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3학년 김영재
지난 연말 학생회장에 당선 되고 나서 기대했었던 것 중에 하나가 간부수련회였다. 작년에는 학생회 임원으로써 참가해야할 간부수련회를 참가하지 못해서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방학동안 간부학생들이 모두 정해지고, 2월 개학을 하자마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야 말았다.
간부수련회로 3박4일간의 지리산 종주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올 신입생과 함께 한다는 소식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휴~ 어짜피 가야할거면 즐기자!! 라는 마음을 먹기로 했다. 산에서 우리가 자야하는 산장을 인터넷에서 예약하고, 산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25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산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조금 바뀌었다. 산불방지를 위해 지리산 일부 지역이 입산통제가 되어 애초에 정해진 3박4일 코스가 2박3일로 바뀌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지리산 종주였기에 그래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할 수 없다고 하니 내심 아쉬웠다.
2월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어느새 25일 아침,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학교전체에서 들려왔다. 산행을 함께 할 팀원과 팀장님이 소개되었다. 난 1팀에 배정되었고, 다른 팀장님들은 대학교에서 산악부에 소속해 있는 대학생이었지만 우리 팀장님은 직장인이라고 하셨다. 어딘가 모르게 친밀감이 느껴지는 선생님이다.(우리 사촌형이랑 닮아서일까??) 배낭을 받고, 등산화를 받고, 밤새 준비 하셨을 강당에 널린 식량들을 챙기고 산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5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올 것이란 예상을 하지 못했는데 하늘도 우리의 산행을 반기는 것인지 아침부터 비를 뿌리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젯밤 산행에 대한 기대로 밤잠을 설친(?)탓에 중산리로 가는 동안 잠이 들었다. 주섬주섬 비옷을 입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많은 비로 인해 오늘 장터목을 가는 것은 힘들었다. 그래서 내일 가게 될 지리산을 대비한 예행산행을 했다. 모두가 비옷과 배낭을 메고 팀장님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진흙으로 바뀐 땅 덕분에 미끄러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 일정에 없던 산행이었기에 팀장님들도 당황하신 것 같았다. 마을 주일분들께 길을 여쭙고 길도 아닌 길을 헤집고 다니기를 5시간! 으하 5시간 만에 하루를 지낼 청소년 수련원에 도착했다.
땀범벅, 비범벅으로 만신창이가 도니 몸을 씻을 수 있는 물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비 때문에 이 생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비 덕분에 하루를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쉴 수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숙소에서 말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갑자기 바빠졌다. 빗속의 산행으로 인해 젖어버린 옷과 신발을 말리기 위해 하나뿐인 드라이기를 쟁탈하려고 전쟁이 벌어졌다. 나또한 그 전쟁에 참전했지만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축축한 등산화에 넣기 싫은 신발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본격적인 지리산 등반을 위한 준비를 했다. 등산 전 대장님께서 두팔, 두다리 없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한 청년의 생활을 보여주셨다. 영상에서 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인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의 모습에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고 작은 감동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멀쩡한 두팔, 다리로 지리산 하나도 못 오르겠냐?”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리산에 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좌절 했던 내가 하루 만에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다니 나 자신도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하지만 마음만은 가볍게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올라가는 동안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올라가는 내내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 구름에 쌓여져 있는 산까지 모두 나의 눈에만 담아두기 아깝기만 했다. 우리 3학년 모두가 산을 같이 오르면서 함께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산에 오르다 보니 장터목까지의 5.3km 등산은 즐겁기만 했다. 드디어 도착! 도착한 장터목 대피소에는 한치 앞도 안보일 정도로 짙은 구름이 깔려 있었다.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을 때 짙은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등산하면서 보고 온 풍경보다 더 멋진 풍경을 보고야 말았다. 내 시야에 가득 차있는 운해가 그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것이어서 보는 내내 입이 닫히지가 않았다. 입을 닫지 못하고 있을 즈음 저녁을 먹기 위해 다들 취사장으로 가지만 우리 1팀은 다른 팀들과 다르게 야외벤치에 나와 밥을 먹었다. 아참! 우리 1팀은 팀장님의 성함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이름을 부르면 왠지 친밀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 별명을 고심한 끝에 임용이가 덥쌤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얼굴에 있는 덥수룩한 수염을 보고 “야! 덥쌤이 어떻노?” 라는 제안에 서슴치 않고 콜을 외쳤다. 덥쌤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또 우리 덥쌤은 이번 산행에서 ‘찍사’를 맡으셔서 조금 바쁘셨는데 이번 저녁에서 덥쌤의 진가를 볼 수 있었다.
스팸과 햅반 그리고 김치를 섞은 스팸볶음밥, 라면만 해도 8개를 끓였고, 남은 국물에 햅반 말아먹고, 덥쌤이 몰래 챙겨 오신 참치에다가 또 밥고 김치를 섞어서 먹었다. 자그마치 햅반이 11개, 라면이 8개, 거기에 스팸, 참치, 가지고 온 김치는 국물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여자 4, 남자 5명이 먹을 수 없는 양을 먹고 나니 배가 두둑해 졌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저녁식사의 가장 키포인트는 덥쌤의 유행어!!
