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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그린 북 - Green Book >
- 삶을 변화시켜 주는 인생 가이드로
관객의 마음 속에 마법을 부리는,
하여, 흔치 않은 보석같은 시네마 -
영화 < 그린 북 -Green Book >은
1962년의 미국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문제적인
'흑과 백 인간' ,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 콘서트
투어를 통해 '남부'라는 거대한 장벽 속에 깊숙이
들어갔다 나오는 버디 및 로드 무비입니다.
피터 패럴리 감독의 날카로운 블랙 유머와 인간미,
또한 주제 의식과 함께 시대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수작이지요.
1960년대 초 미국은 이른바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젊은 대통령이라 칭해지던 ' 존. F. 케네디 '가
대통령이 된 시절이니,
인종이나 성별 문제가 획기적으로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천만의
말씀였습니다.
그 때에도 '흑백분리 정책'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었으니까요.
버스에서 흑인은 뒷자리에 앉아야 했음은 물론,
식당에서도 흑인은 출입구나 화장실 옆에 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백인전용 식당에 들어간 흑인 청년 네 명으로 인해
촉발된 일명 ‘싯인'(sit-in : 백인식당에 들어가 앉아
주문하기) 운동이 1960년에 처음 시작됐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리더로 한 흑인민권 운동이
1963년이 돼서야 조직적으로 미 전역에서
일어났었지요.
영화 < 그린 북 >의 배경은
이러한 두 역사적 사건 사이에 위치합니다.
뉴욕 브롱스로 대가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
그는 호텔 나이트 클럽 '코파카바나'의 해결사로,
문제가 생기면 가끔 주먹을 휘두르기도 해가며
가족을 부양하는 상남자입니다만,
꼭 주먹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입담과 수완
또한 좋지요.
‘발레롱가’라는 발음하기 어려운 성 대신
'떠버리’(Lip)라는 닉네임으로 더 자주 불리는
토니의 주변은 항상 같은 이탈리아계 패밀리,
친지와 동료들로 시끌벅쩍합니다.
주변이 조용하면 그 자신이 스스로 시끄러워
지지요.
나름 산전수전 겪어 본 작자답게 그 차이는
그 자신만 압니다만, '허풍쟁이(Bullshit Artist)'와
'거짓말쟁이(Liar)'는 칼같이 구별해냅니다.
또 다른 남자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
그는 맨해튼 한복판의 유명한 카네기 홀 바로
위층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 피아니스트로
품위와 고상함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토니는 천박하고도 드세기 짝이 없는 악센트로
무식함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수단이 보통이 아닌데다 주변에 따뜻하고도
제법 인간적인 '백인 남성'인 반면,
셜리는 정확하면서도 품격있는 상류층 영어를
우아하게 구사하며, 고매한 교양과 지성을 갖춘
엘리트 지성이지만 언제나 홀로인 채 외롭기만 한
'흑인 남성'의 캐릭터인 게지요.
하늘이 내렸다는 천재 뮤지션 돈 셜리 트리오의
음악은 조금 인색하지만 정교한 타이밍으로
장 중 곳곳에서 흐르지요.
어딘지 오스카 피터슨 또는 조지 시어링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각색된 그의 연주는
미려하기 그지 없습니다.
18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백악관에서도
수 차례 공연했던 흑인 피아니스트이자
편곡자이며 작곡가였던 셜리.
그는 음악가로 살아남기 위해 재즈를 연주하지만 ,
러시아에선 클래식을 전공했으며, 공연에서는
항상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고집하지요.
이름 대신 ‘박사’라는 호칭을 쓰며, 다른 재즈 뮤지션
처럼 ‘예티켓 없이’ 담배를 꼬나물고 피아노 위에
위스키 잔을 올려놓는 작태는 절대 사양합니다.
이처럼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대비되는,
달라도 너무 다른 조합으로,
가족, 교육 수준, 재산 , 취미,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내가
만난 것입니다.
토니는 흑인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지요.
극 초반의 설정에서처럼 그냥 흑인 배관공이
입을 대고 마신 컵을 불결하다며 쓰레기통에
버릴 뿐입니다.
하지만, 그 말없는 조용한 행동이야 말로
정말 바꾸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영화는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게지요.
일하던 클럽이 영업정지를 당하게 돼 어쩔 수 없이
일시 휴직을 하게 된 토니는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일할 곳이 필요하던 중,
걸음마보다 피아노를 먼저 배웠다는,
유명 천재 피아니스트인 셜리 박사의 운전사 채용
면접을 보러 갑니다.
