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12]《여자 스토커 퇴치기(記).》
건강식품 팔아달라는 전화, 받아보신 적 있죠?
암보험 들라는 전화, 받아보신 적 있죠? 어디 그뿐입니까?
심야보일러, 태양열, 고추건조기, 공짜폰, 각종 여론조사에 보이스 피싱까지.
나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 모두가 이런 문제로 전화를 엄청 많이 받고 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간낭비이고, 아주 골치 아픈 일이죠.
특히 노가다 현장에서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올라가던 중 전화벨이 울리고,
혹시 중요한 전화인지도 몰라 안간힘을 쓰며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을 때,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번에 새로 출시된 홍삼 제품이 있는데요,
우수고객님에 한해서 특별히 30% 할인에, 5개월 무이자로 드리고 있어요.』
이러면 엄청 짜증 납니다.
아니, 난 그 회사 이름도 모르고 뭐 하나 산 적도 없는데, 벌써 우수고객이라고?
참 나...
그렇다고 화면에 뜬 전화번호에 장사꾼이라고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니라
가려서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화에 남자들이 약간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전화 판매원이 모두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쁘고 친절한 여자의 목소리가 두 귀에 나긋나긋하게 들려오면
건강식품을 살 마음이 없으면서도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대꾸를 합니다.
특히 마누라도 없고 애인도 없어서 여자 손목 잡아본 지가 석삼 년인 홀아비들에게는
그런 전화가 오히려 반가울 때가 있고
그래서 농담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판매원 아줌마에게 호감이 가면서
그 이후로도 그런 전화가 두 번, 세 번 계속되다가
처음엔 『사장님』이었던 호칭이『오빠』로 바뀌고 나서
『오빠! 하나만 팔아 줘!』하면
『알았어. 비싼 걸로 하나 보내!』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전화는 처음부터 칼로 무 자르듯 거절해야 하는데
마음 약한 남자들은 그게 잘 안되고
그래서 나도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한 6개월 전,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집 마당 확장공사를 하다가 커피를 한잔 하면서 쉬고 있을 때
홍삼 판매하는 아줌마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그 아줌마가 나에게 『문학』과『예술』이야기를 하지만 않았어도
대화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 사장님 목소리에서 문학과 예술적인 이미지가 묻어나네요.』그러더니,
『「이상」의〈날개〉읽어 보셨어요? 한국 소설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 뭐예요?
「박완서」하고 「미당 서정주」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수준 높게 나오는 것이 이 아줌마의 장사 수법이라는 사실을
전화하던 그 당시엔 깜빡하고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차원의 수법을 쓰는 아줌마는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한 우리의 대화는 한 시간 이상 계속 이어졌고
그날 이후, 이 아줌마의 전화는 단 하루도 빠짐 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을 하고 가다가 저절로 알아지더라구요.
『아차! 내가 이 아줌마에게 걸려들었구나!』하는 것을.
내가 그 아줌마의 전화를 매번 부담 없이 받아주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아줌마가 단 한 번도 나에게 건강식품 사달라는 말을 안 했기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다 『계산된 작전』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매일 정다운 목소리로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오빠! 홍삼 하나만 팔아주세요!』했을 때
내가 과연 거절할 수 있나? 없죠! 사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겠더라니까요.
근데, 쩐이 있어야 말이죠. 여유만 있다면 정말 하나 팔아주고는 싶은데
아무리 쥐어짜도 지금 내 형편에 10만 원은 불가능 하거든요.
그래서 단단히 마음먹고 그다음 날부턴 일체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그러면 한 몇 번 더 해보다가 포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포기는커녕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아줌마의 전화는 끝없이 계속되었고
그래도 전화를 받지 않자 나중에는 문자폭탄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정말 신경 쓰여서 못 견디겠더라구요.
생각다 못해 난생처음『수신 거절 설정』을 해놓으려다 비밀번호를 몰라 실패했고
그래서 삼성서비스 쎈터에 휴대폰을 가지고 갔더니
sk텔레콤에 가서 내가 이 휴대폰 주인이라는 증명서를 떼어와야 잠금해제를
해줄수 있다기에 걍 포기하고 말았고, 그래서 이 아줌마의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끝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참 난감하데요.
나도 시를 좋아하고 꽃도 좋아하지만
이 아줌마가 보내주는 꽃 그림에 시가 적힌 문자는 나에게 두통거리였습니다.
그러면서 떠오른 단어가 『스토커』!
받지도 않는 전화를 계속해대고,
읽지도 않고 삭제하는 문자를 끝없이 보내는 이 아줌마의 행위가
스토커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 곰곰 생각하다가
내가 그 아줌마에게 어떤 문자를 보냈고,
그래서 아줌마의 전화와 문자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는데
아래는 내가 그 아줌마와 주고받은 문자의 내용입니다.
강봄:『저기... 죄송한데요, 전화나 문자, 보내지 말아주세요.』
그랬더니 노타임으로 답장이 오더라구요.
아줌마:『왜요?』
아니, 왜요 라니! 몰라서 물어? 건강식품 사고 싶지 않다는데!
강봄:『나 돈 없어요!』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했더니 또 노타임 답장이 왔습니다.
아줌마:『꼭 물건을 팔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강봄:『그럼 왜 그래요?』
아줌마:『그냥...사장님이 좋으신 분 같아서요.』
내가 좋으신 분 같다고? 그런 말이 기분은 좋지만
그것도 다 작전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렇다면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형편없이 나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겠구먼.
『나... 어릴 때 도둑질해서 소년원 갔다 온 사람예요.』
『훌륭한 사람들 보면 어릴 때 불량소년이었던 사람 많아요.』
『나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어머!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셨는데 이렇게 유식하신 분 처음이에요!』
『나 키가 159 cm 밖에 안되는 난쟁이 똥자루예요.』
『등소평보다는 크시네요.』
『이주일 아시죠? 내 얼굴이 이주일 비슷해요.』
『개성이 넘치시네요. 저도 장동건 같이 깎아놓은 인형 같은 얼굴 싫어요.』
이런 씨부럴! 나를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잖아!
야~~~~ 이거 정말 내가 난생 처음 강적을 만났군.
그렇다면 좋다! 최후의 일격이다!
『나... 자지 안 서요!』
그러자 드디어 문자가 뚝 끊겼고,
오늘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2017년. 11월. 27일.
민중혁명이 온다. 강봄.
http://cafe.daum.net/rkdqha1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