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달이 넘게 새로운 진군의 배경으로 쓸 사진을 고민하다가는
결국 다시 이 아이.. ㅠ.ㅠ
이 배경 때문에 제가 그리 오래 사라져 있었습니다. --a
계속 미루다가는 끝도 없을 것 같아 결정한 배경입니다. 그러니
혹시나 이번 Rival편에 꼭 어울리는 배경을 삼을 사진을 알고 계시다면 제게..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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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연의(退魔演義) 047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1 딸기 왕자(The Strawberry Prince)
-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연말, 각종 음악 시상식의 상을 화려하게 휩쓴 동시에
올해 초 개봉한 영화까지 백만 관객을 몰아 배우로서도 자리 잡은
전진 씨가 오늘 오전 오는 5월 방영이 시작되는 드라마 ‘귀여운 남자’ 촬영 중
크게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오늘 오후에 만나본 전진 씨의 현재 상태, 지금 만나 보시죠-
“ 어? 진이가??? ”
아직은 해가 짧기만 한 4월의 어느 봄날.
거실 소파에 앉아 커다란 볼을 끌어안고는 곧 돌아올 민우와 혜성을 줄 팬케이크
반죽을 하며 오늘 팬케이크는 지난 번 아귀 사건으로 일에서 제외된 이후로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이는 민우와 혜성을 위해 아주 단 딸기 조림을 얹어 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선호의 눈이 TV 화면에 고정 된 채 커졌다.
- 전진 씨- 어떠세요? 어머- 어떡해요?
크고 화려한 빨간 장미꽃다발을 들고는 병실로 들어간 여자 리포터가 호들갑을 떨
정도로 눈에 띄게 깁스를 하고 있는 진의 모습에 전진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혹시나?’라는 생각을 하던 선호가 더욱 놀라 안고 있던 볼 속의 반죽을 휘젓던
거품기를 멈추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 어? 정말 진이가 다친 거야??? ”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은 분명 어제까지도 전화통화를 했었던 진이였다. 오늘
오후에 녹화한 듯한 화면에 보이는 진은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 보였다. 선호는
화면에 보이는 진의 모습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거품기와 볼을 손에서 놓고
휴대폰을 들어 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진아!!! ”
- 어. 선호구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행히 진이었다. 진은 상냥한 목소리로 선호의 이름을 부르며
웃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때때로 서로 문자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선호가 진에게
직접 전화를 건 적은 없었다. 그래선지 전화를 받은 진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 어떻게 된 거야? 병원이라니... 많이 다친 거야? ”
- 에이- 별 거 아냐. 그냥 드라마 촬영하다가 좀 다친 거야.
많이 다친 듯한 진의 모습에 놀라 전화를 한 선호였지만, 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씩씩
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오히려 목소리만 들으면 정말 별일이 없는 것 같았다.
“ 좀이 아니던데? 깁스까지 하고 있던데... ”
- 에이- 방금 전에 TV 봤구나?
“ 응. ”
- 에에- 별거 아냐. 다치는 거야, 춤출 때도 종종 있던 일이구...
“ 어느 병원이야? ”
- 삼성 의료원.
“ 내일 갈게. ”
- 에- 됐어. 죽을 병 걸린 것도 아니고, 다리 좀 다친 건데...
“ 그래도... ”
- 저... 그럼.....
아까까지만 해도 정말 괜찮다는 듯 씩씩하게 말하던 진이는 내일 오겠다는 선호의 말
에 잠시 망설이다가는 쑥스러운 듯 망설이는 진의 목소리에 선호가 말했다.
“ 응. 뭔데? ”
- ..... 저기... 그럼 정혁 형도 같이 올 수 있어?
선호의 물음에 잠시 더 쑥스러운 듯 망설이다가 진지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 진의 물음에 선호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 정혁 형? ”
- 응.
“ ..... 알았어. 내가 데리고 갈게. ”
진의 뜻밖에 물음에 잠시 놀라 말을 멈추었던 선호는 진이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선호의 대답에 금세 어린애같이 웃으며 말하는 진
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울려나왔다.
- 헤헤- 고마워- 내일 봐!~
“ 응. 그래. ”
전화를 끊은 선호는 화면에 정신없이 스쳐지나가는 진의 과거 무대 장면과 진이 다치
는 날의 촬영 분량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정혁에 대한 진의 감정을 제주도에서부터 대충 눈치는 챘다. 펜션에서 방도 정혁과
함께 쓰겠다고 하고, 빡빡한 촬영 스케줄로 그 바쁜 와중에도 늘 정혁을 챙기는 진이
었다. 게다가 오던 비행기에서도 진의 옆에 앉고 싶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늘씬한 상대 여배우를 마다하고는 굳이 정혁을 자신의 옆에 앉히는 진을 보고는 진이
정말 정혁에게 관심 있다는 것을 완전히 눈치 챘다.
하지만 정말 지금 저런 상태의 정혁이... 좋은 걸까?...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면 정혁은... 정혁은?...
.
.
.
- 똑똑-
“ 네- 들어오세요. ”
병실 안에서 들리는 매니저의 목소리에 선호가 병실로 들어가 매니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침대 위에 앉은 진을 보고는 다가와 물었다.
“ 잘 잤어? ”
“ 어?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와아~ 반가운데? ”
“ ...................... ”
“ 정혁 형. 그거... ”
선호는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정혁을 진 쪽으로 밀며 말했다. 그런 선호의 행동에
정혁은 들고 있던 과일봉지를 진에게 쑥- 내밀었다.
“ 와아!~ 나 주는 거예요??? ”
이미 병실에 가득한 팬들의 선물들 사이에 앉아 편지들을 읽고 있던 진은 정혁이
내민 하얀 비닐봉지를 무척이나 반갑게 받았다.
“ 정혁 형이 딸기 좋아하거든. 너 준다고 딸기 사왔어. ”
“ 와아!~ 이제 나도 딸기 너무 좋아. 맛있겠다- ”
침대 옆에 놓인 화려한 과일 바구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하얀 비닐
봉지 안에 담긴 작은 딸기 박스를 마치 금덩이처럼 소중히 끌어안은 진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선호의 눈에는 진의 병실에 있는 다른 과일 바구니들과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딸기 상자였지만, 진은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투명한 딸기 박스를
들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 대체 무슨 촬영이길래, 다리를 이렇게 다친 거야? ”
“ 뭐... 촬영하다 다친 건 아니고, 계단에서 미끄러진 거야. ”
심각하게 묻는 선호의 모습에도 진은 즐거운 표정으로 병실을 뒤적이는 정혁의 뒷모
습과 투명한 박스 안의 딸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선호에게 대충 대답했다.
“ 계단에서? ”
“ 응. 요즘 내가 좀 그렇다. 무대 세트를 부숴먹지 않나, 의자를 부숴먹지 않나,
내차에 치일 뻔 하질 않나, 이제는 계단에서 미끄러지기 까지... ”
“ 사고가... 많았어? ”
“ 응. 하하- 내가 원래 좀 덜렁대는 편인데, 요즘 완전 실감하고 있다니까...
하긴 누나 말대로 내가 지금까지 사고 없이 살긴 했지.
하하- 뭐 먹을래? 과일이 넘쳐 나는데... 아니다. 아예 다 가져가라. ”
불편한 몸을 돌려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뒤적이던 진이 침대 옆에 앉아 심각한 표정
으로 묻는 선호에게 어떤 과일을 먹을 건지 묻다가는 아예 과일 바구니 채 선호에게
밀며 말했다.
“ 너도 먹어야지. ”
“ 아냐. 아냐- 앞으로 이런 거 사올 사람도 많고, 또 난 이거면 돼- ”
진은 그렇게 말하며 안고 있던 딸기 봉지를 쑥- 들어 보이며 웃었다. 어느새 과일 바
구니에서 오렌지를 꺼내 까먹고 있는 정혁의 옆에 앉아 그런 진의 모습을 바라보던
선호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
.
.
“ 그래서? 누군가 전진을 노린다는 거야? ”
선호의 말에 혜성이 선호가 잘 다듬어 놓은 오이를 아삭- 소리가 나게 한입 베어
물고는 물었다. 요즘 들어 야채를 너무 적게 먹는 것 같다며 야참으로 다른 군것질
거리 대신에 오이와 당근을 먹으라는 선호의 엄명에 야식을 먹은 후 후식은 칼로리
높은 음식들 대신 오이와 당근이 되어버렸다.
“ 네. 무대 세트가 부서 진 거, 급발진 한 차에 치일 뻔 한거,
계단에서 미끄러진 거...
전부 다 사고사 처리하기 위해 많이 벌이는 일들이에요. ”
그런 혜성의 물음에 선호가 이번에는 당근을 잘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 그으래?- ”
“ 응. 의뢰자를 알 수 없게 하기 위한 사건에서 킬러들이 많이 쓰곤 하지... ”
오이를 사각사각 씹던 혜성이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중얼거리자, 동완이 선호가
방금 가지런히 썰어놓은 당근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폭탄이나 총보다 의뢰자를 찾기 힘들다는 장점이 더 크겠군. ”
“ 한국에서는 총기나 폭탄의 사용이 쉽지 않으니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 ”
“ 흐음- 근데 진이 녀석, 누구한테 원한 살 타입은 아닌데?
오히려 웬만한 사람들한테는 귀여움 받을 타입 아냐? ”
동완의 말에 승민은 오이 한 조각을 물고는 팔짱을 낀 채 소파 깊이 몸을 묻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상대가 웬만한 사람이 아닌가 보지.
또 모르지. 아무래도 공인이다 보니..... 아! ”
승민의 말에 당근을 향해 손을 뻗던 동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장 형사. 혹시 전진과 관련된 신고가 있나 좀 알아봐.
관련 폭력사건도 되고, 스토커나 뭐 다른 건도 상관없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좀 알아봐. 그래. ”
심각한 표정으로 정 형사에게 전화를 거는 동완을 본 선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동완
에게 물었다.
“ 진이 형이 관련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
“ 그게 아니길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또 진이 녀석같이 연예인 사건의 경우 스토커일 가능성도 있고... ”
동완이 표정을 잔뜩 굳힌 채 진지하게 말하자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정혁이 동완의
입에 쑥-하고 오이를 하나 물려줬다. 그리고 그 순간 뭐가 그리 좋은지 동완의 무릎
위로 뛰어오른 꽃등심과 망고의 등장에 동완은 다시 혼비백산해 도망 다녔고, 그렇게
그날 꽃등심과 망고의 운동량은 충분하게 채워졌다.
[퇴마/연의] 退魔演義 048 - Case No.06 The Rival
퇴마연의(退魔演義) 048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2 가족(家族)
“ 전진과 관련된 사건은 없었어요.
스캔들은 많았지만,
지난 번 용의자로 지목받았던 것 이외에 공식적인 사건은 없었어요.
아! 김 형사님. 전진이 글쎄... 겨우 18살이더라고요~ ”
“ 알아. ”
“ 알고 계셨어요???!!!!! ”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책상위에 올린 채 옆에 아침에 선호가 싸준 오이와 당근 간식
을 먹으며 보고서를 훑는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무성의하게 대답하는 동완의 말에 정
형사는 놀라 소리쳤다.
“ 응. ”
“ 아. 그럼 전진 아버지가 전태영씨라는 것도요? ”
“ 전태영? ”
정 형사의 말에 그때서야 고개를 돌려 정 형사를 바라본 동완이 되물었다. 오늘 최초
로 동완의 관심을 받은 정 형사는 신이 나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 네. 한성 그룹 사장. ”
“ 흐음... 한성 아들이었군. ”
“ 그것도 알고 계셨어요? ”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가수이자 배우인 전진이 아직 10대라는
사실에 더불어 한국의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는 한성 그룹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사실
을 대수롭게 넘기는 동완의 모습에 놀라 묻는 정 형사의 물음에 동완은 정 형사의
질문을 살짝 무시하고는 물었다.
“ 또 다른 건? ”
“ 전진은 깨끗해요.
흐음- 이정도로 깨끗할 수 없을 정도로...
중학교 졸업하고 일년 뒤에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한 상태고요.
대학은 가지 않았어요.
시기적으로 보면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데뷔했어요.
그리고 가수 데뷔 후, 스캔들만 아니면 정말 깨끗해요.
스캔들도 매번 여자들이랑 이랬다, 저랬다 난 거 말고는 깨끗하고요.
기자한테 직접 알아봤는데, 아버지 힘으로 막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 깨끗하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 힘 빌린 거라면 자기가 전태영씨 아들이라는 거 밝히지 않는 정도? ”
“ 그렇군. ”
“ 전진은 그렇게 깨끗했고,
관련된 사건이라면 전진보다는 오히려 이번에 전진이랑
주연을 놓고 다투었다던 배우가 더 대단하던데요? ”
무덤덤한 동완의 반응에도 정 형사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동완의 물음에 착실히 대답
해주었다. 그리고 동완은 그런 정 형사의 설명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 뭐가? ”
“ 전진이랑 주연을 놓고 다투다가 빼앗겨서 조연을 한다던 말이 있어요.
그 때문에 사이가 안 좋다는 말도 있고...
그리고 이건 비공식적인 정보긴 한데요,
김 형사님께서 전진에 관련된 건 전부다 알아보라고 하셔서... ”
“ 그래. 그러니까 그 비공식적인 정보라는 게 대체 뭔데? ”
“ 그게... 그 남자 애인이었던 여자가 작년에 죽었더라구요. ”
“ 죽어? ”
“ 네. 선배님은 모르세요?
채빈이라고... 여자 가수요.