클럽의 기도로 일하면서 말이나 논리보다 항상
주먹을 앞세워 왔던 거친 인생 토니.
그는 '무슨 일을 했느냐'는 셜리의 질문에
'고객관리를 했다'고 거침없이 답하며 운전사
지원에 나서지요.
" 난 의사가 아니라 음악가입니다.
곧 콘서트 투어를 시작할 참인데 장소가 대부분
남부에요.
혹시 흑인 밑에서 일하는데 문제 있나요? "
" 아뇨! "
토니는 당차게 답하며 더 큰 액수의 수임료를
불러대지만 셜리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기에
이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엔 토니가
가장 쓸만한 적임자라고 입을 모아 추천했기
때문이지요.
미국 남부지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된 셜리는
흑인인 자신을 보호해 줄 터프하고도 듬직한
백인 운전기사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렇게, 영화 < 그린 북 >은,
고집스럽고 괴팍한 유태계 백인 할머니 데이지
(제시카 탠디 분)와 착하지만 문맹의 흑인 운전기사
(모건 프리먼 분) 간의 우정을 훈훈하게 풀어낸
휴먼 코미디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 (1990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의 설정 라인을 뒤집습니다.
'백인 운전사와 흑인 고용주'라니요...
< 그린 북 > 은 오프닝 자막에서 실화를 기초
(Inspired by a new story)로 한 작품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 '그린 북' 이란 1936년부터 1966년
까지 출간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으로,
흑인 여행자들이 이용 가능한 숙박 업소 , 레스토랑,
주유소, 옷가게 등의 편의 시설 정보가 들어있는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 북으로,
그 용어 자체가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증오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지요.
적어도 인종분리 정책과 짐 크로법이 건재하던
'1962년의 미국'에서는 흑인 아티스트를 데리고
남부 투어를 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만,
어쨌든 이 두 사람은 60년대 미국의 풍요를
상징하는 하늘색의 멋진 캐딜락을 타고 광활한
미 대륙을 가로지르며,
펜실베이니아에서 오하이오와 인디애나를 거쳐,
켄터키, 테네시, 미시시피, 앨러바마, 아칸소,
루이지애나, 그리고 뉴 올리안즈 등에 이르기까지,
'남부로, 또 남부로' 향하게 됩니다.
8주간의 긴 여정이 시작된 것으로,
영화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방군에 속했던 지역인
이른바 '딥 사우스(Deep South)‘로 두 사람이
연주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요한 제재가 됩니다.
딥 사우스 지역은 인종 차별이 노골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났던 곳이지요.
그런 위험한 남부로의 여정을 '왜 돈 셜리가
감행하는가'를 영화는 묻는 동시에,
그 질문에 대한 화답으로 '예술가의 천재성과
'용기'라는 화두(話頭)를 건네며, 엇갈리는 시선의
미묘한 관계를 정교하게 다룹니다.
순탄치 않을 콘서트 투어를 예고하듯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가 왠지 삐걱거립니다.
토니는 흑인 고용주의 명령을 마뜩잖아 하고,
반면 셜리는 거칠고 제멋대로인 토니가 눈에
거슬릴 뿐이지요.
어느 날 토니는 셜리의 음악에 대해 한껏 아는 체를
합니다.
" 며칠 전 아내가 당신 앨범을 구해와 들어봤지요.
재킷 제목이 '고아원(Orphanage)의 아이들'
이던가? 아주 좋던데요! "
기가 막힌 셜리는 조용히 정정해주지요.
"그건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오
(Orpheus in the Underworld)' 일 겁니다.
재킷 표지 그림은 '지옥에 있는 악마들'이구요..."
이렇듯 도무지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는 음식을 통해 처음으로
무언가를 나누며 마음의 문을 열어 갑니다.
켄터키에 도착한 토니 발레롱가.
그는 "켄터키에 왔으면 치킨을 먹어야지! "라면서
운전 중 맨손으로 게걸스레 치킨을 먹습니다.
'바삭바삭' 씹는 소리를 내며 요란스레 먹방을
해대는 토니의 모습에 결국 셜리는 넘어가고
말지요.
" 냄새 정말 좋지 않아요?
부탁이니 한 조각 먹어봐요. "
" 난 평생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담요에 기름이 묻으면 곤란해서요. "
"그깟 담요 좀 더럽혀지면 어때서!
