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3일차 : 파올리나~치골라데고개~바요렛산장
바람을 막아 준 쉘터에서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좋았다고 하는데, 밖에서는 새벽녘이 되니 은근히 추워 구즈다운과 오버
트라우져 등을 껴입고 버틸 수 있었다. 여하튼 다시 동이 트기 시작하고 새로운 날은 돌와왔다. 처음부터 이런 비박을 하고
나니 모두 정신무장이 된 듯하다.
아침이라도 든든히 먹으려고 율두스님이 어느 호텔에 들어가 조식을 협상해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들어가는 김에 화장실도 이용하고 세면도 하고 충전도 하고 노숙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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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식 아침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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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지도를 구하려고 시내를 둘러보았는데 지도가 있는 서점은 정각 9시에 문을 열었다.
1:35,000 지도 4장짜리를 구입하고..
볼차노역 인근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파올리나리프트 승차장까지 가는 9:35분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 1시간 정도 이동하니 목적지에 도착한다.
도중에 유명한 카레자호수에 내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버스 안에서 힐끗 쳐다보니 파란 물색의 호수가 주위풍경과 어우러져 살짝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내려 호수를 보고 나머지는 걸어서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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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리프트를 타고 파올리나 산장까지 2,125m 고지를 단번에 올라선 다음 트레킹을 시작할 예정이다.
카티나치오의 거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뒤로는 라테마르산군의 연봉이 그림처럼 솟아있다.
산 밑에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1인당 13유러를 지불하고 리프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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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나치오 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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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아래는 카레자 스키지역에 초록색 초원이 펼쳐진다. 겨울엔 모두 스키 슬로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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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마르 산군 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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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티나치오 산군을 남에서 북으로 종주하는 일정으로 바엘산장을 거쳐 바요렛산장까지 운행할 예정이다.
이 길은 알타비아 8번 루트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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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마노스 기념비(2,280m).
높이 2.5m의 이 청동제 기념비는 남티롤 지방의 관광산업을 부흥/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정치가이자 등산가 테오도르
크리스토마노스(1854~1911)를 기려 1959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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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남짓 걸으니 바엘산장(2,283m)이 나타난다.
유명한 트레킹 코스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차림새로 보아 가벼운 배낭으로 당일이나 1박 정도 다녀가는 트레킹족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이러다가 산장도 만원사례는 아닐지 어제밤에 악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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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에서 시원한 생맥주로 목을 축이며 준비해 온 빵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먹고 마시는 맛이란 대단한 즐거움이었다.
일시에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
500cc 맥주 한잔에 5유로 정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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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치골라데고개(2,252m)로 이어진다.
사방이 우람한 돌산들로 둘러찬 한가운데를 걸어가자니 이제껏 보아왔던 다른 곳들은 비교의 대상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너무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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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골라데를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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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골라데 정상에 서니 또다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중앙으로 난 길이 내일 오를 프린치페고개이다.
한가운데 암벽 위로 오늘 목적지인 바요렛산장이 고고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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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골라데를 내려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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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바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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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경 오늘의 목적지인 바요렛산장(2,243m)에 도착했다.
파올리나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4시간 거리를 5시간 정도 소요되어서 도착했다.
경치가 아름다워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운 곳이 많았다. 사진도 많이 찍고 휴식도 취하고 자연과의 몰입감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군데군데 야생화도 피었는데 야생화 전문가인 여정님에 의하면 군락지가 안보인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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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요렛산장 8인실 내부.
3유로짜리 코인을 사면 6분 정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
일본 남알프스나 북알프스를 종주하면서는 이런 부분이 아쉬웠는데, 이곳은 샤워를 할 수 있으니 대단한 만족감이 든다.
만약에 방이 없다면 홀에서는 지낼 수 있다고 하니 산중에서 비박하는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사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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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과 아침을 포함한 1박2식으로 인당 55유로 정도를 받았다.
오늘 저녁도 레드와인으로 풍요롭게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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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 어둠이 찾아오는 산의 정취를 감상했다.
오늘 이곳에 머무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신비로운 바위 한가운데 오롯이 서 있다는 것에 몸을 떨었다.
온 몸이 우주와 연결된 듯 오감은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끝없이 날아간다.
* 구간 지도 <율두스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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