사고사긴 하지만... 아. 그리고 이건 더 비공식적인 정보인데... ”
“ 그래.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좋으니까 얼른 말이나 해 봐! ”
결국 자꾸 말을 끊으며 질질 끄는 정형사의 행동에 폭발한 동완이 무서운 얼굴로 소
리치자 정형사는 깜짝 놀라 서둘러 말을 꺼냈다. 평소 범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잘 웃
고 농담도 잘하는 동완이 오늘따라 유난히 예민한 것 같다는 생각에 미리미리 조심해
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저... 그게... ”
“ 뭔데? 빨리 말해봐. ”
“ 그게... 그게요... 채빈이 죽을 당시... 임신... 중이라서 소문도 있었어요.
뭐... 이 부분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
“ 넌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았냐? ”
꽤나 인기가 있었다는 채빈이라는 가수는 물론이고 그 해 모든 가요대상을 휩쓴 전진
조차도 지난 번 사건이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동완이었다. 그런 탓에 그런 자잘한
것들을 아는 정 형사가 신기했다. 경찰서에 형사 일로 바빠서 TV를 보지 못하는 것은
동완 자신 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저희 누나가 연예부 기자랑 사귀어요.
그 형이 말이 많은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소문날까봐 말 못하고 저한테 다 말하거든요.
전 어디 다른데 말할 때도 없으니까요... ”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론이냐? ”
“ 네??? ”
동완의 말에 정 형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물었다.
.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론?
- 응. 사람은 본질적으로 비밀을 누설시키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말하던 도중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혜성의 모습에 되묻는 동완의 말에 혜성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그렇지.
- 그러니까 자신이 그 비밀을 말해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그 비밀을 털어 놓는 거야.
- 그래?
- 예를 들어 내가 우리 학교 어떤 애를 좋아한다 쳐.
그래서 난 누군가한테 그 사실을 털어 놓으면서
그 애의 예쁜 모습들을 마구 말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우리 학교 녀석들한테는 절대 말 못하지.
그래서 그 대신 그 애를 모르는 형이나 선호한테 그걸 하는 거야.
그럼 그 애가 내 마음을 알 위험 없이 비밀을 털어 놓아 마음의 짐도 덜 수 있지.
- 그건 대체 누구 이론이냐?
- 누군 누구야? 신혜성표 이론이지...
무슨 중요한 이론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설명하다가 동완의 물음에 날렵한
턱을 치켜세우고는 거만한 목소리로 거들먹거리는 혜성의 모습이 오히려 귀엽다는 듯
웃어버리는 동완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강한 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여
린 외모와는 달리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로부터 오는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
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앞날을 결정하는 혜성의 모습에서 강한 아이라는 생각은 했었
다. 하지만 요즘 혜성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귀여웠다. 정말 18살의 소년 같아 보여 좋
았다. 민우도, 혜성도, 선호도 모두 아직은 10대 청소년일 뿐인데, 너무 많은 일을 겪
어 그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동완은 불편했다. 하지만 요
즘 들어 애교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혜성의 모습에 자주 웃게 되었다.
- 순 사기꾼.
- 뭐야??!!!
하지만 혜성의 거만한 표정이 귀엽다는 듯 혜성의 머리를 비벼주는 동완과는 달리
마침 옆을 지나던 민우가 한마디 하자 혜성은 버럭- 화를 내며 옆에 있던 쿠션을
민우에게 집어 던졌다.
.
동완은 정 형사의 물음에 그때가 생각나 웃어버렸다.
혜성이 온 이후로 민우와 선호도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통하는 듯한
민우였지만, 집에서는 말 없고 생각만 많고, 사건을 해결할 때는 동완 조차도 섬뜩해
질 정도로 냉정하고 잔인한 민우였다. 그런 민우가 혜성이 온 이후로 이렇게 장난도
치고, 심술도 부리고... 혜성은 그런 민우의 모습에 화를 내곤 했지만, 동완은 그런
둘의 모습이 그 또래의 청소년 같아 좋기만 했다. 게다가 서울에 와서도 줄곧 혼자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기만 즐기던 선호도 혜성이 온 이후로 망고와 꽃등심을 데
리고 병원에 가거나 산책을 하고, 또 늘 민우와 혜성을 챙기며 잘 웃고 잘 어울리며
활기차게 지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완은 그런 모든 변화를 준 혜성이 좋기만 했다.
“ 김형사님. 그게 뭐냐니까요? ”
“ 쿡- 있어. 그런 거.
그 외에는? ”
“ 스토커 때문에 접근금지 명령도 내렸더군요. ”
아까까지만 해도 닿기만 해도 손을 베일 듯 날카롭다가는 느닷없이 혼자 웃는 동완의
모습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 정 형사는 계속 설명했다.
“ 남자? ”
“ 아뇨. 여자요.
근데 이상한 건 그 스토커가 바로 전진 군 코디더라구요. ”
“ 전진 코디??? ”
정 형사의 말에 동완은 놀라 소리쳤다. 누구의 스토커였던 스토킹이라는 건 정도의
차이일 뿐 정신병으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분명 조심해야 할텐데 그런 사람을 코디
로 채용하다니...
“ 네. 아. 근데 전진의 개인 코디는 아니고,
이번 드라마 때 투입된 코디 팀 중 하나예요.
그런데 같은 드라마의 코디 팀이라면 그 스토킹 당했다는 배우,
그러니까 박태화랑도 마주치게 될텐데, 박태화가 별 말이 없더라고요. ”
“ 그래?..... ”
“ 좀 이상하죠? 이상하죠??? ”
정 형사는 자기가 뭔가를 알아냈다는 듯 동완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 그래. 그건 좀 이상하다. 고맙다. 수고했다. ”
“ 에이- 그럼 이제 좀 저랑 같이 다녀요- ”
그런 정 형사의 모습에 웃어버린 동완이 인사를 하자, 정 형사는 동완에게 함께 다니
자며 조르기 시작했다. 파트너임에도 불구하고 정 형사를 떼어 놓고 다니는 동완에게
불만인 정 형사였지만, 고집스럽게 혼자 다니는 동완의 탓에 늘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 넌 내 마누라 하려면 아직 멀었어. ”
“ 에- 김 형사님- ”
하지만 그런 정 형사의 말에도 동완은 정 형사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웃어버렸
다. 그런 동완의 반응에 애교스런 웃음으로 한 번 더 졸라보는 정 형사였지만, 그런
정 형사의 말에도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동완은 전혀 정 형사와 함께 다닐
생각이 없어보였다. 지난 번 동완의 파트너가 죽은 후로 새로 파트너로 발령난 정 형
사였지만, 늘 혼자 다니는 동완 탓에 정 형사는 매번 경찰서 책상이나 지키며 동완의
보고서나 대신 쓰는 상황이었다.
.
.
.
“ 뭐? 이걸로??? ”
“ 응. ”
어제 다쳤을 때는 연락을 받고 놀라 달려온 재영에게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던 진이었
다. 그런 진이 오늘 오전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는 빨리 오라고 금방 숨이라도 넘어갈
듯 난리를 쳐서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놀라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 달려온 재영에게
멀쩡한 -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픈 사람이 맞는 건지 얼굴에서 빛까지 나고 있는 -
얼굴의 진이 냉장고에 있는 딸기 한 박스를 꺼내며 하는 말에 재영은 얼이 빠져 되물
었다. 하지만 그런 재영의 반응에도 진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뭐야? 난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
“ 그럼- 큰일이지!!! 이게 큰 일이 아니면 뭐야???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진에게 말하자 오히려 진이 더 큰 소리를 치며 말했다.
누가 막내 아니랄까봐 상상을 초월하는 엉뚱한 모습에 재영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 나 참... 대체 무슨 딸긴데?
뭐야... 별로 좋은 것도 아닌데? ”
“ 세상에서 제일 귀한 딸기야!!! ”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보통 딸기를 최대한 오래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들어 달라는
진의 주문에 재영이 진이 건넨 딸기 박스를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며 묻자 진은 얼
굴이 새빨개져서는 크게 소리쳤다. 진이 이렇게 흥분한 건 가수가 되겠다고 선포한
그 날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 세상에서 제일 귀한 딸기? 이게??? 무슨 희귀 시험용 품종이냐? ”
“ ..................... ”
이제는 진의 엉뚱한 행동에 화를 내기도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한 재영의 웃음 섞인
질문에 진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재영을 노려봤다. 그런 진의 모습에 재영은 막내의
떼쓰는 표정이 귀여워 죽겠었지만, 차마 그런 말은 하지 못하고 순순히 대답했다.
“ 알았어. 알았어. 투명한 시럽으로 코팅해서 얼음에 넣어서 냉동시켜 줄게.
그럼 모양도 안 망가지고, 볼 수도 있고 오래 오래 보관되고...
뭐, 냉동실에 보관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럼 되지? ”
“ 응. 헤헤- ”
재영이 어떻게 보관할지 설명해 주자 아까까지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금세 웃으며
재영에게 매달리는 막내의 모습에 재영은 병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 나 참... 병실 가득한 싱싱한 과일 놔두고
이런 딸기를 특별관리 하라는 건 또 무슨 경우냐? ”
“ 예쁘게 해줘- 응? 누나- ”
“ 그래. 그래...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의 애교 섞인 부탁에
재영은 금세 웃으며 정말 예쁘게 해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진이 웃을 수 있다면 딸기
를 시럽으로 코팅해 급속냉동 하는 건 물론이고 그렇게 좋아하는 상대를 냉동시켜
달라고 해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 이렇게 매일 찾아와도 돼? ”
“ 그럼- ”
“ 나야 안 심심해서 좋기는 하지만... ”
어제 정혁과 함께 아침 일찍 왔던 선호는 오늘도 아침 일찍 진의 병실에 왔다. 진의
병실에 오는 선호의 모습에 진이 반가운 얼굴로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선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선호의 대답에 병실에 있는 냉장고를 뒤적여 선호가 먹을 간
식들을 꺼내던 진은 선호를 돌아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 벌컥-
“ 진아!!!!! ”
“ 엄마??? ”
“ 진아! 어떻게 된 거야??? ”
진이 냉장고를 뒤적이는 순간 병실 문이 열리고 뛰어 들어온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표
정을 한 우아한 복장의 중년 부인과 중년의 아저씨, 그리고 선호도 알고 있는 진의
누나 재영이었다.
“ 어? 엄마 왜 벌써 들어왔어요? ”
“ 너 다쳤다고 해서 왔지... ”
가족들의 느닷없는 방문에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과일들을 든 채로 일어선 진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진을 침대에 앉히고는 손으로 진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하는 진 어머니의 행동에 진이 볼을 빵빵하게 불리며 재영에게 말했다.
“ 누나- 엄마,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니까... ”
“ 나 말 안 했다? 그치 엄마? ”
“ 그래. 재영이 넌 막내가 그런다고 진짜 말 안하면 어떡하니?
우리 막내 다쳤는데 엄마가 있어야지... ”
하지만 재영은 오히려 엄마에게 진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때문에 한소리를 들었
다. 뭐, 어차피 말 했으면 진에게, 말 안 했으면 엄마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 걸
알고 있었기에 하루라도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리려는 쪽을 택한 거였지만...
엄마의 말에도 어깨만 으쓱- 하고는 가볍게 진을 향해 ‘그것 봐라-’라는 눈빛을 주고
있는 재영의 모습에 진이 혀를 쏙- 내밀고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 아버지도 일부러 일찍 들어오신 거예요? ”
“ 난 일 다 마치고 왔지. ”
“ 에- 진짜요? 그럼 저기 이 비서님이 왜 저렇게 걱정스런 얼굴로 서 계세요?
엄마, 아버지 이럴 줄 알고 일부러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
“ 녀석- 연락 안 한다고 몰라? 형들도 다 알고 있던데... ”
“ 정말? 흐음- 아무튼 요즘은 TV 때문에 안 된다니까... ”
아버지의 말씀에 진이 볼을 불리며 투정을 부렸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골이 깊은 주
름을 지닌 진 아버지의 얼굴을 꽤나 엄한 인상이었지만, 막내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뜻하기만 했고, 진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머니의 눈길에도 애정이 가득 담겨 있
었다.
“ 선호는 매일같이 출근이네? ”
“ 아. 네... ”
그때 재영이 진의 침대 옆에 얌전히 서 있는 선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그런 선호의 모습을 발견한 진의 엄마가 선호 쪽으로 몸을 일으키시며 물으셨다.
“ 진이 친구? ”
“ 아. 네. 안녕하세요. 이선호입니다. ”
“ 매일 병문안 와줬다고? 고마워요- ”
“ 아닙니다- ”
선호의 공손한 인사에 부드럽게 웃으시는 진 어머니의 말씀에 선호가 선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진은 선호에게 다가가 선호의 어깨에 팔을 얹고는 자랑하듯 말
했다.
“ 선호가 매일 매일 맛있는 거 만들어 와줬어요~ 그리고 말동무도 해주고... ”
“ 어머? 그래요? ”
“ 아뇨- 아니에요- ”
진의 말에 진심으로 다정한 눈빛으로 감사함을 표현하는 진 어머니 모습에 선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선호의 말에도 진 어머니는 따뜻한 눈빛으로
선호를 바라봤다.
“ 정말 고마워요.
진이 요즘은 바빠서 친구들도 잘 안 만나는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
“ 엄마도... 진이 녀석은 성격이 좋아서 그럴 걱정 없다니까... ”
애정과 고마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선호를 바라보며 따뜻한 손으로 선호의 손을 잡
으며 말씀하시는 진의 어머니 모습에 재영이 웃으며 말했지만, 선호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진 어머니의 손으로 느껴지는 온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진이 얼마나
자신의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아들뿐만 아니라 아들의 친구에게까지 이렇게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보내줄 수 있는 분이라면 정말 좋은 분이시라는 걸 알 수 있었
다. 게다가 말없이 서 계셨지만 부드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봐 주시는 진의 누나와
아버지에게서도 진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선호는 진정으로 가족이 그리웠다.
“ 아. 그런데 어쩌지? 난 지금 바로 들어가 봐야 하는데... ”
“ 피이- 벌써? ”
“ 녀석- ”
그 순간 진의 아버지가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비서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을 향해 말하자, 진이 아버지를 향해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진이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진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 그럼 저 안아주고 가요- ”
“ 우리 막내아들. 저녁에 오마. ”
“ 에이- 됐어요. 진짜로 아픈 것도 아닌데...
