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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에베소서 2:1-10
오늘의 찬송을 작시한 존 뉴튼은 이 찬송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구원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아무리 주홍 같은 심각한 죄가 있다 할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사 1:18, 벧후 3:14). 오늘 찬송에서 이 같은 죄 사함의 기쁨을 노래한 존 뉴튼은 1725년 7월24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7세 되던 해에 경건한 신앙인 이었던 어머니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습니다. 계모와 늘 갈등이 있었던 존 뉴튼은 12살 때 가출하여 아프리카로 가는 노예선의 선원이 되었고, 나중에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아프리카 흑인들을 유럽에 내다파는 노예매매의 큰 손이 되었습니다. 존 뉴튼은 사람을 물건 취급하듯 하는 무법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존 뉴튼이 변화된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어린 시절 친모가 건네준 책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읽게 됩니다. 그리고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하여 죽음 직전까지 맛보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두려움을 깨닫고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하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존 뉴튼은 훗날 유명한 설교가인 휫 필드와 웨슬리의 영향으로 설교자가 되었으며, 1764년에는 영국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주님의 위대한 사랑과 구속의 은혜를 말씀과 찬양으로 증거 하다가 1807년 12월 21일 78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존 뉴튼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또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과거의 모든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그의 마음을 가득 메워졌을 때, 그 감격으로 쓴 시가 오늘 이 찬송의 가사입니다. 이렇개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시로 지어 전통적인 흑인 영가에 가사를 붙여 “어메이징 그레이스”라고도 하는 이 찬송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1절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존 뉴튼이 거듭나기 전 행하였던 죄악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신매매의 죄악이었습니다. 인신매매의 행위가 가장 극악하고 저주받아 마땅한 죄악인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은 죽이는 한 순간의 고통으로 끝나지만 노예매매 행위는 산 사람을 죽음의 골짜기로 보내는 거와 같기 때문에 끌려가는 사람에게는 더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요사이도 노예 매매상과 같은 악덕 포주가 경찰에 잡혀 쇠고랑을 차는 사건이 신문에 종종 실리는 것을 봅니다. 더욱이 자기의 여자 친구를 돈을 받고 남자 친구에게 소개하고 또는 사창가에 팔아넘기는 사건들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원조교제는 사회문제화가 되어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신매매와 노예매매의 죄악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로 가장 무겁게 다스리는 죄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나쁜 일들을 오늘의 찬송을 작시한 주인공 존 뉴튼 목사님이 저질렀으니 이 얼마나 큰 죄악입니까?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죄악을 다 씻어 버리고 주님을 영접하므로 구원을 얻었으며 목사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와 비슷한 고백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1:13~15에서 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바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은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핍박하던 죄인이었고 스데반을 돌로 죽이는데 앞장섰던 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죄인 중의 괴수가 주님을 만남으로 변하게 되어 이렇게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이 믿음의 본을 좇아 존 뉴튼 목사님도 거듭남의 크신 은혜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같이 붉고 크다 할지라도 요한일서 1:9처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랑의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나니 어찌나 좋은지 앉으나 서나 주님 생각뿐이요 주님께 감사할 뿐이라는 찬양의 고백이 1절의 내용입니다.
2절입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2절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복된 시간은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임을 존 뉴튼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간증하고 있습니다(롬 6:22). "나 처음 예수 믿은 그 시간이 가장 귀하고 복되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순간(요 1:12) 내 죄는 사함 받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23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했듯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두움에 포로가 되었고,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악 그대로 내버려두지 아니 하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자녀로 부르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속의 피를 믿을 때 죄에서 구원함을 받고 영생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0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화목되었은 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 아들의 살으심을 위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만남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엡1:6).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영접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누리는 축복을 맛보게 된다고 베드로전서 2:9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귀한 축복을 사탄은 어떤 핑계를 되어서라도 누리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못 믿게 하려고 갖가지 핑계를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구원함을 받은 첫 사랑의 감격을 가지고 날마다 예수님과 깊이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맺어진 구원함의 은혜를 이 세상 그 누구도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믿음이 식어지고 담대함이 사라져 주님이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절대로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의 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자랑할 데가 없으며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롬 3:27~28). 이제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영원한 백성임을 믿고 어깨를 피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입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3절에서는 내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산 것만 해도 감사한데, 장차 나를 본향에 이르기까지 먹이시고 입히시며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은 것만으로 부모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고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아니하며 돕는 것이 부모인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만족치 아니하시고 그 믿음이 성장하고 자라서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며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도록 연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푸르고 푸른 성령의 계절 주님의 계절이 오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 일에 하나님께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15:11~32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돌아 올 유산을 미리 받아 챙겨 아버지 집을 떠나온 둘째 아들은 그 물질을 가지고 사업에 투자하여 더 많은 재산을 불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보다는 먹고 마시고 놀며 흥청대는 일에 투자하다보니 얼마가지 못하여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게 되자 당장 먹고 마시는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둘째 아들은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겨 기피하는 돼지 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 하지만 그것도 많지를 않아 제대로 배를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굶주림으로 지쳐있던 그가 갑자기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일하는 일군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 어느 종도 자신의 생계 문제를 가지고 염려하여 고민하며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렇게 이곳에서 굶어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자식의 분깃을 다 받아 갖고 나왔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 하나 아버지의 종이 되어 아버지를 섬기면 의식주의 문제는 해결을 받으리라는 생각으로 아버지 집 즉 본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아버지께서 먼저 둘째 아들을 발견하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5:22~24입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며 잔치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둘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권위를 되찾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는 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본향의 은혜입니다. 존 뉴튼도 바로 이 같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가 노예상인이었지만 지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가 아니고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은혜와 사랑을 주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58:11입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내 뼈를 견고하게 하리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꿀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시편 23:1~4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풓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예수님은 나를 항상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며 내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은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는 본향 되시는 아버지 집을 떠나지 말고 그 안에서 먹고 마심으로 풍성한 열매를 얻기를 바랍니다.(요 15:4~5) 시편 121:5~7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애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에서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4절입니다.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4절은 우리는 천국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근심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해처럼 밝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3천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향으로 움직입니다. 이것은 서양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귀소본능입니다. 이 명절은 기업들에게도 큰 대목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선물세트를 준비하고 한 손님이라도 더 끌어드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소풍을 가고 명절들을 찾아가면서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하면서도 정작 본향을 위해서는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은 날마다 영혼의 때를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의 빚진 자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순례자의 길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살았는가? 얼마나 건강하게 살았는가? 자녀들이 얼마나 잘 됐는가?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복의 영역입니다. 이것보다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인도하였는가? 가 중요합니다. 마지막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는 칭찬을 받기까지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받쳐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1:3과 6절에 있듯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성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에 대하여 그리고 거저 주시는 바 구원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이제 존 뉴튼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심으로 구원함을 받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두움에서 광명으로 옮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26:17-18, 벧전 2:9). 뿐만 아니라 그 구원의 큰 기쁨과 감격을 열심히 이 땅에서 전하다가 귀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 본향에 들어가서 주님으로부터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확실한 천국 본향의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널리 전하며 살다가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으로 달려 나가 주님을 맞이하는 하나님의 귀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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