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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토에서 남쪽으로 버스를 타고 네 시간 남짓 내려가면 울창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나온다. 온천과 폭포와 숲에 둘러싸인 마을 바뇨스다. 에콰도르 아웃도어의 종결지로 부를만한 곳이자 에콰도르 아마존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몸을 쓰는 즐거움과 온천욕을 동시에
키토에서 남쪽으로 버스를 타고 네 시간 남짓 내려가면 울창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나온다. 온천과 폭포와 숲에 둘러싸인 마을 바뇨스다. 에콰도르 아웃도어의 종결지로 부를만한 곳이자 에콰도르 아마존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몸을 쓰는 즐거움과 온천욕을 동시에
작은 온천 마을 바뇨스는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남미 여행이 9개월이 되어가니 몸과 마음에 피로가 쌓여간다. 지친 심신에 휴식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바뇨스로 향했다. 하지만 거리에 가득한 래프팅, 라펠링, 산악자전거, 승마 등의 아웃도어 사진을 보니 나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진다. 쉬는 건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제일 먼저 시도한 건 폭포에서의 라펠링. 몸에 로프를 매달고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뚫고 내려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과감히 물속으로 점프하기. 그 과정에서 안경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고를 겪고 만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다음날은 렌즈를 끼고 래프팅에 도전한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안전 교육을 받고, 노 젓는 법을 배운 후 출발. 우리 가이드 에두아르도는 래프팅 국제대회에 참석하느라 강원도 인제에도 왔던 실력파. 왠지 든든하다. 보트를 강에 띄우고 보니 의외로 물살이 세고 바위가 많아 난이도가 꽤 높다. 레벨 3과 4를 오가는 래프팅이라 급물살이 흐르는 곳에서 보트가 뒤집히거나 물에 빠지는 일이 종종 생긴다. 우리보다 앞서거나 뒤에 오는 팀은 다들 한 번씩 보트가 뒤집어지는 사고를 겪는다. 하지만 다국적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호흡도 잘 맞는 데다 에두아르도 덕분인지 바위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잘도 나아간다. 결국 마지막까지 뒤집히는 사고 없이 잘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오랜만에 있는 힘껏 노를 저었더니 팔이 뻐근하다. 그래도 몸을 쓰는 즐거움을 만끽한 래프팅이었다.
바뇨스의 강과 계곡에서는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이틀간 야외 활동을 즐기고 나니 느긋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때마침 오늘 바뇨스에는 비가 내린다. 아침에 수영복을 챙겨 온천으로 향한다. 시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니 피시나 살라도 온천. 4개의 탕 중 가장 뜨거운 탕에 들어가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빼곡하다. 가장 뜨겁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딱 알맞은 정도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노곤한 몸이 풀려가며 졸음이 밀려든다. 꾸벅꾸벅 졸며 한 시간쯤 몸을 풀고 마을로 돌아온다. 다음 날은 마을에 있는 온천으로 향한다. 폭포가 바로 앞에 있어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 몸을 담그고 해지는 마을과 산을 오래 바라봤다. 쉬는 김에 더 오래 제대로 쉬자는 마음이 생겨 다음날은 아예 마을의 수영장을 찾아간다. 수심 2미터의 물에서 수영을 하고 자쿠지와 사우나, 터키식 증기탕을 오가며 쉰다.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여유로운 생활인지...
부겐빌레아가 활짝 피어난 바뇨스
며칠간 쉬며 피로를 덜어낸 후 트레킹에 나선다. 오랜만에 날도 화창하게 개었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지만 상쾌하다. 숙소 뒤로 난 길을 따라가니 ‘Sendero Bellavista' 안내판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완만한 언덕길을 30분쯤 걸으니 전망대. 자그마한 카페도 있고,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보니 바뇨스가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알 것 같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십 분이면 끝나지 않을까. 잠시 쉰 후 다시 발을 옮긴다. 여기서 이웃마을 룬툰까지는 2킬로미터. 길은 이제 숲 사이 좁고 가파른 흙길로 변한다. 어두운 길을 빠져나오니 도로. 도로 건너편으로 다시 이어진 숲길. 그렇게 몇 차례 반복하니 룬툰 마을이다. 산을 파서 세운 비닐하우스들이 곳곳에 무덤처럼 솟아 있다. 일하는 이들이 틀어놓았는지 어디선가 라틴팝이 들려온다. 마을은 조용하다. 활화산이 보이는 전망대까지는 이곳에서 10분 거리라는데 길을 잃고 만다. 헤매고 헤매다 겨우 찾아갔지만 구름에 가려 화산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마을로 돌아온다. 기분 좋은 3시간의 산책이었다.
트럭을 개조한 치바 버스. 바뇨스
다음날은 주변의 폭포를 둘러보는 폭포 투어에 참가한다. 치바 버스라는 이름의 알록달록한 트럭에 올라탄다. 트럭 안에는 대부분 에콰도르 관광객들이다. 양옆이 뚫린 트럭은 경쾌한 라팁 팝을 크게 틀어놓고 달려간다. 아고얀 폭포를 시작으로 바위에 새겨진 사람의 얼굴(예수의 얼굴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미사를 드리러 오기도 했단다. 건너편 절벽에는 마리아 형상을 한 바위도 있다)을 보고, 리프트를 타고 왕복하는 쌍둥이 폭포 만토데라노비아 방문. 그 다음엔 멀리서 파욘델디아블로 폭포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는 70미터 길이의 마차이 폭포를 찾아간다. 젖은 숲 사이 좁은 길로 15분쯤 걸어가니 제법 웅장한 폭포가 기다리고 있다. 물이 제법 깊어 수영도 할 수 있는데 날씨가 나빠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다. 잠시 발을 담그고 쉬다가 다시 트럭을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단돈 6천원에 이런 투어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에콰도르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예수의 얼굴을 한 바위는 원주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바위. 바뇨스
바뇨스에서 일주일 가까이 푹 쉰 후에 알라우시로 향한다. ‘악마의 코(Nariz del Diablo)’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원래는 리오밤바에서 출발하는 기차로 지붕에 앉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몇 년 전 안전을 이유로 금지되었다. 이제는 알라우시에서 시밤베 역까지 왕복하는 세 량짜리 나무 기차만 운행 중이다. 1902년에 개통된 이 노선은 에콰도르 철로 중 가장 험난한 곳으로 급커브가 이어지고 스위치백으로 운행된다. 철로를 설계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기술자 눈에 역 뒤편의 산이 사람의 코로 보여 ‘코의 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가파른 산길 사이로 철로를 건설하는 동안 5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악마의 코’ 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이드가 기차의 역사와 건설과정의 일화를 이야기해준다. 알라우시를 출발한 기차는 협곡의 녹음 사이를 느릿느릿 달려간다. 산기슭에 달라붙듯이 바짝 붙어 달리다가 멈추는가 싶더니 열차가 뒤로 가기 시작한다. 몇 번의 스위치백을 반복한 후 악마의 코 밑부분에 해당하는 시밤베 역에 열차가 멈춘다.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와 밖을 내다보니 주민들이 전통춤을 추며 맞아준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니사그 부족의 박물관을 둘러보며 쉰다. 관광객이 아니었다면 벌써 사라졌을 기차가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다행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