일부러 투정한번 부려본 거예요. 아빠도 알면서- ”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조르는 진의 어리광에 진에게 다가와 진을 꼭- 끌어안아
주며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진은 웃으며 말했다. 늘 바쁜 아버지였고, 또 그래
서 자신이 입원한 사흘 동안 외국에 출장을 가계신 아버지의 귀에 자신의 입원 소식
이 들리지 않도록 했었다. 하지만 진은 일반인이 아니었고, 진의 아버지도 일반인이
아니었기에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 아. 진아 나도 가볼게. ”
진의 아버지가 나가실 채비를 하시자 선호도 진을 향해 말했다.
“ 어? 벌써??? ”
“ 응. 갑자기 볼 일이 생각났어. 다시 올게. ”
“ 응. 그래. 그래- 아. 그럼 망고랑 꽃등심도- ”
“ 쿡쿡- 응. 알았어. 그럼. 잘 있어. 안녕히 계세요. ”
“ 그래요. 또 봐요- ”
“ 잘 가- ”
진의 어머니와 재영의 인사를 받으며 병실을 나와 진의 아버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선호는 살짝 긴장했다. 수행 비서를 대동하고 선호와 셋이 엘리베이터에 타신 진
의 아버지 얼굴이 비춰지는 엘리베이터 내벽을 바라보다가 진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까 진과 함께 있을 때까지만 해도 부드럽게 웃고 계셔서 깨
닫지 못했는데, 더 이상 엄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한 표정의 그분은... 한성그룹 회장
이신... 전태영 회장.
“ 선호군이라고 했나? ”
“ 네. ”
얌전히 줄어드는 숫자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선호에게 먼저 말을 거시는 소리에
선호가 고개를 돌려 공손히 대답했다.
“ 진이 잘 부탁하네. ”
“ 아. 네... ”
하지만 비서에게 보고를 듣는 그 순간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표정으로 다정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선호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친구는 처음이었다. 대단한 그룹의 총수여서 어색하거나 불편한 것이 아니라 친구의
아버지는 처음이어서 어색했고,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단 한번도 누구에게 잘 보여
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진의 부모님께는 잘 보이고 싶었다. 진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만큼 진의 부모님께도 아들의 좋은 친구로 보이고 싶었다.
“ 막내라 철이 없어.
게다가 가수 한다고 학교도 안다니는 바람에 더욱 친구가 없는 것 같더군...
하지만 난 좋은 친구만한 재산이 없다고 생각한다네. ”
“ 진이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
진 아버지의 말에 선호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한 치의 거짓말도 없었다. 진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큼 예쁜 아이여서 진의 부모님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됐다.
- 띵-
“ 그럼 조심해서 가게나. ”
“ 네. 안녕히 가십시오. ”
가족이 그리워.
.
.
.
“ 야. 야. 제대로 말 안 할래? 너 진짜... 어? 선호야? ”
“ 혀엉- ”
용의자 취조하던 중 경찰서로 뛰어든 선호를 발견한 동완을 향해 달려든 선호는 동완
에게 안겨 동완을 꼭- 끌어안았다.
“ 괜찮아? 무슨 일이야? ”
“ 형이 내 가족이었으면 좋겠어... 나도...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어... ”
선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듯 선호를 내려 보던 동완은 선호의 말을 듣고는 손으
로 부드럽게 선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 난 처음부터 네 가족이었어.
널 처음 보던 순간부터 난 널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선호는 아니니? ”
“ 혀엉- ”
동완의 말에 더욱 세게 동완의 허리를 끌어안는 선호를 마주 안아주는 동완의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동완과 선호의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에 느닷없는 선호의
등장에 놀랐던 경찰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동완에게 취조를 받고 있던 용의자
는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험악하고 포악한 형사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가족을 사
랑하는 남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경찰서 안 모든 사람들은 그
순간 가족이 그리워 졌다.
동완의 허리를 세게 안고 있는 선호의 팔은 쉽게 풀릴 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선호
의 가느다란 팔이 애처롭기만 한 동완이었다. 잊고 있었지만, 동완 자신과 정혁을 제
외한 다른 아이들에게는 진짜 피가 섞인 가족이 없다. 아니, 어쩌면 정혁에게도 가족
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동완이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완은 단 한번도 그 아이들이 가족이 아니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가족.
가족...
가족.....
[퇴마/연의] 退魔演義 049 - Case No.06 The Rival
퇴마연의(退魔演義) 049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3 그냥 좋아.
“ 그래서? 그 코디라는 누나가 이상하다는 거죠? ”
어제 밤샘을 한 동완을 위해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 티셔츠 등 이것저것 챙겨 새벽부
터 경찰서로 찾아온 선호가 동완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동완의
설명을 듣고는 물었다. 얼마 전 동완의 어머니께서 동완에게 주신 분홍색 니트를 보
고는 질겁한 동완이 선호에게 주는 바람에 예쁜 분홍색 니트를 대신 입고 있는 선호
는 봄의 따사로움과 잘 어울렸지만, 경찰서의 심각한 모습이나 진지한 표정과는 어울
리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 동완이 가볍게 웃으며 선호의 동그란 코를 살짝 누르며 말
했다.
“ 그래. 그리고 인상 좀 펴.
그러다 귀여운 얼굴 쭈글쭈글 할아버지처럼 된다- ”
“ 피이- ”
동완의 말에 입을 삐죽이면서도 금세 생글생글 웃는 선호에게 동완이 물었다.
“ 그래. 현장에 가서 뭐 좀 찾아냈어? ”
“ 진이가 미끄러졌다는 계단 말이에요. 거기에 가보니까 기름이 쏟아져 있었어요.
진이한테 물어보니까, 진이는 꼭 오른쪽 난간을 잡고 걷는 버릇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난간과 계단 모두에 닦아내기는 했지만,
틈 사이사이에 기름기가 남아있더라고요. ”
“ 흐음... ”
선호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은 동완이 이런 저런 가능성들을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다른 건 이미 시간이 꽤 지나서 증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계단에 기름기가 있을 이유가 없었던 걸로 봐서는 의도적인 거 같아요. ”
“ 그렇군. ”
“ 그런데 그 기름 성분이 그냥 식용유 같은 건 아니에요. ”
“ 그래? ”
“ 네. 제가 분석한 결과로는 꽤 비싼 바디 오일 성분이에요. ”
“ 바디 오일? ”
“ 네. 왠지 그 코디 누나랑 연결되죠? ”
“ 그렇네. ”
“ 당분간은 내가 진이 옆에 있을게요. ”
“ 위험하지 않겠어? ”
선호의 말에 동완이 걱정스럽게 선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선호가 진을 좋아하고 있다
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국에 온 후로 친구라고는 없던 선호였기에 진이는 선호가 처
음 사귄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쉽게 말릴 수 없었고, 또 선호 역시 그리 호락
호락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완의 눈에 선호는 아직 어린 아이였기에 동완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위험한 일을 당할까 걱정이 되었다.
“ 그 정도는 괜찮아요. ”
자신이 입고 있는 분홍색 니트와 잘 어울리는 분홍색 볼을 한 선호는 순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곧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짝-’ 박수를 치고는 동완의 책상 위로 들
고왔던 커다란 도시락을 꺼내 놓았다.
“ 깜박했다. 아까 들어오면서 말한다는 게...
자요. 그냥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이예요.
어제 밤샘하느라 힘들었죠?
보온병에 국이랑 들었으니까 같이 먹어요. 다들 같이 드세요~ ”
“ 와아!~ 김 형사님 동생 한번 잘 두셨는데요?~ ”
선호의 말에 정 형사는 물론이고 다른 형사들도 몰려들어 선호가 내어 놓은 유부초밥
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말했다. 커다란 5단짜리 찬합 가득- 유부초밥을 담고 3단짜리
찬합에는 예쁘게 깎은 과일을 담아온 모습에 다들 놀람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보온
병에 넣어 와서 아직도 뜨끈뜨끈한 연하게 끓인 장국은 유부초밥과 아주 잘 어울렸
다.
“ 선호군은 무섭기만 한 김 형사님한테 왜 이렇게 잘해요? ”
동완과 한 기수 차이 나는 후배 형사인 이 형사는 들고 있던 유부 초밥을 한입에 삼
키고는 빙긋 웃으며 선호에게 물었다. 그런 이 형사의 물음에 선호는 동그란 눈을 동
글동글 굴리고는 다시 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에이- 형이 뭐가 무서워요- ”
“ 와아- 김 형사님 동생한테는 안 무서우신가 보네?
김 형사님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
“ 헤헤- 그냥 다 좋아요. ”
그 편안한 웃음을 본 경찰서 안의 모두는 그 미소와 목소리가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동완이 밤샘을 할 때면 부인처럼 갈아입을 옷과
먹을 걸 들고 예쁘게 웃으며 찾아오는 선호는 시커먼 경찰서의 반짝이는 별이었고,
경찰서 식구들의 귀염둥이였다.
“ 형. 그럼 저 갈게요- ”
“ 내가 데려다 줄게. ”
저마다 하나씩 유부초밥을 물고 있는 경찰서 식구들을 뿌듯하게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선호를 보고는 유부초밥 하나를 얼른 입에 집어넣은 동완이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 아니에요. 형은 그냥 드세요. 전 버스타고 가면 되요. ”
“ 아냐. 같이 먹고, 데려다 줄게. ”
“ 그래요- 먹고 가요- 뭐... 별로 남은 건 없지만... 하하- ”
그냥 먹고 가자는 말을 하던 선호는 이미 반 이상 비어버린 찬합을 보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앉았다.
“ 그만들 좀 먹어!!! ”
혼자 가겠다는 선호를 붙잡은 동완은 선호가 가져온 도시락으로 십여 개의 손들이 부
산스럽게 달려드는 모습에 그 손 중 하나를 탁-치며 말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출출하던 배를 채우고 있었고, 선호도 그런 모두의 모습을 즐거운 듯 바라보고 있었
다.
.
.
.
“ 앉아. 앉아. 안 그래도 이 많은 과일 어쩔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왔어.
우리 과일 먹자- 그리고 과일 집에도 가져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놓을 데도 없어-”
하루 사이 병실이 넘치도록 늘어난 과일과 선물들 속에 앉아 편지들을 읽던 진이
선호의 방문에 빛이 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선호를 반겼다. 선호를 자리에 앉히고
불편한 다리를 움직여 선호가 먹을 간식들을 내어 놓는 진의 모습에 결국 선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한참을 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던 말을 꺼냈다.
“ 저... 진아... ”
“ 응? 왜? ”
선호의 부름에 진은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선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진의 그
천진한 미소에 선호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지만, 굳게 마음을 먹었다.
“ 솔직히 말할게.
너한테 있었던 사고들, 그냥 단순히 사고는 아닌 거 같아. ”
“ 무슨 말이야? ”
냉장고에서 팬들에게 선물 받은 고구마 케이크와 재영이 끓여준 차가운 홍차를 꺼내
어 놓은 진이 선호에게 포크를 건네주며 물었다.
“ 네가 미끄러졌던 계단 살펴보니까 미세하지만 기름기가 있었어.
넌 그것 때문에 미끄러진 거고... ”
“ 뭐... 안티들 장난이겠지. ”
선호의 말에 진이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진은 이미 전국적인 스타였고, 또 늘 그렇
듯 진 역시 팬이 많은 만큼 안티들도 많았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의 경우 가끔 뭣도
모르고 심한 장난을 할 때가 있기도 했다.
“ 그 정도야 애교지만, 네 머리 위로 화분이 떨어지는 거나,
급발진 자동차는 애교라고 보기에는 너무한 거 아냐? ”
“ 화분 사건은 또 어떻게 알았냐? ”
하지만 그런 진의 말에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선호의 모습에 진은 오히려 웃어버
리며 말했다. 지난 번 이야기 하지 않은 화분 사건까지 들먹거리며 이야기하는 선호
를 보니 보통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 인터넷에 다 나오더라. ”
“ 누군가 날 노리고 있다는 거야? ”
“ 그런 것 같아. ”
“ ........................ ”
선호의 똑-부러지는 대답에 진은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사고들이 이어지면서
덜렁거리는 성격에 당연한 것이라고 구박을 하면서도 걱정하던 누나와 귀에 들어가지
않게 쉬쉬했지만 결국 아시고는 잔뜩 걱정 중이신 부모님의 모습에 정말 별일 아니라
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어
쨌든 벌어진 일이고, 조심하면 막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정말 누군가가 작정하고 벌인 일이라면...
내가 그렇게 미움 받을 타입인가?...
“ 어느 정도로 위험한 건지, 또 누가 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아. ”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미간을 구기고 있는 선호의 말에 차가운 복숭아 홍차를
마시고 있던 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 휴우... 내가 연예인이 되기로 한건 사랑받기 위해서 였어.
그런데... 막상 되고 나니, 날 사랑해주는 사람만큼 미워하는 사람들도 생기더라. ”
“ ........................ ”
“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생각으로 일했어.
하지만... 날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한다는 건
단순히 관심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지? ”
“ 진아..... ”
얼굴을 웃고 있지만 병실에 가득 울려 퍼지는 진의 쓸쓸만 목소리에 선호는 진의 손
을 잡으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진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공인이 되는 것을 반대하시는 아버지를 설득해
시작한 일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많은 이들의 사
랑을 받으며 늘 웃고 산다면... 그러면 언젠가는 날 알아볼 그.녀.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사랑받고 싶었다.
“ ..........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아. 다시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든. ”
“ 진아..... ”
“ 다치고 싶지도 않아. 다치면 그 사람을 지켜 줄 수 없거든. ”
“ ..................... ”
“ 알고 있었지? 내 감정? ”
진은 망설임 없는 눈길로 선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진의 곧은 눈빛에
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 넌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니까..... ”
“ 내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은... 내가 컨트롤 하지 못하는 감정은
그 사람에 대한 관심뿐이야.
