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순신을 눈여겨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균과 신립 정도는
알았다. 특히 신립은 최고의 용장이었다. 그 신립을 꺽으면 이 전쟁은 승리한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순신이 나타났다. 그는 본국의 용맹한 병사들을 가지고 놀듯이 학살했다. 그는 전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본국 병사들을 학살했다. 악귀가 따로 없었다. 본국 병사들은 이순신과의
싸움에서 목숨만 부지하고 돌아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순신은 조선, 명,
본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서움을 각인시킨 자였다. 얼마나 무서운 자이면 조선의 왕은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을까...
배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파도와 물살이 쉴새없이 본국의 배들을 흔들었다.
마치 이 바다가 본국의 배와 병사들을 거부하는듯했다. 물살이 몰려와 배를 뒤흔들때마다
철포병과 격군이 흔들렸다. 조선의 남쪽 바다가 본국의 병사들을 가지고 노는듯해 더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본국 함대는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없이 조선수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공포가 바다의 여기저기에서 피어올랐다. 물살이 내지르는 소리가 마치 저승으로 가자고 하는
속삭임으로 들렸다.
이순신의 손에 먼저 죽은 전우들에 대한 복수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바다에서 죽은
본국 병사들의 곡성이 물살 속에서 울려펴지고 있는듯했다.
그 곡성은 복수를 원하는게 아니었다. 공포에 질린 곡성이었다.
"주군..탐망선이 조선수군을 보고 왔습니다. 곧 전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보고는 짧았다.
"이순신..참으로 위대한 자가 아닌가. 그는 아무것도 본국 조정에서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승리를 했다. 화살 하나, 화약 한 줌을 주지 않은 자신의 조정에 무한한 충성을 바쳤다.
조선의 왕은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는 조선의 왕에 대한 충성을 거두지
않았다. 둔전을 두어 군량을 마련하고 쓸모없는 피난민을 조련해 훌륭한 병사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조선의 땅에서 화약을 만들고 병장기를 만들었다. 그는 그냥 싸움을 잘하는
장수가 아니다. 그는 참으로 한 국가를 경영할 만한 자이다. 내가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그를 왕으로 모셨을 것이다. 참으로 탄복할만한 자이다. "
주군은 이순신에 대한 칭찬으로 말을 이었다.
나카타니도 이순신의 공포에 대해 무수히 들었다. 용맹한 사쓰마 사나이들도 이순신에 대한
존경을 암암리에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카타니는 그자와 싸운다. 그 위대한 자에게서
주군의 목숨을 지킨다는것만으로도 무사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고 주군이 일러주었다.
본군의 배들은 좁은 물목을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물살이 빨랐다. 조선 수군의 매복이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조선수군은 그곳에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이곳은 매복을 하기에 최고의 자리인데..이런 곳을 이순신이 놓칠리가 없지 않은가.'
좀 더 넓은 곳으로 나왔다. 작은 섬 하나가 보였다.
본국 함대의 중앙이 그 섬을 지나칠때 섬 뒤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는게 보였다. 거대한 판옥선이
보이고 그 뒤로 작은 배들이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들 마냥 따라나오는게 보였다.
'조선 수군인가.'
나카타니는 전율에 온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배들의 정체를 곧 알아차렸다. 그 배는 명군의 배들이었다.
앞에 선 큰배는 조선의 판옥선이었다. 그 뒤의 작은 배들은 명군의 사선과 호선이었다.
판옥선은 명의 장군이 타고 있는듯 했다. 판옥선의 갑판이 환하게 빛나는게 이상했다. 배 갑판위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게 너무나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배 가운데 커다란 화로를 두고 불을
피우고 있었다.
'저런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만. 저러면 불이 날건데...멍청한 명군놈들'
나카타니는 속으로 명군을 비웃었다. 이번 전쟁에서 명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천장이니 천병이니
하는 수식어가 명군을 따라다녔고 그들의 배에서는 사선(獅船-사자배)이니 호선(虎船-호랑이배)이니
하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명군의 전투력은 우스웠다. 차라리 악랄한 조선의 의병들이나 조선 수군이
더 강했다. 특희 의병들은 본국 병사에 비하면 검술 실력이나 사격 실력이 훨씬 뒤떨어졌다. 그런데도
그들은 용감하고 강했다. 단 한 명의 조선 의병을 베는 것이 명군 세 명을 베는것 보다 더 힘들었다
.
의병들의 칼사위에는 알수없는 분노가 깃들여있었다. 검술 그 자체는 보잘것 없었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칼은
결코 본국 병사들의 힘에 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칼은 본국 병사들을 죽이기위한 칼부림 이었다.
그 칼부림에 본국 병사들은 치를 떨었다.
