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애정행각

[55회 김희근[뫼람]]

개들의 애정행각

항상 그러하듯이 점심식사 후 건강관리도 하고 몸도 좀 가꿔볼 겸

운동장 맞은편에 있는 은행나무 그늘이 약간 드리워진 흔들이 운동기구에서

두 팔로는 손잡이를 잡고 다리를 가지런히 하여

속으로 숫자를 세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박자에 맞춰서

몸을 양옆으로 열심히 흔들며 다리 힘도 기르고

배의 근육도 가능하다면 왕년의 왕王자를 회복하려

우째 교감으로서 체통이 좀 그렇긴 하지마는, 옆구리가 뻐근하도록 흔들어댄다.

‘지이금은 어디에에서 사알고오 계시이일까아,

보고파아라아 보고파아라아 나의 도옹차아앙생

그 누가 뭐라 해도 변치마세요, 그 누가 뭐라 해도 변치 말아요오

하안 평생 사랑한다고 당신마안 알고 계세에에요’

하고많은 노래 중에 왜 뜬금없이 조미미의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까.

아마 요새 이런저런 경․조사로 인해 각종 동기회를,

용골초등학교, 함창초등학교-6학년 4월 달인가 전학 왔음, 함창중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금오공과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행정학과 등

사흘이 멀다 하고 돌아다녀서 그런가 보다, 아무려나 거참 신통하다.

노래도 끝까지 다는 모르고 또 순서나 맞는지 모르겠다.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이 구절만 계속 되풀이하다 만다.

하긴 박상철의 황진이를 흥얼거리며 맞춰 봤더니 박자가 빨라서 잘 맞질 않는다.

본교에서 30여 년을 봉직하다 작년 8월 말 명예퇴임을 하신 강대감님과

상주시 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서문식당에서 보양식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자리를 옮겨 청록정이라는 곳에서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30대 중반의 젊은 여사장, 강대감님의 팔뚝을 쳐다보더니 경탄敬歎을 한다.

와, 대단하세요오, 3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해 보이십니다!

나는 드러내놓고 내색은 못했지만 은근히 충격 먹었다. 그럼 나는 뭔가.

그 뒤로 가끔씩 손잡이를 잡고 두 팔을 버티고 매달려서 몸을 축 늘어뜨리고

팔을 덜덜덜덜 떨면서 오만상 찌푸리고 팔뚝의 근육을 강화하려 애를 써본다.

다시 흔들이 발판에서 자세를 가다듬어 몸을 옆으로 흔들며

얼굴을 습관적으로 생각 없이 옆으로 얼핏 돌리는데

저 쪽 농구장 귀퉁이 전봇대 옆 모래더미가 놓여있던 자리에서

발발이 세 마리가 함께 뒹굴기도 하고 흙을 파재키며

개들이 노는 게 아주 다정스럽고 귀엽다.

나중에 보니 털이 하얀 놈은 암놈이고 두 마리는 수컷인데,

한 놈은 흰 바탕에 검은 털이 찐하고

또 다른 놈 역시 흰 바탕에 황갈색 털이 부숭부숭하다.

아 그런데 이것들이 흙을 파며 서로 뒹굴며 잘 놀다말고

우레탄 트랙으로 살랑살랑 옮겨 올라와서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라고 쓰여 있는 글자 위에서

암놈이 발정을 하는지 우째는지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우째 뭘 좀 해보려 분답게 군다.

문제는 암컷의 마음인 것 같은데 이 놈이 황갈색보다

까만 털이 많은 놈을 더 좋아하는 눈치다.

황갈색이 몇 번이고 시도를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암컷이 홱 돌아서서 작고 날카로운 앞니를 드러내며

앙칼지게 군다, 그러면 황갈색이 멈칫하고 멋쩍은 듯 물러나고

기다렸다는 듯이 까만 놈이 잽싸게 들이대며 실룩거린다.

이 놈이 마구 들이대도 암놈은 오히려 앞발로 딱 버티고 뒤로 슬슬 물러나며

까만 놈에게 제대로 자세를 취하며 기회를 주려 애를 쓴다.

까만 놈이 앞발로 암컷의 뒷다리 부위의 배를 감싸 쥐고

뒷발에 힘을 주어 버티고 균형을 잡아가며 마구 들이댄다.