다른 감정들은 지금까지 너무나 잘 숨기고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지나치게 감정 표현이 없는 사람이니까,
나라도 솔직해 지고 싶어. ”
“ ..... 하지만 정혁 형은..... ”
“ 그냥 좋아. 아직은 그냥 좋아.
딱히 그 사람에게 뭔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야.
그냥 좋아. 그뿐이야. ”
“ ..... 그래. 그래..... ”
진의 마지막 말에서 선호는 왠지 낯설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좋아.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기분은 자신도 알고 있었기에...
- 김 형사님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
- 헤헤- 그냥 다 좋아요.
그냥 좋은 거.
그 기분은 자신도 알고 있었기에...
“ 누군가 날 노린다면 조심할게. ”
선호의 손을 맞잡으며 말하는 진의 모습에 선호는 진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그리고
그런 선호의 손길이 진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선호는 진심으로 진을 걱정하고 있다
고...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가족들을 가졌다고 자부해 왔었다. 그리고 누구도
부럽지 않은 팬들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할 사람도 발견했
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진정한 친구도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좋은 친구가 되자. 선호야...
[퇴마/연의] 退魔演義 050 - Case No.06 The Rival
퇴마연의(退魔演義) 050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4 퇴원(退院)
“ 와아~ 네가 꽃등심이고, 네가 망고구나? ”
아직은 쌀쌀한 봄 날씨에 환자복 위에 두터운 가디건을 걸친 진은 병원 건물에서 뛰
어 나오자마자 선호가 메고 온 이동장에서 나오는 꽃등심과 망고를 반기며 말했다.
“ 아직 추운데 괜찮겠어? ”
“ 흐음- 얘네들 추울까? ”
“ 아냐. 요즘 산책 못했는데, 바람도 쐬고 좋을 거야. ”
“ 그래? 그럼 여기 있자- ”
“ 그래. ”
진의 말에 선호는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고, 진도 망고와 꽃등심을 안고는 선호의 옆
에 앉았다. 벤치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망고와 꽃등심의 모습에 진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언제 퇴원해도 된데? ”
“ 아무 때나- ”
선호의 조심스런 질문에 진은 망고가 얼굴을 부비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볍게 웃고는
대답했다.
“ 그럼... 집에 가 있는 게 저 좋지 않을까? ”
“ 흐음- 집에 가 있으면 좋긴 하지만 네가 안 오잖아- ”
선호의 말에 고개를 들어 선호를 바라보며 대답하는 진의 모습에 선호는 웃어버렸다.
마치 ‘내가 가면 너 나랑 안 놀아 줄 거잖아- ’라고 말하는 다섯 살짜리 꼬마아이 같
았기 때문이다.
“ 왜- 저희 집에 놀러 가면 되지... ”
“ 정말? 정말??? ”
“ 그럼- 정혁 형도 데리고 갈까? 쉽게 갈지는 모르겠지만... ”
“ 응- 응- 나 그럼 오늘 퇴원 할래- ”
선호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퇴원수속을 하겠다며 바로 병원으로 뛰어 들어
가는 진의 모습에 선호는 웃어버렸다.
“ 저렇게 정혁 형이 좋은가?........ 하긴... 나도 동완 형이 좋으니까... 헤헤- ”
자기가 말해놓고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혼자 키득키득- 웃는 선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꽃등심의 모습에 선호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 가끔 보면 꽃등심은 너무 사람 같다니까... ”
.
.
.
“ 미안- 정혁 형이 안 오겠다고 고집 부릴 줄은 몰랐어.
형 원래 별로 고집 같은 건 안 부리는데... ”
“ 하하- 괜찮아- 괜찮아- ”
미안한 듯 진에게 말하는 선호의 모습에 진은 크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선호의 말대로라면 별로 고집도 부리지 않고, 맛있는
게 있다고 하면 잘 오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정혁은 이상하게도 진을 피하고 있었다.
첫날 이후로 병문안도 오지 않고, 또 진이 이렇게 불러도 오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
려고한 건 아니지만 왠지 정혁이 자신을 피한다는 막연한 느낌을 감출 수 없는 진이
었다.
“ 어? 우리 집 근처네? ”
“ 너희 집도 이 근처야? ”
“ 응. ”
진의 집에 도착한 선호는 커다란 주택이 즐비한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와아!~ 그럼 매일 와~ 매일 매일 와!~ 나 여기서 살래~~~ ”
“ 여기서 살다니? 여기 사는 거 아냐? ”
선호의 대답에 선호를 꽉- 끌어안으며 소리치는 진의 모습에 선호가 놀라 물었다.
“ 여긴 우리 부모님 집. 난 따로 살아. 팬들이 하도 시끄럽게 해서... 헤헤- ”
“ 아~ ”
.
“ 진이군. 어서와. ”
꽤 커다란 진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 앞치마를 맨 아주머니께서 웃음 띤 얼굴로 진을
반겼다.
“ 오늘 엄마랑 아빠 늦으세요? ”
“ 진이군 퇴원하는 거 아셨으면 일찍 오실 텐데... 말씀 안 드렸어? ”
“ 헤- 깜짝 선물이요- ”
“ 훗- 많이 늦진 않으실 거야. 올라가 있어. 점심은 먹었어? ”
“ 아뇨. 배고파요. ”
아주머니의 물음에 배를 쓰다듬으며 애교스럽게 대답하는 진의 모습에 아주머니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 알았어. 곧 준비할게. ”
아주머니의 말씀에 올라간 2층의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진이 들고 있던 가방
에서 망고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망고는 뭐가 그리 궁금한지 이리 저리
구경을 다녔다. 그 모습에 선호도 꽃등심을 꺼내 놓자 둘은 나란히 집 구경을 다녔다.
- 띠리리리리~
“ 어? 동완 형이네?- 형-
....... 네. 아... 나 지금 진이네 집인데..........
우리 동네예요. 응. 바로 옆. 진아. 여기 주소가 뭐야? ”
소파에 앉자마자 울리는 전화를 받은 선호는 진이 적어주는 대로 동완에게 진의 집
주소를 불러 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 왜? ”
“ 동완 형이 너한테 할말 있다고 지금 온데. ”
“ 그래? 아줌마- 한 사람 더 있어요- ”
선호의 말에 진은 1층으로 팔랑팔랑 뛰어 내려가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던 선호는
어느새 자신의 무릎 위로 올라앉은 망고의 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 근데... 동완 형의 목소리가 너무 어둡던데... 괜찮을까?... ”
.
“ 미안하다. 이렇게 수사를 마쳐서... ”
결국 심증이 있는 용의자는 있었지만, 잡지 못하고 수사를 끝내게 되었다는 말을 전
하게 된 동완이 미안한 듯 진에게 말했다. 드라마 코디인 정희양이 심증이 있던 용의
자였지만, 결국 물증은 없었고 게다가 정 형사가 말해준 박태화와의 관계도 연예계의
비공식적인 소문일 뿐이었다. 바닥이 바닥인지라 소문은 소문일 뿐 결코 증거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진의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인 사건이라는 증거조차
없어 경찰에서 수사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 괜찮아요. 제가 조심하면 되죠.
게다가 선호의 말 아니었으면, 누가 날 노리고 있다는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제가 좀더 조심할게요. ”
그런 동완의 말에 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장미 무늬의 찻잔을 내려놓으며
싱긋- 웃고는 말했다.
“ 괜찮겠어? ”
“ 그 코디 누나는 그만 뒀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야. ”
걱정스런 선호의 물음에 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선호의 굳은 표정을
풀릴 줄 몰랐다.
“ 미안하다. ”
하지만 그런 진의 말에도 동완은 불편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동완도 박태화의 스토커
였다던 코디 정희양이 꽤나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희양이 진의 사
고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정희양이 꽤 용의주도해서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사고가 모두 단순 사고로 생각 되서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증거가 될만한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조금 의심스러운 것이라면 박태화와 연인관계로 소문이 나 있던 여자 연예인의 임신
사실이 사실이라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비공식적인 연인도 아닌 정희양
이 그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
.
.
“ 이렇게까지 같이 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
“ 나 불편해? ”
퇴원 후, 다시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게 된 진을 따라다니는 선호의 모습에 진은 미안
한 듯 말했고, 그런 진의 말에 선호는 놀라서 물었다.
“ 아니... 하지만 너 지금까지 나 쫓아다니느라고,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있잖아. ”
“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야. 나 드라마 촬영하는 건 처음 보거든- ”
“ 헤에- 그럼 나도 좋아. 심심하지도 않고, 재미있고... ”
선호의 말에 진은 금세 웃으며 말했다. 정말 선호가 있으면 재미있다. 가끔씩 망고와
꽃등심을 데리고 오는 날이면 오는 차 안에서도 재미있고, 또 틈틈이 쉬는 시간에도
재미있다. 게다가 애교장이인 망고와 꽃등심은 이미 상대 여배우에게도 귀여움을 받
고 있어서 촬영장의 분위기가 더 좋아지곤 했다.
“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
“ 응- ”
이번에는 상대 여배우의 장면이라 대기실에는 잠시 눈을 붙이러 들어온 진과 진을 따
라 들어온 선호뿐이었다. 어제 밤샘 촬영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길게 누이며 이
불을 덮는 진에게 말하는 선호의 희미한 목소리와 문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잠에
빠져 들었다.
- 달칵-
“ 으음- 선호야? 몇 시야?... ”
몇 분을 잤는지, 혹은 몇 십 분을 잤는지 모르는 동안 정말 깊게 잠들었던 진이 들리
는 문소리에 눈을 감은 채 선호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그 순간...
“ 죽어!!! 죽으란 말야!!!!!!!!!! ”
[퇴마/연의] 退魔演義 051 - Case No.06 The Rival
퇴마연의(退魔演義) 051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5 상처뿐인...
“ 죽어!!! 죽으란 말야!!!!!!!!!! ”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식칼을 든 전 코디인 전희양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한 눈을
해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깜짝 놀라 칼을 든 희양의 손목을 잡았지만,
미친 사람의 힘은 엄청나다고 했던가? 남자인 진이 당해내기도 힘들 정도의 엄청난
힘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 의자에 누워서는 위에서 내리 누르는 희양을
힘겹게 막고 있었다. 그 순간 음료를 들고 대기실로 들어오려다가 칼을 들고는 진에
게 달려드는 희양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음료수들을 던져 버린 채 달려온 선호는 칼을
든 희양의 손목을 잡고는 그대로 뒤로 꺾어 칼을 떨어뜨리게 하고는 희양을 진에게서
여자를 떼어냄과 동시에 양쪽 팔을 결박해서 바닥에 쓰러뜨려 제압했다.
“ 어서 사람들 불러- ”
“ 으... 응..... ”
아직도 발광하는 희양을 꽉- 누른 채 말하는 선호의 말대로 진은 뛰어나가 경호원들
을 불렀고, 경호원들은 희양과 선호가 봉지에 담아 준 칼을 가지고 경찰서로 향했다.
“ 괜찮아? ”
“ 응. 괜찮아... ”
선호의 물음에 진은 칼에 살짝 긁힌 상처를 내려 보며 대답했다. 이미 분장실 문 앞
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에 진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자
선호가 진의 손목을 잡아끌며 말했다.
“ 가자. 경찰서 가서 조서도 꾸며야 하고... ”
“ 그래. ”
선호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호와 함께 감독님께 가
말을 하고는 경찰서를 향했다.
“ 놔!!! 놓으란 말야!!!!!!!!! 저 놈은 내가 없애야 해!!!!!!!! ”
여전히 경찰서 안에서 소리치는 여자와 경찰서 안에 와 있는 진 탓에 경찰서 앞에는
이미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 그래서 저 여자가 칼을 들고 덤볐다는 거지? ”
“ 네. 제가 손목을 잡고 막을 때 선호가 와서 도와줬고요. ”
동완의 물음에 진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 때 나란히 앉아있는 선호와 진의 곁으로
다가온 정 형사는 아까 동완이 말한 따뜻한 녹차가 담긴 종이컵을 둘에게 건넸다.
예의바른 태도로 정 형사가 건네주는 녹차를 받아드는 진과 선호를 본 정 형사는
동완의 옆에 앉아 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진이라면 전에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동완을 만나기 위해 경찰서로 왔던 날 동완을 기다리는 진을 질리도록 봤었다.
하지만 겨우 십대 소년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정말 어려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뽀얀 피부하며, 언뜻 보이는 보송한 솜털하며 선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 우선은 이 정도면 됐지만, 그 당시 당사자인 너와
목격자인 선호뿐이라서 좀 바쁠 거야. ”
“ 네. 괜찮아요. ”
“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라. 다른 일 있으면 전화할게. ”
“ 네. 감사합니다. 선호 데려다 줄까? ”
“ 응. 그..... ”
매니저와 함께 나가려던 진이 선호에게 묻자 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동완이 선호를 보며 말했다.
“ 선호는 나 좀 보고가. ”
“ 네. ”
“ 그럼 나 갈게. ”
“ 가서 푹 자. ”
“ 응. ”
선호의 말에 진은 살며시 웃으며 매니저와 보디가드들과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진이
나오자 경찰서 앞을 메우고 있던 기자들은 엄청나게 몰려들어 취재를 하려 했지만,
진과 일행은 노코멘트로 일관하고는 벤에 올라 서둘러 사라졌다.
“ 다친 데는 없어? ”
“ 네. ”
진을 보내고는 계속되는 조사와 복잡하기만 한 일들 속에 지친 듯 보이는 선호를 휴
게실로 데리고 들어온 동완이 묻자 선호는 파리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우고는 고
개를 끄덕였다.
