을 쓰지 않고 호미를 쥔다. [空手把鋤頭]
5) 이천 소가 밥 먹으니 제주 말이 배부르다. [懷州牛喫禾 益州馬腹脹]
6) 김 서방이 술 마시니 이 서방이 취하네! [金公喫酒李公醉]
7) 찬찬히 살펴 날아가는 새 발자국을 그린다. [縱觀寫出飛禽跡]
8) 천천히 걸으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 끊는다. [徐行踏斷流水聲]
9)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날 때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는다.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10) 무 [無]
11) 남산 꼭대기의 외짝 손! [南山絶頂隻手]
12)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은 모두 이 경에서 나옴! [阿縟多羅三貘三提法 皆從此經出]
13)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인데[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어느 心에 떡을 먹겠는가!
14) 천길 속의 돌 자갈을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끄집어내는 솜씨!
15) 만산萬山에 눈이 가득 쌓였는데 한 봉우리孤峰만 왜 검은고!
16) 지렁이를 두 토막으로 잘랐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고! [蚯蚓兩斷 那箇是眞底]
17)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은 초심자들을 위한 화두다. ‘찰칙察則’이라고도 하는데, ‘찰察’은 살피다, 판단한다는 뜻이고 ‘칙則’은 규칙, 법칙을 의미한다. 화두라는 것이 무엇인지 맛을 보게 되는 단계이고, 또 48칙의『무문관無門關』수행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단계이기도 하지만, 이 자체로 간화선 수행에는 전혀 손색이 없는 유명한 배경을 가진 화두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기에는 간단한 화두처럼 보이지만 간결하면서도 화두의 본질을 꿰고 있는, 그야말로 수행자라면 꼭 알아야 할 근본적인 화두로 구성되어 있다.
화두란 선사禪師들의 선문답禪問答 중에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간소화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대화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을 골라내어 참구하게 한다. 이로서 그들 간의 대화 내용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다. 다음 대화 내용을 의심하게 하여 선배들의 본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둘째이다. 그러므로 해서 화두의 구조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되어, 화두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화두의 본분인 것이다. 그럼 화두의 생성 배경과 원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다음 만공(滿空, 1871~1946) 선사의 일화를 살펴보자.
만공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수박으로, 그는 기회만 있으면 수박을 사다가 전 사내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박 잔치 벌이기를 즐겨 하였다.
어느 여름날, 하안거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갑자기 수박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든 만공은 여러 스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구든지 날랜 사람이 있어 매미를 맨 먼저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수박 값을 안 받고 공짜로 먹이기로 하고 만일 못 잡아 오는 사람에게는 수박 값으로 동전 서푼씩 받아야겠으니 여기 있는 대중들은 모두 한마디씩 일러보도록 하라.”
마침 나뭇가지 위에서는 매미가 떼를 지어 귀청이 찢어질 만큼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만공이 그렇게 말하자 어떤 사람이 매미 잡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만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매미를 못 잡아왔으니 서푼을 내시게.”
할 수 없이 그 사람은 서푼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직접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 매미를 한 마리 잡아 만공에게 내주면서 말하였다.
“스님, 매미를 잡아왔습니다.”
이에 만공은 애써 잡아온 매미를 날려 주면서 말하였다.
“자네도 매미를 못 잡아왔으니 서푼을 내시게.”
만공의 진의를 헤아릴 수 없었던 대중들은 별의별 수단을 다 쓰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 나서서 뜨락에서 맴맴맴맴… 하고 매미 우는 소리를 냈지만 역시 서푼을 내야 했으며, 어떤 사람은 느닷없이 할을 하였고, 어떤 이는 난데없이 주먹 하나를 들어 보이기도 하였지만 만공에게 서푼을 내야만 하였다.
어떤 사람은 ‘내가 매미를 잡아 오겠습니다’ 하고 나서서 느닷없이 만공의 등 뒤로 돌아가 만공의 등을 탁 손으로 때리고는 ‘이놈의 매미’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스님, 제가 매미를 잡아왔습니다.”
그래도 만공은 물러서지 않고 말하였다.
“자네도 매미를 잡지 못하였으니 서푼을 내시게.”
이때 금봉(錦峰)이란 선화(禪和)가 나서서 마당 위에 커다란 원상(圓相) 하나를 그려놓고 말하였다.
“상 가운데에는 부처가 없고 부처 가운데에는 상이 없습니다(相中無佛 佛中無相).”
그래도 만공은 말하였다.
“금봉 자네도 서푼 내시게.”
이때 마침 보월(寶月) 선화가 들어오자 만공이 이르기를 지금 대중들이 이러이러하였으니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다. 보월은 말없이 주머니끈을 풀고 돈 서푼을 꺼내 스님에게 올렸다. 그러자 공이 비로소 웃으며 말하였다.
“매미를 잡은 사람은 보월 자네뿐이네.”
당시 만공이 수박 잔치를 벌인 곳은 수덕사에서 30리쯤 떨어져있는 보덕사(報德寺)였는데 그 절의 주지가 바로 보월이었다.
(최인호崔仁浩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pp. 206~207.)
물론 이 예로부터 화두 생성과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단적으로 또는 명확하게 화두 도출과정을 설명하는 그렇다할 사례事例도 없다. 그러나 화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발전 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등을 조각적으로나마 유추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가져와 보았다. 이를테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자체가 그대로 화두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라이얼 앤 에러(Trial and Error)’, 즉 입실점검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출제자의 의도에 접근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화두의 해답을 풀어가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을 마치면 법호法號를 받는다. 그리고 다음, 선공부를 위한 대표적인 선종서인『무문관無門關』과정에 들어간다. 선자禪者들의 어록語錄이자 선입문서禪入門書인『무문관無門關』은, 임제종臨濟宗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의 『벽암록碧巖錄』, 조동종曹洞宗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의『종용록從容錄』과 함께 선문 납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아온 책이다. 특히『무문관無門關』의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공안은 매우 유명한데, 선종禪宗에서 조주 무자無字야말로 종문宗門의 제 일관一關이라하여『무문관無門關』이라 이름하였다.
