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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가을은 천천히 가지 않는다(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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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아셨어요? 19세 때 손흥민입니다.
수비대장 우범선
우범선은 무인 가문에서 태어나 7살 때부터 무술과 한학을 배웠다.
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별기군 창설에 참여한 전형적인 무골이었다.
그는 일본이 뒷배인 개화 세력의 앞잡이가 되어, 민비의 세력과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1894년 일본의 비호를 받던 개화파가 집권하자 그는 갑오경장에 참여하여 군사를 동원하는 직책인 궁궐 수비대장이 되었다.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손잡고 세력을 확장한 일에 반발한 일본은 공사 미우라를 시켜, 민비 시해 계획을 세웠다.
일본으로 부터 낭인(浪人)을 대리고 왔다. 그리고 그들은 궁궐을 수비하던 우범선의 안내를 받아 왕비 처소로 난입했다.
낭인들은 왕비에게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짓을 했다. 이 일에 우범선도 가담을 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일에도 관여했다.
1896년 고종이 우범선, 유길준 등에게 체포령에 이어 참수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듬해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몰락하자 그는 일본으로 도망을 쳤다.
독신이던 우범선은 사카이 나카(酒井ナカ)라는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그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
자객 고영근에게 살해되었을 때 나이는 47세
고영근은 누구인가?
고종의 밀명에 의거, 경상 병마절도사인 고영근은 일부러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관직에서 물러나, 부장 노윤복을 데리고 일본에 잠입했다.
우범선을 수소문하던 중에 마침내 교토에서 그를 만났다.
고영근은 외로운 처지이니 조센징끼리 친하게 지내자고 하며 우범선에게 접근했다.
몇 년 만인가? 드디어 국모의 원수를 갚을 때가 왔구나! 우범선의 목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고영근과 수하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고종의 선처 요청으로 11년 만에 석방되었다.
조선에 돌아온 고영근은 고종과 민비의 능을 지키는 능참봉으로 봉직하였다.
일제가 고종 내외의 묘를 그냥 '능'이라고 부르자, 태황이라는 비석을 만들었다.
고영근은 죽을 때까지 왕릉 앞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회운사 주지 아라이의 예언
이분은 비명횡사될 운명이다. 나 또한 그의 아들을 키울 운명이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구나!
우범선의 아들이 우장춘 박사다.
계속
허주의 아침산책
윤회하는 인연
한 낮 미물일 지라도
모두가 부모를
그리워하다
그리움만 남긴 체
부모 되어 떠납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를
그리워 할 테니
눈물 젖은 벗이여
그립다고
서러워 마세요.
이건희 회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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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그린어워드/백성이여 일어나라 명성황후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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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 종의 합성
이론을 토대로 일본의 기하라 박사가 만들었다.
우장춘 박사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우장춘 박사를 페이퍼 닥터(Paper Dotor)라고 한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지 않고 동경대학 농과에서 바로 농사시험장에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우수한 조센징의 실력을 시샘한 것이다.
우장춘은 '종(種)의 합성' 이론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염색체 수가 10개인 유채와 9개인 양배추를 교배해 19개의 유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있는 재료로 새로운 종을 합성하여 '종간잡종(種間雜種)'을 증명한 것이다.
이 연구는 '종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성립된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장춘은 이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Triangle of Dr. Nagaharu U (우장춘 박사 종의 합성)
일본에서는 조선인으로,
조선에서는 민족반역자의 아들로
친일파 우범선의 아들인 우장춘은 아버지의 원죄를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다.
우장춘 박사가 한국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자 일본 정부는 인재를 잃고 싶지 않았던지 그를 감옥에 가두는 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허름한 조센징으로 변장하여 스스로 조선인 수용소로 들어갔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대한민국이 도움을 청하자 우장춘 박사는 조국을 위해 다음과 같은 업적을 이루었다.
