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호위무사에 대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파문으로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 했다. 사건이 불거진 직후 채 전 총장이 처신을 잘못한데다 야당과 재야단체 마저 이에 놀아나는 바람에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 갔다. 그뿐 아니라 한 때는 일부 검찰이 반발해 檢亂(검란)사태로 까지 번질뻔 하기도 했다. 다행이 지금은 잠잠해 졌지만 아직도 진행형이어서 언제 또 활화산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 와중에 난데없이 호위무사가 등장해 장안의 화제를 모았고 인구에 널리 膾炙(회자)되기도 했다.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다음날 대검의 김모 과장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는 글을 올린 뒤 사표를 내던졌던 것이다. - 그 뒤 사표가 수리돼 그도 지금은 야인이 됐지만-
여기서 우리는 김모 과장의 글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채 전 총장 - 김모 과장이 이 글을 올린 시점은 채 전 총장의 사표가 수리돼지 않아 아직 현직이었음 -을 ‘전설 속의 영웅’으로 치켜세웠다는 점이다. 전설 속이라는 말은 현직에 있는 사람에게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과거의 인물, 또는 고인에 대해서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채 전 총장에 대해 이런 말을 사용했다면 이는 마치 현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송덕비를 세우는 꼴이다.
채 총장을 영웅으로 미화한 것도 그렇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검찰을 위해서나 대한민국을 위해서 영웅 칭호를 들을 만한 공을 세웠다는 얘기를 과문한 탓인지 들은 바가 없다. 자기가 모셔온, 자기가 좋아하는 상관에 대한 아부나 충성도 유만부동이지 이쯤 되면 채 전 총장을 욕보이는 짓이다.
백보를 양보해 ‘전설 속의 영웅’이라고 자기 상관을 추켜세우는 건 눈감아 줄 수도 있지만 ‘채동욱의 호위무사’라는 표현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호위무사는 왕조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나 봉건시대의 主君(주군)을 侍從(시종 : 받들어 모심)하고 宿衛(숙위 : 숙직하여 지킴)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 최고 책임자를 조선시대에는 雲劒(운검) -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이 운검이었다-, 숙위대장 등으로 불렸고, 근현대에는 근위대장, 경호실장 등으로 부른다.
현대에 와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호위무사하면 부정적 이미지를 더 많이 떠올리게 된다. 조폭세계에서나 씀직한 이 용어를 김모 과장이 공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채 전 총장은 본의 아니게 조폭두목이 되고, 자신은 호위무사로 자처했지만 남들은 그를 똘만이 정도로 여기게 되고 말았다. 햇병아리 검사도 아닌 부장급의 검찰 중견간부가 이런 표현을 쓴다는 건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이다.
채 전 총장을 영웅으로 만들고 자기도 격을 높여 호위무사가 되고 싶었는지 몰라도 오히려 그 말이 결과적으로 자신은 물론 채 전 총장의 인격과 검찰 전체의 품격마저 떨어뜨리게 된다는 사실을 본인만 몰랐을까?
호위무사 내지 호위무사를 자처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도 그 뒷끝이 좋지 않았다. 고려말 조일신이 그랬다. 그는 세자로 있던 공민왕이 원나라에 볼모로 가 있을 때 직접 모시고 가 호위무사 역할을 했다 . 공민왕이 귀국해 왕위에 오르자 일등공신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반대파를 멋대로 몰아내고 공민왕까지 위협해 우정승이 된 뒤에는 지은 죄를 감추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逆臣(역신)으로 처형되고 말았다.
조선의 홍국영도 마찬가지 였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몰아낸 辟派(벽파 : 정조의 반대파)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世孫(세손 : 왕위를 이을 손자)인 정조의 생명을 몸으로 지켜낸 그였다. 그는 정조가 즉위하자 숙위대장에, 도승지와 금위대장에 까지 올라 조정을 쥐락펴락했다. 원로대신들이 대궐에 들어가 왕을 뵙기 전에 그의 숙위소에 들러 그를 통해 왕의 결재를 받을 정도로 그의 권세는 임금을 능가할 만큼 막강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친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 보내 정일품의 元嬪(원빈)으로 삼게해 우리나라 세도정치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명한 정조가 아니던가! 4년만에 지방으로 추방당해, 천하의 홍국영도 화병을 얻어 33세에 인생을 추하게 마감하고 만다.
왕조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호위무사는 건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경호실장 차지철이 그다. 육군 대위 출신의 그가 권좌에 오르자 옛 상관들의 장성 진급신고식을 청와대 경내에서 따로 받고, 그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에 안기부장까지 역임한 장세동은 主君(주군)이 물러난 뒤에도 끝까지 호위무사 역할을 다해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덕분에 최근에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호위무사들은 최고 권력자를 몸으로 지켜내고 또 자신도 더할 나위 없는 영화를 누렸지만 狐假虎威(호가호위)해 권력을 사유화 함으로써 국가와 국민들에게도 커다란 피해를 주고 자신도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마쳤던 것이다.
김모 과장의 경우 채 전 총장이 6개월 만에 그만뒀기에 망정이지 채 전 총장이 승승장구해서 더 큰 권력을 잡았더라면 그도 따라서 권력의 줄을 잡고서 과거의 호위무사들 처럼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둘러 국가와 국민들에게 어떤 폐해를 입혔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시대를 읽고 자기 선 자리를 잘 헤아릴 줄 알아야지 흥분해서 마구 날뛸 일은 더더욱 아니다.
단기 4346년 10월 13일 대구에서 抱民 徐昌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