3)『무문관無門關』
『무문관無門關』은 1228년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9) 선사가 복주福州 영가永嘉 용상사龍翔寺에서 설법說法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안거夏安居 동안 납자衲子들의 청익請益에 의해 이루어진 설법을 제자인 미연종소彌衍宗紹가 책으로 엮은 것이다. 48개의 고칙古則에 평창評唱과 송頌, 그리고 무문無門의 자서自序로 이루어진 『무문관無門關』은, 남송[南宋: 1127~1279]의 5대 황제 이종理宗의 탄신일 겸 즉위기념으로 헌납獻納되었다.
1230년 3월에는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서암사瑞巖寺에 주석하고 있던 무량종수無量宗壽(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의 4세손)가 무문無門을 초청하여『무문관無門關』을 강석講釋하게 한다. 이때 무량無量은 감사의 뜻으로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의 ‘황룡삼관黃龍三關’ 세 구절을『무문관無門關』에 덧붙인다.
1245년에는 맹공孟珙 무암無庵 거사가 발문跋文을 붙여 다시 간행하였고, 다음 해에 안만安晩 거사가 항주의 별장에서 발문과 ‘제49칙 어(第四十九則語)’을 추가하여 또 다시 재간再刊한다. 오늘날『무문관無門關』은 이렇게 삼간三刊 된 판본으로 맹공과 안만의 발문이 나란히 붙어 있다.
『무문관無門關』48칙의 공안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序, 表文, 禪宗無門關
제0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조주의 개
제02칙 백장야호百丈野狐 백장선사의 들 여우
제03칙 구지수지俱胝竪指 구지가 손가락을 세우다
제04칙 호자무수胡子無鬚 오랑캐에 수염 없다
제05칙 향엄상수香嚴上樹 향엄이 나무에 오르다
제0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세존이 꽃을 드시다
제07칙 조주세발趙州洗鉢 조주가 발우를 씻다
제08칙 해중조차奚仲造車 해중이 수레를 만들다
제09칙 대통지승大通智勝 대통지승불
제10칙 청세고빈淸稅孤貧 청세는 외롭고 가난함
제11칙 주감암주州勘庵主 조주가 암주를 시험하다
제12칙 암환주인巖喚主人 서암이 주인공을 부르다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덕산의 탁발
제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 남전이 고양이를 베다
제15칙 동산삼돈洞山三頓 동산의 삼돈방
제16칙 종선칠조鐘聲七條 종소리와 七조 袈裟
제17칙 국사삼환國師三喚 국사가 세 번 부르다
제18칙 동산삼근洞山三斤 동산의 삼 세 근
제19칙 평삼시도平常是道 평상심이 道이다
제20칙 대역량인大力量人 큰 역량 있는 사람
제21칙 운문시궐雲門屎橛 운문의 똥 막대기
제22칙 가섭찰간迦葉刹竿 가섭의 찰간
제23칙 불사선악不思善惡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말라
제24칙 이각어언離脚語言 말을 떠나다
제25칙 삼좌설법三座說法 三座의 설법
제26칙 이승권렴二僧卷簾 두 중이 발을 말아 올리다
제27칙 부시심불不是心佛 마음도 부처도 아닌 것
제28칙 구향용담久響龍潭 용담이라 오래 울리다
제29칙 비풍비번非風非幡 동하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제30칙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이다
제31칙 조주감파趙州勘婆 조주 노파를 헤아리다
제32칙 외도문불外道問佛 외도가 부처에게 묻다
제33칙 비심비불非心非佛 마음도 아니며 부처도 아니다
제34칙 지부시도智不是道 지혜는 도가 아니다
제35칙 천녀이혼倩女離魂 천녀의 혼이 떠나다
제36칙 노봉달도路逢達道 길에서 달인을 만나다
제37칙 정전백수庭前柏樹 뜰 앞의 잣나무
제38칙 우과창령牛過窓櫺 소가 창살을 지나다
제39칙 운문화타雲門話墮 운문의 말이 떨어지다
제40칙 약도정병躍倒淨甁 정병을 걷어차다
제41칙 달마안심達磨安心 달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다
제42칙 여자출정女子出定 여자 정에서 깨어나다
제43칙 수산죽비首山竹篦 수산의 죽비
제44칙 파초주장芭蕉柱杖 파초의 주장자
제45칙 타시옥수他是何誰 그는 누구냐
제46칙 간두진보竿頭進步 장대 끝에서 앞으로 나가다
제47칙 도솔삼관兜率三關 도솔의 세 개의 關門
제48칙 건봉일로乾峯一路 건봉의 한 길
後序, 禪箴, 黃龍三關, 跋, 安晩
『무문관無門關』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실린 1,700여 개의 공안公案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48개를 가려 뽑았다. 동시대를 함께 호흡한 선배 선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선禪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안내서이자 나침반羅針盤이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 수행에 있어 필독서必讀書이자 교과서敎科書로 여겨지고 있으며 본격적인 간화선 수행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4)『무문관無門關』수행과 착어著語
수행에 들어가면 수행자는 스승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참구하고 정기적으로 입실을 통해 점검을 받는다.『무문관無門關』에 수록된 화두의 본칙本則과 평창評唱, 송頌 등을 읽고 떠오르는 즉심의 경계를 스승에게 제시하면, 스승은 제시한 경계에 대해 가부可否를 평가하고, 거기에 평評을 붙이기도 한다. 알쏭달쏭한 화두들을 입실점검을 통해 하나하나 독파해 나가는 것이『무문관無門關』화두 공부법의 골자이다.
또 각각의 화두를 투과하고 나면 제시한 답에 부합되는 ‘착어著語’를 붙이는 과정도 있다. 착어著語란 화두의 글귀 밑에 붙이는 짤막한 평評이나 시詩로, 화두 투과 후 느껴지는 감상이나 화두 자체에 대해 읊은 구절句節이다. 원래는 화두를 투과하고 나면 그 소감을 시로 표현하거나 자신의 경계境界를 게송偈頌으로 읊어야 하는데,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럴 실력이 없다. 그래서 게송들을 모아 놓은 책을 주고 그중에서 체득한 경계에 맞는 구를 고르게 한다. 그 책이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님이 편집한『선림구집禪林句集』이다.
