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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와 배우는 세계문화유산
8탄-북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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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진행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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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는 어떤 대륙일까요?
앵글로 아메리카라고 불리는 북아메리카는
동쪽으로는 대서양과 서쪽으로는 태평양과 접해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가 있어요.
원래 이 지역에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아시아에서 건너왔다고 알려진 원주민이 살았어요.
이것이 원주민들이 만든 장승이에요.
우리나라 장승과 비슷하지요?
이들은 아메리카 전역에 퍼져서 각각의 부족을 이뤄서 살았어요.
콜럼버스 항해 이후에 이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죠.
그리고 북쪽에는 에스키모로 알려진 이누이트족이 살았어요.
이들의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고요.
유럽인에 의해서 그려진 1626년 지도에요.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며 살았던 이들에게 시련이 닥쳤어요.
바로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거죠.
이들이 그린 원주민 모습을 보세요. 어떤 시선으로 그린 것 같나요?
그야말로 벗고 있으니 미개하다는 시선이 들어있는 거죠?
이들은 살고 있던 원주민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다며 원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어요.
총을 들고 전염병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노동에 시달려야 했어요.
이후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많이 건너왔어요.
그러느라 바다에서 서로 치고받고 전쟁도 많이 했어요.
북아메리카로도 많은 배가 오죠?
처음에 이들은 모피를 사가 유럽에 팔았어요.
모피 무역으로 큰돈을 벌 수 있기에 여러 나라에서 앞다투어 왔어요.
특히 영국과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건너왔어요.
두 나라는 북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끝에 영국이 이겨 프랑스를 몰아냈고
각각 이해에 맞게 영국과 프랑스의 편에 섰던 원주민도 결국에는 자신들의 땅을 내어주어야 했어요.
영화 라스트 모히칸이 있죠?
이 전쟁이 이 영화의 배경이라고 해요.
참고사항)
중, 고등학생이라면 연대표에서 알맞은
시대를 찾아보도록 해주시면 세계사 학습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온 영국과 프랑스의 이민자들은 미국과 캐나다를 건국했기 때문에
다른 대륙에 있는 나라들보다 역사가 짧지만 두 나라 모두 땅이 넓고
석유, 석탄, 철광석과 같은 자원이 풍부했어요. 하지만 일할 사람이 부족했어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게 해야겠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이민을 왔고 세계적인 부자 나라가 되었어요.
그래서 두 나라 모두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문화를 공존하며 살고 있어요.
특히 미국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강대국이며, 세계 경제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나라가 되었어요.
북아메리카 대륙은 주로 온대기후, 냉대기후, 한대기후가 나타나요.
미국은 주로 온대기후가 북쪽의 캐나다는 냉대기후와 한대기후가 나타나요.
북아메리카에는 어떤 지형이 있을까요?
서쪽에는 높은 산맥인 로키산맥이 가운데에는
넓은 평야, 동쪽에는 낮은 산맥인 애팔래치아 산맥이 있어요.
처음에 유럽에서 도착한 사람들은 유럽과 가까운 동쪽 해안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어요.
미국 동부에는 애팔래치아라는 거대한 산맥이 있는데 한동안은 이곳을 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런데 부운이라는 사람이 이 산을 넘으면서 길을 알려주자 미국인들은 험준한 산을 넘었어요.
그랬더니 무척이나 넓은 초원이 펼쳐진 거예요.
유럽 땅만 보다가 넓디넓은 초원을 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깜짝 놀라 그레이트! 그레이트!라고 외쳤어요.
그래서 넓디넓은 이 평원을 그레이트 플레인스라고 불렀어요.
로키산맥 동쪽과 미시시피강 서쪽, 북쪽으로는 캐나다 오대호 주변까지 펼쳐진 아주아주 넓은
그레이트 플레인스는 넓은 만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요.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로키산맥을 넘으면서 푄 현상이 일어나요.
그러니 어떤 기후가 나타날까요?
로키산맥 안쪽의 평야는 건조해요.
그리고 그 옆으로 가면 강수량이 많아져서 풀이 잘자라는 프레리라는 초원이 있어요.
로키산맥의 동쪽은 푄현상으로 인해 스텝기후가 나타나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요.