그냥 편하게 맛을 음미해요!"
맨손으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버티던 교양 맨
셜리는 끝내 두 손 가득 기름을 묻히고 프라이드 치킨을
뜯습니다.
흑인들의 음악에 대해서는 동족인 돈 셜리보다
훨씬 빠삭하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 편지는 엉망진창
철자법으로 셜리의 지도 편달을 자초하지요.
여행 초반 리틀 리차드, 처비 체커, 그리고 톰 쿡과
찰리 파커에 이르기까지 5~6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 흑인 가수들의 노래들을 라디오를 통해
셜리에게 들려주던 토니.
그는 시큰둥해 하는 셜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묻습니다.
" 어떻게 당신네(흑인)들 음악을 모를 수가 있나요? "
그렇게,
토니는 '당신네 사람의 멋진 음악'인 로큰 롤을
계속해서 셜리에게 들려 주고,
셜리 또한 토니가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 문학적
메타포를 불어 넣으며 맛깔스런 소통의 멋을
일깨워 줘갑니다.
" 사랑하는 돌로레스,
오늘 셜리 박사가 피아노를 치는 걸 봤어.
천재인거 같아. "
이를 보다 못한 셜리...
그의 정성어린 도움을 받으며 토니의 편지 실력은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 우리 사이에 떨어져 있는 거리가 내 영혼을
무너뜨리네.
당신과 사랑에 빠지는게 내 인생에 제일
쉬운 일이었어!
추신 :
" 아이들에게 키스, 또 키스를! "
셜리는 그런 토니를 한껏 칭찬해 줍니다.
" 당신의 편지는 이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피날레에서 카우 벨이 울리는 것처럼 완벽해요! "
셜리가 보태준 문학적 터치가 두 남자로 하여금
화법과 억양을 넘어서는 교감을 발견케 한 것이지요.
어느 덧 편지쓰기에 감 잡은 토니는 아내를
무아지경의 감동에 빠트립니다.
" 당신은 집같이 느껴져!
아름답고 언제나 행복에 찬 집..."
돈 트리오의 공연을 처음 접한 토니는 셜리의
천재적 비루티오소 연주력에 감탄하며 진심어린
찬사를 건네지요.
"베토벤 곡은 누구든 칠 수 있지만
당신 연주는, 당신 음악은 바로 당신만이 해낼 수
있죠!"
이처럼 약속대로 아내에게 띄우는 사랑 편지,
마법의 돌, 위스키 한병, 그리고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등의 미장센들을 덧붙이며 화면에 섬세하게 윤기를
더해가는 감독의 솜씨는 정치(精緻)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게,
두 동반자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 가는 것을 여행 과정에서 깨닫게 되지요.
영화는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지양하며,
동시에 교훈을 섣불리 주입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연출자 피터는 콘서트 여행 중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두 사람 간의 갈등을 서두르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스레 차근차근 솜씨있게 다루고 있지요.
또한 영화 속에서 흑인에 대한 부당하고도 노골적인
차별 대우를 굳이 숨기려고 하거나 선정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극의 흐름에 그 당시 남부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흑인을 향한 일방적 편견, 배타적 폭력과 차별이
마치 일상의 풍경 속에 늘 존재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훌륭한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의 폭발적인 박수
갈채 속에 관계자들은 자못 흡족해 하지만,
막상 셜리에겐 건물 밖에 있는 흑인 전용의 허름한
화장실을 찾아가라고 일러주는 남부 백인들.
그토록 일상 속에서 숨쉬듯 자연스레 차별하는게
당연하다는 표정과 또한 그 위화감없는 말투야말로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셜리의 저항은 오히려 부질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요.
감독 피터는 고결한 도덕적 성격의 셜리와
인간적인 토니가 계속해서 부딪히면서도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의 판단과 절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긴장은 팽배하지만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덕분에
그 한계는 모호해지지요.
토니와 셜리, 이 두 사람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남부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셜리를 '재주 좋은 흑인
노예' 취급하는 백인 사회의 뻔뻔함이었습니다.
급기야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의 힘을
빌리고서야, 토니의 경찰관 폭행 사건을 어렵사리
풀어내며 크나큰 자괴감에 빠져드는 셜리.
그는 토니를 질타하지요.
"폭력으로는 못이겨요."
"당신한테 막 했잖소!"
"난 평생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당신은 하룻밤도
못 참아요?"
