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과 기대승의4단7정 논쟁
거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본성에서 왔나, 감정에서 왔나?
우리는 조선 중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천 원 짜리 지폐에서도 자주 만난다. 그는 기대승과 4단7정 논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논쟁이란 참여자 모두에게 논리적인 주장을 요구한다. 논리적이지 못하면 결국은 상대의 주장에 굴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을 중심으로 그 속에 담긴 그들의 논리를 살펴보자.
이 논쟁은 1559년부터 8년 동안 9통의 편지를 통해 진행되었으며, 이황의 이웃에 살던 정지운이 <천명도설>을 만들어 퇴계에게 가르침을 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정지운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 네 가지는 항상 선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리’에서 시작되고,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 내는 일곱 가지 감정은 알맞으면 선이지만 모자라거나 지나치면 악이기 때문에 ‘기’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황이 이 부분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4단은 리가 움직여서 드러난 것이고 7정은 기가 움직여서 드러난 것이라고 고쳐주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뒤 기대승이 문제를 제기해 오면서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된다. 기대승은 4단과 7정 모두 감정이기 때문에 7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 뽑아내면 4단이 되며, 두 가지 모두 언제나 리와 기가 함께 있는 것이므로 둘을 갈라보아서는 안되고, 4단이든 7정이든 감정의 움직임은 기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뿐 4단을 가리켜 움직일 수 없는 리가 드러난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자기 논리를 펴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 이황은 4단과 7정의 관계가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때 말이 간다고 할 수도 있고 사람이 간다고 할 수도 있으며, 정신 잃은 사람을 말이 제 멋대로 싣고 가는 경우와 정신이 맑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 자기 뜻대로 말을 모는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황의 주장에 기대승은 달을 비유로 맞선다. 사람의 순수한 본성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같지만 화를 내기도 하고 온화해지기도 하는 현실의 모습은 물 속에 비친 달과 같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우 하늘에 있는 달만 달이라고 하고 물 속에 비친 달은 물이라고 한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논쟁이 합치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상대의 논리가 지닌 정당성을 서로 인정하기도 하였다. 인간의 본 모습과 현실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하려 한 두 사람의 노력이 더욱 빛나는 까닭은 분명한 입장과 논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호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