그러니 농사가 잘 될까요?
옛날에는 이곳에서 버팔로라고 불리는 들소가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 이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소를 키우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겠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에는 소와 말이 살지 않았다고 했죠?
그 후 점점 많은 유럽인들이 살게 되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고기와 우유를 먹기 위해서 소를 키웠어요.
유럽보다 훨씬 넓은 북아메리카의 대평원은 풀도 잘 자라서 소를 키우기 아주 좋았어요.
이 소들을 지키고 관리하던 사람들을 카우보이라고 불러요.
로키산맥의 동쪽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더 많아져서 옥수수, 콩, 밀, 목화 등의 농작물을 농사지어요.
프레리라고 불리는 이 초원에서 짓는 밀농사는 세계 3위의 생산량을 자랑해요.
너무나 넓은 땅이라 농사짓는 사람이 부족해서 대부분 기계를 사용해서 농사를 지어요.
그래서 씨 뿌릴 때가 되면 땅 주인은 농업회사에
전화해서 씨를 뿌려 달라고 하면 비행기가 날아와서 씨를 뿌려줘요.
로키산맥 서쪽에 있는 아리조나주에는 그랜드캐니언 협곡이 있어요.
마치 무지개떡처럼 색이 다른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지요?
그랜드캐니언 아래쪽이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현무암이라면,
그 위는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사암,
그 위는 바다에서 만들어진 석회암 등의 다른 성질의 암석이 쌓여 있는 것이지요.
이는 그랜드캐니언이 바다속에 있었다는 것을 뜻해요.
이렇게 만들어진 바위층이 7000만 년 전에 지구의 운동에 의해 융기해서 고원이 되었어요.
얼마나 많은 부분이 올라왔는지 올라오면서 남, 북으로 나뉘어졌어요.
그래서 사우스림, 노우스림으로 나눠있어요.
융기한 고원 위를 콜로라도 강이 흐르면서 500만 년에 걸쳐 침식해서 협곡이 생긴 거예요.
그러고 보니 지구 46억 년 역사 중에 절반에 가까운
20억 년 동안 만들어진 거니 지구 지질 역사가 한눈에 보이죠?
구불구불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끝도 없이 펼쳐진 그랜드캐니언 협곡은 아주 멋진
장관을 연출해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소로 꼽히는 곳이에요.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서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갈까요?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서 떨어지는 아주 커다란 폭포에요.
왼쪽이 미국쪽, 오른쪽이 캐나다 쪽이에요.
쏟아져 내려오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아주 멋지죠?
떨어지는 힘이 얼마나 큰 지 물보라가 무척 크게 일어나요.
나이아가라 폭포는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
남아메리카의 이구아수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라고 불려요.
알래스카를 볼까요?
알래스카는 북아메리카 북쪽은 한대기후가 나타나는 북극이에요.
북극에 자리 잡은 알래스카는 남쪽에는 냉대기후가 나타나고
북쪽으로는 툰트라 기후, 빙설기후가 나타나고 백야 현상이 나타나는 곳이에요.
여기는 원래는 소련 땅이었어요.
그런데 1867년에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사들여 지금은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어요.
당시 러시아는 바다 건너 있어서 관리하기도 힘들고,
적대 관계에 있는 영국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 언제 전쟁으로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거기에 미국에게도 빼앗길 것 같았어요.
또, 하나 러시아는 돈도 필요했어요.
그래서 720만불에 땅을 팔았어요.
이걸 산 사람이 수어드 국무장관이었는데
얼음만 있는 빙하의 땅을 왜 샀냐고 미국의 여론이 무척 안 좋았어요.
그중 한 의원은
"얼음이 필요하다면 미시시피강을 얼음으로 이용할 것이지
왜 하필이면
아이스박스에 불과한 알래스카를 샀는가?"
라고 소리를 높였어요.
그래서 수어드의 냉장고라는 조롱까지 받아야 했지요.
어쨌거나 샀으니 어쩌겠어요.
정부와 의회의 공동 조사단에 의하여 알래스카를 탐사해 보았더니
순금, 백금, 석유가 무진장으로 매장되어 있고 연어 등 풍부한 어류들이 있었어요.