<선림구집禪林句集>은 중국에서 유행(流行)한지 이미 오래된 것이다. 선풍(禪風)이 크게 일어났던 신라나 고려 때에 유행되었을 런지도 모르겠으나, 그 후 이를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다. 구수(句數)는 일자관(一字關)으로부터 팔언대(八言對)까지 육천(六千)여 구(句)이다. 지면(紙面)에 제한이 있어 일구(一句)의 해석은 되도록 일구의 읽음보다 길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구의(句意)만 취(取)하거나 혹은 구중(句中)의 일어(一語)만 풀이하거나 혹은 구중에 종의(宗意)를 포함한 구의만 취하거나 선지(禪旨)만 취하는 등 일정하지 않다. 구(句)의 출처(出處)는 광범위하여 소위 수많은 선서(禪書) 중에서 뽑아낸 것이다. 몇 개 보기를 들면 <무문관(無門關)>, <벽암록(碧巖錄)>, <갈등집(葛藤集)>, <종용록(從容錄)> 등에서 이다. <선림구집>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하여 엮은 것으로 생각되나 후대에 와서 간화선(看話禪)이 발달함에 따라, 한 공안(公案)을 본 다음 그의 경계(境界)를 착어(著語)할 때 이 <선림구집>에서 해당한 구를 제시하게 되었다. 가령 <무문관>의 제 1칙인 ‘조주무자(趙州無字)’를 보았으면 그에 계합(契合)되는 구를 착어해야 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송고집>에 수천구(數千句)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그래서 공안을 봐 나가는 학인(學人)에게는 필독서(必讀書)로 되어있다. 즉 실과 바늘의 관계처럼 버릴래야 버릴 수 없다. 이는 한 공안을 투과하였으나 혹 남에게서 듣고 제시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 즉 자신이 스스로 체득(體得)했으나 여부(與否)를 다시 한 번 점검(點檢)하기 위하여 착어를 붙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투득(透得)한 공안을 더욱 철저히 굳히기 위함에도 그 의의가 있다. 끝으로 일반 한시(漢詩)에 조예가 있는 분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을 믿어 마지않는 바이다.
(선도회 종달 이희익-선림구집禪林句集 출판사 책소개(머리말)
화두를 투과透過 혹은 투득透得하고 나서 혹시 남에게서 듣고 제시하지 않았나? 또는 책을 읽고 제시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 또는 자신이 스스로 체득體得하였으나 그 진위 여부與否를 점검點檢하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남이 읊어 놓은 게송을 보고 거꾸로 자신의 경계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화두에 대해 더욱 철저히 파악할 수 있는 과정이라서 그 의의가 크다. 한마디로 공부가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인 것이다.
『무문관』과정을 마치면 ‘부법사’에 추대된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로 넘어가 부법사 과정 점검을 마무리 한다.
5)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수행을 거친 수행자들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두이다. 이 단계에서는 이미 기본적인 좌선과 수식관, 그리고 화두 참구에 익숙해져 있으며, 보다 깊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 이루어진다. 이 단계의 화두는 논리적 이해를 넘어서는 특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부모이전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무엇인가?’와 같은 화두는 개념적 사고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다.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긴 수염을 어디에 놓고 자는가?
2) 불(佛)이란 자(字)에 때가 끼었다.
3) 하늘과 땅을 통틀어 나는 가장 귀한 존재다! [天上天下唯我獨尊]
4) 걸으면서 물소를 탄다. [步行騎水牛]
5) 이뭣고! [是甚麽]
6) 문이 잠겨 있으니 열쇠 구멍으로 들어오라!
7)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모두 몇 개인가?
8)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궁궐 안이 서늘하다. [薰風自南來 殿閣微凉生]
9) 내 손은 왜 부처님 손과 같은가? [我手何似佛手]
10) 내 발은 왜 노새의 발과 같은가? [我脚何似驢脚]
11) 사람마다 태어나기 전의 생연이 있다. [人人有箇生緣]
수행자는 이러한 화두를 통해 기존의 모든 지식과 분별을 내려놓고, 오직 ‘모르는 상태’를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행자는 극도의 집중 상태에 이르게 되며, 어느 순간 의단이 타파되는 ‘타파打破’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전환되는 체험이다. 이때 비로소 참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마무리하는 과정까지 마치면 재독再讀 과정에 들어간다.
6) 재독再讀 과정
법사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마쳤으나, 공부가 제대로 되었는지 점검해 보는 차원에서 재독再讀 과정에 들어간다. 재독 과정은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과『무문관無門關』, 그리고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을 다시 점검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공부에 대한 복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재독은 이미 투과한 기존 경계를 제시하고, 다음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응용의 경계를 제시해야 한다. 대체로 종달 노사님 경계인 즉심卽心의 경계를 제시하고, 거기에 더해 숭산 스님의 즉여卽如의 경계를 제시하는데, 화두에 대해 보는 시각을 달리하여 더욱 더 투철하게 점검한다. 여기서 즉여卽如의 ‘즉卽’은 ‘바로’, ‘여如’는 ‘있는 그대로’를 뜻하는데, 분별심을 떠나 만물을 본래 모습 그대로 보는 것이다. 즉, 차별 없는 진리의 세계를 나타낸다.
많은 스승들은 자기들이 깨달았다고 주장하지만 깨달음에도 수준이 있다. 첫 번째 깨달음이 있고 본래 깨달음이 있고, 마지막 깨달음이 있다. 첫 번째 깨달음은 ‘공(空)’을, 본래 깨달음은 ‘여여(如如)’를, 마지막 깨달음은 ‘즉여(卽如)’를 깨닫는 것이다.
여기 사과가 하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사과라고 하면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다. 사과가 아니라고 하면 공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과인가, 아닌가. 만약 여러분이 바닥을 [“탕”!] 치거나 ‘할’ 하고 소리치면 이것이 첫 번째 깨달음이다. 혹은 ‘하늘이 푸르고 나무가 푸르다’거나 ‘사과는 붉고 벽은 하얗다.’라고 하면 ‘여여’ (如如)의 대답을 준 것이다. 그러나 사과를 한 입 깨물어 먹으면 바로 ‘즉여’ (卽如)가 된다. 깨달음의 수준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오는 것이다.
