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치옥/ 한강문학 6호, 봄호
묘한 봄의 향기
박치옥
신비로운 봄의 입김을 느끼기에는 아직 약간 이른 것 같지만 땅속 초목의 뿌리에서는 다가올 화려한 봄과 여름의 잎과 꽃을 준비하는 과정이 한창이다. 오늘처럼 을씨년스런 겨울비가 내리지만 강가의 귀여운 버들강아지는 겨우내 허기진 배를 실컷 채울 것이다.
어린 시절, 추억 속에 동네 친구들과 형들 따라서 시냇가 버들가지 꺾어서 그 서투른 솜씨로 피리를 만들어 불며 ‘좋아라’ 신나게 떠들며 뛰어놀던 그 시절이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난다. 자연의 섭리대로 대부분의 초목들이 기나긴 겨울잠을 자고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나고 있다. 꽃을 피우는 대부분의 구근식물이나 야생초의 씨앗들은 시베리아 같은 겨울의 추위가 마치 그들의 휴식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에 띄는 봄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포풀러와 개나리의 눈은 부풀어 오르고 보온용 수지(樹脂)는 따뜻한 햇볕에 흘러내리고 있다. 품속으로 스며든다는 봄바람이 사뭇 뽀얗게 봄 내음을 피우고 있다. 봄바람이라 그런지 나근나근 하면서 부드럽다.
자작나무의 여린 작은 가지는 지난 달 보다 색깔이 뽀얗게 생기가 넘친다. 그리고 눈보라에 참고 견뎌낸 동백꽃송이 위에 눈과 어름부스러기도 따뜻한 햇살에 녹아내리고 있다. 이 모두가 자연의 신기하고 묘한 유혹적인 봄의 징조다.
봄의 징조를 느끼고 있는 나무들은 날씨를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앞으로 다가올 여러 가지 변화에 스스로 미리 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집 뒤편 텃밭에는 지난 가을 심어놓은 시금치랑. 파 등 채소류가 이제는 혹독한 동장군을 견디고 의젓하게 얼굴을 자랑스럽게 내밀고 있다.
아! 꽃피고 새가 우는 이 봄,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여! 진정한 평화와 사랑의 벅찬 노래만 울려 퍼지게 하소서. 우리들의 그리운 고향 언덕 아지랑이 아득한 강가, 그리고 물안개가 은은하게 잠을 자는 그곳에서 멀리 고기잡이 작은 배들이 그립고, 뒷동산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동네 친구들과 ‘고향의 봄’을 목청껏 부르던 그때가 너무 그립다.
그 시절 동네 곳곳 추억이 서린 고샅길에서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가면서 또래들과 정신없이 뛰어가던 일과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손꼽아 기다리던 봄 소풍을 갈 때에는 늘 새롭게 펼쳐지는 정경이 눈앞에 서린다.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내 가슴속에 살아있는 그곳이 지금은 강남 개발로 모두 초고층건물과 아파트 밀림으로 변해버렸다. 내 고향은 경기 광주 끝자락인 광주우리군 언주면 면내. 동네들은 청담리, 신사리. 압구정리, 삼성리는 한강변, 역삼리, 개포리, 포이리, 내곡리, 신원리, 염곡리, 논현리, 학리, 대치리 등으로 변했지만 강남개발붐 전까지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다.
내가 언주초등학교 다닐 때는 봄 소풍은 대부분 삼성동 소재 ‘봉은사’까지 도보로 왕복했다. 학교에 모두 모여 논과 밭을 지금의 ‘선능’ 지나서 ‘봉은사’로 갔는데 그때 봉은사 절은 무척이나 웅장해서 어린 나이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언주초등학교가 있는 역삼동에서 봉은사 가는 길, 그 이웃 동리인 청담동은 우리 큰 누나집이 있어서 봄철이면 청담동 누나네 가면서 선능 능 참봉집 돌계단 양옆에 개나리꽃이 장관을 이루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다 그립고 그리워진다.
약력
경기광주 출생, 한국수필 등단, 단국대 국문과 졸업,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 용수문학 회원, 국보문학 동인문집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