우째 제대로 잘 맞지 않는지 좀 어색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까만 놈이 힘은 있어 보이는데

의욕만 앞서고 침착하지 못하며 서두르는 걸로 봐서 별로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거리도 딱딱 못 맞추고 멀찍이서

그냥 벌짱 들이대고 실룩거리다 힘만 빼고 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내가 운동하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몸을 흔들며 어쩌나 싶어 유심히 지켜보며

어림짐작컨대 좀더 앞쪽으로 배의 중간 부분을 꽉 주려 끼면 될 텐데,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데, 황갈색 놈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이 놈이 무슨 낌새를 챘는지 저희들끼리 뭐라 신호를 보내는 것 같더니만

하던 짓을 멈추고 개들이 일제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별 싱거운 놈 다 보겠다는 투다, 아니 변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 속내를 들킨 것도 같아 내 얼굴이 후끈거린다.

몰래 훔쳐보다 눈이 딱 마주쳐 크게 방해를 한 것 같아 머쓱하고 참 무안하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개새끼들이 내가 어떻게 나오나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세 놈이 미동도 않고 뚫어지게 한참 동안을 쳐다본다.

우습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참으로 기분이 묘하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주 잠시 동안 나는 개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개가 되고 개가 사람이 되어 걔들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

그들의 눈빛이나 행동은 분명 개가 아니었다.

나도 하던 운동을 멈춘 채, 눈에 힘을 주고 아래로 내려보지만

쪽수에서도 밀리고, 일단 쪽수에서 꿀리면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법,

한국 사회에서 쪽수의 위력威力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눈에 힘도 빠지고 나를 째려보지 말라고 짖으려다, 나는 꾹 참았다.

내가 짖고 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것 같다

농구장에서는 고등학생들 몇 명이 번갈아가며 슛을 쏘고 있고

운동장에는 중학생 몇이서 교복을 입은 채로 축구공을 펑펑 날리고 있다.

개들의 행동에 별 관심도 없던 학생들이 몰려오면

이 상황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곤란할 것 같아서다.

학생들의 눈에는 개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비치지 않았고,

개들은 그냥 그렇게 하면서 노는 것이라며

선생님이라는 분이 혼자서 이상한 상상을 한다고 치부하면

나만 우스운 사람이 되어, 아무래도 개들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전개될 것 같아서

없었던 일로 하기로 혼자 어려운 결정을 했다.

불량 감자들이 아무데나 침을 택택 뱉으며 아무거나 걸리는 대로 걷어차듯이,

어떤 놈은 오른쪽 다리를 옆으로 삐죽거리며

아주 같잖다는 듯이 별 용기도 없는 놈이 웃긴다는 듯이

대가리를 갸웃거리며 아까 놀던 모래더미 쪽으로

실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을 치며 몰려간다.

아, 이 놈들이 불량기가 다분하다

그래도 오른쪽 뒷다리를 들고 오줌을 찍찍 갈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저희들은 그게 노는 것인데 괜히 너무 오버한 것이라는 듯이

보란 듯이 아예 내놓고 더욱 야단시리 군다.

그런대로 긴장감이 해소되고 일단락되어 다행이라 여기며 본정신이 돌아온 듯하다.

그런데 암놈을 두고 행하는 이 놈들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에 즐겨보던 TV의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강자와 약자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암컷을 사이에 두고 수컷 간에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황갈색이 시도할 때는 까만 놈은 옆에서 실실 부비면서

방해 비슷한 것을 하면서도 그래도 그냥 기다려주는 눈치다

그러다 황갈색이 쫓겨나면 까만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대고 씰룩거리다 실패하고 만다.

암놈은 대가리를 살살 흔들어 까만 놈의 가슴팍에 대고 부비며 재롱을 떤다.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옆에서 봐도 지나칠 정도로 표 나게 군다.

까만 놈이 더 젊은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매력이 있단 말인가

그때 배척당하는 황갈색은 또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암놈의 취향이 별나서 그러려니, 아니면 성깔이 더러워서라고 위로라도 하는 건가.

뭘까?