‘즉여’ 야말로 완전한 대답이다.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아니다. 예리한 눈을 가진 선사는 이 세 가지 깨달음을 구별해 낼 줄 안다. 자유롭게 가르침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깨달음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깨달음’은 단지 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깨닫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선 수행을 한다. 부처님은 ‘모든 것은 이미 깨달았다.’ 고 설파했다. 한 유명한 선사의 말대로 ‘생각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부처이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맑은 마음이다. 맑은 마음을 가지면 어떤 행동도 바로 ‘즉여’ 가 된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혹은 더욱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조차 생각이고 욕심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만든다.
남전선사는 “평상심이 도”라고 말했다. 매일매일의 마음이 이미 대오(大)이다. 뭔가 다른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뱀을 그리면서 다리를 그려넣으려 하는 것과 같다. (현각 엮음 ․ 허문명 옮김,『선의 나침반』 pp. 99~100.)
이 과정이 끝나면 법사증을 받고 법사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 과정은 또『벽암록碧巖錄』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간화선 수행은 <수식관數息觀> 수행,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무문관無門關』과정,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그리고『벽암록碧巖錄』과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7)『벽암록碧巖錄』과정
중국 선종 5가 중 하나인 운문종雲門宗 제4조인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 은『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실린 1,700칙의 공안 중에서 100개를 선별하고 거기에 자신의 송을 붙였다. 이렇게 편집된 책이『설두송고雪竇頌古』혹은『송고백칙頌古百則』이다. 『송고백칙頌古百則』은 내용뿐 아니라 시적으로 뛰어나 널리 애송되었는데, 훗날 임제종 양기파楊枝派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 여기에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 등을 덧붙인다. 이를 제자들이 편집 간행한 것이 바로『벽암록碧巖錄』으로 설두의 문학적 표현과 원오의 철학적 견해가 앙상블을 이루고 있어 종교서인 동시에 뛰어난 문학서로 평가받고 있다.
원오가 죽은 뒤 그의 제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벽암록碧巖錄』과 판각들을 모조리 회수하여 불태워버린다. 제자들이 선공부는 하지 않고 책을 외워 앵무새처럼 떠들거나 혹은 선문답에만 치중하여 궤변을 늘어놓는 등 폐해弊害가 심했기 때문이다. 선공부는 뒤로 한 채 문자적·지적 담론에 빠져 문자 노름을 하며 선불교 흉내만 내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벽암록碧巖錄』이 오히려 선을 방해하고 형식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벽암록碧巖錄』은 후대에 다시 간행되어 선공부를 위한 최고의 지침서로 자리 잡는다. 이후 이 책을 모방하여 『종용록從容錄』이나 『무문관無門關』등 선종서禪宗書들이 연이어 나오게 되는데, 이를 보면 『벽암록』은 간화선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암록碧巖錄』에 실린 화두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佛果圜悟禪師碧巖錄
重顯頌古 克勤評唱
碧巖錄序
參學嗣祖比丘 普照 謹序
紫陽山方回萬里序
玉岑休休居士。聊城周馳。書於錢唐觀橋寓舍
三教老人書
제001칙 達磨廓然無聖 - 달마대사와 양무제
제002칙 趙州至道無難 - 지극한 불도는 어려움이 없다
제003칙 馬大師不安 - 마조화상의 병환
제004칙 德山到潙山 - 덕산이 위산 화상을 참문하다
제005칙 雪峰盡大地 - 설봉의 온 대지
제006칙 雲門日日好日 - 운문의 날마다 좋은 날
제007칙 法眼慧超問佛 - 법안화상과 혜초스님
제008칙 翠巖夏末示衆 - 취암 화상의 눈썹
제009칙 趙州四門 - 조주화상과 사문(四門)
제010칙 睦州掠虛頭漢 - 목주화상과 사기꾼
제011칙 黃檗噇酒糟漢 - 황벽화상과 술찌꺼기 먹은 놈
제012칙 洞山麻三斤 - 동산화상의 삼 세근
제013칙 巴陵銀椀盛雪 - 파릉화상과 제바종의 종지
제014칙 雲門對一說 - 운문화상의 대일설
제015칙 雲門倒一說 - 운문화상의 도일설
제016칙 鏡淸啐啄機 - 경청화상과 형편없는 수행자
제017칙 香林坐久成勞 - 향림화상과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의미
제018칙 忠國師無縫塔 - 혜충국사의 ‘무봉탑’
제019칙 俱胝只堅一指 - 구지화상의 한 손가락 법문
제020칙 龍牙西來無意 - 용아화상과 달마가 오신 뜻
제021칙 智門蓮花荷葉 - 지문화상과 연꽃
제022칙 雪峰鼈鼻蛇 - 설봉화상과 독사 이야기
제023칙 保福長慶遊山 - 보복화상과 산 봉우리
제024칙 鐵磨到潙山 - 유철마가 위산을 참문하다
제025칙 蓮花峰拈拄杖 - 연화봉 암주의 지팡이
제026칙 百丈大雄峰 - 백장화상과 기특(奇特)한 일
제027칙 雲門體露金風 - 운문화상과 가을바람에 진실 드러나다
제028칙 南泉不說底法 - 남전화상 설하지 않은 불법
제029칙 大隋劫火洞然 - 대수화상의 시방세계를 멸망시키는 불길
제030칙 趙州大蘿蔔頭 - 조주화상과 큰 무
제031칙 麻谷兩處振錫 - 마곡화상이 주장자를 흔들다
제032칙 定上座問臨濟 - 임제와 불법의 대의
제033칙 陳操看資福 - 자복화상의 일원상(一圓相)
제034칙 仰山不曾遊山 - 앙산화상이 산놀이를 묻다
제035칙 文殊前三三 - 무착과 오대산의 문수보살
제036칙 長沙遂落花回 - 장사 화상의 봄날 산놀이
제037칙 盤山三界無法 - 반산화상의 삼계 무법
제038칙 風穴祖師心印 - 풍혈화상과 조사의 마음
제039칙 雲門花藥欄 - 운문화상의 황금빛 털의 사자
제040칙 南泉一株花 - 남전화상과 육긍대부
제041칙 趙州大死底人 - 조주화상의 크게 죽은사람
제042칙 龐居士好雪片片 - 방거사와 눈 이야기
제043칙 洞山無寒暑 - 동산화상의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
제044칙 禾山解打鼓 - 화산화상의 북 솜씨
제045칙 趙州萬法歸一 - 조주스님의 만법귀일
제046칙 鏡淸雨滴聲 - 경청스님의 빗방울 소리
제047칙 雲門六不收 - 운문의 법신
제048칙 王太傅煎茶 - 왕태부와 혜랑 상좌의 차 이야기
제049칙 三聖透網金鱗 - 삼성화상과 황금빛 물고기
제050칙 雲門塵塵三昧 - 운문의 진진삼매
제051칙 雪峰是什麽 - 설봉화상과 두 스님
제052칙 趙州渡驢渡馬 - 조주의 돌다리
제053칙 白丈野鴨子 - 마조화상과 들오리
제054칙 雲門卻展兩手 - 운문화상의 ‘어디서 왔는가?’
