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무어 [ Demi Moore]
생년월일 : 1962. 11. 11
출 생 : 미국 뉴멕시코 로즈웰
신 체 : 165cm
가 족 : 배우자 애쉬튼 커쳐, 딸 루머 윌리스
학 력 : 페어펙스고등학교
1962년 11월 11일 뉴멕시코주 로스웰 출생. 본명은 드미트리아 진 가인스(Demetria Gene Guynes). 버지니아와
찰스 하몬의 외동딸로 태어났는데, 공군이었던 아버지 찰스 하몬은 결혼한지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모친은 대니 가인스와
재혼했으며 데미는 그의 성을 따랐다. 그녀는 매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알콜 중독자였던 양부는 상습 도박으로
늘 빈털터리였다고 한다. 계속되는 술 문제와 싸움으로 그녀의 부모는 두번의 이혼 후 헤어지게 된다. 양부가 일거리를 찾기
위해 30번 이상 이사를 해야했으며, 결국 양부는 차 안에서 배기 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게 된다.
10대에 모델로 활동하게 되지만, 당시 눈이 사시라서 수술을 받게 된다. 성형 수술로 외모는 교정됐지만, 이때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16살때 LA로 이주하여, 중학교와 페어팩스 고등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게 된다. 그녀는 얼굴과
몸매 덕분에 회사일과 더불어 여러 모델 일을 했지만, 여전히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밴드 '뉴캣츠'를 만나 활동하던 중 1980년 그녀 나이 18살에 12살 연상인 밴드 리더 프레디 무어와 결혼을 하게 된다.
여러 록밴드를 했었던 프레디는 그녀와 공동 작업으로 2곡의 노래를 만들었고, 자신들 노래의 뮤직 비디오에 그녀를 등장시켰다.
그 덕에 MTV에 진출했지만 비디오는 실패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녀의 이웃 중 한명인 나스타샤 킨스키가
한창 인기를 얻을 때, 데미에게 대본 연습 상대를 해달라고 자주 부탁했고 데미도 자신의 대본을 받기 시작한다.
마침내, TV 인기시리즈 <제너럴 호스피탈>에 출연했지만 그다지 인기를 얻지는 못했고,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코카인을
시작하여 그후 2년간 복용했다. 이때 2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선택>과 <패러사이트>에도 출연했지만 둘다 흥행에
실패했다. 그녀는 남성잡지 <위>에 첫 누드로 나왔는데, 표지뿐만 아니라 여러 사진이 잡지에 실렸다.
프레디와 이혼 후, <제너럴 호스피탈>의 패러디 영화 <병원광 시대>를 거쳐 <연인 게임>에서는 주목을 받게 된다.
<리오의 연정>에서는 마이클 케인의 딸로 출연한다. 그녀는 80년대 유행했던 청춘 영화 중 하나인 <성 엘모의 열정>에서
코카인 중독자를 연기하기도 했다. 이때 조엘 슈마허 감독은 마약 복용 상태로 일하러 왔던 그녀에게 코카인을 끊지
않으면 해고한다고 했고, 덕분에 마약을 끊게 되었다. 이때 에밀리오 에스테베스를 만나 3년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1987년 <잠복근무> 시상식에서 브루스 윌리스를 만나, 둘 사이는 뜨겁게 발전, 결국 초호화판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88년 8월에 여자아이를 낳았다. <세븐 사인>은 평과 흥행 모두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90년 <사랑과 영혼>의
밀리언 박스 오피스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91년에는 남편 브루스 윌리스와 공연한 <위험한 상상>으로
영화 제작에도 손을 댔다.
92년 8월에는 월간지 'Vanity Fair' 표지에 둘째 딸의 임신 중인 자신의 나체로 나와 화제가 되었는데 이어서
남편 브루스도 임신 중인 모습으로 나왔었다. 당시 이 잡지는 잡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호가 되었다고 한다.