인상적이게도 토니는 셜리에게 자신과 그의 계급적
차이를 언급하면서 왜 흑인으로서 당신이 속한
공동체를 외면하느냐고 힐난하지요.
그러나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지 않듯이, 셜리가 지닌 다양한 정체성은
그가 어느 집단에도 편하게 속할 수 없다는 걸
드러냅니다.
토니가 ‘백인’이지만 주류 백인에 속하지 않듯이,
셜리는 백인 사회에도, 흑인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지요.
더욱이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는 동성애자로
추정됩니다.
셜리는 어디에서든 주변인으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 나는 3중으로 고향이 없었다.
오스트리아 내에서는 보헤미안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 인으로,
세계 속에서는 유대인으로...
그 어디에서도 이방인이었고 환영받지 못했다. "
마치 평생을 이방인으로 떠돌아야 했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탄식처럼 말이지요.
카메라는 종종 그런 돈 셜리의 고독을 포착합니다.
셜리는 남부에서 여전히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흑인 농부들이 백인을 운전기사로 부리는 그를
그저 무연히 바라보는 모습과 맞닥뜨리게 되지요.
" 백인 관객들은 나의 연주에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고 환호하지만.막상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일개
깜둥이(Nigger)로 대우할 뿐이죠.
흑인들 또한 내가 자기네와 다르다고 함께
어울릴려고 안합니다! "
돈 셜리의 가장 가까운 동료인 트리오 밴드의
나머지 두 멤버들 또한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모순적인 시대상을 가감없이 드러내 주고 있지요.
그들에게는 셜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가 큰 어려움이나 위기 상황에
빠지더라도 결코 돕거나 철저하게 말한마디 거들지
않습니다.
셜리는 정작 흑인들에게는 흑인답지 못하다는
오해 속에 따돌림적 비판을 받고, 백인들에게는
흑인이라고 반인륜적 차별을 당하는 상황인 게지요.
'그토록 차별하는 백인들과 어떻게 웃으며 악수를
나눌 수 있죠?' 라며, 분노하고 의아해하는 토니...
그에게 유명 가수 내킹 콜이 1956년 남부 콘서트 중
백인 관중으로부터 무대에서 끌려내려와 폭행당했던
사건을 떠올리며 돈 셜리 트리오의 독일 출신 첼로
주자는 얘기합니다.
왜 셜리가 뉴욕 동부의 3분의 1 출연료를 감수한 채,
갖은 멸시와 모욕, 그리고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으면서도 남부 투어 콘서트를 감행한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말이지요.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참되게 인정받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
이렇듯,
같은 나라와 같은 국민임에도, 그 결이 전혀 다른
삶이 공존하는 처절한 현실 속에서의 흑인 돈 셜리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픔과 애처로움...
역설적이게도 그 모든 것을 감싸주는 것은 다름아닌
따뜻하고도 인간적인 토니였지요.
" 외로운 사람은 만나고 싶어도 먼저 다가서기가
두려운 법이죠."
셜리는 강변합니다.
"그런 불합리한 편견과 부당한 차별에 맞서는 일은
폭력에 기대는 것이 아닌, 곧 품위를 잃지 않는 것"
이라고요.
어느덧 마지막 공연을 앞둔 호텔의 식당에서 셜리는
저녁식사를 거부당하는 뜻밖의(어쩌면 당연한) 사태에
직면합니다.
분노에 찬 그는 수많은 백인 청중들이 기다리고 있는
공연을 분연히 떨쳐 버리고 토니와 함께 근처의
'오렌지 버드' 라는 흑인 전용 식당으로 들어가지요.
식사를 하다 홀에 놓여져 있는 피아노를 본 셜리는
난생 처음 비공식적인 연주로 쇼팽의 연습곡(Etude)
Op. 25, No.11 a단조 '겨울바람(Winter Wind)'을
멋지게 두드려 댑니다.
이어 흑인 밴드와 더불어 'Let's Roll' 을 환상적으로
협주해내는 셜리.
" 틀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괜찮군요! "
이처럼 영화 막바지에 펼쳐지는 돈 셜리의 ‘우연한’
연주 장면은 예측 가능한 ‘반전’이었음에도 충분히
통렬하면서도 유쾌한 울림으로 전해져 오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셜리를 보듬는 토니의 보호
끝자락에 따뜻함을 확장시켜주는 콜라주적 장치는
다름아닌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하이얀 눈이 가득 쌓인 뉴욕으로
힘겹게 돌아온 셜리...
