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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에 바라보는 달나라 계수나무 |
9월은 한가위가 들어있는 달이다. 지금부터 30~40여년 전만해도 국민의 70%이상이 농사를 짓던 시절이다. 한가위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쳐다보며 한 해 동안 고생으로 얻어진 수확의 넉넉함을 즐겨왔다.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찧는 토끼,조선시대 민화>
첫째 상상속의 달나라 계수나무부터 알아보자. 옛날 중국의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은 잘못해서 옥황상제로부터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기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상처 난 곳에서는 새 살이 금세 돋아났으므로 넘어지지 않고 아직도 도끼질을 계속하고 있다. 또 항아(姮娥)라는 여인은 활쏘기의 달인인 남편 예(羿)가 어렵게 불사약을 구해다 놓고 잠깐 외출한 사이, 혼자서 두 사람 분을 한꺼번에 먹어치우고 그대로 달나라로 도망쳐 버린다. 그녀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토끼로 변했다고도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설화들은 뒤섞여서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다.
<늦가을에 핀 목서 꽃>
둘째는 옛 사람들의 시가 속에 나오는 계수나무다.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왕유를 비롯하여 수많은 우리나라 시인들도 계수나무를 찬양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옛 사람들의 시에 등장하는 계수나무의 특징을 종합하면 싸락눈 같이 작은 꽃, 피는 시기는 가을, 향기가 강한 꽃 등이 특징이다. 따뜻한 지방에서 흔히 정원수로 심는 ‘목서’라는 나무와 특징이 거의 일치한다. 중국의 이름난 관광지 계림(桂林)의 계수나무는 바로 이런 목서의 종류다.
<그리스에서 만난 월계수>
셋째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계수나무다. 해의 신 아폴론은 짝사랑하던 다프네를 끈질기게 쫓아가자 그녀는 한 그루의 ‘Laurel’이란 나무로 변해버린다. 그 후 아폴론은 이 나무로 머리장식을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본 따 승리자에게 나뭇가지로 얽어 짠 월계관을 씌워 주었으므로 이 나무를 처음 번역할 때 월계수(月桂樹)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름만으로는 보면 달나라 계수나무란 뜻이다.
<육계나무의 잎 모습>
넷째는 수정과의 톡 쏘는 매운 맛을 내는 데 향신료로 쓰이는 계피(桂皮)나무와, 한약재에 주로 이용되며 약간 단맛과 향기가 나는 육계(肉桂)나무도 계수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광릉수목원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계수나무>
<완벽한 하트 모양의 계수나무 잎>
마지막으로 식물도감에서 찾을 수 있는 ‘계수나무’란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일본 계수나무다. 그들은 한자로 ‘계(桂)’라고 쓰고 ‘가쯔라’라고 읽는다. 처음 수입한 분이 글자만 보고 계수나무라고 하여 그대로 공식 이름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1929년 경 심은 것으로 짐작되는 광릉수목원의 계수나무가 가장 굵고 오래되었다. 잎 모양이 완벽한 하트 모양이고 캐러멜과 같은 달콤한 향기가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풍기고 있어서 사랑의 나무라고도 한다.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계수나무>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땅 위의 계수나무는 옛 사람들이 상상 속에 그려온 달 속의 계수나무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강이 날카로운 도끼날로 제 아무리 힘을 써도 결코 찍어 넘길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영생불멸의 나무란 한낱 우리의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해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달님은 우리 모두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계수나무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목서라는 좀 생소한 나무에서부터 다프네의 슬픔이 녹아 있는 월계수와 향신료로 쓰이는 계피나무나 육계나무를 비롯하여 일본에서 온 식물학상의 계수나무까지 ‘유사 계수나무’의 사연은 갖가지다.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고 짖어대는 개, 김득신의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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