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장충체육관에 쇼 구경을 갔다. 좋은 공연이 있으면 예매를 해서 부모님을 몇 번 구경시켜 드렸는데, 이번엔 아버지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하여 모녀가 데이트를 했다. 요즘 여러가지로 신경쓰는 것이 많아 잠시 머리라도 식히시라고 모셨다.공연장에 모인 50대 후반에서 70대 어르신을 뵈니 부모님 구경하시라고 자녀들이 예매를 해 둔 듯 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 효자가 더 많은 것 같아 내 마음까지 흐뭇해 졌다.
공연은 두 시간 여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내노라 하는 트로트 가수 삼인방 (송대관,태진아,김수희)가 나와 멋지게 노래를 불렀다. 가수란 직업도 괜챦을 듯 했다. 재능만 있었으면 가수가 되었을 걸 ..잠시 엉뚱한 상상도 해보며.. 트로트의 흥겨움에 빠진 모녀는 열심히 박수도 치고 노래도 따라 불렀다. 너무도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봤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걸...
노래를 부른 태진아씨는 7남매 키우느라 금가락지 하나 못 껴보고 제주도 여행 한 번 못하고 가난 속에 살다 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만든 노래가 사모곡이라 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인다고 했다. 객석이 숙연해 지는 순간이었다.
진정 난 몰랐다. 지금껏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 어머니로서의 삶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도 여자였고 한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니 모른 척 했다. 늘 어머니는 그 모습 그대로 자식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알량한 이기심으로 살았다. 자식이 힘들고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 달려와야 하는 것이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그래야 한다고,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 바램에 조금이라도 못 미칠 땐 서운함만 품었다. 그러던 얼마전, 어머니의 말씀에 적쟎은 충격을 받았다.
예순 넘은 나이에 수영을 배우셔서 수준급 수영실력을 과시하는 것도 모자라, 삼 년전부터는 탁구까지 배우고 계신 어머니다. 건강관리를 위해 늦게나마 운동에 관심을 쏟고 계신걸로만 생각했는데..
"탁구를 시작한 이유가 젊어서 테니스를 못 배운 미련 때문이고, 지금은 테니스 배우기에 나이가 너무 많아 대신 탁구를 배웠노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테니스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도 못했다.
5남매 키우시느라 운동을 배울 기회도 여유도 갖지 못하셨던 우리 어머니, 자식 모두 출가시키고 외손주들 까지 키워주신 후에야 이제 겨우 당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신 것이다.
결혼해 자식 낳고 살면서 이제 철이 들어서 어머니도 한 여자로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연을 보고나서도 혹여나 딸이 돈 많이 쓴 것 아닌가 걱정부터 하시는 어머니! 좀 더 일찍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자식의 이기심만 부리지 않았을 것을.. 부끄럽고 죄송했다.
지난 주말은 한 여자로서의 어머니 모습을 바라 보았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