제055칙 道吾漸源弔慰 - 도오화상의 조문
제056칙 欽山一鏃破三關 - 흠산화상의 화살 일촉(一鏃)
제057칙 趙州田庫奴 - 조주화상과 간택하지 않음
제058칙 趙州分疎不下 - 조주화상과 지도무난(至道無難)의 함정
제059칙 趙州只這至道 - 조주화상과 지도무난(至道無難) 법문
제060칙 雲門拄杖化爲龍 - 운문화상의 주장자
제061칙 風穴若立一塵 - 풍혈화상의 한 티끌
제062칙 雲門秘在形山 - 운문화상과 하나의 보물(雲門一寶)
제063칙 南泉斬猫兒 - 남전화상과 고양이 살해사건
제064칙 趙州頭戴草鞋 - 조주화상이 짚신을 머리위에 올려놓다
제065칙 外道問佛 - 외도가 부처님께 질문하다
제066칙 巖頭黃巢過後 - 암두화상과 어디서 왔는가
제067칙 傅大士講經 - 부대사의 금강경강의
제068칙 仰山問三聖 - 앙산혜적화상과 삼성혜연화상
제069칙 南泉一圓相 - 남전화상과 일원상
제070칙 白丈倂卻咽喉 - 백장화상이 입과 목을 막고 말하게 하다
제071칙 白丈問五峰 - 백장화상이 오봉의 안목을 점검하다
제072칙 白丈問雲巖 - 백장화상이 운암의 안목을 점검하다
제073칙 馬祖四句百非 - 마조문하의 서당(西堂)과 백장(百丈)
제074칙 金牛飯桶 - 금우화상의 밥통
제075칙 烏臼屈棒 - 오구화상이 선법(禪法)을 묻다
제076칙 丹霞喫飯也未 - 단하화상이 어디서 왔는가 묻다
제077칙 雲門餬餠 - 운문화상의 호떡[餬餠]
제078칙 開士悟水因 - 보살(菩薩)이 목욕하며 깨닫다
제079칙 投子一切佛聲 - 투자화상과 부처의 소리
제080칙 趙州初生孩子 - 조주화상과 어린애의 육식(六識)
제081칙 藥山麈中麈 - 역산화상과 큰 사슴 사냥
제082칙 大龍堅固法身 - 대룡화상의 견고한 법신
제083칙 雲門古佛露柱 - 운문화상의 고불과 기둥
제084칙 維摩不二法門 - 유마거사의 불이법문
제085칙 桐峰庵主作虎聲 - 동봉화상과 호랑이
제086칙 雲門廚庫三門 - 운문화상의 광명(光明)
제087칙 雲門藥病相治 - 운문화상의 병(病)과 약(藥)
제088칙 玄沙三種病 - 현사화상의 세 가지 병(病)
제089칙 運巖大悲千眼 - 관음보살의 천수천안(千手千眼)
제090칙 智門般若體 - 지문화상과 반야지혜의 본체
제091칙 鹽官犀牛扇子 - 염관화상과 무소뿔 부채
제092칙 世尊陞座 - 세존의 설법
제093칙 大光作舞 - 대광화상이 춤을 추다.
제094칙 楞嚴不見時 - 능엄경(楞嚴經)의 법문
제095칙 長慶二種語 - 장경화상과 여래(如來)의 말씀
제096칙 趙州三轉語 - 조주화상의 삼전어 법문
제097칙 金剛經罪業消滅 - 금강경의 설법
제098칙 天平兩錯 - 천평선사의 행각(行脚)
제099칙 肅宗十身調御 - 숙종황제의 십신조어
제100칙 巴陵吹毛劍 - 파릉화상의 취모검
간화선 수행은 단순한 명상 기법이 아니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수행 체계이다. 수행자는 좌선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화두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마음은 점차 맑아지고, 분별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히 간화선은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머무르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다. 이러한 현재성은 화두 수행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또한 간화선 수행은 개인적인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과 사회를 향한 자비慈悲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깨달음은 곧 실천이며, 수행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
8) 선도회 간화선 수행의 특징
지금까지 선도회 간화선 수행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차별화된 특징인 입실점검, 사이버 수행, 전자입실電子入室, 좌일주칠坐一走七 등에 대해 알아보자.
입실점검
선도회 간화선 수행 전 과정은 직접 입실을 통한 대면 점검이나 인터넷을 통한 전자입실(사이버 수행)로 이루어진다. ‘입실점검’은 임제종 간화선 수행의 핵심으로, 화두참구에 대한 경계에 대해 평가를 받고 공부 중 생긴 의문을 해결하는 장場이기도 하다. 선지식과 자신과의 견해 차이를 듣고 그것을 이정표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흐트러질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다잡는 계기도 되어 입실점검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
그야말로 용맹정진이었다. 보통 때는 아침저녁 두 번만 입실했으나 납팔섭심에는 세 번이다. 환종 소리만 나면 나는 기를 쓰고 입실했다. 그러나 진전이 조금도 없다. 들어가면 아니라고만 하니 이제 할 말이 없게 되어 환종 소리가 나도 입실 않기로 작정했다. 입실을 포기한 것이다. 되든 말든 입실해야 결판이 나는데 입실을 포기했으니 결국 좌선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환종 소리에 따라 남들은 달려가 입실했으나 나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직일直日(당내를 감독하는 사람)이 와서 경책警策(1m 반 길이로 끝이 약간 널찍한 작대기)으로 어깨를 치며 입실하라고 했다. 눈짓으로 입실을 재촉했다. 선방에서는 입을 열지 못하고 종이나 북이나 요령 등의 신호로 움직인다. 할 수 없이 자신 없는 입실을 했다. 노사는 다른 때와는 달리 매우 엄한 어조로 “이 밥통아!”하고 내쫓는다. 힘없이 나와서 자리에 앉았다.
