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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친한친구
1. 십자가의 전승역사
1) 십자가의 어원
십자가의 어원은 헬라어의 “스타우로스”는 “히스테미”라는 동사에서 파생이 되었다.
그 어근은 “세우다” 라는 뜻이며 본래는 “수직 버팀대”, 또는 “말뚝”을 뜻한다.
영어로는 십자가를 크로스(cross) 라고 하는데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크룩스(crux)
를 번역한 것이다. 그 뜻은 십자가, 수난, 고난, 시련, 교차된, 엇갈린, 등의 뜻이 있다.
2) 십자가 전승의 유래
십자가는 기독교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고대 민족 사이에서 종교적인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부터 시작된 십자가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적 상징
이되어 앗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를 거처 로마까지 전래되게 되었다.
십자가의 처형의 시작은 페르시아 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용 목적이 죄인들을 처형하기 위한 형틀로 사용하기 시작이 된 것은
페르시아인들의 민간신앙 때문이다.
그들의 신앙에서 이 땅은 자신들이 믿는 올므즈[Ormuzd]에게 바쳐진 신성한 대지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 땅은 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죄인들을 처형한다면 신에게 받쳐진 땅이
더럽혀지게 되므로 죄인을 땅에 그대로 처형할 수가 없다는데서 그러한 처형 방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죄인들을 처형 할 때 시체를 땅에 닫지 않도록 높이 매달아 처형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십자가의 처형이 생기게 되었고 그때부터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형틀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처형 방법은 페르시아에서부터 북 아프리카 카르타고로 건너갔고
카르타고에서 다시 로마로 전하여 지게 되었는데 이 처형 방법을 배워
로마로 처음 도입하게 된 사람은 알렉산더(Alexander the Great] 대왕이다.
로마에서 십자가에 처형이 되는 죄인들은 로마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반란자나 노예계급에 속하는 가장 극악한 범죄자들에게만 적용이 되었다.
바울이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지 않고 참수형에 처해 졌던 이유 중에 하나도
당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베드로는 이방 민족이었기에 십자가 형에 처해 졌다고 역사가들에 의하여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처형 방법은 당시 로마인들에게는 민중 등급을 서로 구별 했던 관례와 일치하기도
한다.
죄인에게 사형의 언도가 내려지면 곧바로 죄목을 쓴 목판을 목에 걸고 가죽 채칙으로 심한
매질을 하며 나무 횡대를 어깨에 메고 처형 장소까지 가서 미리 세워 놓은 말뚝에다 처형관
들이 달아 놓거나 못을 박았다고 한다.
역사가 요세프스는 “팔레스틴에서의 이러한 십자가 처형은 다 반사였다” 라고 전한다.
이러한 십자가의 처형은 312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동서 로마간의 전투에서
최후 승리를 얻은뒤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하여 기독교를 자유화하고 392년에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 하면서 신적인 권위를 지닌 로마황제와 로마 제국을 상징
하는 독수리를 예수의 십자가로 바꾸면서 십자가의 처형은 사라지게 되었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
케로는 십자가의 처형 방법을 이렇게 설명한다.“십자가의 처형은 가장 잔인하고 가장
가공할 처형이다”. 이처럼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형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잔혹한 처형 방법이다.
그러한 십자가에 예수님께서도 죄 없이 달려 돌아 가셨다.
그런데 그렇게 비참하게 사람들을 처형하던 십자가는 예수께서 달려 돌아가시면서
치욕과 저주의 십자가가 오히려 용서와 사랑과 영광과 승리의 십자가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무 십자가나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만이 기독교회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의 십자가는 사망과 저주의 십자가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뒤부터 그 십자가는 기독교회의 자랑의 상징으로 변모
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인간 구속 사역의 완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과 하나님과 사이의 막힌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열었던, 유일무이하게 목적을 이루게 했던 표상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십자가의 사상을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해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전한다(고전 1:18).