93년에는 17살때 포즈를 취한 음란 사진 131장이 발견되어 경찰이 압수하는 사건이 터졌다. 남편 브루스 윌리스는
아내의 어릴적 포르노 사진의 등장에 놀라 고가로 사들이려 했으나 실패하기도. 그 사진은 그녀가 유명한 TV시리즈인 종합 병원(General Hospital)에 출연하기 전에 찍은 것으로 헐리우드 진출의 뜨거운 열성 소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랑의 기쁨>이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어 퓨 굿맨>에서 해군법무관으로, <은밀한 유혹>에서는 백만장자의 계략에 빠져 흔들리는
여인으로 다양한 연기폭을 보여 주고 있다.
세째딸 탈룰라 텔을 낳은 데미 무어는 마이클 클라이튼의 동명 소설 <폭로>에 출연하여 다시 한번 논쟁의 대상이 된다.
또 스트립쇼를 하는 엄마 역할을 했던 <스트립티즈>에서는 딸 루머 글렌 윌리스도 출연시키기도 했다. 그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 아이 제인>에서는 삭발은 물론, 글래머에서 근육질로 바꾸고 여군으로 출연하여 다시 한번 화제를 불렀다.
영화는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며, 이때 한동안 멀리했던 모친이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시련을 겪게 된다. 한편,
촬영으로 인해 자주 떨어져있던 남편 브루스 윌리스와는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 결혼 11년만인 98년 6월 24일
이혼을 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한다.
배우로서 큰 성공을 거둔 것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제작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는데 무빙 픽쳐스를 설립, 영화와
TV드라마를 제작해 왔다. <지 아이 제인>, 그리고 그녀를 제작자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안겨준 HBO의
TV 영화 <더 월>, 멜라니 그리피스와 함께 출연했던 <나우 앤 댄>, 브루스 윌리스와 출연했던 <위험한 상상>,
그리고 제니퍼 토드, 수잔 토드와 <오스틴 파워즈> 삼부작을 히트 시키며 제작자로서도 성공적인 필모를 쌓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2006년 <하프 라이트>를 통해 배우로 복귀했으며, 16살 연하인 애쉬톤 커쳐와의 결혼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던 그녀는 현재 샤넬의 전기 영화에 캐스팅 된 상태이다.
미국 뉴멕시코 로즈웰에서 태어난 데미 무어는 13살에 LA로 이주한다.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살 때
TV시리즈인 <종합병원>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 같은 해 그녀는 영화에 데뷔하게 되고, 그 밖에도 청춘 드라마, 호러 영화
등에서 차츰 비중있는 배역을 맡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를 단번에 스타로 만든 것은 브랫팩들이 모여서 만든 1963년의
영화 <세인트 엘모의 열정>이었다. 같은 대학을 졸업한 7명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 그녀는 신선하고도 상큼한
매력을 보여주어 관객들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긴게 된다. 그 후 그녀는 많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데, <위즈덤> <세븐 사인>
<천사탈주>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초기 화제작을 꼽는다면 무엇보다도 90년 페트릭 스웨이지와 함께 주인공을
맡은 <사랑과 영혼>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스타성을 인정받게 된다. 허스키한 보이스와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 각진 얼굴형 등이 그녀의 개성적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데미 무어는 배우로서 큰 성공을 거둔 것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는데 그녀는 무빙 픽쳐스를 설립,
영화와 TV드라마를 제작해 왔다. <지 아이 제인>, 그리고 그녀를 제작자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안겨준
HBO의 TV 영화 <더 월>, 멜라니 그리피스와 함께 출연했던 <나우 앤 댄>, 브루스 윌리스와 출연했던 ,
그리고 제니퍼 토드, 수잔 토드와 <오스틴 파워즈> 삼부작을 히트 시키며 제작자로서도 성공적인 필모를 쌓는데 성공을 거둔 것!
16살 연하인 애쉬톤 커쳐와의 결혼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던 그녀는 현재 샤넬의 전기 영화에 캐스팅
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