그러니 미국 의회는 할 말이 없었겠죠?
러시아는 어땠을까요?
이 사실을 알고 러시아가 무척 배 아파했다고 하죠.
그래서 알래스카에 수어드라는 지명도 생겼어요.
수어드 국무장관의 해안은 이뿐만 아니었어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도 사겠다고 했는데 의회에서 통과가 되지 않았어요.
만약 샀더라면 정말 대박이었겠죠?
극지방 근처라 거대한 빙하와
높은 산봉우리의 만년설이 바다와 어우러져 아주 멋진 경치를 보여주죠?
그렇다고 만년설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냉대기후 지역에서는 울창한 침엽수림과 드넓은 평야가 나타나요.
알래스카는 지구에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으로 꼽혀서
삼사일 동안 옷을 갈아 입지 않아도 때가 타지 않는다고도 해요.
그래서 뿔산양, 불곰, 캐나다 순록,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생활하고 있어요.
북극이라 멋진 오로라도 펼쳐지네요.
이누이트 족이 카누를 타고 사냥을 했네요.
이곳의 원주민은 에스키모라고 잘 알려진 이누이트족이에요.
이들은 1만 년 전에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온 아메리카 최초의 사람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어요.
이들이 에스키모라고 불리게 된 까닭은 생선을 날로 먹기 때문이에요.
에스키모라는 말 자체가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이 지역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지방과 가까워 불을 피울 수 있는 땔감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 날고기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날고기를 먹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에스키모는 추운 날씨 덕분에
골고루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야채나 과일 대신 날고기를 먹어서 비타민을 섭취하였지요.
이글루를 만들고 있어요.
옛날에 에스키모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순록을 잡기 위해서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집을 짓기보다는 사냥할 때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이곳은 너무 추운 지역이라
나무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질 수는 없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 정도 언 눈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서 둥글게 이글루를 지었어요.
이글루 안에서 이렇게 생활을 하네요.
잡아 온 동물 가죽을 손질 하고 있어요.
이들에게 가죽은 무척 중요한 것이었어요.
오랫동안 살 집은 사냥한 동물의 가죽으로 천막을 만들어서 살았어요.
또, 팔기도 했지요.
요즘 집이에요
이곳에서도 다른 지역에서 건축 재료를 가져와 튼튼한 집을 짓고 살아요.
아메리카에는 어떤 문화유산이 있을까요?
15세기 말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후,
라틴아메리카를 에스파냐와 포르투칼이 차지하자 이에 질세라 에스파냐 외에도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가 북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건너왔어요.
그곳엔 사는 원주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 없는 땅이라 여기고 건너온 것이지요.
그 중 중요한 몇 건을 살펴볼까요?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가
프랑스 왕의 명령을 받고 대서양항로를 찾다가 뉴펀들랜드섬에 정착했어요.
이후 캐나다 해안에 상륙해서 십자가를 세우고 프랑스왕의 땅이라고 선언했어요.
원주민은 어쩌고 지네 맘대로~~~
이후 프랑스인들이 건너와 살면서 원주민에게 모피를 사서 유럽에 파는 모피 무역을 했어요.
모피 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된 사람들은 퀘벡이나 몬트리올에 살면서 도시로 발전시켰어요.
그래서 캐나다 몬트리올에 가면 자크 카르티에 광장이 있어요.
저기 서 있는 동상이 카르티에예요.
1607년, 영국 제임스 1세 때 런던 버지니아 회사가 100여 명의 남자를 모아 미국 동부로 보냈어요.
식민지 사업을 국가에서만 하기 어려웠던
영국이 식민지 건설에 대한 잇권을 런던 버지니아 회사와 플리머스 버지니아 회사.
두 곳에 주고 회사가 얻은 이득의 일정량을 받는 조건으로 이들에게 식민지 개척권리를 주었어요.
그래서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사람들의 모아 미국 동부 해안으로 보낸 거죠.
이곳이 영국의 왕인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딴 제임스타운이고,
제임스타운이 있는 주의 이름이 버지니아주가 된 거예요.