죽음의 십자가에서 생명의 십자가로 바뀌게 되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어떤 죄인이라도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고
새 사람이 되는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3. 십자가의 자유와 역사
죄인들을 처형하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신 뒤에는 죽은자를 살리는 생명의 십자가로
바뀌고 포로와 억압된 자를 자유케 하는 십자가가 되었다.
즉 문자적인 의미의 십자가를 넘어 멸시와 천대, 고통과 피 흘리심 속에 인내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사랑과 모든 죄를 이기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이룬 그 사랑이 인간의 삶속에 참된 자유를 준다. 그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속에 이루신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적인
자유에서 외적인 정치적인 자유를 맞이하게 된다.
1) 십자가와 정치적 자유
가장 악한 죄인들을 처형하던 저주와 멸시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짊어 지신 뒤부터 그 십자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외적인 자유를 허락하셨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재위하던 시기에 동서 로마간에 최후의 결전장이었던
밀비안 다리(MiBian Bridge)에서 전쟁이 발발하기전 정오를 조금 넘는 시간에 하나님
께서는 로마장수 콘스탄티누스에게 역사 하셨던 것 이다.
태양위에 밝은 광채와 더불어 불 십자가가 나타나더니 “이 표로 군기를 삼으면 승리하리라”
는 글씨와 음성이 드렸던 것이다[xp].
이 소리와 글은 콘스탄티누스 혼자서 들은 것이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전 군인들이
다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밤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어 또 다시 십자가를 보이시면서
이것으로 군기를 삼고 전쟁에 나가라는 계시를 본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과거에 사용했던
모든 군기를 다 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군기만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끄는 서 로마 군대가 동 로마 군대를 이끄는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
하므로 로마를 통일하게 되면서 그는 약관 24세의 나이에 서방 최고의 통치권자가 되었다.
그후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동방의 리키니우스와 기독교 박해를
종식시키는데 합의를 이루게 되었고 기독교회는 이때부터 신앙의 자유를 맞이하게 되었다.
밀라노 칙령의 요지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통치자를 승리하도록 돕는
신의 은총(divinus favor)이다”라고 한다. 콘스탄틴 대제에게 보여 주셨던 신의 은총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토록 수많은 고난을 당하던 믿음의 선진들에도 신의 은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즉 신앙의 자유가 찾아온것이다.
이 때부터 기독교는 로마라고하는 거대한 나라를 등에 업고 세계로 확산되는 역사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 십자가 사용의 역사
십자가의 사용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부터 기독교회의 상징으로 사용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고대 시대부터 사용이 되어오던 것이다. 그리스도 이전의 십자가는
이교도들의 종교 행사에서부터 쓰여지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달려 죽으시기까지의 이전에 까지는 수치와 고통과 저주의 상징이던 십자가는 예수님
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달려 돌아가신 뒤부터는 십자가의 새로운 혁명이 일어났다.
주님이 오시기 이전의 시대를 어두운 시대라고 한다면 주님이 오신 이후의 시대가 밝은
새로운시대 였듯이 저주와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 주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달려 돌아가신 그 순간 이후부터 용서와 명예의 회복과 죽은자를
살리는 주권회복의 상징이 되었다.
이 때부터 십자가는 기독교회에 많은 정신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따라서 그토록 핍박 당하던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313년 신앙의 자유를 맞이하게
되었고 신앙의 자유는 곧 바로 삶의 여유와 부와 명예와 권세로 까지 회복이 되었다.
긴 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기독교회는 전 세계로 확산이 되게 되었고 그동안 압제로
인하여 움추렸던 교회들은 영광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교회의 체제를 정비하고 라테란의
요한 성당과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그리고 성지 등을 건축하는데 많은 물질적 뒤받침을
해 주므로 그동안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성지의 기념 교회들을 이 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죽음과 저주의 십자가는 생명 구원의 자랑스런 십자가로
하늘 높이 세워지게 되었다.