그는 고심 끝에,
온 가족이 모여 흥겹게 화이트 크리스마스 파티를
여는 토니의 집에 방문하지요.
셜리와 뜨겁게 포옹하며 토니의 아내 돌로레스는
속삭입니다.
" 남편이 편지 쓰는 것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
- 李 忠 植 -
1. 영화 < 그린 북 - Green Book > 예고편
https://youtu.be/S0xxtl3rSw0
2. 쇼팽의 연습곡(Etude) Op. 25, No.11 a단조
'겨울바람(Winter Wind)
- 발렌티나 리시차(Valentina Lisitsa) 피아노
https://youtu.be/tx6-Z0nsWnw
3. 쇼팽의 왈츠 7번 C#단조 Op.64의 2
- 에프게니 키신의 피아노
https://youtu.be/WVsGf1ag6Us
4. 드뷔시의 '아라베스크(Arabesque)' 1번
- 니노 그베타제(Nino Gvetadze)의 피아노
: live @Bimhuis Amsterdam
https://youtu.be/899wKzz9r-k
5. 영화 < 그린 북- Green Book > OST 36곡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uF78wm0RiGaBxBbw6n2N7nVnNbZ8RY0X
6. 처비 체커(Chubby Checker)의 'The Twist'
https://youtu.be/uGeWDz-q1L8
7. 어빙 벌린의 'Blue Skies'
- 냇킹 콜과 패티 페이지(Nat King Cole & Patti Page) 1958
https://youtu.be/QRiXpTEmo3s
8. 아레나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Won't Be Long'(1961)
- Digitally Remastered -
https://youtu.be/RQ99ZV2G-40
9.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의 루실(Lucille)
https://youtu.be/19NrHqoAh28
- P.S. -
인생의 쉼표가 되어 줄 좋은 작품은 담담하게
보여질 뿐으로, 이를 오롯이 느끼는 건 독자나
관객의 몫인 게지요.
영화 < 그린 북 >은 폭력적 차별 속 사회적 증오와
편견이 만연했던 시대적 질곡의 흐름과 이에 물든
삶을 바꿔나가는 우정의 서사로,
주인공 돈 셜리의 음악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백인과 흑인, 상류와 하류 계층, 품위와 천박함,
진지함과 코믹함의 고답적 관점의 틀을 깨부숴
버리며,
이보다 다를 수 없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백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 간의 이해, 연민,
우정의 따스함을 오롯이 직조해낸 그린 북...
영화는 백인-흑인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그 내부의 다양한 (계급적, 성적 정체성의)
차이점에 주목합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 역사에서
WASP(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에 속하지 않는
비주류 백인의 부상을 보여주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로
종종 언급되지요.
감독 피터는 백인, 흑인으로 단순하게 범주화할 수
없는 그들 안의 차이, 즉 이태리계 백인-아일랜드계
백인-주류 백인-흑인 등이 맺는 다층적 관계의 모습을
무심한 듯, 하지만 세밀하게 포착해냅니다 .
영화는 품격어린 아름다움으로 깊은 슬픔과 차별을
노래하며,
언뜻 다소 뻔해보이는 서사구조 속에서도 다양하고
미묘한 이슈들을 담고 있지요.
그리고, 그 이슈들을 상투적으로 ‘말하지‘ 않은 채,
대신 그저 '보여'주고 있을 뿐으로,
길 위에서 타인을 배우는,
곧,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을 바꾸고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게 되는 작품으로
자리합니다.
다소 전형적인 설정과 흐름을 보여주지만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영화 중에서는 드물게 작품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갖춘 수작으로,
다인종 사회를 살고 있는 미국인에게 진중한 울림을
전해주지요.
피터 패럴리 감독은 버디 무비와 로드 무비가
결합된 이 영화를 무엇 하나 과하지 않게 잡혀진
밸런스로 펼쳐내고 있습니다.
하여,
영화 속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인종 차별과 우정'의
주제와 메시지를 따뜻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유머 속
페이소스로 풀어내며,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드라마적인 부분과 충분히
예측 가능한 스토리 전개라는 단점을 절묘하게
커버해내고 있지요.
소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위트와 웃음은
그린북을 특별히 돋보이게 만듭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토니와 셜리 , 두 사람의
우정어린 관계가 2013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이어졌다는 문구가 등장하지요.
피터 패럴리 감독은 말합니다.
" 제가 얻은 최악의 비난은 '흑인을 이용해
돈을 버는 백인'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돈벌이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점진적으로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것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