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항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탄도방조제를 통과중인 일행들. 선두에 선 필자(흰색 헬멧)와 허영만 화백(빨간 헬멧)은 집단가출호의 전국일주 항해를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겨울철 해안도로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적은 바람이다. 서해안을 남하하는 우리들은 오른쪽에 항상 바다를 끼고 달리게 되는데 9월 강화도에서 페달링을 시작했을 당시엔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던 고마운 바람이 겨울로 들어서면서 ‘웬수’가 됐다.
자전거 행렬이 대부도에서 선감도를 거쳐 전곡항에 이르자 찬바람이 비수처럼 옷섶을 찌르고 들어온다. 몸을 덥히기 위해 RPM을 올려보지만 땀이 나기는커녕 얼굴과 손이 얼얼할 만큼 시리다.
전곡항을 지나며 허화백을 비롯한 자전거 식객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2009년 6월, 허영만 화백이 선장이 되어 한반도 영해 외곽선을 잇는 집단가출호의 항해가 바로 이 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곡항에서 출발해 굴업도, 격렬비열도, 흑산도, 제주도를 돌아 강원도 속초까지 북상한 뒤 독도까지 장장 3057km의 바닷길을 함께 항해했던 선원들은 마리나에 정박된 돛단배들을 바라보며 무모하고, 또한 그래서 순수했던 물길을 떠올렸다.
전곡항 입구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집단가출호의 선원이었던 홍선표(30)다. 인근에서 요트 수리공장을 하고 있는 홍선표는 먼지투성이의 작업복 차림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 주겠다고 손에 들고 나온 비닐봉지 속의 내용물을 보고 경악했다.
봉지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이스바였다. 안 그래도 이가 딱딱 마주칠 만큼 추운 엄동설한에 아이스바라니…. 자전거로 달리니까 더울 것으로 생각하고 사왔다니, 그 갸륵한 정성을 생각해 거절도 못하고 다 먹었다.
우리는 홍선표와 헤어진 뒤 떨어진 체온을 올리기 위해 궁평항까지 쉬지 않고 냅다 달려야했다.
궁평리 꽃점마을은 주말을 맞아 마을 전체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김장을 담고 있었다.
갯마을에서는 배추를 바닷물에 절인다. 바닷물의 염도가 절묘하게 딱 맞아 10시간쯤 담궈 두면 알맞게 절여진다.
양지 바른 마당에서 아주머니들이 마늘, 생강을 까고 생새우를 다지느라 분주하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일행은 생새우와 까나리액젓이 듬뿍 들어간 김장 속 냄새에 군침을 흘렸다.
궁평과 남양을 잇는 화옹 방조제를 달리다 아스팔트가 지겨워 방조제 중간쯤에서 간척지의 흙길로 내려섰다. 방조제 안쪽의 드넓은 평원은 나문재가 그득 자라나 마치 몽골의 어느 초원인 듯 이국적인 풍경.
탄도방조제를 달리다 바라본 전곡항에는 겨울햇살 아래 요트들이 한가로이 떠있었다. 허영만 선장이 이끈 집단가출호는 바로 이곳을 출발해 영해외곽선 3057km를 항해했었다.
“잠깐!”
앞서 달리던 허영만 화백이 문득 자전거를 멈추고 먼 곳을 응시한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청둥오리인지 가창오리인지 모를 수만 마리의 새가 마치 먹구름처럼 거대한 덩어리를 이룬 채 날고 있었다.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들었으나 새떼는 셔터를 누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다시 일시에 지평선으로 내려앉았다.
방조제를 벗어나 남양으로 들어선 시각이 점심때를 훨씬 넘긴 오후 2시. 추위 속에서 계속된 페달링으로 몹시 배가 고팠으나 평택항의 굴밥집에서 식사하기로 계획한터라 주구장창 평택을 향해 달려간다. 에너지가 바닥난 자전거 식객들의 주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졌다.
“이러다간 굴밥집에 도착하기 전에 쓰러지겠다. 뭘 좀 찾아보자”는 허영만 대장의 지시가 있었지만 가도 가도 식당은 나타나지 않아 난감했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자동차도로를 피하느라 남양읍 원정리의 마을길을 통과하던 도중에 마침 회갑연이 벌어지고 있는 잔칫집을 만난 것이다. 풍악까지 동원된 떠들썩한 잔치엔 떡, 과일, 고기 등 음식이 그득했고 허기진 나그네들의 시선은 그 음식에 고정됐다.
“구경만 하지 말고 와서 좀 먹어봐.”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던 나이 지긋한 촌로 한 분이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엉거주춤 음식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다 마침내 한마디 하셨다.