버지니아는 늪지대가 많아서 농사도 힘든 데다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이 죽어서
20여 년 동안 8000명 정도의 사람이 이곳에 왔는데
거의 죽고 130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하니 정말 혹독한 시련이었던거죠.
이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포카혼타스 영화로 유명해진 포카혼타스가 속한 부족이었어요.
존 롤프와 결혼한 포카혼타스는 족장의 딸로 이들에게 담배농사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백인처럼 생겼지요?
본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생각대로 그려서 백인처럼 만들었네요.
정착한 이들은 담배 농사짓는 법을 배워서 유럽에 수출했어요.
담배가 금값보다 비쌌다고 하니 덕분에 제임스타운은 발전했겠죠?
하지만 담배는 땅을 황폐화시키는 농작물이에요. 그러니 땅이 점점 더 필요했을까요?
결국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포카혼타스가 속한 부족은 이들과의 전쟁에서 지고 서쪽으로 쫓겨나야 했어요.
1608년 퀘백에 샹프랭이 프랑스 도시를 건설했어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퀘백에 샹프랭의 동상을 세웠어요.
1620년, 102명의 청교도인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지금의 메사추세츠에 있는 플리머스에 도착했어요.
플리머스라고 이름 붙인 것은 어떤 연유일까요?
플리머스 회사에서 이들의 이주를 도왔고 이들이 떠난 항구가 영국의 플리머스에요.
그래서 플리머스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지요.
이들을 순례자의 조상이란 의미로 필그림 파더스라고 불러요.
첫 번째 궁금한 점, 이들을 왜 필그림 파더스라고 부를까요?
미국인들은 이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파더스가 붙은 거죠.
그런데 왜 제임스타운을 건설한 사람들에게는 파더스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까요?
그들이 부랑아, 건달 뭐~~이런 부류라 별로 조상으로 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죠.
두 번째 궁금한 점, 이들은 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왔을까요?
유럽은 종교 개혁 이후에 카톨릭교에 반하는
새로운 종파들이 나타나면서 종교 전쟁으로 혼란스러웠어요.
이때 영국은 성공회를 만들어서 국교로 삼았어요. 성공회는 왕이 교회의 우두머리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왕은 성공회를 믿도록 했고, 개신교인 청교도는 이것을 비판했어요.
이에 영국의 왕실에서 청교도들을 탄압했어요.
그러자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건너온 것이지요.
참고사항)
중, 고등학생이라면 연대표에서 알맞은
시대를 찾아보도록 해주시면 세계사 학습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도교인들은 처음에는 영국과 다른 환경과 기후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니 농사를 짓기도 힘들었겠지요?
가져온 식량이 바닥나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기도 했어요.
이때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들에게
옥수수를 농사짓는 법과 칠면조를 사냥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었어요.
첫 수확을 한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어요.
이것이 시작이 되어 미국에서는 지금도 매년 11월에 추수감사절 축제를 하고 칠면조 요리를 먹어요.
1624년 네덜란드도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만들었어요.
그때 이름이 뉴암스테르담이었는데 곧 영국에게 빼앗겨서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동부 해안을 차지한 영국은 13개의 식민지를 만들어 지배했어요.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땅이란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식민지인들을 도울 뿐 몰아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작물 재배법 등도 가르쳐 주었어요.
1665년 무렵의 지도에요.
여기서 원주민들과 식민지인들이 전쟁을 하고 있어요.
북아메리카에 온 이주민들은 원주민의 도움으로 정착해서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럴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더 많은 유럽인이 이주해오자 더 넓은 땅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초심을 잊어버리고
식민지인들은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 업신여기며 그들의 땅을 빼앗았어요.
그러니 인디언들도 자신들의 땅을 지켜야겠지요?
이중 가장 치열한 전쟁은 1675년에서 1676에 걸쳐 벌어진 필립왕 전쟁이었어요.
필립왕은 원주민을 이끈 인디언 전사였어요.
하지만 아무리 용맹하다고 해도 이들이 사용하는
칼이나 도끼 같은 무기로 총과 대포를 이길 수 없었겠죠?
결국 원주민들은 전쟁에서 지고 필립왕은 산채로 사지가 찢겨 죽어야 했어요.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노예로 끌려가야 했어요.