3) 십자가의 성경적 자유
십자가의 능력은 로마 시대 정치적인 압박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예수를 믿는데 외적인 조건으로부터의 어려움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세계로 전하여 지게 되었는데 복음이 전 세계로
전하여 지고 종교의 생활이 자유해 졌다고 해서 내적인 자유까지 맞이하였다고는 할 수 없다.
요한복음 8:32절의 말씀을 보면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맞이하려면 진리를 바로 알아야
참된 자유가 찾아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런가 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진정한 신앙의 자유는 주의 영이 있는 곳
에 참된 자유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고후 3:1).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사람은 그 자유로 다시는 종에 멍에를 메는데
그 자유를 사용하지 말라고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했습니다(갈 5:1).
4. 성경을 통해서 본 십자가
서양 속담에 NO Cross NO Crown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뜻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말씀을 하신다.
제자가 되기 위한 우리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님을 따르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부모나, 처자, 형제, 자매, 및 자기목숨 등(눅 14:26)이다.
1) 구약의 십자가
구약의 십가자의 표상은 민수기 21:4-9절의 모세의 놋뱀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호르산에 이르렀을 때 에돔땅을 지나갈 때 에돔 사람들이 방해
하는 바람에 그들은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 불평을 하게 된다.
이때 하나님은 불뱀들을 통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던 그 백성들을 물어 죽이게 만들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하나님 저희들에 죄를 용서 하여 주소서 만약
저희들을 여기서 모두 죽게 하신다면 저들을 바라보던 자들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위에 달라 그것을 보는자 마다 살리라 말씀하셨다.
모세는 그 말씀을 듣고 불뱀을 만든 것이 아니라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불뱀에
물린 백성들에게 외친다. 놋뱀을 바라보라 놋뱀을 바라 보는자마다 다 살리라.
말씀을 믿고 바라 보는자는 다 치료받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또 하나의 십자가의 표상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드리던 번제단이다.
어린양이 죽음으로 그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죽음의 십자가에 능력은
살리는 역사가 나타난다(출 12:1-11). 또 하나의 십자가의 표상은 성막을 만든 뒤
제사장들을 통하여 백성들이 가지고 온 양을 잡았던 번제단이 십자가의 표상이다(출 38:1).
2) 신약의 십자가
신약의 십자에서는 마태복음 27:45-46절과 마가복음 16:33-34절과
누가복음 23:26-43절, 요한복음 19:25절 등이 근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꾸어 놓은 십자가이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다시 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이다.
3) 성도들의 십자가
예수를 믿는데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일까 모두가 깊이 생각하고 만약 십자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받아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유대인의 처형방법은 칼로 목을 베어 죽이는 참수형과 목을 베는 교수형과 돌을 던져
죽게 하는 투석형이나 사자등 맹수의 밥이 되게하는 처형 법들이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바로 알고 그 십자가를 지고 갈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이다.
4) 십자가의 부정적 견해
초대교회 때는 화상예배가 성행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교회 안에 믿음의 사람들의 화상을
걸어놓고 그것들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동로마교회는 726년에 콘스탄틴5세에
의하여 교회 안에서 일체의 화상예배를 중지하고 교회 안에 걸어 놓은 화상이나 십자가,
휘장 등을 모두 제거하라는 결정을 하였다.
서로마교회는 787년 제 7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 천사, 성모, 성자의 화상을 인정하고
예배는 화상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신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며 분향을 허락했었다.
이러한 화상 예배의 문제는 후에 동서 교회가 분리되는 원이 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개혁교회들도 교회 안에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도 있다.
부정적인 그들의 견해는 십자가를 너무 신성시 한다는 것이다.
열왕기하 18:4절의 말씀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놋뱀을 히스기아가 통치하던
시대까지 신성시 하여 우상처럼 섬겨 왔음을 알수가 있다.
“여러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트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 때까지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기독교내의 모든 상징물들은 예수 이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셔야 했던 예수를 생각나게 하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갈수 있도록 신앙을 돕는 상징물일 뿐이다.
- 믿음의 글에서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