또 직일이 다가와서 입실하라고 눈짓했다. 눈초리가 매우 날카롭다. 입실했으나 또 쫓겨났다. 이번에는 직일이 어깨를 경책으로 때리며 입실하라고 고함을 친다. 부득이 입실하면 노사는 역시 여의如意로 어깨를 때리고 발로 차고 했다. ‘여의’란 두어 자 되는 끝이 꼬부라진 단단한 나무대로, 노사가 입실을 받을 때 의례히 좌보 앞에 놓고 평시에도 쥐고 다니는 물건이다. 이거 야단났다. 이렇게 며칠 지나고 마지막 전날인 7일 밤이 되었다. 직일이 입실하라고 경책으로 등을 밀었다. 입실해서 할 말을 다 해도 아니라고 쫓아내니 또 뭐라고 한단 말인가. 그래서 경책으로 찔러도 일어나지 않고 밀어도 버티었다. 그랬더니 멱살을 잡아끌어 입실시킨다. 역시 노사는 내쫓는다. 또 직일이 멱살을 잡아 입실시킨다. 나는 법당 기둥을 잡아 쥐었다. 직일은 기둥을 잡은 손을 경책으로 때렸다. 이거 견딜 수가 있나. 경책으로 등을 밀어 입실을 시켰다. 이렇게 소란을 피웠다.
나는 내 정신이 없었으므로 소란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궁지에 몰아넣은 수단이었다. 禪은 궁지에 들어가서 궁해야 통하는 것이다. 우물도 계속 퍼내면 급기야 바닥이 나는 법이다. 이때가 궁한 때며 통한 때다. 물은 잡념망상을 가리킨 것이며 푼다는 것은 잡념망상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잡념망상 때문에 통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禪이란 잡념망상을 제거하는 수련이다. (이희익李喜益, 『人生의 階段』 pp. 33~34.)
이 같은 입실지도 전통은 이미 중국 남송대 선원禪院에서 이루어진 총참總參과 독참獨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총참總參은 선원에 속한 수행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수행하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스승께 입실해 화두를 점검받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도 업혀서 입실에 참가했다고 한다. 독참獨參은 입실을 원하는 제자가 홀로 조실 스님 방에 들어가 자유롭게 점검을 받던 일이었다.
입실한 수행자는 조실 스님의 주먹질이나 발길질에 채이면서 점검을 받았다. 또는 여의如意나 주장자拄杖子 등으로 점검을 받게 되어, 초긴장 상태에서 화두 점검을 받게 된다. 위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철저하게 입실점검을 받게 되니 공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 입실점검은 화두공부의 정석이자 지름길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면 혼자서도 선 수행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초심자들을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다음 예로부터 우리는 입실점검의 전통을 알 수 있다.
눈이 그쳐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자, 지장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며 말씀하셨다.
“상좌, 삼계(三界)는 마음일 뿐이며, 만법(萬法)은 식(識)일 뿐이라고 항상 말들 한다.”
그리고는 뜰 아래 돌덩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말해 보게, 이 돌이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한 덩이 돌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
스님이 궁색하여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지장스님의 법석(法席)에서 결판을 보려고 작정하였다. 한 달 남짓 매일같이 자기 견해로 도리를 설명해 보이자, 지장스님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불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는 이제 할 말도 없고 설명할 이치도 막혔습니다.”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다.”
스님은 그 말끝에 확실히 깨달았다.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p. 160~161. 雪霽辭去。地藏門送之。問云。上座尋常說三界唯心。萬法唯識。乃指庭下片石云。且道。此石在心內在心外。師云。在心內。地藏云。行腳人。著甚麼來由安片石在心頭。師窘無以對。即放包依席下。求決擇。近一月餘。日呈見解說道理。地藏語之云。佛法不恁麼。師云。某甲詞窮理絕也。地藏云。若論佛法。一切見成。師於言下大悟。(『金陵清涼院文益禪師語錄』)
후에 설암(雪巖)화상을 뵈니, <無>자 화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사람이 길을 갈 때 하루의 갈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는 매일 나에게 와 한마디 일러라.” 하셨다.
(운서주굉(雲棲株宏,『禪關策進』「36. 천목산 고봉원묘(高峰原妙)선사」.)
(원묘(原妙)가 설암(雪岩)을 찾아가 법(法)을 구하자, 설암(雪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매몰차게 문(門)을 닫아버렸다. 그래도 원묘(原妙)가 끈질기게 문(門)을 열고, 설암(雪岩)은 닫기를 종일토록 반복(反復)하다가, 이윽고 설암(雪岩)은 ‘무(無)’자(字) 화두(話頭)를 주고 정진(精進) 중에도 하루 한 번씩 자기를 찾으라고 일렀다.(박성일, 고봉 원묘(高峰 原妙 : 1238~1295) 선사禪師).)
사이버 수행, 전자입실電子入室
현대를 살아가는 재가 수행자가 매일 매일 입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입실 없이는 수행을 원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고안 된 것이 전자입실電子入室이다. 이메일을 통해 매일매일 입실하는 것으로, 1주일 혹은 2주일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가하면서, 동시에 그 사이 매일매일 전자입실로 점검을 이어가는 것이다.
전자입실은 시ㆍ공간을 초월하여 제약 없이 점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공부 형태는 간화선 수행을 처음 확립한 대혜종고 선사가 당대 지식인들과 나눴던 서신왕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단지 매체가 편지에서 이메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대혜종고 선사는 이러한 소통을 통해 제자들을 지도했는데, 송대『서장書狀』의 전통을 오늘날 되살린 것이 전자입실인 것이다.