이어 중서부 지역에 살던 모든 인디언 마을에서 남녀노소 불구하고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전쟁 중에 한 인디언 포로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한 것으로도
부족해서 총독이 웃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살을 먹어야 했다고 해요.
영국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영국 사람들은
6백여 명이 죽었지만 원주민들은 3000여 명 이상이 죽거나 노예로 끌려갔다고 해요.
그래서 이 지역에 살던 인디언 인구의 60~80%가 감소할 정도였다니 정말 큰 전쟁이었지요.
18세기에 들어서자 제국주의 열강들은
서로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어요.
1750년대 지도에요. 지도를 보니 북아메리카는 스페인, 영국,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죠?
스페인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고혈을 빼먹느라 바쁘니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를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치뤘어요.
거의 100여 년 동안 4차례의 전쟁을 치뤘는데 마지막에 치룬 전쟁이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에요.
1754년~1763년에 걸쳐 영국-인디언 대 프랑스-인디언이 동맹을 맺고 격렬하게 싸운
이 전쟁을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라고도 해요.
두 나라가 미국 동부와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로 다니며 전쟁을 하죠?
두 나라는 북아메리카뿐 아니라 유럽, 인도에서도 전쟁을 벌였어요.
유럽에서는 1756년부터 1763년까지 벌어져서 이 전쟁을 대충 합쳐서 7년 전쟁이라고 해요.
참고사항)
중, 고등학생이라면 연대표에서 알맞은
시대를 찾아보도록 해주시면 세계사 학습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결국 프랑스가 지고 영국이 이겼어요.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00년 동안 캐나다를 지배했어요.
그래서 캐나다에 가면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물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전쟁에서 이긴 영국의 영토가 넓어졌어요.
두 나라 모두 인디언과 동맹을 맺었는데 왜 프렌치-인디언 전쟁이라고 할까요?
왜냐하면 영국 측에서 볼 때 프랑스가 인디언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지네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에요.
이 전쟁에서는 영국이 이겨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땅에서 물러나야 했어요.
당연히 프랑스를 도와준 원주민들도 땅을 빼앗겼겠지요?
올드 퀘벡이라고 불리는 퀘벡 역사지구에요.
도깨비에서도 나온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처음 캐나다 땅에 들어온 사람들은 프랑스인이지요?
이들은 퀘벡시에 정착해서 프랑스식대로 건물을 짓고 프랑스식으로 살았어요.
퀘백의 올드타운은 당시 프랑스인들이 만들었던 건물들이 남아 있어서 중세유럽의 흔적을 보여줘요.
퀘벡을 건설한 샹플랭의 거리인 프티 샹플랭 거리에요.
저 위로 올라가면 퀘벡의 랜드마크인 샤토 프롱트낙 호텔이 있어요.
세인트로렌스강이 보이는 곳에 있는 샤토프롱트낙 호텔이에요.
마치 유럽의 궁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이 회담을
한 장소로도 유명한 곳으로 현재도 퀘벡 시티를 방문하는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찾고 있다고 해요.
세인트로렌스강을 통해서 적이 침입할까 봐 대포를 놓았어요.
전쟁에서 졌는데 어떻게 퀘벡주는
영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프랑스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까요?
프랑스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져서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똘똘 뭉쳐서 프랑스 문화를 지켜나갔어요.
이러니 힘으로 어쩔 수 없었겠지요?
영국도 그들이 프랑스 전통을 지키도록 허용했어요.
객실은 총 600여 개로 이 가운데 스위트룸만 33개로 유서 깊은 호텔이라서
함부로 개조, 보수하거나 가구를 교체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요.
다시 미국의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캐나다 땅을 차지한 후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그림을 보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보스턴에서 차 사건이 일어났어요. 왜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 볼까요?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프렌치 인디언 전쟁을 하고, 유럽에서도 프랑스와 전쟁을 했어요.
물론 이겨서 좋지만 전쟁도 돈이 있어야 하죠?
계속된 식민지 쟁탈전으로 돈이 필요했던
영국은 의회를 열어 식민지인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기로 했어요.
그래서 식민지인 미국에도 설탕세, 인지세 등의
새로운 세금까지 만들어 더 많은 세금을 물게 하였어요.