“ 미안하다. 너한테 이런 일을 맡겨서... ”
“ 아냐. 내가 할 일이었고... 또 진이는 내 친구인 걸? ”
“ 친구? ”
“ 응. 진이 같은 친구가 생겨서 정말 좋아.
나랑 나이도 같고, 또 말도 잘 통하고... 그래서 정말 좋아. 헤헤- ”
“ 그래... ”
선호가 직접 친구라고 하는 건 처음 들어본 동완이었다. 확실히 혜성과 진을 만난 이
후로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해진 선호였다. 이제 예전의 어둡고 상처 입은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 진이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
“ 그래. 다행이다.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
“ 응. 민우 형이랑 혜성 형 올 시간 됐어. 나 없으면 걱정 할 거야. ”
“ 그래. 가자. ”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감싸주는 동완의 손길에 조금 피곤한 얼굴에도 마냥 웃기만
하는 선호였다.
.
.
.
“ 그럼 푹 자고, 일어나면 전화해. ”
“ 네. 형도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고요... ”
“ 그래. 잘 자. ”
늘 사건을 달고 사는 선호였지만, 친한 친구가 죽을 뻔한 것을 보고, 또 도구를 사용
해서가 아닌 손으로 범인을 잡은 것이 꽤 커다란 충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동완은
선호를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지켜본 동완이 침대에 누운 선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방을 나선 후에도 선호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동완이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리자 선호는 일어나 방의 불
을 켜고는 거실로 나가 TV장을 뒤적여 구급상자를 꺼냈다. 그런 선호의 행동에 잠들
어있던 꽃심이와 망고가 쫄랑쫄랑 선호의 뒤를 따라 나왔다. 그런 꽃심이와 망고의
머리를 쓸어준 선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잠옷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티셔츠를 찢어
지혈한 선호의 어깨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 으... 피가 배어 나왔네- ”
동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경찰서의 화장실에서 급하게 티셔츠를 찢어 임시로 한
치료여서인지 피가 멈추지 않고는 스물 스물 배어나왔다.
“ 스읍- 아프다... ”
피 붙은 티셔츠를 떼어내자 말라붙은 핏덩이 때문에 상처가 아파왔다. 여자를 제압하
던 순간 아차-하는 사이 어깨를 찢겨버렸다. 동완에게 들킨다면 미친 듯이 화를 낼
동완을 알기에 꽤 아팠지만 참고 숨길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솜씨로 소독을 하고 붕
대를 감았지만, 꽤 깊이 찢긴 것이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덧나지 않을 것 같았다.
“ 병원에 가야하나? ”
- 달칵-
“ 누가 아직도 안자고... 선호 어디 다쳤니? ”
“ 아. 교수님... ”
늘 바쁘셔서 못 들어오거나 일찍 들어와 자는 일이 더 많은 유영이 늦은 시간 집에
들어오다가 거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는 반가운 듯 말을 꺼내다가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는 선호를 보고는 물었다.
“ 어디 보자. 붕대 잘 감았네? ”
“ 헤헤- ”
“ 소독도 잘 하기는 했는데, 좀 꿰매야 겠다. ”
“ 그렇죠? 안 그래도 병원에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
“ 잠시만 기다리거라. ”
유영은 선호에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간단히 도구를 챙겨 나와서는 손을 소독하
고는 수술용 장갑을 낀 뒤 선호의 어깨를 잡고는 말했다.
“ 마취 할까? ”
“ 아니요. 그냥 해요. 얼마나 해야 되요? ”
“ 한 서너 바늘? ”
“ 그럼 그냥 해요. ”
웃으며 말하는 선호의 모습에 유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처 주위를 다시 소독하고
는 바늘을 꽂았다. 아픔에 본능적으로 움찔-하는 선호였지만, 아프다는 소리도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
“ 다 됐다. 근데 칼에 찔린 것 같은데, 무슨 일이냐? ”
“ 진이 스토커 막다가 좀... ”
“ 조심해야지... ”
“ 죄송해요. ”
“ 죄송은... 내일 다시 소독하고... 아니, 내일 병원으로 나오너라. ”
“ 네. 아... 교수님. ”
“ .....???..... ”
선호의 부름에 유영은 수술 도구를 챙겨 넣다가 고개를 들어 선호를 바라봤다.
“ 동완 형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
“ ..... 그래. 알았다. 그럼 들어가 가거라. ”
선호의 말에 잠시 아무 말 없이 멈춰 서 있던 유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사를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선호는 유영의 커다란 등 뒤에 대고는 인사를 했다.
“ 네. 안녕히 주무세요. ”
꾸벅- 유영에게 인사한 선호는 붕대가 감긴 자신의 어깨를 슬쩍 내려 보고는 거실 탁
자 아래에서 쪽지 꺼내 무언가를 써서 혜성과 민우의 방에 붙여 놓고는 방으로 들어
가 누웠다. 그리고는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 달칵-
평소 잠귀가 밝고 예민하던 선호였지만, 오늘은 많이 피곤했는지 아니면 상처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건지 방문이 열려도 깨지 못하고 깊게 자고 있었다. 밤늦게 돌
아올 민우와 혜성을 위해 켜둔 거실의 밝은 빛이 선호의 방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빛
속에서 걸어 나왔지만, 빛보다는 어둠과 가까운 형체는 천천히 선호의 침대 옆으로
다가와 섰다.
“ .................... ”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선호의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 ..... 으으응..... ”
그 낯선 느낌에 몸을 뒤척이던 선호는 곧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몸의 상처가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는다면 몸의 상처는 걱정하지 않을게.
하지만... 마음만은 다치지 마라. ”
그 말을 남긴 어둠의 형체는 선호 방의 문을 닫고 사라졌다.
.
.
.
- 달칵-
“ 어? 선호 자나? ”
“ 그런가 본데? ”
집에 들어오자 불은 켜져 있지만, 조용한 거실을 본 혜성과 민우가 말하며 들어왔다.
평소라면 거실에서 책을 보거나 TV를 보고 있을 선호였지만, 오늘은 거실에 보이지
않았다.
“ 어? 쪽지 있는데? ”
[ 혜성 형.
나 피곤해서 먼저 자요. 미안...
냉동실에 피자있으니까, 배고프면 먹고
냉장고에 과일이랑 야채 다듬어 놓은 것도 있어요.
먼저 자서 미안해요.
- 선호 ]
“ 선호 잔다는데? ”
“ 응. 내 방에도 쪽지 있어. ”
민우의 말에 혜성은 선호가 자신의 방에 붙여 놓은 쪽지를 들고는 민우의 곁으로 다
가가 민우가 들고 서 있는 쪽지를 들여다보았다.
[ 민우 형.
나 먼저 자요. 미안...
배고프면 혜성 형이랑 야참 먹어요.
- 선호 ]
“ 에- 내 쪽지가 훨-씬 길다. 헤헤- ”
“ 그래. 그래. 네 쪽지가 훨씬 길어 좋겠다. 좋겠어. ”
힐끗- 민우의 쪽지를 훔쳐보고는 좋아서 웃어대는 혜성의 철없는 모습에 가볍게 한숨
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민우를 붙잡은 혜성이 물었다.
“ 너 배 안고파? ”
“ ...................... ”
“ 배 고프지? ”
“ ..... 조금..... ”
“ 그럼 우리 피자 먹자. 나도 배고프다. ”
돌도 씹어 먹는다는 혈기왕성한 19살의 청소년들인 혜성과 민우가 6시에 저녁을 먹
고는 11시가 넘어 집에 오면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민우에게 피자를 먹
자고 말하고는 방에 들어간 혜성은 교복을 갈아입고 나와 냉동실에 있던 피자조각을
오븐에 넣어 해동시켰다. 그 동안 민우는 냉장고에서 콜라와 피클을 꺼내 콜라를 컵
에 따르고 피클을 접시에 덜어 놓았다.
“ 와아~ 맛있겠다~~~ ”
오븐의 땡-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접시를 꺼내 입맛을 다신 혜성이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고는 피자를 들고는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 민우도 피자
를 들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민우의 피식-하는 웃음소리에 엄청 민감하게 반응
하던 혜성이었지만, 거의 10개월 가까이 그런 민우의 웃음을 본 혜성은 그게 비웃음
이라기보다는 그냥 별 의미 없는 웃음소리라는 걸 알게 되고는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 으~~~ 배부르다~~~ ”
“ 오늘 설거지는 너다- ”
“ 뭐??!!! 씨이- 딴 거 먹을 걸... 피자 치즈는 닦기 힘든데... ”
“ 피자 먹자고 한 건 너였어. ”
혜성의 투정에 민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고는 방으로 들어갔고, 혜성은 구시
렁 대며 선호의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는 설거지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가 잠에 빠져
버렸다.
.
.
.
“ ................나. 일어나. 벌써.............어..... 신혜성. 얼른 안 일어나? 신혜성! ”
“ ..... 으음... 선호야. 몇 시야?... ”
“ 벌써 6시 넘었어. ”
“ ..... 읏- 선호는? ”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당연히 선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혜성은 옆에서 들리는
뜻밖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눈을 부비며 물었다.
“ 아직도 자. 많이 피곤한 가봐. 아님 출혈 때문에 그런 가? ”
“ 출혈? 선호 어디 다쳤어??? ”
민우의 말에 혜성이 깜짝 놀라 잠에서 확- 깨서는 민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 쓰레기통에 피 뭍은 티셔츠가 있더라. 다쳤나봐. 미열도 있고...
세상모르고 자고 있어. ”
“ 어디를 얼마나 다친 건데??? ”
민우의 말에 놀란 혜성이 잠이 확- 깨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 그냥 어깨 좀 다친 거 같아.
교수님이 치료해 주셨는지, 처치는 잘 했더라고... 걱정 안 해도 돼. ”
“ 그래... ”
민우의 말에 혜성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천천히 침대에서 내리 서며 중얼거렸다.
“ 선호 없어서 아침은 없으니까, 좀 일찍 나가서 뭐 사먹어야겠다. 서둘러라. ”
그렇게 말하며 혜성의 방을 나서는 민우의 모습에 혜성은 서둘러 등교 준비를 했다.
.
.
.
“ 4000원입니다- ”
“ 어? 이거 진이 아니야? 스토커??? 어제 큰일 있었나 본데??? ”
민우와 나란히 편의점에 들어서서 삼각 김밥과 음료수를 카운터에 내려놓고는 계산하
려던 혜성은 카운터 옆에 있는 스포츠 신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김밥을
계산하고는 들고 있는 민우를 보고 신문을 들어 계산하고는 민우와 함께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 이제 대체 무슨 일이야? 어??? 이거 선호 아니야??? ”
신문 1면에 나와 있는 진의 커다란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혜성은 진의 옆에 작게
찍혀 있는 선호를 발견하고는 소리치자 민우는 김밥을 뜯어 물고는 고개를 돌려 신문
을 들여다봤다.
“ 선호 이 일 때문에 다친 거 아냐?
진이 스토커라는 여자가 진이한테 칼 들고 덤볐다는데? ”
“ ...................... ”
“ 흐음- 수사 중이라고?
그럼 이걸로 끝난 건가?
참 나... 별 일이 다 있군... ”
“ 안가? 지각하겠다. ”
“ 그래. 가자. ”
민우의 말에 신문을 대충 가방에 꽂고는 자전거에 올라타 힘차게 페달을 밟는 혜성의
뒤로 부지런히 따라가는 민우의 모습 위로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었다.
퇴마연의(退魔演義) 052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6 진실을 알고 있는 자
“ 어이- 다행히 많이 안 다쳤다면서? 이제 좀 괜찮아? ”
어제 저녁 그런 일을 당하고도 다음 날 촬영장에 나온 진의 모습에 스텝들은 모두 놀
란 눈으로 진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한마디씩 했다. 같은 드라마 스텝이었던 전희양
이 전진을 죽이려 했다는 보도는 연예프로를 넘어서 뉴스에까지 방송되어 전국에 퍼
졌기 때문이다. 스텝들의 걱정에 괜찮다며 천진한 웃음을 웃어주던 진은 자신에게 웃
으며 묻는 박태화에게 입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 네. 불.행.히.도. 안 다쳤네요- ”
“ 어이구- 큰일을 겪어서 그런지 날카로워져 있는데? ”
진의 노골적인 말투에도 오히려 웃어버리는 박태화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사람들은
진이 큰일을 당해 예민해져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진을 배려하는 태화의 모습을
칭찬했지만 진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꼈다.
사실 진은 전희양이 용의자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어렴풋이 감이 오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순전히 전희양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배후의 인물이 박태화일지 모
른다는 걸.
본래 사람을 의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진이었기에 배후의 인물에 대한 약간의 의심
에 대해 선호나 동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전에 혜성으로부터 걸
려온 전화로 알게 된 선호의 부상 사실에 상대를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스스로가 미
치도록 원망스러웠다. 혜성은 선호는 별로 많이 다친 건 아니라며 그냥 자신에 대한
단순한 안부 전화이자, 선호는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 해주려 전화한 것이라고 말했
다. 그리고는 선호가 다쳤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는 몰랐냐며
오히려 걱정을 끼친 거 같다고 미안한 목소리로 말하는 혜성의 말에 아니라며 웃었지
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소중한 친구인데...
정말 많이 소중한 친구인데, 나 때문에 다쳤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진은 전희양이 박태화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전희양이 일방적으로 좋아한다기보다는 더 복잡한 관계
라는 것도...
지난 번 박태화와 같은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현할 때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전희양
과 박태화가 보통은 넘는 사이라는 것. 하지만 그런 일을 목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바로 채빈이었다. 채빈은 진에게 의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말했
었다. 사정을 모르면 절대 소개시켜줄 수 없다는 진의 말에 상대가 박태화라는 말을
들었고, 정말 심각한 상황 -굳이 예를 들자면 억지로 당한 것이나 수습할 수 없이 나
이가 어린...- 이 아닌 여자들에게는 절대 소개시켜주지 않던 진이었기에, 성인 둘이
상대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면 소개시켜 줄 수 없다는 진의 거절이 있은 후 며
칠 되지 않아 채빈은 죽었다. 진은 처음에는 절망한 채빈의 자살이 아닐까? 라고 의
심했었지만, 사고라는 발표 후 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채빈
의 사고도 진과 비슷한 사고였다. 차의 급발진.