비박 탈영병, 그래 잠은 잘 잤니…
비박(bivouac)은 등반 중 불가피하게 최소한의 야영장비로 밤을 보내는 것을 뜻하는데 요즘에는 텐트 없이 침낭과 매트리스로 야영하는 것으로 의미가 다소 확대됐다. 자전거 전국일주 중 야영은 비박이 원칙이다. 여행의 낭만을 더하고 짐의 부피를 줄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서 노숙하는 것은 비경험자들에겐 쉽지 않은 노릇. 대원 대부분은 오랫동안 비박을 즐겨온 베테랑이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다. 기온도 낮았지만 바닷가이니만큼 바람이 많이 불던 밤, 비박에 익숙치 않은 2명의 대원이 몰래 탈영(?)해 인근 해수찜질방에서 따뜻하게 잠을 자고 돌아왔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삽화=허영만>
1. “맞어, 닭 국물이 원래 이런 맛이었거든” 허영만 화백이 닭개장을 몇 수저 떠본 뒤 국물 맛에 감탄하고 있다. 장춘닭개장은 소박하지만 재료의 원래 맛을 잘 살린 훌륭한 음식이었다. 2. 당진읍 원당리에서 만난 닭개장. 딸려 나오는 것은 달랑 공기밥과 석박지 김치, 그리고 냉수 한 주전자가 전부다. 하지만 닭개장의 깊고 풍부한 맛은 일당백이었다. 닭을 재료로 한 음식중 최고가 아닐까 싶다.
한그릇 끓이는데 30분 반찬은 석박지 김치 뿐 닭개장 자존심에 말잃은 숟가락질만…
시골 마을 잔칫집 초대받은 식객들 식신 돌변에 한때 풍악소리 중단도
시늉으로라도 사양할 겨를이 없다. 촌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룩말떼 속으로 달려드는 사자처럼 잔칫상으로 뛰어들었다. 헬멧, 선글라스도 벗지 않고 걸신들린 듯 먹어대는 기세에 눌려 잠시 풍악이 멈췄을 정도.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서야 잔치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한 짐승 보듯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1. 남양읍 원정리의 한 회갑잔치에 자전거를 탄 불청객들이 들이닥쳤다. 송구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게걸스럽게 먹는 우리를 보고 마을 어르신들은 '원래 잔치란 가족, 친지보다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먹어줘야 잔치의 주인공이 복을 받는다'고 말해주셨다. 2. 궁평리 꽃점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장 중이었다. 절인 배추를 헹구는 작업을 대원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 당진 최고 맛집의 오묘한 닭개장
원정리 잔칫집에서 시골의 따스한 인심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자전거 식객들은 평택항을 지나 아산방조제를 건넜고 삽교방조제를 건너자 짧은 겨울 해는 어느덧 바다로 잠겨들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당진 지역 자전거동호회인 짐자전거클럽 회원들의 안내로 이 지역 최고의 맛집이라는 장춘닭개장을 찾아갔다. 장춘닭개장은 창업주이자 주방을 총지휘하는 유장춘 아주머니의 이름을 딴 식당.
내공 있는 식당의 특징 중 하나가 메뉴가 간소하고 반찬도 아예 없거나 한두 가지로 끝난다는 점이다. 닭을 육개장 식으로 끓인 닭개장 한 메뉴밖에 없는 이 집도 반찬이 달랑 석박지 뿐이었다.
닭개장이 준비되는 데는 약 30분이 걸렸다. 닭은 그날 쓸 것을 미리 삶아놓지만 국물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서야 끓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온 닭개장은 첫 눈에 범상치 않다. 고추씨가 으깨지지 않고 온전한 모양을 하고 있을 만큼 거칠게 빻은 고춧가루, 칼을 대지 않고 손으로 쭉쭉 찢어놓은 기름진 닭살.
“아, 이런 게 있었어?”
‘식객’을 연재하며 음식 취재에 길속이 트일 대로 트인 허영만 화백도 첫 술에 찬사를 보낸다.
식당 경력 30여년의 유장춘 아주머니는 원래 설렁탕이 주특기다. 그러나 10여 년 전 한우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잘 나가던 설렁탕 메뉴를 중단했다.
“한우가 아니면 설렁탕 맛이 안 나는데 한우가 너무 비싸지고 무엇보다도 구하기가 어려워. 수입 쇠고기로는 절대 맛이 안 나고. 그래서 그만두고 닭개장으로 간판을 바꿨지. 닭은 아침 점심 두 번 삶아서 찢어놓고, 고춧가루는….”
아주머니의 설명에 대꾸도 않은 채 우리는 닭개장에 탐닉했다. 닭기름이 둥둥 뜬 뜨거운 국물에 하루 종일 추위에 오그라든 몸이 비로소 풀렸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