같은 영국 사람인데 본토 사람보다 식민지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자
사람들은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할 수 없다.’라며 반발했어요.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영국 의회에서 세금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할 때 식민지 대표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표 없는 곳에 과세할 수 없다.’라고 반발한 거예요.
이렇게 13개 식민지 의회가 영국에 진정도 하고 시위도 하는 등
반발이 심해지자 영국은 홍차를 제외한 세금을 없앴어요.
그러나 홍차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식민지인들은 만족하지 않았어요.
결국 식민지인들이 원주민으로 분장하고
영국 배에 실린 홍차를 몽땅 바다에 버리는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 사건 이후로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영국에서 들여오는 홍차보다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지금도 즐겨 마시고 있어요.
그러자 영국에서 식민지탄압법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보스턴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손해배상을 요구했어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이상 못 참아!
우리도 군대를 만들어 대항할 거야~이런 생각이 들었겠지요?
식민지 대표 56명이 모여 1차 대륙회의를 열고 민병대를 조직했어요.
결국 메사추세추주에 있는 렉싱턴에서 전쟁이 벌어져서 민병대가 이겼어요!
이제 전쟁을 돌이킬 수 없겠죠?
또, 전쟁이 일어날 테니 이제는 제대로 싸워봐야겠다 생각한
식민지인들은 2차 대륙회의(1775년)을 열어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어요.
그래도 아직까진 영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진 않았어요.
명예직인 왕이 있고 의회에서 정치를 하는 영국의 정치체제가 완벽하다고 여겨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거죠.
그런데 1776년 토마스 폐인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작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영국의 왕이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우리를 지배한다.
이는 특권층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
이런 식의 내용이 있는 상식이란 책을 출판했어요.
이 책은 미국 전역에 널리 퍼졌고 조지 워싱턴은 모든 군인들에게 읽으라고 권했다고 해요.
이걸 읽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상식적으로 안 되겠다. 왕의 국가가 아닌 우리의 국가를 만들어야겠다.
즉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겠다!! 라며 독립 의지를 활활 불태우게 된 거죠.
1776년에 7월 4일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독립기념관에 모여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하고 벤자민 플랭클린 등이 다듬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어요.
그림은 미국 독립기념관에 걸려진 그림으로
13개주의 대표 56명이 모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모습이에요.
내용을 볼까요?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의 권리 가운데 핵심은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이며 정부는 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보면서 뭔가 참 안타깝고 화도 났죠?
독립선언서의 일부를 보니 어떤가요?
가슴이 뭉클하고 박수치고 싶을 정도예요.
하지만 그들에게 쫓겨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평등,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
이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옆에서 누가 좋아하나요?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좋아해요. 왜 좋아하나요?
영국을 견제해야 하니까!
특히 영국과 대립관계에 있던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식민지인들을 도왔어요.
이제까지 쓰던 식민지국기인 그랜드 유니언기에요.
영국 깃발이 있고 13개의 줄이 있어요. 이 깃발의 의미를 알겠죠?
13개의 식민지를 지배하는 대영 제국을 표시한 거죠. 이제 쓰면 안되겠죠?
베치 로스가 새롭게 고쳐 13개의 주가 표시된 국기를 만들었어요.
지금은 50개 주가 되어서 별의 숫자가 바뀌었죠.
1781년에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이 항복했어요.
이로써 실질적인 독립 전쟁은 식민지인들의 승리로 끝이 났어요.
요크타운 패배로 사기가 떨어진 영국은 2년 뒤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평화조약으로 완전히 독립할 수 있었어요.
그림에서 빈 부분이 있죠?
마음 상한 영국 대표가 포즈 취하는 것을 거부해서 빈 부분이 되었다고 해요.
독립은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진통을 겪다가 1789년에 13개 주가
합쳐서 초대 대통령으로 워싱턴을 뽑아 미국이라는 연방국가를 세웠어요.
처음으로 왕이 다스리지 않는 나라가 세워지게 된 거예요.
이러한 미국의 독립과 정치 제도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쳤어요.
잠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살펴볼까요?
영국과 여러 대륙에서 전쟁을 하고 미국 전쟁까지
지원한 프랑스는 돈이 부족 하자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었어요.