그렇다면 자신에게 일어났던 연이은 사고들과 채빈의 사고도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
각이 막연하게나마 들었다. 채빈도 댄스 가수니까...
“ 아. 윤기자님- 저 전진이예요. 네- 그럼요. 이젠 괜찮죠. 네. 내일 좋아요.
대신 카메라는 사진 잘 찍는 분으로요-
하하- 지난 번 병원 장면에서 망가진 모습 보였잖아요.
이미지 만회 해야죠- 하하- 네. 네. 알겠습니다- 네- ”
이 바닥에서 발이 제일 넓다는 윤 기자와의 직접 약속을 잡은 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
쉬었다. 선호가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공인이 되면 장점만큼, 또 얻는 것
만큼 잃는 것도 있을 것이라던 아버지의 말씀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 일
때문에 선호가 다치기까지... 단순히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소중한 존재들을 잃어가면서 까지 이일을 계속 해야 하는 걸까? 그럴까?...
“ 진이씨- 촬영 들어가야지- ”
“ 네- ”
이번엔 상대 여자 배우와 함께 데이트 하는 장면이었다. 까만 밤하늘 아래 예쁜 한강
변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어? 그런데...
“ 감독님- 시동이 안 걸리는데요? ”
면허가 없는 진이었기에 이미 한강변에 주차된 차에 올라 시동을 걸려던 진이 창문을
내리고 얼굴을 내밀며 말하자 스텝들이 차로 달려왔다.
“ 어? 왜 이러지? ”
“ 아- 어떻게 된 거야??!!! ”
감독님의 호령에 스텝들은 분주해 졌다. 오늘 밤에 찍을 분량이 꽤 많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지금 장면을 얼른 찍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야 하게 때문이다.
“ 아... 뭐가 잘못 된 거지??? ”
“ 제가 좀 볼까요? ”
“ 어? 태화씨 차 잘 알아요? ”
“ 하하- 네. 제가 차를 좀 알죠. ”
스텝의 물음에 사람 좋게 웃은 박태화는 들고 있던 종이컵을 스텝에게 건네고는 셔츠
를 걷어 올리고는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접어 올린 셔츠 소매 아래로 들어
나 있는 남성다운 근육들에 여자스텝들은 멋있다고 쑥덕거리고 있었고 진의 상대 여
배우도 차 밖으로 나가 구경하고 있었다.
“ 칫- 자긴 성인이니까, 차도 몰고 다니고,
또 그러면 차에 대해서 잘 아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여자들이나 자기차 잘 몰라서 애인이 여기저기 손봐주고 하는... 아!!!!! ”
운전석에 앉아 밖에서 차를 살피는 박태화의 모습에 입을 삐죽이며 구시렁거리던 진
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크게 소리치며 핸들을 가볍게 내리쳤고, 그 순간...
- 빠앙!!!!!-
“ 우와아앗!!!! 전진씨! 무슨 짓이야? 깜짝 놀랐잖아!!! ”
“ 아... 죄송합니다- ”
진의 손이 닿은 곳은 마침 경적을 울리는 곳이었고, 그 탓에 차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진은 사과를 하며 차에서 내려 박태화가 살피는 옆에 가서 박태화가 하
는 것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 아- 여기에 이상이 있었네요. 이제 됐어요. ”
“ 와아- 태화씨는 외모뿐만 아니라 이런 것도 멋있네요- ”
“ 하하- 뭘요... ”
“ 너무 멋있어요- ”
“ 아-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자. 촬영하시죠? ”
스텝들의 칭찬에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손을 내젖고는 감독에게 촬영을 계속하라
며 기름때 묻은 손을 휘젓는 박태화의 모습에 스텝들은 다시 한번 박태화를 다시 보
게 되었고, 함께 있던 기자들도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진의 굳은 표정을
풀릴 줄 몰랐다.
.
.
.
“ 수고 하셨습니다- ”
“ 수고했어요. ”
“ 수고했어. ”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마친 진이 인사하자 카메라 맨과 기자도 웃으며 인사했다. 이
틀 전에 커다란 사건이 있어서 그와 관련해 인터뷰를 따내려는 기자들이 엄청났었는
데, 직접 전화를 해 인터뷰를 하겠다던 진과의 통화에 즐거워하고 있던 윤 기자는 오
늘도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는 모습에 더욱 신이 나 있었다. 평소 개인적으로도
진을 무척이나 좋아해 진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기사를 많이 쓰고, 혹시 진에게 좋지
않은 기사를 써 줄때도 웬만하면 좋은 쪽으로 써주곤 하는 윤 기자였지만 일반적으로
연예인들은 이런 커다란 일을 겪은 후 본인 인터뷰는 자제하고 기획사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거나, 기자회견을 하기 때문에 진과의 개인적인 인터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윤 기자였다. 하지만 진은 무리한 촬영 일정 때문에 조금 피
곤한 듯한 모습 외에는 그런 심한 일을 겪은 사람답지 않게 평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 저... 윤 기자님. 개인적으로 여쭤볼게 좀 있는데, 시간 내 주실 수 있죠? ”
“ 응. 그래. 김 기자. 먼저 가 봐. ”
인터뷰가 끝나고 윤 기자에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진의 모습에 윤 기자는 선뜻 고개
를 끄덕이며 카메라맨에게 손짓을 하자 카메라맨은 장비를 챙기며 인사를 하고는 카
페를 나갔다.
“ 네. 그럼 전진씨, 다음에 봐요- ”
“ 예. 다음에 뵈요- ”
카메라맨에게 인사한 진이 윤기자의 맞은편에 앉자 윤 기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전진이 한성 그룹의 막내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윤 기자로서는 사실
진이 윤 기자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핑계로 인터뷰까지 해준 진에게라면 웬만한 이야기는
쉽게 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 별 부담 없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 뭘 알고 싶어서 황금 같은 인터뷰까지 해 준 거야? ”
“ 박태화씨 잘 아시죠? ”
“ 그렇지. ”
“ 박태화씨 배우 하기 전에 관해서도 잘 아시죠?
지난 번 박태화씨에 관한 특집 기사 쓰셨다고 하던데... ”
박태화라면 진과 함께 드라마를 찍고 있는 배우로 벌써 데뷔 5년 차인 남자 배우였
다. 데뷔한지는 진보다 오래 됐지만, 가수라는 게 배우보다는 빨리 인기를 얻는 직업
이고 또 진이 가수치고는 연기가 빨리 느는 바람에 진에게 주연 자리를 빼앗긴 인물
이기도 했다. 그래서 딱히 진이 경계할 대상은 아니었다. 박태화가 전진을 경계한다면
또 모를까... 그래서 윤 기자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진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역시 박태화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해 물었다.
“ 응. 뭐 알고 싶은 거 있어? ”
“ 박태화씨 전의 직업이 뭐였어요? ”
“ 아. 카센터에서 일했어.
고등학교에서 자동차 전공해서 졸업하자마자 카센터부터 시작했지? ”
진의 물음에 윤 기자는 오히려 별로 심각하지 않은 질문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이 정도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인터넷을 찾아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이 알고 싶어 하는 일이 뭘까?하고 박태화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꼽아보고 있었다.
“ 더 자세히도 아세요? ”
“ 솔직히 그때부터 연예인이 될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
일하던 카센터가 평범한 곳은 아니었거든. 대부분 외제차를 수리하는 곳이었어.
그래서 고객들도 상류층이지. 진이 넌 모르니? 압구정동 쪽에 있는 곳인데,
아주 번화가가 아닌데도 고정 고객이 꽤 있는 입소문 난 곳이야.
뭐, 그 동네가 다 그렇긴 하지만... ”
“ 흐음... ”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심각한 표정을 하고 듣고 있는 진의 모습에 윤 기자는 내친
김에 다 말해주자는 생각에 다시 입을 열었다.
“ 진이 너니까 하는 말이지만,
박태화 이 일 시작하게 된 것도 거기서 만난 하윤화를 통해서야. ”
“ 하윤화라면... ”
“ 그래. HH Entertainment의 하윤화 대표. ”
“ 하윤화면 KJ 그룹 막내딸이죠? ”
진은 같은 재벌집 아들답게 그룹 자제들을 꿰뚫고 있었다. 윤 기자가 들은 바로는 진
도 재벌집 자제들의 모임에 가끔 얼굴을 내민다고 했었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진이 한성 그룹의 막내아들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웬만한 기자들과 방송
관계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절대 공개하지 말라는 진 기획사의 말이 있어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데뷔한 이후로는 재벌가의 모임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
을 정도로 한성과 자신과의 관계를 굳이 알리지 않으려는 진의 노력이 있는 것을 봐
서 진은 물론이고 가족들 역시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 듯 했다.
“ 그래. 집안 덕분에 HH Enter에서는 케이블 TV와 극장을 휘어잡고 있어서,
기획사 사업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 ”
“ 그럼 박태화씨는 HH Enter를 통해 데뷔한 건가요? ”
“ 응. 그러고 나서 작년에 하윤화랑 사이가 틀어진 후, 기획사를 옮겼지.
기획사 옮기는 과정에서 많이 주춤했지만,
지금 기획사 이사와도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도 있고...
아무튼 솔직히 박태화는 정말 자기 힘으로 여기까지 밀고 올라온 건 맞는데,
그게 실력만은 아니라는 거지. ”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단지 연.기. 실.력.만은 아니라는 윤 기자의 의미심장한 끝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그렇군요. 감사해요. ”
“ 이 정도면 된 거야? ”
“ 네. 충분해요. 아, 그리고 제가 여쭤봤다는 거 비밀인 거 아시죠? ”
지금까지의 심각하던 표정은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하는 진의 모
습에 윤 기자는 진이 뒷거래라도 하듯 박태화에 대해 물어왔다는 사실은 잊은 듯 유
쾌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 쿡- 이 바닥에서 그 정도야 당연한 거지.
아무튼 오늘 인터뷰 고마웠어. 다음에도 부탁해. ”
“ 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
“ 그래. 먼저 가 볼게. ”
윤 기자가 카페를 나가자 진은 자리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
.
.
“ 어? 어쩐 일이야? ”
“ 다행히 계셨네요. ”
늦은 밤, 경찰서로 찾아온 진의 모습에 동완이 놀라 묻자 진이 웃으며 다가와 자연스
럽게 동완의 의자에 앉으며 동완에게 물었다.
“ 저 뜨거운 녹차 한잔 마실 수 있어요?
내내 야외촬영 했더니 좀 으슬으슬하네요. ”
“ 아. 제가 드릴게요- 대신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줘야 해요?- ”
“ 하하- 그럼요- 이렇게 미인분과 함께라면 열장인들 못 찍어 드리겠어요? ”
가수에서 연기자로의 겸업을 선언한지 일년도 되지 않아 유망주로 손꼽히고 있는 배
우답게 가볍게 어깨를 떨며 효율적으로 의사전달을 하는 진의 모습에 마침 퇴근하지
않았던 여 형사가 웃으며 나서서 말하자 진도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진의
모습에 동완은 왜 진이 스캔들 메이커인지 알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어도 빛이 나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 이렇게 늦게 어쩐 일이야? ”
“ 선호한테 전화 했더니 아직 경찰서에 계실 거라고 해서요... ”
“ 응.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
“ 김 형사님. 차 잘 아세요? ”
“ 차? ”
“ 네. ”
“ 전진씨. 여기요- ”
진의 엉뚱한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동완은 마침 녹차를 가져온 여 형사의 모습에
진이 받아든 종이컵을 가리키며 물었다.
“ 이 차? 아님 타고 다니는 차? ”
“ 타고 다니는 차요. 아. 지금 찍을까요? ”
“ 어머- 좋아요- ”
동완에게 씨익- 웃으며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녹차를 건네 준 여형사에게 묻는 진
의 물음에 경찰서 안에 있던 형사들이 하나 둘 다가와 진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진
역시 기분 좋은 표정으로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 그러고 보니 여기 몇 번 와봤는데, 사진은 처음인 것 같네요? ”
“ 나참- 연예인이 경찰서 와서 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건 너 밖에 없을 거다?
왜? 지난 번 사건 때도 밖에서긴 하지만 찍었었잖아? ”
“ 그것 때문에 왔는데요. ”
경찰서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말
하는 진의 모습이 어이없다는 듯 한 표정을 한 동완의 말에 진이 책상 위에 놓인 조
금 식었지만 아직 따뜻한 녹차를 들어 마시며 용건을 꺼냈다.
“ 그 사건이 왜? ”
“ 김 형사님 정말 차 잘 알아요? ”
“ 아까부터 왜 차 타령이야? ”
“ 보통 김 형사 정도 나이의 남자가 차를 얼마나 잘 알아요? ”
“ 글쎄?... 난 그냥 문제 생기면 응급처치 하는 정도? ”
“ 전진씨 차 고장 났어요? ”
진의 계속되는 물음에 정 형사가 동완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 아뇨- 제 차는 아니고,
보통 20대 차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차에 대해 잘 아나 해서요... ”
“ 원래는 잘 알아야 하겠지만, 사실 잘 아는 사람은 얼마 없어요.
문제 생기면 카센터가 있으니까요. ”
“ 그럼 여자 분들은 차가 이상하면 보통 애인이 봐줘요? ”
동완의 대답에 진은 고개를 휙- 돌려 아까 자신에게 녹차를 가져다 준 여 형사에게
웃으며 물었다. 진의 미소에 여 형사는 볼이 살짝 붉어져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했다.
