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극복에 대한 마을주민 3분의 기록(출처: 상리. 단양군 2022년)
1)조순희( 1931년 생) 적성면 상리 거주, 생존
마을 사람들은 다들 가난했다. 간신히 보리죽이나 감자로 끼니를 때웠다.
봄이 되면 보리쌀도 떨어지고 일찍 호박잎을 다 따먹어서 극십한 보릿고개를 넘었다.
쌀이 귀해서 보리밥에 한 줌 섞어서 시어른과 아니들 도시락을 챙기는 정도였다.
흉년이 들면 사람들은 소나무 속껍질(송기)을 벗겨 먹고
'떡갈매기'라는 부락에서 나는 고운 흙에 밀가루를 섞어 떡도 해먹었다.
장을 보려면 하진까지 걸어가서 나룻배를 타고 옛 단양읍에 가야했다.
다리가 생기기 전엔 가는 길이 나룻배 말고는 없었다.
장날엔 옥수수를 삶아서 팔아 아이들에게 흠집난 사과를 사다 먹였다.
2)정옥순(1933년생) 적성면 상리 거주, 생존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마을에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샘터에서 먹던 물을 우물을 만들어 먹에되고 마을 기ㅏㄹ도 넓히고, 초가지붕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호롱불에 의지해서 살던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충격이었다. 텔레비젼을 보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이 망을 그 때 주민들의 땀으로 만들었어, 각자 인건비 받은 데서 조금씩 떼어서 마을기금을 만들었지.
마을 도로를 만들 때 ㄴ너나 할 겂이 땅도 기증하고 ... 가난했지만 서로 돕고 살았지.
3)박영복(1932년생) 적성면 상리 거주, 돌아가심.
대부분 사람들은 소작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고 동네 땅의 대부분이 안동에서 온 한 천석꾼의 소유였다.
1950년 토지개혁으로 그나마 땅을 갖게 되었다.
1960년대 새마을운동이 끼니 걱정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보리쌀도 없어 나물만 먹다가 쌀밥을 먹게 되었고 비가 오면 빗물이 새는 초가지붕도 스레트로 바뀌면서 골칫거리가 해결되었다.
*2022년 '상리'라는 마을 책을 출간 때 오태동(본당70년사 편집위원, 적성면 상리거주)이 인터뷰와 직접 록취를 했습니다.
모두들 가난했던 이 시기(1957년)에 단양에 천주교가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