이에 화가 난 프랑스 국민들이 미국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고,
국왕인 루이 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트와네트를 처형시켰어요.
예전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인 왕을 처형한 거죠.
참고사항)
중, 고등학생이라면 연대표에서 알맞은
시대를 찾아보도록 해주시면 세계사 학습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이런 자유 독립의 의지를 기념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독립기념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어요.
어셈블리 룸이에요.
독립선언서를 서명했고 연방 정부의 헌법을 만들었던 곳이에요.
앞에서 본 그림에서 본 초록색 테이블보가 그대로 있을 뿐 아니라 13개 주의
대표들이 사용했던 펜과 촛대, 책과 노트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어요.
‘자유의 종’이에요. 독립선언을 발표하면서 친 자유의 종이에요.
그래서 ‘이곳에 있는 모든 땅의 주인에게 독립을 알린다.’라고 써 있어요.
한데 독립 선언문을 발표한 날은 1776년 7월 4일인데 종을 친 날짜는 7월 8일로 기록되어 있어요.
이때는 ‘독립의 종’으로 불리다가,
1839년, 노예 해방을 주장했던 정치인과 시민들이
‘자유의 종’이라 부르면서 지금까지 자유의 종으로 불려요.
그런데 금이 갔네요.
1846년,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맞아 종을 치다가 금이 생겼다고 해요.
그래서 독립기념관 종루에 있던 종을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보호하고 있어요.
미국 리버티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에요.
1876년,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것으로
정확한 이름이 ‘세계에 빛을 비추는 횃불을 든 자유의 신상’이에요.
원래 구리로 만들어서 온통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오랜 세월 부식되어서 지금의 색으로 변한 거예요.
횃불은 금을 씌워서 아직까지 금빛이라고 해요.
“자유롭게 숨쉬길 갈망하는 너의 지치고 가난한 무리들을 내게 보내다오”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단부터 횃불까지의 높이는 93.5미터라고 해요.
윗부분부터 볼까요?
여신상이 쓴 왕관에 있는 일곱 개의 가시는
북극해 · 남극해 · 북대서양 · 남대서양 · 북태평양 · 남태평양 · 인도양의 7대양과
북아메리카 · 남아메리카 · 유럽 · 아시아 · 아프리카 · 오스트레일리아 · 남극의 7대륙을
상징한다고 해요. 모두 평화롭게 지내자는 의미겠죠.
자유의 여신상은 오른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빛을 상징하는 횃불을,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 날짜가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어요.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한 바르톨디가 참고한 모델은
자신의 어머니였는데 제작과정에서 나이 많은 어머니가 오래도록 같은 포즈를 취하는 데 쉽게
피로를 느끼자 어머니를 닮은 젊은 여자를 모델로 채용했다고 해요.
작업이 끝난 후 바르톨디는 그 여자와 결혼했다네요.
여신상이 입은 토가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진 로마공화국을 의미하고 발 주변의 부서진 쇠사슬은 노예해방을 상징하고 있어요.
높이 46미터의 자유의 여신상을 배에 싣고 옮기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여신상은 이렇게 조각조각 만들어 조립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214개의 상자에 나눠서 포장한 후 배에 실어 뉴욕항으로 옮겼다고 해요.
이제 조립해야겠죠?
바르톨디가 외부, 에펠 탑의 설계자이기도
한 구스타브 에펠이 내부 철골구조물에 대한 설계를 맡았기 때문에
에펠이 미국으로 옮기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역할도 맡았다고 해요.
그런데 기단이 없죠?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과 프랑스의 공동 작업으로서 프랑스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에서 기단을 만들기로 했어요.
미국에서 받침대를 위한 모금 활동을 했는데 시큰둥~~~
이때 퓰리처상으로 유명한 조지프 퓰리처가 나서서 모금 활동을 해서 기단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뉴욕을 지키던 별 모양의 요새 위에 선 자유의 여신상은
대서양의 너른 바다에서 뉴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어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이민선을 타고 미국으로 들어오던 이민자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도착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여기서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라는 희망을 함께 주었어요.
미국이 독립 전쟁에서 이긴 후 영토를 보세요.
