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척
낚시는 바늘에 꿴 미끼로 물고기를 유혹해서 잡는 아주 원시적인 고기잡이 방법이다. 수확만을 생각한다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는 것을 보면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혹자는 천하를 얻기 위해서 미늘 없는 낚싯대를 드리웠던 강태공에 빗대 세월을 낚기 위해서라고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알록달록한 찌 놀림의 환상적인 미학과 고기를 챌 때의 손끝에 전해오는 떨림의 전율에 반해서라고도 한다.
내가 낚시를 하는 이유는 이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물론 나도 처음엔 남들과 같은 이유로 낚시를 시작했으나 꾼이라 불림을 당한 이후부터는 오직 월척을 잡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낚시를 다녔다.
월척은 말 그대로 척(尺), 즉 30.3cm가 넘는 크기의 붕어를 말하는데 내가 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남들은 잘도 뽑아내는 월척을 낚시경력 십수 년을 자랑하는 내가 아직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현란한 내 낚시 허풍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위에서는 내가 낚시에 도를 통한 줄 알고 꾼이란 별호를 붙여주었고 심지어는 낚시가 신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며 조선(釣仙)이란 아부성 멘트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 실체가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했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월척 붕어를 낚은 적이 있긴 하다. 총각 시절 충북 제천에 있는 시멘트 공장에서 근무를 할 때다. 6월 말로 기억되는 어느 주말 나는 동료 직원과 함께 근교에 있는 저수지로 밤낚시를 갔다. 밤새 허탕을 치고 새벽녘에 대물을 한 마리 걸었으나 낚싯줄이 터지는 바람에 고기 얼굴도 구경 못하고 놓쳐버렸다. 허탈한 마음에 놓친 고기를 다시 잡겠다는 일념으로 아침까지 굶어가며 부지런히 미끼를 달아 유혹을 했건만 머리 나쁘기로 유명한 붕어도 다신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교대근무를 위해 동료는 철수를 하고 나 혼자 땡볕에 앉아 눈이 부르트도록 찌를 노려봤으나 무심한 찌는 말뚝처럼 처박혀 미동도 없다.
“에게, 한 마리도 못 잡았네?”
저수지에 놀러 온 동네 꼬마들이 내 곁에 있는 빈 망태기를 보며 말을 건다.
“이 저수지엔 고기가 없나보다.”
스타일을 구긴 나는 겸연쩍게 혼잣말로 받는다.
“아니에요, 고기 많아요, 지렁이를 써봐요.”
아이들 중 조금 큰 녀석이 내가 떡밥으로 미끼를 다는 것을 보고 훈수를 둔다.
“그래?”
여름에는 지렁이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아는 터라 나는 건성으로 말을 받았으나 결국엔 꼬마들이 잡아 온 지렁이를 받아 들고 과자값으로 얼마를 집어주었다.
미끼를 바꾸자 바로 입질이 왔다. 몇 마리의 잔챙이를 잡은 후 느긋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워무는데 찌가 요동을 친다. 통통하고 길쭉한 찌의 엉덩이가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대물을 직감하며 힘차게 대를 낚아챘다. 피아노 소리의 줄 튕김을 기대했던 나는 낚싯줄이 느슨해진 것을 보고 순간 실망을 했다. 줄이 끊어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끌려 나온 것은 제법 커다란 붕어였다. 근데 생김새가 오동통하고 탱글탱글한 붕어의 참된 모습이 아니다. 잉어가 아날까? 자세히 살펴보니 수염이 없다. 잉어가 면도를 하지 않았으면 붕어가 분명할 터, 뼘으로 대충 재어보니 얼추 월척은 되는 것 같았다.
철수 길에 시내에 있는 낚시점에 들렸다. 주인장이 고기의 몰골을 보더니 산란을 늦게 마쳐서 홀쭉하기는 하나 분명 붕어임엔 틀림이 없다며 줄자를 들이대고는 월척에는 약간 모자란다고 한다.
“주둥이를 잡아당기면 되겠네.”
갑작스런 내 말에 주인장이 픽 웃는다.
“어탁 떠 주쇼.”
이렇게 해서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31.8cm짜리 월척 붕어가 어탁으로 탄생을 했다.
증거로 내민 어탁을 본 주위에서는 모두들 갸우뚱거리며 심지어는 깡마른 명태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어탁은 표구로 만들어져서 내가 결혼 후까지도 한동안 거실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20여 년간 나는 줄기차게 낚시를 다녔다. 대청호, 충주호, 소양호를 비롯해서 전국의 크고 작은 저수지를 섭렵했으나 소망하던 월척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퇴직을 하고 난 지금 나는 낚시를 않는데, 간혹 물가에서 남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보면 옛일이 활동사진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입가엔 미소가 절로 난다.
내 생애 어복(魚福)은 없었으나 인복(人福)은 참 많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