“ 뭐... 보통은 그렇죠? 특별히 기계를 좋아하지 않는 이상... ”
“ 빈이 누나 사고가 급발진이라고 하셨죠? ”
“ 빈이 누나? ”
진의 물음에 동완이 고개를 갸웃- 하며 물었다.
“ 채빈 누나요, 채빈- ”
“ 와아- 채빈씨랑도 친했어요? ”
진의 말에 정 형사가 감탄하며 말하자 진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 뭐... 같이 가수니까... 활동 시기도 비슷했고... ”
“ 아. 그래. 채빈이라는 사람 사고도 급발진이었어. ”
“ 박태화는 채빈 누나의 공식적은 애인이었어요.
급발진 문제가 되는 차를 만지지 않았을 까요? ”
“ 아- 너 혹시... ”
“ 네. 혹시 채빈 누나 차는 안 되더라도, 제 차도 조사해 보면... ”
“ 그래. 조사해 보자. ”
진의 말에 동완이 서둘러 일어서며 말했다.
.
.
.
“ 아무튼 그것 때문에 아무래도 박태화가 배후에 있는 것 같아.
근데 선호 춥니? 웬 긴팔이야? ”
“ 아... 감기 기운이 있나 봐요. 좀 쌀쌀하네?... ”
5월 중순.
아직 쌀쌀한 기운은 있다지만 평소 집에서는 겨울에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던 선호
가 얇은 후드 점퍼를 걸치고 있자 이상하게 생각한 동완이 한마디 했다. 하지만 곧
베시시- 웃으며 말하는 선호의 말에 선호의 이마에 손을 대며 열이 있나를 확인한 동
완이 선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 녀석- 미열 있다. 얼른 들어가서 자. 많이 자야 빨리 낫지... ”
“ 네. ”
“ 우- 찌뿌둥- 하다. 난 샤워나 좀 하고 다시 나가봐야 겠다- ”
선호의 대답에 몸이 뻐근한 듯 기지개를 켜며 욕실로 들어가는 동완의 모습이 사라지
자 승민이 얼굴을 구기고 선호에게 말했다.
“ 어깨 좀 봐. ”
“ 네? 왜요? ”
“ 피 베어 나오잖아. ”
승민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승민에게 묻는 선호의 모습에 혜성이 눈살을 찌
푸리고는 말했다. 동완이 어깨를 치는 순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선호였는데,
피가 스멀스멀 배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꽤 아팠을 거라는 생각에 혜성은 얼굴을 구
기고 있었다.
“ 이런... 안 되겠다. 병원에 가봐야겠는데? ”
“ 꿰맨 게 터진 거야? ”
“ 그런 건 아니고... 선호가 피부가 약해서 덧난 거 같아.
너 오늘 병원 안 갔다 왔어? ”
“ 아... 좀 급한 일이 있어서... ”
“ 급하긴 뭐가 급해? 이것보다 급한 일이 뭐가 있다고??!!! ”
“ 무슨 말이야? 병원이라니? ”
“ 아. 동완 형... ”
결국 화가 난 건지 크게 소리치는 승민의 모습에 선호는 물론이고 혜성까지 잔뜩 굳
어서는 꼼짝 앉고 앉아있는 순간 언제 욕실을 나왔는지 수건을 든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동완을 본 선호가 재빨리 옷으로 가렸지만, 곧 동완의 손아귀에 옷을 빼앗
기고 말았다.
“ 이게 뭐야? ”
“ 아... 형... 그... 그게... ”
“ 이게 뭐냐고 물었잖아!!! ”
“ ..................... ”
“ 애한테 화내지 마요. 그날... 진이 사건 나던 날 다친 거야. 좀 덧난 거고... ”
“ ............. 얼른 나와. 병원 가야지. ”
혜성의 말에 무서운 표정으로 서 있다가 들고 있던 옷을 선호의 품에 던지고는 나가
버리는 동완의 모습에 선호는 울상이 되어 울먹였다.
“ 어쩌죠? 동완 형 화 났나 봐... ”
“ 괜찮아. 네가 뭐 잘못 한 것도 아닌데... 어서 가봐. 동완 형 기다리겠다. ”
선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하는 혜성의 모습에 선호는 얼른 티셔츠에 머리를
끼워 넣고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 ....................... ”
“ ....................... ”
“ ....................... ”
“ ....................... ”
“ 동완 형. 화났어요? ”
“ 그래. 화났어. ”
차에 올라 병원에 가는 내내 아무 말 없는 동완의 눈치를 살피던 선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동완은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선호는
다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 ....................... ”
“ 아주 아주 많이 났어. ”
그런 선호를 돌아보지도 않고는 다시 무서운 목소리로 말하는 동완의 목소리에 선호
는 잔뜩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 ..... 죄송해요..... ”
“ 죄송한 줄 알면서..... 하아... ”
선호의 사과에 조금 가빠진 숨을 내쉬며 화가 난 듯 빠르게 말을 꺼내던 동완은 됐다
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끊었다.
“ ..... 형..... ”
“ 어떻게 된 거야? ”
“ 네? ”
“ 어디서 다친 거냐고? ”
“ 아. 그날... 칼에 살짝... ”
“ 경찰서에서는 아무 말 안 했었잖아? ”
“ 제가 그냥 응급처치 했어요. ”
“ 뭘로? 약도 없었으면서. ”
“ 그냥 티셔츠로... ”
“ 그러니까 덧나지!!! ”
결국 응급처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선호의 말에 동완은 버럭- 소리 질렀고, 선호
는 동완의 서슬 퍼런 기세에 찔끔- 놀라서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 ......................... ”
신호에 걸려 옆을 돌아 본 동완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선
호의 고운 옆선이 보였다. 희미한 거리의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선호의 동그란 옆선
은 여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목덜미를 살짝 덮는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목선이나 추운지 살짝 움츠리고 있는 작은 어깨가 한없이 약해보였다.
이렇게나 작은데... 이렇게나 어린데, 왜 이 아이에게만 이런 일이...
사실 동완은 선호가 미국에 있었을 때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선호와
함께 미국에서 들어온 승민 역시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남
챙기는 것을 좋아하는 승민이라 해도 선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유난스러웠다. 늘
자기 아들처럼 선호를 싸고도는 승민의 모습에 선호가 큰일을 당했었다는 것만 추측
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승민과 민우의 말대로라면 선호는 미국에서 온 뒤 일년 정도
거의 말도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마치 자폐아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고 한다. 하지만 동완을 만났을 당시의 선호는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긴 했지만 어두
운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금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
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마저도 이제는 많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난
대체...
“ 화내서 미안하다... ”
동완은 오른 손을 옆자리에 앉은 선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운전하느
라 앞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동완은 손에 닿은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선호가
웃고 있는 것을... 동완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 띠리리리리~
“ 응. ”
응급실로 가 간단히 치료를 하고는 아직도 미열이 있는 선호가 걱정 되서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우유를 사 먹이던 동완이 휴대폰 액정에 찍힌 [마누라]라는 글자를 보고
전화를 받았다. 그 모습에 선호가 우유를 마시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전화를 받는
동완을 바라봤다.
“ 알았어. 현장으로 바로 갈게. ”
전화를 끊자마자 시동을 거는 동완을 보고는 마시던 우유를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는
얼른 안전벨트를 맨 선호가 물었다.
“ 사건이에요? ”
“ 응. ”
“ 저 택시 타고 갈까요? ”
“ 아냐. 같이 가자. ”
동완의 말에 선호는 베시시- 웃으며 허벅지 사이에 끼워져 있던 우유를 꺼내 천천히
마셨다. 두 손으로 우유를 들고는 천천히 빨대를 빠는 모습이 진짜 아이 같아 동완은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가장 가슴 아픈 건 아이가 아이 같아 보이는 모습이 마음
아픈 것이었다.
.
.
.
동완과 선호가 도착한 현장에는 이미 많은 수의 경찰들과 과학수사대가 나와 있었고,
그보다 많은 수의 기자들과 동네 주민들도 모여 있었다.
“ 와아- 기자들도 되게 많네요? ”
“ 현장이 현장이다 보니... ”
“ 어딘데요? ”
“ 박태화 집. ”
“ .....!!!!!!!..... ”
[퇴마연의] 退魔演義 053 - Case No.06 The Rival
퇴마연의(退魔演義) 053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7 스토커(Stalker)
“ 와아- 기자들도 되게 많네요? ”
“ 현장이 현장이다 보니... ”
“ 어딘데요? ”
“ 박태화 집. ”
“ .....!!!!!!!..... ”
동완의 대답에 선호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주춤- 멈춰 섰다. 커다란 사건인 것을
감안해도 꽤 많은 수의 경찰들과 기자들이 와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박
태화의 집이라면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또한 박태화의 집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궁금증을 감추지 못한 채 동완을 따라 들어갔다.
“ 김 형사님- 어? 선호군도 왔네? ”
“ 안녕하세요? ”
현장에 들어서자 정 형사가 선호를 알아보고는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사람 좋고
잘 웃는 정 형사는 경찰서 내에서도 가장 순한 얼굴의 형사여서 왠지 현장에는 어울
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선호가 정 형사의 인사에 마주 웃으며 인사했다.
“ 감식반은 왔어? ”
“ 어- 김 형사- ”
정 형사에게 묻는 동완의 목소리를 가르며 들리는 경쾌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동완
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다가섰다.
“ 이 박사님이 직접 나오셨어요? ”
“ 워낙 큰 사건이어서 말이지... ”
이미 감식에는 베테랑인 이 박사는 요즘에는 사건 현장에 직접 나서는 일보다는 부검
이나 강의를 주로 하는 고참이었다. 그런 이 박사가 직접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세간
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인데...
“ 어떻게 된 건가요? ”
“ 젊은 여자 시체야.
죽은 지는 1시간 정도 되었고, 신고 시간과 사망 시간이 거의 일치해. ”
그렇게 말하는 이 박사의 말을 들은 동완이 천을 걷고 바라본 시체는 낯익은 얼굴이
었다.
“ 이 여자는... ”
“ 아는 여잔가? ”
“ 전희양. ”
“ 갑자기 덤벼 어쩔 수 없는 자기방어였다고 합니다. ”
피가 묻은 전희양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중얼거리는 동완의 뒤에서 말하는 정 형사의
말에 동완은 몸을 돌려 활짝 열려있는 침실 침대에 앉아있는 박태화를 돌아보며 정
형사에게 물었다.
“ 본인이 신고한 건가? ”
“ 네. 119로 신고가 와서 경찰과 응급차가 도착했지만,
이미 죽은 후였다고 합니다. ”
“ 우선 사체는 옮기고, 박태화와 이야기해 보지.
기자들한테 특별히 입단속 시키고... ”
“ 네. ”
동완의 말에 정 형사가 나서 지휘하자 시체가 옮겨지고, 동완은 박태화에게 다가가
물었다.
“ 안녕하십니까? ”
“ 아... 네... ”
박태화는 아직도 피가 묻은 셔츠 차림으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놀란 듯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 우선 간단히 묻겠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
“ 집에 들어와 보니 또 저 여자가 들어와 있더군요.
그래서 오늘도 좋게 말해서 보내려 했는데...
갑자기 식칼을 들고 자살하겠다고 해서...
그걸 말리다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실랑이를 하다가 실수로 그렇게 됐습니다.
늘 입버릇처럼 제 앞에서 죽겠다고 하던 여자인데... ”
박태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괴로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었다.
“ 우선 경찰서로 가시죠. 경찰들이 기자들로부터 무사히 모시고 갈 겁니다. ”
“ 네. 그럼 옷 좀 갈아입어도 될까요? ”
“ 그러시죠. ”
피 묻은 셔츠를 바라보며 묻는 박태화의 물음에 돋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박태화는
옷장을 열어 깔끔한 검은 니트를 꺼내 입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완 벗은 과학
수사대를 불러 박태화의 셔츠를 가져가게 했다.
.
.
.
“ 네. 제가 그랬습니다.
그 여자, 이제는 제 앞에서 죽겠다고 까지 하는데
그럼 어느 그래. 한번 죽어봐라- 하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
“ 그럼 전희양씨를 말리기 위해서였다- 이 말씀인가요? ”
경찰서에 와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사건에 대해 말하던 박태화는 동완의 물음에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고, 동완은 목소리의 변화 없이 다시 물었다.
“ 그렇다고요. 저도 피해자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먼저 와서 밥을 해 놓고 있지 않나,
아침에 일어나 보면 거실에서 뉴스를 틀어놓고 신문을 보고 있질 않나?
저도 정말 죽을 것 같았단 말입니다- ”
“ 그래서 신고 하셨구요? ”
“ 네. 처음 몇 달은 견뎠어요.
근데 이제는 아예 알지도 못하는 애를 데려와서는 내 애라는 둥-
언제 집으로 돌아올 거냐는 둥-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니까요? ”
“ 그래서 자주 이사를 하셨군요. ”
박태화의 말에 동완이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 네. 하지만 자물쇠를 바꿔도 이사를 해도 어떻게 알아낸 건지
집을 알아내고 열쇠를 구해서는 멀쩡히 들어와 있단 말입니다.
저도 피해자라고요-
공인이라는 이유로 제가 받은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아세요??!!! ”
“ 그럼 전희양씨와 전.혀. 관련 없이, 순수하게 당한 피해자였단 말씀이죠? ”
“ 네. 그렇습니다!!! ”
왠지 의미심장한 말투로 묻는 동완의 목소리에 박태화가 순간 움찔-했지만, 다시
확실한 목소리로 톤을 높여 대답했다. 그 모습에 동완에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정
형사를 불렀다.
“ 정 형사- ”
“ 네. ”
동완의 말에 정 형사는 들고 있던 리모콘을 들어 방 안에 있는 TV를 틀었다. 어딘가
에 숨겨졌던 카메라인 듯 깔끔하지 못한 화면에는 텅- 빈 대기실의 모습이 비춰졌다.
