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년이 아닌 올해 2월은 28일이 끝이다. 2월 29일이 없는 게 다행이다. 안 그러면 ‘2·29 사태’가 터질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리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지금 시애틀은 악몽의 ‘4·29 사태’가 터졌던 꼭 20년 전의 LA 상황과 찜찜할 정도로 닮았다.
4·29의 주인공은 로드니 킹이었다. 흑인 부랑배인 그는 경찰차량이 길게 꼬리를 이으며 추격하는 가운데 거미줄 같은 LA의 프리웨이를 누비고 달아나다가 마침내 붙잡힌 끝에 10여명의 경관들로부터 곤봉세례로 몰매를 맞았다. 1991년 3월4일이었다.
LA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킹의 경우는 달랐다. 누군가가 몰카로 찍은 비디오를 TV 방송국에 넘겨 경관들이 킹을 개 패듯 폭행하는 장면이 방영되자 흑인 밀집거주지역인 사우스 LA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한인 그로서리 업소들이 많은 곳이다.
폭행 경관들을 형사 처벌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LA 타임스 등 주요 언론들도 LA 경관들이 특히 소수 민족계에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며 성토했다. 그러나 막상 4월29일 열린 재판에서 킹 폭행에 연루됐던 경관들은 모두 무죄판결로 방면됐다.
그날 저녁 사우스 LA에서 폭동이 터졌다. 폭도들이 한인 그로서리를 포함한 업소들을 차례로 털며 불을 질렀다. 광활한 LA 하늘에 검은 연기기둥이 점점 많이 치솟았다. 이틀 뒤엔 40여 마일 북쪽인 한인타운까지 초토화됐다. 당시 필자가 일했던 한국일보 미주본사 바로 길 건너 편 상가에서도 폭도들이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약탈해갔다.
요즘 시애틀 다운타운도 며칠째 뒤숭숭하다. 물론 약탈이나 방화 같은 끔찍한 사태는 없지만 크고 작은 군중시위가 꼬리를 잇는다. 시위자들이 흑인 아닌 인디언 원주민들 위주라는 점이 다를 뿐 폭력경관을 처벌하라는 구호는 20년 전의 LA와 똑같다.
시위의 발단도 비슷하다. 떠돌이 장승조각가였던 원주민 존 윌리엄스를 마치 사형수 처형하듯 사살한 시애틀경찰국의 이안 버크 경관을 뜻밖에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 기폭제였다. 버크가 재판조차 받지 않게 돼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킹 카운티의 댄 새터버그 검사장은 버크 경관이 ‘악의적으로’나 정당방위에 대한 ’확실한 소신’ 없이 총격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를 형사범으로 기소할 수 없다고 16일 발표했다. 지난 4반세기동안 지켜져 온 워싱턴주 주법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상식론을 신봉하는 보통사람들에겐 통할 리 없었다.
일촉즉발이던 상황은 버크경관이 당일 스스로 사표를 냄으로써 크게 누그러졌다. 존 디아즈 경찰국장은 버크의 사표제출에 앞서 그의 총격행위가 경찰국 자체조사 결과 정당방위가 아닌 것으로 판가름 났다며 수주일 내 그를 파면시킬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었다.
그는 버크가 사임으로 면책되는 건 아니라며 그가 앞으로 다시는 경관노릇을 못 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디아즈 자신도 그것으로 면책되는 건 아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시애틀 경관들의 폭력행위가 최근 잇따르자 연방 법무부가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4·29 사태 후 LA 경찰국의 근본적 체질개선을 위해 워렌 크리스토퍼 전 국무부차관이 이끄는 10인 특별위원회가 구성됐었다. 이 위원회는 100일간의 조사 끝에 ▲경찰의 폭력 및 인종차별에 대한 신고를 제도적으로 처리할 것 ▲경찰활동을 무력위주에서 예방위주의 커뮤니티 봉사중심으로 전환할 것 ▲경관들에게 다인종문화를 강습시킬 것 등을 건의하는 보고서를 발표해 전국의 정계, 법조계, 언론계로부터 ‘완벽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시애틀경찰국도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보고서를 모를 리 없다. 그대로만 따르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고, ‘2·29 사태’ 따위의 엉뚱한 염려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19-11
첫댓글 잘 읽엇습니다.
게 중에는 읽은 글도 있고 읽지 않은 글도 있는데 지금 제 눈에는 월레스 폴스의 소월 시비가 아른거리는군요.
아직 가보지 않있지만 기회를 만들어 그곳에 가면 저도 자리를 한 번 보고 오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회장님, 적당한 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림의 떡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