이메일을 통한 즉문즉답卽問卽答(혹은 즉문즉설卽問卽說)은 공부의 진전을 빠르게 할 뿐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필자는 대부분 전자입실로 대부분의 화두들을 투과하였는데, 계속적인 동기유발을 위해서는 매일 전자입실 점검을 받고, 1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은 직접입실로 그동안의 의문점을 해소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다만 혼자서 하는 수행인만큼 수련회나 철야정진에 참여해 도반들과 함께 하며 수행가풍도 배우고 정진의 힘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좌일주칠坐一走七
‘좌일주칠坐一走七’은 『원오불과선사어록圓悟佛果禪師語錄』에 나오는 말이다.(원문은 却來這裏橫三竪四坐一走七。)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선사가 하신 말씀으로, 하루 1/8을 앉아 있고(정적靜的), 나머지 하루의 7/8은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즉 깨어 있는 시간의 8분의 1을 좌선에 쓰고, 8분의 7에 해당하는 시간은 각자의 본업에 뛰어든다는 말이다. 하루 2시간 좌선하면 나머지 시간은 어떤 잡념 없이 자유로이 일상에 매진하라는 수행 원칙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원칙은 선도회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자신의 삶 속에 걸어 들어올 것이다.
화두 또는 화두들
그럼 선도회는 우리나라 조계종 스님들과 달리 왜 이리 많은 화두들을 참구, 또 투과해야 하는가? 보통 스님들은 당당하게 말씀하시기를 화두는 하나만으로 족하다고 하는데....... 물론 우리가 아는 유명한 스님들을 살펴보면 몇 개씩 화두를 본 흔적은 있다. 그러나 입실점검 시스템이 없는 조계종 상황에서 어쩌다 만나는 제자들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모든 화두 경계들을 점검해 줄 수는 없다. 다음 예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들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허 화상은 한 젊은 스님에게 도암 행자를 충남 서산 천장사에 계신 태허(泰虛) 스님에게 맡기도록 부탁하였다。 젊은 스님을 따라 천장사에 간 도암 행자는 태허 스님을 모시게 되었다。
그 해 十二월 八일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경허 화상을 계사(戒師)로 하여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득도(得度)하고 월면(月面)이라는 법명(法名)을 받았다。
스님이 스물 세 살 되던 계사(癸巳: 一八九三년) 十一월 一일 십칠팔 세 돼 보이는 초립동(草笠童) 소년이 이 곳 천장사에 와서 하룻밤을 동숙(同宿)하게 되었다。 소년이 스님에게
『만법귀일(萬法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오라는 것만 깨달으면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고 만사(萬事)에 무불통지(無不通知)한다 하니 이것이 무슨 뜻이오?』
하고 물었지만 스님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뒤로부터 「만법귀일 일귀하처」란 화두(話頭)를 들고 공부하기에 애를 써서 어떤 때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여 며칠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지내기도 했다。
(중략)
스님이 스물 다섯 살 되던 을미(乙未: 一八九五년) 七월 二五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해 오던 의심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 하룻밤을 지내던 중 새 벽 쇠송[鐘頌]을 할 때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一切唯心造)」를 외다가 문득 법계성(法界性)을 깨달아 화장찰해(華藏刹海)가 홀연히 열리니 기쁜 마음이야 무엇에 비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빈산 이치(理致) 기운 고금(古今) 밖인데、
흰 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오고 가누나。
무슨 일로 달마(達摩)가 서천(西天)을 건너 왔는가?
축시(丑時)엔 닭이 울고 인시(寅時)에 해가 오르네。
空山理氣古今外
白雲清風自去來
何事達摩越西天
鷄鳴丑時寅日出
(중략)
공주(公州) 마곡사(麻谷寺)에 쉬어 가려고 들렀더니 옹사(翁師) 되는 보경(普鏡) 화상이 스님에게
『내가 조그만한 토굴(土窟)을 하나 묻었으니 그 곳에서 공부를 하여 보라。』 하고 말하므로 그 토굴에 가본즉 마음에 드는지라 그 곳에 머물기로 하였다。
토굴에서 공부하면서 파전(坡田)도 일구어 연명(延命)한 지 두 해째로 접어들고、스님 나이 스물 여섯 살 되던 병신(丙申: 八九六년) 七월 보름에 경허 화상이 마곡사에 들르셨다。
스님은 화상을 뵙고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죄다 고백하니
『화중생련(火中生蓮) 이로다。』
라고 말씀하였다。화상이 스님에게 물었다。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자네가 일찍이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읍니다。』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읍니다。』
『자네가「유안석인제하루]를 모르면서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만법귀일 일귀하처」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다시 조주(趙州)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드는 것이 옳다。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裁門)을 다시 지어 보도록 하여라。』
경허 화상이 떠난 후 무자 화두를 의심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날이 갈수록 경허 화상에 대한 경모(敬慕)의 념(念)이 더해 갔다。
스님은 서산 도비산(島飛山) 부석사(浮石寺)로 경허 화상을 찾아가서 날마다 법을 물으면서 현현(玄玄)한 묘리(妙理)를 탁마(琢磨)해 나갔다。
(중략)
스님이 서른 한 살 되던 신축(辛丑: 一九〇1년) 七월 말경 본사로 돌아와 머무르며 「배 고프면 밥 먹고[飢來喫飯〕 피곤하면 잠을 자면서[困來打眠])」 소요자재(逍遙自在)하였다。
스님 서른 네 살 되던 갑진(甲辰: 一九〇四년) 七월 보름날에 경허 화상이 함경도(咸鏡道)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사에 들르게 되었다。스님은 화상을 뵈옵고 몇 해 동안 공부를 짓고 보림(保任)한 것을 낱낱이 아뢰었다。화상은 기꺼이 월면 스님의 오도 경지를 인가(印可)하고 다음과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구름 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 선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한 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雲月溪山處處同
叟山禪子大家風
慇懃分付無文印
一段機權活眼中
이어 만공(滿空)이라 자호(賜號)하고 이르되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자네에게 이어가도록 부촉(付屬)하노니 불망신지(不
忘信之) 하라。』
하고 주장자를 떨치고 길을 떠났다。
(滿空法語『보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1983년, pp. 304~310.)
