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여의 공백
외국에 단 몇 개월
밖에 머물지 않은 유학생이나 교포가 한국에 와서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영어를 하거나 한 문장에 영어와 한글을 자꾸 섞어 쓸
때, 흔히 꼴불견이라고들 한다.외국 갔다 온 티를 일부러 내고 자랑하는 허세로 보기 때문이다.그러나,2개월여를 미국에 다녀온 내게 이제 그런
모습이 이해가 간다.
나는 미국에서 어머니집에 머물렀고 차도 없고 지리도 모르는 탓에 외국 사람을 직접 상대할 일은 거의
없었다.상점에 물건을 살 때와 빈야드 교회에서 성도들을 대할 때 외에는 영어로 듣고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텔레비젼 방송마저 집에서 주로
한인방송을 보시기에 미국 방송을 잘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입에서 자꾸 우리 말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영어가 튀어 나오려고 했다.심지어 아내에게 말을 하려고 할 때도 맞는 영어 표현을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오랫만에 전철을 탔을
때에도 온통 한국말만 들려오는 것이 약간 낯설었으며 안내방송에서 영어가 나오거나 할 때가 오히려 편하고 반가왔다. 단 2달 동안 다른
언어권에 살다 온 것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물론,나만 이런 증상이 있을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도 했다.다시 만난 선원 자매와의 대화도
마치 처음 교제할 때처럼 새로왔다.우리가 전에 이런 식으로 대화했었나 하고 새삼스레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기타는 헌 클래식 기타를 미국에
가져가서 계속 손가락 연습을 했기에 별로 낯설지 않았지만,건반을 다시 쳐보는데 너무나 낯설었다.한 2년은 안 친 느낌이었다.오랜만에 매킨토쉬
컴퓨터를 켰는데, 날마다 익숙하게 눈감고도 하던 작업을 못하고 있는 내 모습에 당황했다.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도,데스크탑의 상태도 낯설었다.몇몇
프로그램은 아예 사용법도 가물가물했으며,단축키 명령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인간은 죄를 지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지 너무나 오래
되어 이젠 하나님이 없다고 믿을 정도가 되었다.예수의 피로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를 당혹시키는 여러 공백기들이 우리에게 찾아와 존재하고
있다.공백기를 거치면 원래의 모습이 낯설어진다.공백기는 우리를 본래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고 열정을 식게 만든다. 공백기는 우리의
최대의 적일 수 있다.한번 생각해 보자.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려본지가 언제였나?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던 때가 언제인가? 날마다 주 앞에 무릎
꿇고 말씀을 읽던 때가 언제였나? 연약한 우리에게 늘 이런 공백기가 찾아올 수는 있다.그러나,공백기를 겪게 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그
공백기에 너무 오래 있은 나머지 익숙해져서 빠져 나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공백기는 휴식과는 다르다.휴식과 안식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과 사명
안에서 쉬는 것이지만 공백기는 그것들을 잃어버린 채 다른 환경과 방향 속에 있는 것이다. 예전 것에 다시 익숙해지려면,녹슨 감각과 실력과
영감을 회복하려면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날마다 주께 울부짖으며 애써야 한다.한국에 돌아온지 한달이 되어가는 지금,내 모든 것이 예전 감각을 거의
다 찾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