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
친구야! 내 사랑하는 그이 잘 있더냐?
계곡에는 엊그제 비로 맑은 물이 콸콸 넘쳐흐르겠지?
항상 말없이 미소만 짖던 그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올 들어 그를 본지가 딱 2번밖에 없었으니 그도 날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과장님은 다시 내려올 걸 왜 산에 올라가요?”
엊그제 누군가 산을 싫어했던 내 젊은 시절의 얘기를 기억 밖으로 끄집어내어 주더구나.
그랬지! 물론 정말 산을 좋아하지 않았지
어릴 적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었으니까!.
물론 싫어한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 않은 것만도 사실이었어!
그런데 간사하게도 그 산을 애인으로 삼고 말았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어제 귀가하는 밤길이 선선해져 있더구나.
벌써 가을인가 셈해보니 이미 입추가 지났다고 하더라.
어느 날 새순이 돋아나는 걸 본 것 같았는데
어느 날은 아카시아 향이 코끝을 스치는가 싶더니
언젠가는 밤꽃 향기가 질식하리만치 강하게 나를 유혹했었다.
그런데 벌써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구나.
솔직히 말하면 나 잃어버린 이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다.
최소한 내 기준으로는 그 시간들을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굳이 애써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면 내가 하는 이것이 정말 값진 도전 맞어?
인간의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시작되는 것 맞지?
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고 있다.
그런데 난 지금 모든 관계를 끊고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도 밥먹는 시간만
함께하는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내가 이일에 매달리는 동안 동료도 잃고 친구도 잃을까 걱정되어 불안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야!
새벽 1시가 가까워지는 한적한 초등학교 골목길을 돌아 피곤한 육신을 끌고
귀가하는 밤길에 손톱 달이 구름 속에서 들락날락 얼굴을 내밀고 있더구나.
풀섶 어디선가 귀뚤이의 짝을 찾는 소리가 참 마음을 심란하게 하더라..
문득 우리 유년기의 편안한 고향집 토담이 떠오르더구나.
올 들어 옥수수를 아직 못 먹어 봤는데
이맘때쯤이면 옥수수 삶아 멍석에서 하늘 보던 생각나지 않니?
얼마 있으면 아마 북쪽 하늘에서 마른번개가 칠 것이고...
우리는 나락이 잘 패라고 마른번개가 친다고 믿고 있었지.
우주의 어떤 힘에 의해 마른번개가 치는 줄은 모르겠지만
난 그것이 벼 잘 익기를 기원하는 농심임을 굳게 믿고 있다.
지금쯤 참새 쫓아야 할 만큼 나락이 패지 않았더냐?
피를 말리는 29일이 어서 지나가면 좋겠구나.
[기술사 시험 1개월을 남기고. 늦은 밤 독서실에서 귀가하며.. 2001.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