뭐가 있기에, 뭐가 다르기에 어떤 놈은 환영을 받고

또 어떤 놈은 저렇게 모질고도 앙칼지게 배척을 당하는 걸까

또 그래 그렇게 배척을 당하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물러날 일이지

끝까지 따라다니며 집적되는 심보는 또 뭔가,

별 치사하고 한심한 놈 다 보겠네, 암놈이 그렇게 싫어하면 말일이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역설적逆說的인 주장을 펴서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던 김경일 교수는

「사서삼경을 읽다」에서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을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타인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하고,

더 나아가 기소불욕己所不欲 물방인도勿妨人圖라고 하여,

자기가 하기 싫더라도 남이 하려는 것을 방해는 하지 말라고 역설力說하였다.

황갈색이 자기가 싫어하지는 않더라도, 남이 하려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이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련한 놈, 그래도 저를 따르지 않는다고, 받아주지 않아도

해코지를 하지 않으니 어찌 보면 그 참으로 기특하다. 진실로 아끼는 건가 뭔가.

모든 걸 제 탓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개가 그런 점에서는 사람보다 나은 점도 있구나.

사람들은 도부동道不同이면 불상위모不相爲謀하면 될 것을,

자기와 노선이 다르다고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라도 되는 듯이 으르렁거리거늘

황갈색 그 놈 그래도 참 신사답다.

우리 주변에는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아니, 아주 많다!

정작 자신은 들보를 등짐 지듯 등에 짊어지고도

남의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지극히 작은 티눈을 핀셋pincette으로 호집어파서

혀끝에 올려놓고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다가 기발한 의미까지 곁들여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아주 놀랄만한 뜻밖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기막히다!

까발려서 동조자를 모으는 모습, 참으로 정구죽천丁口竹天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다른 사람은 다 보고 있고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니 본인도 알면서 그것을 호도糊塗하기 위해서,

또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상대방의 사소한 오류를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 딴지를 걸어야만

자신의 존재가 돋보인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재미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惡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善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外飾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오, 이러한 진리眞理들은

진실로 나에게 이르는 엄중嚴重한 말씀이로구나!

오늘 나는 개도 되었다가, 독사의 자식도 된 것 같다.

2009학년도 1학기 2차 지필평가 마지막 날인 7월 3일 금요일,

비가 오락가락해서 다른 날보단 시원한 오늘

개새끼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63회 박미경]

ㅎㅎㅎ 개들의 생태계를 집중탐구하여 종족보존의 거창한 행위를 상세하게 묘사할까봐~ 눈을 부릅뜨고 읽다가...그만 실없이...(나도 변태인가? ㅎㅎㅎ)
하여간 김희근선배님의 가정방문기를 비롯하여 글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바쁘신가운데 많이 좀 올려주소서~!

[54회 김한식]

기록을 많이 해놓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책으로 출판 하셔야 겠군요

[47회 윤승길]

후배님은 교사를 천직으로 타고나신 분인듯 합니다. 이토록 사물은 세밀히 관찰하고, 기록을 해 나가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게 됩니다. 우리 초딩때 방학숙제에는 언제나 일기쓰기가 빠짐없이 있었는데, 나는 한번도 일기를 제대로 써 본일이 없습니다. 개학을 하루나 이틀 앞두고 한달치 일기를 쓰곤 했는데, 가장 애로사항이 반드시 들어가는 날씨였습니다.
일주일만 지나도 아리까리한 날씨를 한달을 소급해서 기억할 방도가 없었으니....ㅠㅠㅠㅠ
고민하다가 얻은 결론 날씨는 비워두고 내용은 창작을 하되, 개학해서 친구들 일기에서 날씨만 컨닝을 했습니다.

[47회 윤승길]

초딩때부터 이렇게 눈치와 편법으로 단련된 이 몸은 지금도 기록을 잘 하는 분을 엄청 존경합니다.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기록을 철저히 하는 분들은 모두 자기관리가 철저한 분들입니다.
수능으로 표현한다면 내신 1등급은 거의 이런 분들이지요. 함창의 훌륭한 후배님을 알게되어서 기쁩니다.

[55회 김희근[뫼람]]

선배님, 한번도 뵙지를 못했지만, 저의 꼴같잖은 글마다 격려를 해주시니 광영이옵니다!
환절기에 두루 평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옵소서~!

[59회권정희]

사랑하기 좋은 계절입니다~더불어 개들도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