제주 감귤의 종자개량
강원도 씨감자
배추와 무우의 품종개량,
입맛에 맞도록 개량한 쌀,
과일 품종 개량
씨앗의 생명력 강화
대량생산 기술개발
우장춘 박사는 죽는 날까지 어깨를 짓누르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고자 사력을 다했다.
예를 들면 가족을 위해 쓰라고 준 돈마저 종자를 사는 데 사용했다.
그렇게 9년이 지났다.
정부에서는 1958년 병상에 누워있던 우장춘 박사에게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다.
우장춘 박사는 눈물을 흘리며 "조국이 드디어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주웠구나!" 그리고 얼마 후에 눈을 감았다.
댓글
감히 추가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너무나도 다른 인생길이었습니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일은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에게 시해된 일이다
사건 당일 무뢰배들에게 길 안내를 해준 사람이 우범선이다, 별기군 대대장으로 황궁을 지켜야할 군인이 오히려 적의 앞잡이 가 되었다.
우장춘 박사는 창씨개명과 일본 국적을 반대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어머니 처 아들과 생이별을 한 체 홀로 귀국했다.
정부에서는 농림부 장관을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종자개발에 헌신했다
끝
허주의 아침산책
너무나 다른 삶
어머니의 새벽 기도
영천시장에는 콩나물 장수가 많았습니다.
오로지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머니는 콩나물 광주리를 이고 사장에 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을 훌륭한 사업가로 키워냈습니다. 제약회사 회장이 된 것입니다.
새벽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던 어머니를 잊을 수 없어, 회사 심벌을 종으로 정했습니다. 종근당 제약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초심을 잃고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난 짓을 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처벌 받고,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동영상을 찍어 배포 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2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데해 대법원은 징역 17년을 확정했습니다.
돈 벌기 참 쉽습니다. 알찬 기업 다스라는 회사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임자 없는 회사이니 누가 가진들 어떻습니까?
김학의 차관에게 2년 형과 함께 법정 구속했습니다.
경기 중 고를 나온 수재였습니다.
서울 법대를 나온 엘리트였습니다.
전국 각지의 검사직을 두루 거쳐 법무부 차관을 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인데. 뇌물에 상습 성폭행으로 인생이 거덜 났습니다.
만고의 진리, 돈과 여자가 인생을 망친다는 것을 기억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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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쓴 글인데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을 보고
100% 불행한 한국 대통령의 법칙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에는 어김없이 닥치는 기구한 운명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을 했다. 그리고 호랑이도 죽으면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과 같이 죽어서 돌아왔다.
박정희는 더 일할 나인데 험한 꼴 보기 전에 부하에게 죽었다.
전두환은 28만원을 챙기고 백담사에서 돌아와 골프 치고
살다가 광주 민주항쟁에 발목을 잡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노태우는 임기 중에 대통령 짓을 모질게 하지 않아 그나마 숨죽이고 산다.
김영삼은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공은 있으나,
아버지를 믿고 날뛰다가 자식이 옥살이를 했다.
김대중은 호남 대통령의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을 남긴 체 떠났다.
능력 없는 자식들은 노벨상 상금으로 살고 있다.
노무현은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 하다가 매 바위에서 점프를 했다.
이명박은 다스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자신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래서 17년 형을 받았는데 78세 고령이라 형기를 채울 수 있을지?
박근혜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국정농단으로 탄핵을 당해 여태 콩밥을 먹고 있다.
문재인은 현직이어서 장래 어떻게 될지 모른다.
역대 대통령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임기 말년에 예상할 수 없는 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결국 이명박도 불행한 대통령 반열에 들어, 100%의 확률을 완성했다.
이것이 소위 100% 불행한 한국 대통령의 법칙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광의로 해석하면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전조증상이 온다는 하인리히법칙이 아닌지?
이런 불행한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아 법칙으로써의 가치가 끝나기를 바란다.
과거에 조상들은 국가적인 재앙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세종대왕 기우제
한 개인이라도 실망이 된 일이 있을 때 상제님을 찾게 되거늘.