이 어두운 바다에서 위치를 먼저 노출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배 위에서 불을 피우는건 위치를 노출시키고
좋은 사격조준점이 되어준다. 혹여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 불은 바로 자신의 군선을 불태워버린다. 거친
바다 위에서 작은 실수는 항상 발생한다. 특히 어두운 바다위에서는 작은 실수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추워도 사쓰마 사나이들의 배는 불을 피우지 않았다. 조선의 혹독한 겨울 추위가 몰아쳐대도 사쓰마
사나이들은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런데 천장이니 천병이니 하는 명군은 저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다.
명군이 버티고 있는 바다로 세키부네를 보내려했다. 그러나 수심이 얕아 본국 함선들은 그 섬 앞에서 움직이기
어려웠다.
"이순신...참으로 대단한 자이다. 저 쓸모없는 명나라 놈들을 저기에 두다니...저 곳은 우리배가 들어가기
어렵다. 나카타니 잠시 기다려라. 난 곧 이순신과 겨루겠다."
"허나 저곳은 매복했다 본국 함대의 옆구리를 치기 좋은 곳이옵니다. 그곳에 저런 무능한 명군을 둔 것은
이순신이라는 자가 무능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나카타니는 감히 주군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놓는 무례함을 범했다.
주군인 시마즈 요시히로는 가만히 웃었다.
"저곳은 매복하기 좋은 곳이다. 허나 매복하기 좋은 곳이니 우리의 방비도 소홀하지 않은 곳이다.
자네가 보기에도 저곳은 매복하기 좋은 곳이지 않은가. 모두가 그리 생각하는 곳이다. 이순신은
그곳에 무능한 명군을 두었다. 어차피 우리 배들은 저곳에 들어가 싸우기 어렵다. 그래서 미리
저곳에 아다케를 보내지 않았던가. 명군은 우리 아다케가 무서워 저곳에서 더 이상 나오지 못한다.
이순신은 나와 결전을 벌이려는 것이다. 나 또한 그에 응전할 것이다."
"나카타니..이제 곧 조선군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모두에게 전투 준비를 통보하도록하라. 그리고 누차 일렀을 것이다.
이번 전투의 기동에 대해 말해보거라."
주군이 힘주어 말했다.
"조선의 판옥선에 접근해 함수를 대고 배 위로 뛰어들어 단병접전을 이룰 것 입니다."
"조선 수군은 이에 대해 어찌 싸울것 같은가?"
"넓은 포위진을 형성한 후 화포와 활로 우리의 선봉부터 섬멸하려 할 것 입니다."
"어찌 대항할 것이가..?"
"군선의 속도를 높히고 밀도를 높혀 조선군의 포격을 맞더라도 최대한 빨리 조선배에 들러붙어
그들의 배를 부수어야 합니다."
"그렇다. 이 전투에서 믿을것은 우리 군선의 속도다. 우리는 조선군의 배들보다 더 빠르다. 우리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친다. 속도로 조선군의 배를 따라잡고 단병접전으로 조선수군의 목을 벤다.
자..나카타니..이제 싸움이 시작된다. 넌 나를 지켜라."
"예..주군."
나카타니는 짧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다음편은 저의 휴가가 끝난 다음인 다음 주말부터 이어집다.
조선 수군과 시마즈 요시히로 함대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됩니다....
총통에 포탄 장전하고.. 활시위에 애기살을 거시고....왜놈 잡으시려는 분들은 3편을 기다려주세요...^^
흠...그리고...이번 단편의 반응이 좋으면....우리가 아는 임진왜란의 결과와 좀 다른 결말도
보실 수 있을겁니다...
이번 단편은 임진왜란 당시에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간순서는 무시하고
노량, 노량 이후, 옥포, 한산, 사천의 순서로 이야기들이 이어질듯 합니다...
힘을 보태주시면 행주산성이나...곽재우편이 나올지도....^^
첫댓글 행주산성도 곽쟈우편도 기대됩니다
네..자료 수집 중 입니다.
슬슬 긴장감이 고조되는 때에 끝을 내고 다음 주말에 올리다니..;;
다음엔 6.25 전사나 항공비사 같은 것도 올려주세요.
준비해보겠습니다.
주연이 일본 장수네요. ㅎㅎ
네...ㅋㅋ
^^
댓글을 잘 안다는데 ㅎㅎ
글이 기대가 되는 연속극 같습니다.
명작가이신듯^^~
감사합니다.
툰대령님 글솜씨가 장난아니네요.
점점 빠져들고 있습니다.^^
매번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잘쓰시나요??? 책내셔도 되겠네요....
아직 그만한 실력은 아닙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네...감사합니다...
아이고... 우리 대령님... 정말 재미 있게 자알 쓰신 글인데.... 이 시간을 청춘사업을 위해 투자 했으면 이런 멋진 소설은 나오지 않겠지만... 이후 생략입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아...행님....청춘사업....너무 힘듭니다...차라리 단편을 10개 올리는게 더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