<먹엇!>
이걸 듣고 나서 산행이 끝날 때 까지 계속 썼는데 개학 후 온 학교에서도 계속 쓰고 있다. “자! 먹엇!”
대피소에서의 소등시간은 8시.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라고 느꼈는지 아이들이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우리 마을에 떠있는 별보다 훨씬 더 많은 별도 보고, 끊임없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리산의 밤을 친구들과 함께 지새웠다.
5시 일어나라며 이불을 들추는 팀장님들. 더 자고 싶었지만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해서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내가 가지고 있던 옷이란 옷은 모두 껴입고, 아이젠만 챙겨서 출발했다. 아직 한밤중인데 팀장님들의 랜턴 불에만 의지하며 갈 수 밖에 없었다.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틀 동안의 비로 인해서 땅이 김연아가 피겨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얼어 있었다. 이것을 대비한 아이젠! 신발에 단단히 메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번에 남자의 자격에서 봤던 하늘로 통하는 문인 통천문이 보였다. 통천문을 지나고 끝이 없는 철제 의자를 걸어 올라가니 저기 멀리 아주 큰 바위 하나가 보이는 듯 했다. 천왕봉이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산행 내내 데리고 다니던 귀경이를 버리고 천왕봉으로 달려갔다. 올라간 천왕봉에서는 운해를 비집고 올라와 있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이틀 동안 내내 비만 와서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볼 수 있게 되다니! 2박 3일간의 산행으로 뭉친 몸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대장님께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막 찍어 댔는데 다녀와서 보니 정말 사진이 최고였다. 대장님 말씀 듣기를 잘 한 것 같다. 하산 후 덥쌤이 사주신 감자전, 파전과 원진 쌤이 사주신 오뎅까지 산행 내내 햅반이랑, 라면 이런 것만 먹다가 새로운 음식을 먹으니 입 속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학교로 돌아온 후에 이제 해산을 해야 할 시간. 오래만남 후에 이별이라 그런지 너무 아쉬웠다. 덥쌤이 7월에 덕유산 종주를 가자고 하시는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2박3일간의 산행!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온 시간이었던 같다. 고3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았던 정신상태도 다 잡을 수 있었고, 산행 내내 데리고 다니던 2학년 여학생들과도 조금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뭐든 일에 망설임 없이 부딪힐 수 있는 자신감. 원래부터 있었지만 2%부족했던 것을 꽉꽉 충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말 평생 잊지못할 내 생애 첫 지리산 산행. 감사합니다.
첫댓글 "무엇보다도 뭐든 일에 망설임 없이 부딪힐 수 있는 자신감. 원래부터 있었지만 2%부족했던 것을 꽉꽉 충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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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엇
그 소중함 오래 간직하시길요
"뭐니 뭐니 해도 저녁식사의 가장 키포인트는 덥쌤의 유행어
<먹엇
저도 좀 배워야겠네요
라면이랑 햇밥 보면 덥샘이 생각날거 같아요..ㅋ
고3의 일년을 자신감으로 잘보내셔서 좋은 결실 맺으시길 바래요. 수고하셨어요.
^^ 물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다니....역시 회장은 영재가 분명하구나...^^
키키키키 내가 영재 삼촌닮았구만.. 그 양반 잘~~~~생겼남? ㅋㅋㅋㅋ
ㅋㅋ 팀장님은 잘생긴편보다는 귀여운편? (죄송합니다;;)
가령이 통통한 분 보면 무조건 귀엽다고 하는 성격을 죽이지 못했구만 ㅋㅋ
ㄱ-........................................................
통통한 분 보면 무조건 귀엽다고 하는 성격?
.....................무조건은 아닙니닷!ㅋ
먹엇!!!!ㅋㅋㅋ
산행 내내 데리고 다니던ㅋㅋㅋㅋㅋ
회장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재미나네 ㅋ 역시 넌 하늘이 내려준 개그맨이야 ㅋ
아 이 자슥들... 사람은 원래..지..잘난맛에 사는겨.....난 머찌다..자알 생겼다... ㅋㅋㅋ 그래서 물로 나도 머찌다..캬캬캬캬
아 아직도 생각나ㅋㅋㅋㅋㅋ 먹엇! 그냥먹엇!
덥쌤과 친해지지 못해서 아쉽고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 같은 팀인 나도 많이 친해진거 같지는 않은뎁...ㅠㅜ
내가 워낙 말이 없어서?! 아쉬움...
친해보이던데!?ㅋㅋㅋㅋㅋ아닌가?!
덥샘은 뭐랄까 푸근해보임
2%을 채울 수 있는 멋진 여행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