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원점으로 돌아가 평안하고 즐겁고 흐뭇하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은혜로운 날이 몇 날이나 있을까?
신이 내게 주어진 어떤 날 하루 그런 날이 있었다
다녀와서는 밤잠마저 설치지 않고 긴 잠에 푹 빠진 축복까지 받았다
고군산 열도
살아오면서 가보지 못했고 인식하지 못한 지명이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삶이 고단하거나 지쳐 사는 것도 아닌데 선뜻 나서지 못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밭일이나 하고 아내가 답답하다고 하면
운전하기 싫다는 핑계로 가까운 곳이나 다녀오고 아니면 기차로 다녀오곤 하였다
얼마 전 친구들이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흘려버렸다
한창 바쁠 농사철에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다
야채 값이 그런 대로 괜찮아 남보다 일찍 출하를 하고 싶고 거둬하여야 할 것들이
많은 계절이라 그랬다
일에만 열중일 뿐이지 여행엔 관심이 없었다
젊은 시절엔 등산 간다며 사방팔방 돌아다니더니 나이가 들고 몸에 병이 들면 서는
바깥세상과 멀어 진 것이다
남들 앞장서서 걷던 몸이 뒤에 쳐지기 시작하면서
뒤처지는 것은 민폐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 부터다
어느 날 카페에 들어가 공지를 보니 친구들 몇이 여행을 간다고 하는데
그 땐 벌써 내가 들어 갈 자리가 없어 친구들에게 혹 빈자리가 나오면 연락을 주라고 했더니
뒤 늦게 자리를 차지하여 함께 여행을 가게된 것이다
출발지는 평택역
일산에서 영등포로 영등포에서 평택 가는 기차로 도착 시간을 맞췄다
인원은 열 명 우연하게도 남녀 각 5명씩이다
차는 렌트했다.
토요일 고속도로는 정체구간이 있었으나 우리 차는 전용차로를 달리니 막힘이 없었다
친구들이 준비해 온 다과를 먹으며 웃고 떠드는 동안에
군산 비응항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어 어시장에 들려 점심을 먹고
고군산 열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니 점점이 모두가 섬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된 섬들 이였다
다리가 놓임으로 육지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으니 섬마다 주차장은 꽉 찼고 사람들은 주말을 맞아 북적거렸다
다리를 건널 수 있는 마지막 섬 장자도까지 들어가 대장봉을 올라가는 친구들을 뒤따르지 못하고
해안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걸음이 무거워 오르지 친구들과 산책도 즐겼다
숙소가 있는 선유도에 도착하니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섬 모퉁이에 마지막 집이었다.
경치가 참으로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민박집인 것이다
주인아주머니의 순해 보이는 얼굴 후한 인심이 얼굴의 검은 주근깨 사이로 삐져나오는 듯하였다
남자들이란 참으로 못 말리는 짐승들이다
짐도 채 풀기 전에 방에 던져만 놓고 비응항에서 부터 취한 상태였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놓인 탁자에
술병부터 자리를 잡는 것이다
저녁상은 진수성찬이다
민박집 바깥주인의 배가 민박집 바로 앞까지 배를 대더니 활어를 한바구니 쏟아 놓고 다듬었으니
싱싱한 회를 즉석에서 먹은 셈이다
게장에 매운탕에 싱싱한 굴 무침에 해산물로 차려진 밥상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레 저녁도 술상이었고 긴 시간을 시끄럽게 떠들며 흥겨운 자리였다
안주인은 귀에 솜을 틀어막고 기다리다 자리를 뜨고 말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상위에 남은 안주거리를 꿰차고 방으로 들어 와 상을 차렸으니
그 날 하루 밤은 상상을 초월한 밤이라 그런지
깜깜한 바깥의 달마저 실눈을 뜨고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다
나는 거의 눈을 뜨고 밤을 새고 말았다
술에 취해 잠든 친구들의 코고는 소리와 춥다고 닫아버린 방안의 공기는 그야말로 지옥이여서
예민한 나로선 잠을 들지 못하고 바깥을 들락거리며 걷기도 하면서 눈 뜨고 밤을 센 것이다
아침에 앞이 보이기 시작하여 친구들보다 이르게 길을 나섰다
섬 한 쪽을 돌아오는 둘레길이 있어 내가 걷는 아주 느린 속도로 걸었더니 한참 후에
출발한 친구들과 함께 걸었다
한 바퀴를 돌아 선착장에 도착한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다시 원점회귀하기로
마음을 먹고 빠져 나왔다
갈 때는 친구들과 같이 하였기에 걷기에 바빠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지만
온자 돌아오는 길엔 아침 해가 올라오기 시작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바다를 가로 질러 달리는 어부의 배는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일렁이는 파도는
바위의 문을 두드려 아침잠을 깨우는 듯 시끄럽다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매일 보는 아침 해이건만 바다 위로 솟구치는 해는 마음마저 경건해짐을
느꼈다
내 삶을 위한 기도는 없었지만 한참을 바라보았다
밤을 새운 태공들도 해오름에 낚시를 멈추는 걸 보니
아침의 빛은 축복의 빛이 틀림없었다.
여행길에 마주친 빛으로 하여금 머릿속이 맑아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아침 이슬을 뿌린 길 위에 파도 소리도 쉬어가는 듯한데
작은 국화꽃이 바위 위에 얹혀 있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뻗고 가느다란 외줄기에 노란 꽃을 피우고
길손의 눈가에 웃음을 그린다
인내와 고난의 시간을 보낸 흔적이 줄기에 묻어 있으나
그 꽃이 아름다음에 무릎을 꿇고 코를 가까이 하니
동병상련의 세월을 같이한 친구라는 걸
국화는 그렇게 나를 품어 주었다
섬과 섬 사이를 가득 채운 바닷물이 일렁일 적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