하물며 한 국가의 임금으로써 억조의 창생을 통솔하는 입장이니 어떠하겠습니까?
만물이 시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면 상제님의 마음인들 어찌 편하실 수 있습니까?.
자식으로서 아비에게 어질지 못함을 계교해주기를 청합니다.
이에 약소한 제물을 올리고 어린 회포를 진술합니다. (중략)
세종 9년 6월 14일 기우제 축문을 전하니 7일후에는 홍수가 날 정도의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허주의 아침산책
조두순이 걱정됩니까?
국토개발부 장관이 강남에 방 한 칸을 주어 살게 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습니다.
경찰서 안에 방을 마련해 주는 경찰서장에게는 조두순이 죽을 때까지 임기를 보장해주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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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因果應報)
조선조에 피비린내 나는 역린(逆鱗)이 일어났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인 것이다.
왕위에 오른 수양은 반대하는 충신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하루는 공주가 된 딸이 부왕에게 울면서, 어린 단종이 가엾지 않으세요?
단종은 태어 난지 2일 후에 어머니를 여의고
6살에 할머니를 보내고,
10살에 할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 마마! 제발 살생은 그만 하시고, 충신들을 아끼시어 선정을 베푸소서!
공주가 여러 번 간하였으나, 부왕으로부터 무시를 당하자, 끝내 단식을 했다,
화가 오른 수양은 급기야 공주에게 사약을 내리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때 어머니인 정현왕후가 이런 급박한 상항을 감지하고 공주를 피신시켜 야밤에 궁녀 하나만 데리고 대궐을 빠져나갔다.
세조는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니 놈이 내 아들을 죽였으니, 니 아들의 목숨도 가져가겠다.”
원한에 찬 욕설을 퍼붓고 용안에 침을 뱉었다.
하늘이 노했는지 바로 그날 한창때인 20세 세자가 낮잠을 자다가 급사를 했다.
현덕왕후가 뱉은 침에 세조는 피부병이 온몸에 번졌다.
그래서 세조는 병을 고치기 위해 속리산온천으로 가는데 .
왕의 행차를 구경나온 계집아이가 자신이 낳은 딸과 닮아 내관을 시켜 물어보았는데 사실이었다.
세조는 모질게 한 일들을 후회하면서 딸에게 물었다.
“남편은 있느냐?”
순박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보살펴준 그분과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수양이 대군시절, 계유정란을 일으킬 때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殺生簿)에 따라, 김종서 대감을 철퇴로 때려죽인 일이 있었는데.
알아보니 농부는 바로 김종서 장군의 친손자였다.
“나는 금상에 오를 욕심으로 하늘이 내린 충신을 죽였다. 그래서 천벌을 받는 것이야!
한양으로 돌아가면 너희들이 거처할 부마궁을 지어주마.”
얼마 후에 신하를 보냈더니, 공주는 종적을 감추었다.
짐이 조카와 동생들과 딸까지 잡았으니 죽어서 선왕들을 무슨 낯으로 대할 고?
역사는 말한다. 모질게 살면 천벌을 받는다.
허주의 아침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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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임태경의 잊혀진 계절
https://youtu.be/RyHLiVRv5sw?list=RDRyHLiVRv5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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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장춘 박사가 한국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자 일본 정부는 인재를 잃고 싶지 않았던지 그를 감옥에 가두는 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허름한 조센징으로 변장하여 스스로 조선인 수용소로 들어갔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대한민국이 도움을 청하자 우장춘 박사는 조국을 위해 다음과 같은 업적을 이루었다.
제주 감귤의 종자개량
강원도 씨감자
배추와 무우의 품종개량,
입맛에 맞도록 개량한 쌀,
과일 품종 개량
씨앗의 생명력 강화
대량생산 기술개발
우장춘 박사는 죽는 날까지 어깨를 짓누르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고자 사력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