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의 자유 이은정
마음이 바쁘다. 마음이 설렌다. 그러면서 두려우며 마음이 허둥거린다.
‘뭐 하지? 뭘 하면 좋을까? 1시간 동안!
시간은 지나간다. 초조해지기까지 한다.
화요일 병원에 입원,수술, 팔에는 독한 진통제와 링거가 주렁주렁, 두 팔에 링거 바늘로 멍든 자리.
내가 환자임을 다시 인지하게 된다. 시간마다 심지어는 잘 때조차 내 몸은 더 이상 내것이 아니었다. 내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또 복부에는 투명한관이 연결되어있다. 관 끝으로 검 붉은 혈액찌끄러기가 나오고 있다. 수술자리를 소독하고 테이핑하고 마약성 강한 진통제는 계속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러 항생제를 투여, 혈액 체취, 혈압측정, 내가 알 수 없는 수치를 휘갈기고 간다. 물론 그런 것들이 나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허나 동시에 내 신체는 어느 순간 나의 의지와 뜻과 상관없이 오롯이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로 돌아갈 수는 있나?’
나의 의지(?)대로 씻고, 입고, 먹고, 내가 원하는 뭔가를 하고 살았던 예전에 내가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구나 싶었다. 아니 누리고 살았구나 싶었다.
유난히 햇살이 따스한, 왠지 기분이 설레던 날,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밤새 투여받아 얼마 남지 않은 링거 바늘 입구를 잠그며,
“ 항생제 바꿔드릴께요. 8시쯤 올게요.” 하며 그냥 나간다.
사흘만에 자유로와진 내 팔을 보며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한 시간 동안요? 링거 안 꽂아요?”
“네.”
무심한 듯 짧은 답이지만 나에게는 쵸콜릿만큼 달콤하고 연인들의 데이트마냥 설렜다. 그 간호사가 고맙기까지 했다.
갑자기 무장해제된 자유, 준비 되지 않은 자유가 황홀했지만 동시에 얼떨떨했다.
시간이 도망이라도 갈까, 약속이라도 한 듯 옆에 있는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수술부위는 방수테이프로 다시 한번 더 테이핑하고 환자의자에 앉아 뜨거운 물을 머리 위에서부터 적셨다.
‘아~ 살 것 같다.’
오래동안 사막을 지나 오아시스를 만난 감동이 이러했을까?싶었다. 몸에 있는 세포하나하나가 나에게 응답하는 것 같았다. 목욕용품 챙길 사이 없이 그저 뜨거운 물줄기만 맞고 있을 뿐인데 어떤 청량음료수보다 상큼했고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 어떤 호사스러운 사우나나 맛사지가 부럽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 입으면서 처음의 기쁨의 호들갑은 진정된 고요함으로 바뀌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반성과 감사함의 깨달음이었다.
“지금까지 난 얼마나 많은 ‘1시간의 자유’를 그냥 지나쳤을까? 얼마나 많은 설레임으로 그 시간을 소중히 맞이했었나?”
내가 당연시했던 작은 일들을 펼쳐보면, 내가 누려왔던 그 모든 것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하찮게 여기면 큰 일도 못한다.” 순간 생전 아버지 말씀이 스쳐 지나간다.
“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그렇게 아팠나?”
그때 간호사의 알람같은 목소리가 들여왔다.
" 항생제 꽂습니다.."
1시간의 자유가 끝났다. 그러나 이 순간도 감사하다. 그 링거도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