동부와 중서부 약간만 차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점점 넓어지죠?
프랑스, 에스파냐로부터 구입하기도 하고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이긴 대가로 땅을 얻기도 하며 영토를 확장했어요.
이 와중에 원주민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어요.
그런데 1848년 멕시코로부터 받아낸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었어요.
그러니 멕시코는 어떨까요?
엄청나게 배아프겠죠.
미국에게는 노다지가 터진 것이고요.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퍼지자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금광을 찾기 위해서 서쪽으로 나아갔어요.
이렇게 금광을 찾아서 사람들이 몰려든 현상을 골드러쉬라고 해요.
골드러쉬로 인해서 서부 개척의 시대가 열린 거예요.
그러니 개발해야겠죠?
1820년대에는 운하가, 1840년대 이후에는 철도가 발전했고,
1860년대에는 대륙 횡단 철도가 완성되었어요. 이렇게 교통수단이 발전하자,
경제도 더욱 빨리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메리카에 살던 들소와 원주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두 놀라거나 달리는 기차에 부딪혀 죽기도 하고
미국인들의 마구잡이식 들소 사냥에 점점 그 수가 줄어들었지요.
또 서부에 도착한 사람들 가운데는
도적 때나 총잡이들도 많아서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벌어지기도 했어요.
미국에 살던 원주민들이에요. 전 지역에 퍼져 살았어요.
처음엔 동부에 살던 원주민부터 땅을 빼앗기고 이주해야 했지만 점점
서부로 넓히면서 다른 원주민들도 땅을 빼앗겨야 했어요.
미국인들은 서부 개척이라고 말하지만 인디언들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자신들의 땅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거였을 거예요.
그래서 인디언들은 서부로 떠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미국 기병대를 공격해서 총을 빼앗기도 하면서
전쟁을 벌였지만 아무리 용맹해도 도끼와 칼로 총을 이길 수는 없었겠죠?
미국은 인디언 제거정책을 펼치자 체로키족이 터전을 잃고 이주하는 모습이에요.
12만 명이었던 체로키족이 나중에는 3만 명 정도만 남게 되었다고 해요.
얼마나 힘들고 원통했는지 이 여정을 눈물의 길, 눈물의 흔적이라고 표현해요.
서부에 살던 푸에블로족이 살던 마을로 이들이 살던 집도 푸에블로라고 불러요.
인디언하면 천막집이 떠오르겠지만 이들은
진흙에 밀대나 풀 등을 섞어서 구워낸 붉은 흙벽돌로 집을 짓고 살았어요.
4층 또는 5층의 사각형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가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어요.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창문과 출입문은 작게 만들었어요.
최신식 집인가 봐요 창문이 커지고 창틀도 있죠?
지금도 150여 명이 살고 있는데,
과거에는 사용하지 않던 현대식 가구들을 어느 정도는 사용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전기와 수도 등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 않고 아직도 계단 대신 사다리를 사용하고 있어요.
들소를 잡으며 저마다의 문화를 가지고 살던 인디언들은 이제 자신의 터전을 빼앗기고
백인들이 마련해준 인디언 집단 거주지역에서 거의 갇혀 살게 되었어요.
라틴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문화와 역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욕심이라는 것, 내 것이 최고라는 것, 이런 고정된 시선과 욕심을 버리고
다양한 문화, 다양한 생각을 존중해주는 세상이 참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교통과 통신이 무척 발달한 지금의 시대에서는 더욱더~~
지금까지 라틴아메리카의 기후, 지형, 세계문화유산을 둘러봤어요.
역사, 지리와 함께 배우는 세계문화유산 어땠나요?
이제 배운 것을 정리하기 위해서 체험물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팝업북을 만들도록 해주세요.
만들기 방법은 홈페이지
지침서-특강- 세계문화유산-체험물 만들기 영상을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체험물에 배운 내용을 적도록 해주세요.
고학년이라면 포트폴리오 지도와
서양사 연대표에 배운 내용을 자세히 적도록 하면 더 효과가 높습니다.
생각날기 제품이 궁금하시다면
생각날기 홈페이지를 클릭하시거나 http://w-thi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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