전희양 죽음에 대한 용의자로 경찰서에 왔는데 느닷없이 아무런 상관없는 화면을 틀
자 박태화는 조금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 대체 저게 뭐죠??? ”
“ 아- 잠시만 더 보십시오. ”
하지만 그런 박태화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말하는 동완의 모습에 불쾌한 표정의 박태화는 다시 화면을 주시했다.
- 달칵-
흐릿한 화면 속의 빈 대기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모습은 전진이었다. 좀 흐릿한 화면
이긴 하지만 등장인물의 얼굴이나 행동은 물론이고 표정까지도 충분히 식별 가능했
다.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대기실 안으로 들어선 진의 뒤로 빙긋- 웃으며 따라 들어
오는 진 매니저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 어- 전진- 예쁜 여자한테 대시도 받고-
- 아- 형. 그런 거 아니라니까!!!
- 아니긴 뭐가 아냐?
안 그러면 채빈이 왜 너한테 단 둘이 할말이 있다고 몰래 불러내?
엉? 무슨 일이야? 고백해 보셔-
- 아- 안돼. 비밀.
매니저의 말에도 한쪽 눈을 깜빡-하며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진의 모습에 매니저는
대기실 한쪽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 나 참... 되게 튕기네. 됐어. 나도 채빈은 별로다.
- 오빠- 내일 진이 의상 좀 입어보게 들어줘-
그리고 그 순간 문을 빼꼼히 열고 말하는 진 코디의 말에 진의 매니저와 진이 방을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퇴마연의] 退魔演義 054 - Case No.06 The Rival
퇴마연의(退魔演義) 054 - Case No.06 The Rival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다는 생각 해봤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쪽에서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여.
그리고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낯선 손길 하나가 너의 등을 확- 밀어버리는 거야.
후훗- 어때?
File #08 제보자
- 태화씨. 태화씨 코디 신고하지 그래?
- 왜? 무슨 일 있었어?
- 응- 어제는 글쎄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거 있지?
- 하아- 안 되겠다. 하루 빨리 결혼해서 한집에 살아야 안심이 되지.
- 깔깔깔깔- 어차피 자기 집에도 들어온다며?
- 그래도 네가 내 시야 안에 있는 거랑 없는 거랑 같아?
- 하긴- 자기는 나 너무 사랑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애교스럽게 태화의 품에 안기는 채빈을 바라보는 태화의 시선에는 애
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둘의 대화를 도청기를 통해 듣고 있던 희양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연예인이라는 특성 탓에 공공장소에서의 데이트는 힘들었기에 차로
교외 데이트를 즐기는 둘이었다. 하지만 그런 둘의 데이트는 늘 희양의 손아래 있었
다. 채빈과 태화 모두의 차에 이미 도청장치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 전희양씨. 사실을 말해 주시죠.
- 무슨 사실이요?
- 전희양씨 집에서 발견된 도청 장치들.
그리고 채빈씨와 박태화씨의 목소리가 녹음 된 테잎.
이건 엄연한 범죄입니다.
-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게 범죄라는 건가요?
- 도청은 불법입니다.
- 훗- 태화씨는 녹음되고 있는 걸 아는 걸요?
- 뭐라고요?
- 우리 사이에는 비밀은 없어요.
계속되는 취조에도 연신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하는 희양의 모습에 취조를 끝내고
방을 나온 동완이 정신감정 전문가인 태완이 있는 옆방으로 들어왔다.
- 어때?
- 전형적인 스토커야.
자신의 사랑이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킬 수 있다는...
- 그럼 전희양의 일방적인 스토킹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 그렇게 볼 수도...
하지만 스토킹이라는 건 일반적으로 일방적인 관계이긴 하지만
그렇게 않은 경우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좀 더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어쨌든 도청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거 아냐?
태완의 말에 동완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을 여는 순간 노크소리가 들렸다.
- 똑똑-
- 김 형사님. 전진씨까 급하게 찾으는데요?
노크를 하고 얼굴을 내밀며 말하는 정 형사의 말에 동완이 태완과 함께 방에서 나왔
다. 촬영을 하다 왔는지 드라마에서 입고 나올 법한 양복차림의 진이 소파에 앉아 녹
차를 대접받고 있었다. 이제는 경찰서 형사들과도 안면이 있는 진이었기에 동완이 오
는 동안에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급한 일이 뭐야?
- 아. 동완 형. 이거... 오늘에서야 겨우 본 거예요.
까딱하면 못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거기도 하고...
- 이게 뭔데?
동완은 진이 내미는 비디오테이프를 바라보며 물었다.
- 선호 말이 희양 누나가 용의자라면서요.
그래서 지금 경찰서에 와 있고, 하지만 단독 범죄라고 보기엔 좀 이상한 게 많아요.
- 그게 무슨 말이야?
- 제 차에 있었다는 박태화의 머리카락을 뒷받침해 줄 증거가 이거라는 말이죠.
진의 말에 비디오테이프를 틀어 본 동완은 깜짝 놀랐다. 진과 진의 매니저가 나간 이
후의 화면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현재까지 동완과 태완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사실
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태화의 일방적인 스토커 일 것이라고 생각한 희양과 태화의
사이는...
.
.
.
- 달칵-
“ .....!!!!!!!..... ”
화면에 나타난 사람은 전희양과 박태화였다. 그 모습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으로 주시하는 동완과는 달리 박태화는 매우 당황한 표정이었다.
- 여기 잠깐 비어. 급하게 할 말이라는 게 뭐야?
- .......... 우리... 헤어지자.
- 태화씨!!!!
빈 대기실 안으로 박태화의 손을 잡아 끈 전희양이 웃으며 태화의 옷깃을 털어주며
다정하게 묻는 순간 태화는 시선을 살짝 피하며 헤어지자는 말을 했고, 희양은 놀란
듯 소리쳤다.
- 미안...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스캔들 때문에???
나 태화씨 믿어!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했잖아!
- 그런 게... 아냐...
태화의 망설이는 듯한 모습에 더욱 당황하며 태화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소리치는
희양의 모습에 태화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 그럼?
- 채빈이가... 너랑 헤어지지 않으면 언론에 자기가 임신했다고 폭로할 거래.
- 뭐???!!!!!
- 이렇게 스캔들까지 난 상황에서 채빈이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믿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짓을 못하게 해야 하는데, 방법은 이것뿐이다.
- 말도 안돼... 정말... 태화씨 애야?
- 그럴 리가!!! 난 너 뿐인데...
희양의 물음에 태화는 절.대. 그럴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희양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말했다. 그런 태화의 행동에 희양은 입술을 꼭 깨물고는 결심한 듯 말했다.
- ............. 알았어. 내가 해결할게. 태화씨는 걱정 마.
- 어쩌려고?
- .....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면
혼자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 받아.
잠잘 때도, 샤워할 때도, 언제든 전화 받아. 알았지?
- 알았어. 근데 어쩌려고?
- 태화씨 앞을 막는 사람은... 누구라도 용서 못해...
정말 커다란 결심을 한 듯 굳은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말하는 희양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태화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닿는 순간, 곧 진이 대기실로 들어오고
그런 진의 보고 놀라 진과 진의 코디를 향해 인사하는 전희양과 박태화의 모습, 그리
고 곧 대기실을 나가는 모습이 이어졌다.
.
.
.
“ 자 더 할말 있으신 가요? ”
“ ................... ”
TV가 꺼지고 태화에게 몸을 돌리고는 묻는 동완의 물음에 태화는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만 있었다.
“ 이건 전진군의 몰래카메라를 위해 대기실에 미리 설치한 카메라입니다.
물론 매니저와 방송국의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주인공인 전진군의 허락도 받은 상태고요.
이 대기실은 박태화씨를 제외한 전진과 다른 분들의 대기실이니,
그 분들의 허락으로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이걸로 전희양씨와 박태화씨께서 전희양씨의
일방적인 관계라고 주장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채빈씨가 죽은 사고의 시간에 박태화씨는
동료 연예인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 간 알리바이가 있으시죠? ”
“ ..... 네. ”
“ 그 날 모인 분들께 물어보니,
그날 박태화씨는 사전 약속 없이 갑자기 오게 된 분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약속을 만들기 바로 직전에
박태화씨의 휴대폰으로 전희양씨가 전화를 건 기록도 있습니다.
전희양씨가 만의 하나를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라고 한 게 아닙니까? ”
“ 아닙니다!!!! ”
동완의 물음에 태화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동완은 표정의 변화 없이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왜 그렇게 자주 시간을 확인하며, 전화를 기다리며 조급해 하셨죠? ”
“ 그건... 약속이 있어서... ”
“ 약속이 없어 나온 거라고 일행들에게 말했다고 하시던데... 어느 쪽이 진짜죠? ”
“ 그... 그건..... ”
“ 전진씨의 차를 전희양씨가 만졌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물론 채빈씨의 차를 박태화씨가 만졌다는 증거도 있죠. ”
“ 그럴 리가 없어!!! 난 장갑까지 끼고... 아!!!..... ”
태화는 소리치다가 순간 말을 잘못 한 것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동완은
계속 추궁하지 않고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아. 말실수를 하셨군요. 근데 어쩌죠? 그 말실수 말고도 증거는 있는데...
박태화씨는 00기계공고에서 자동차 관련된 전공을 하셨더군요.
그 후로 수입차를 전문으로 다루는 카센터에서 근무 하셨구요.
그때 채빈씨나 전진씨의 차량과 같은 차를 여러 차례 다루었습니다.
그때 얻은 지식을 활용한 게 아닙니까? ”
“ 겨우 그게 증거입니까? 내가 기계 공고를 나오고, 카 센터에 근무 했다는 거?
그 정도는 인터넷 지식 검색에서도 알아낼 수 있는 사실입니다! ”
아까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듯이 침착하게 동완의 말에 반박하는 태화의 얼굴에는
당당함까지도 슬쩍 묻어났다. 하지만 동완은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네. 물론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되지 않죠.
하지만 그런 정황증거로 급발진의 문제가 되는 부분의
부속에서 박태화씨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습니다. ”
“ .....!!!!!!!..... ”
결정적인 증거에 당황한 태화의 모습에 정 형사는 신이 난 표정으로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고, 동완은 침착하게 설명해 나갔다.
“ 알아보니 박태화씨는 고민을 하거나 정신을 집중하는 일을 할 때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습관이 있으시다고 하시더군요.
전희양씨가 그 버릇을 고치라고 했다고요... ”
“ .................... ”
“ 그 말을 들었으면 어쩌면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
“ .................... ”
“ 세계는 남자가, 남자는 여자가 지배한다고 했던가요?
당신은 전희양씨를 지배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전희양씨의 충고를 듣지 않아 잡히게 되는 군요.
박태화씨. 당신을 채빈 살인 및 전진 살인 미수 공모죄로..... ”
동완의 말에 태화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 진아. 진아? ”
“ 어? 어. 누나...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 아니. 그냥..... ”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는 진의 모습에 재영은 앞에 앉으며 진을 불렀지만, 진은 듣지
못했는지 계속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재영이 진의 어깨를 툭-치자
그제야 재영이 온 것을 안 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별일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 너 요즘..... ”
“ 누나. 나..... 아냐. 아냐... ”
“ ..... 진아..... ”
“ .................. ”
“ 진아... ”
“ 나 올라가서 쉴게. ”
요즘 들어 기분이 울적해 보이는 진의 모습에 재영은 안타까웠다. 늘 명랑하고 밝은
아이었는데, 요 며칠은 매일같이 집에만 있으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했다. 가수 일
을 시작한 이후로 나가 살기 시작한 진이었지만, 지난번 박태화 일이 있은 후 집에
들어와 지내고 있었다. 매일같이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겨 있는 진의 모습이 안타까운
재영이었지만, 자신의 일은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가족들은 모
두 진의 모습을 지켜보며 진이 극복하길 바라고만 있었다. 더 이상 연예인을 하던 하
지 않던 그 것을 결정하는 것은 진 본인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진은 더욱 생각이 많
아보였다.
- 삑- 위잉-
자신의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켠 진은 푸른색의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곧 켜진
화면에는 이번에 찍고 있는 드라마 메인 포스터 사진이 떠올랐다. 익숙한 동작으로
자신의 팬 카페에 들어간 진은 박태화 사건으로 힘들었을 진에게 보내는 팬들의 응원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 글을 읽는 동안 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띠웠다.
- 띠링-
[수락] [거절]
그 순간 카페의 대화창이 떠올랐다. 현재 카페에 있는 회원이 몇 명 있긴 했지만 아
무도 진의 진짜 닉네임을 모르기에 말을 걸 사람이 없었다. 어쩌다가 전체 메일이 오
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모르는 채 넘어가기도 하고 또 그냥 다른 사람인 척 하고 정
팅 같은 것에 참여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1:1 대화를 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수락]
알 수 없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수락을 클릭한 진이었다. 하지만 대화창이 뜨고
나서도 아무 말이 없는 모습에 진은 이상해 고개를 갸웃-하고는 자판을 두들겼다.
[ ??? 할말 있어서 대화 신청 하신 거 아니에요? ]
[ 널 사랑하는 사람은 많아. ]
마치 자신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반말로 말을 시작하는 사실에도 조금 놀라기는 했
지만, 현재 자신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에 더욱 놀란 진은 자판 위에
올리고 있던 손을 멈칫- 했다.
[ 몸의 상처는 걱정하지 않지만, 마음까지 다치지는 마라. ]
[ 누구세요? 제가 누군지 알아요? ]
[ 몰랐다면... 좋았겠지... ]
화면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바라보는 진의 심장은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 형?
하지만 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실시간 카페 방문자를 확인하는 부분을 바라보자 아까
까지 있던 닉네임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형이라면... 그렇다면... 나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거야? 적어도 걱정은 하고 있
다고? 그렇게 착각해도 되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 만일 아니라면...
그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과 그럴 리는 없다는 추측이 섞인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
다. 하지만 만의 하나 그의 말이었다면 지켜보고 싶었다.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면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질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