만공 스님은 처음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로 공부하다가 경허 스님의 점검을 받고 <무無>자 화두를 참구하게 된다. 그 후 ‘서산 도비산(島飛山) 부석사(浮石寺)로 경허 화상을 찾아가서 날마다 법을 물으면서 현현(玄玄)한 묘리(妙理)를 탁마(琢磨)해 나갔다.’고 한다. 필요에 따라 화두를 바꿀 수도 있으며 이른바 매일매일 입실점검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는 매우 많은데, 여러 화두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종달 노사님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진리에는 둘이 없다. 사고방식 또는 분해 방법은 다를지언정 최종 도달점에 있어서는 하나다. 그래서 무문관 48칙도 모두 그 원리는 같으나, 각 칙을 내놓은 사람의 성품 ․ 자질 ․ 학식 · 기풍 그리고 활용 면에 있어서는 다르다. (無門 慧開 原著, 宗達 李喜益 提唱,『무문관無門關』 p. 3.)
‘무자’로 뼈를 우선 세워 놓고, 다음에 서서히 살을 붙여보는 수밖에 없다. 두고두고 살을 붙여 놓기만 하면 결국은 완숙하게 되어 드디어 부처나 조사 스님들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無門 慧開 原著, 宗達 李喜益 提唱,『무문관無門關』 pp. 39~40.)
거기다 화두는 푸는 게 아니라는 설도 있다. 그냥 가지고 참구만 하라는 것이다. 해답을 찾는 것도 모자라 정답을 맞히면 통과한다고?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선문답은 조계종 내에서도 아주 흔한 일이다. 특히 이름이 난 우리나라 선사들은 스승과 제자 간에 선문답을 하는 전통이 있는데, 화두에 대해 견해 일치를 보았을 때 인가는 이루어진다. 내가 아는 스님에게 들은 말인데, 조계종 내에도 몇 개의 정답들이 실재하고 그 정답들로 인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실재 불교 관련 다큐를 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문제들을 내고 그에 근접한 답들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큰 스님들을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화두를 참구하면 나름 그 경계나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 견해를 서로 나누는 것이 스승과 제자간의 선문답이다. 스승은 자기가 지금까지 배운 경계들로 제자들을 점검하고 또 다른 화두들을 참구하게 하여 그 지평地坪을 넓혀주는 것이 스승의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입실제도에 대해서는 여러 논문들이 이미 나와 있다. 그중 ‘간화선의 서양 전달과 그 수용’이라는 논문 초록을 소개한다.
본고는 한국의 간화선을 북미와 서유럽을 비롯한 서양에 소개하는 데 필요한 ‘무문관(無門關)을 바탕으로 하는 간화선의 입실제도(入室制度)’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이 입실제도는 선종의 전통적인 행의(行儀)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서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으므로, 앞으로 복원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일상 의례이다. 국내외적으로 이 입실제도가 행해지는 수행단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대표적으로 선도성찰나눔실천회(선도회라고도 함), 관음선종(觀音禪宗) 등이 있고, 해외에서는 일본의 임제종과 조동종을 따르는 곳과 삼보교단 등을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화두(話頭)를 일일이 보아 나가는 이 입실제도는, 선종(禪宗)의 주요 정신 중의 하나인 돈오론(頓悟論)과 맞물려서 하나의 화두를 참구대상으로 하는 수행관의 입장에서 볼 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원리를 감안한다면 서로 대립할 필요가 없다.
입실제도를 서구문명에 적용시키고자 할 때는 무엇보다 서양문화권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 구체적인 지침으로서 필자가 만들어 온 세 가지 사례를 든다면, 첫째 진리에 대한 대화적 접근 방법, 둘째 전자우편 및 전화를 통한 입실, 셋째 서구문명에 알맞은 화두 만들기 등이다. 입실제도를 통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화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상생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서구문명에도 알맞은 입실제도의 정신이며,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범세계적으로 서로가 적시에 만나기 위한 부득이한 방편으로써 전자우편 및 전화를 통한 입실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북아 문명의 산물인 화두참구 수행법의 근거를 이루는 다양한 사상과 문화에 대하여, 최소한 해설서와 공안집의 정확한 번역서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구 사람들이 간화선 수행법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것을 모르더라도 참구 가능한 현대적 화두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서구문명에 입실제도를 성공적으로 전달하려면, 다양한 선종(禪宗 및 불교 전통이 자체적으로 서로 개방적 정신을 가지고 상호보완성을 유지해 나가야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자비롭고 겸손하게 사귈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입실제도의 바른 지도(指導)로 종교 간의 경계선을 넘나들 줄(Crossing Boundaries) 아는 정신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때 봉불살불(逢佛殺佛) · 봉조살조(逢祖殺祖)와 같은 선수행의 정신을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서구문명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가 하나의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의 서구 전달과 수용을 더욱 성공적으로 하기를 바란다면, 그 상황에 보다 더 알맞은 입실제도의 개발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우리를 더욱 더 알맞은 입실제도의 적용에로 부르고 있으니, 우리는 그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명원, 한국선학회 禪學(선학) 제26호 2010.08 pp.181-216 KCI 등재 초록, 간화선의 서양 전달과 그 수용 — 입실제도(入室制度)를 중심으로 — The Transmission & Reception of Hwadu Investigation Meditation43) (看話禪) in the West : — a Research Centered on the Master-Disciple Encounter System (入室制度) —. 책으로는, 최용운, 『숭산행원의 생애와 사상 -한국 간화선의 대중화-세계화를 중심으로-』.)
선도회 간화선 수행은 전통적인 간화선 수행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대인의 삶에 맞게 재구성된 수행 체계이다. 첫째, 입실점검을 통해 수행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둘째, 전자입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다. 셋째, 좌일주칠 수행을 통해 일상 속 수행을 강조한다. 이러한 체계는 수행의 지속성과 실천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특히 현대 사회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누구나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단계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이 수행 체계는 수식관을 통한 집중력 향상, 화두 참구를 통한 자기 성찰, 그리고 일상 속 수행을 통한 지속적 실천을 강조한다. 또한 공동체 수행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수행의 깊이를 더해가는 방식도 중요한 요소이다. 결국 선도회 간화선 수행은 단순한 수행 방법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길이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우리는 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