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월간 <산> 2004년 8월호에 실린 스카르두-비아포 빙하-히스파 빙하 트레킹 보고서이다. 한필석 기자가 작성한 원고로 김창호 대원이 동행했다. 이 트레킹 일정은 우리 원정대의 상행 하행 캐러밴 코스와 동일하므로 많은 참고가 된다. 일독 하시기를 바랍니다.
스카르두-비아포 빙하-히스파 빙하 트레킹 보고서-상
발토로 빙하는 파키스탄 빙하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매력적인 트레킹 코스이다. K2 베이스캠프에 이르기까지 파유(6,610m), 트랑고타워(6,617m), 무즈타그(7,284m), 마셔브룸(7,821m), 가셔브룸4봉(7,925m) 등 6~7000m 급 고봉들이 빙하 양 옆에 도열해 있는 명봉들의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빙하 곳곳에 있는 군기지에 식량과 연료 등을 나르기 위해 조랑말들이 오르내려 빙하길이 다져지고 말똥이 널려 있는가 하면, 많은 원정대와 트레커팀의 짐을 나르기 위해 오르내리는 포터들의 발길과 또 그들이 취사를 위해 나무를 잘라내는 바람에 황량하기 그지없다.
초입에서 나뉘지만 비아포 빙하~히스파 빙하는 달랐다. 험하기 이를 데 없고 거칠기 비할 데 없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보상을 해주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대자연의 순수함과 신비감이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여느 빙하에서 맛볼 수 없는 짜릿함과 스릴을 느낄 수 있었고, 남극 빙원을 연상시킬 만큼 어마어마한 넓이(약 77㎢)의 스노레이크가 눈앞에 펼쳐질 때는 숨이 막히는 듯 했다.
한국 산악인들이 아직 올라본 바 없다는 히스파 패스(5,150m)에 올라섰을 때와 훈자의 고봉을 바라보며 내려설 때 설원과 빙하는 선과 면이 자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과 순백의 미의 극치에 가슴이 떨렸다. 이후 거친 퇴석 빙하는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 그렇지만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 나타나는 거대한 산봉은 그때마다 가슴을 벅차게 했다.
빙하 퇴석지대는 8000m 위와 다름없는 죽음의 지대
“아니, 여기가 뭐다는 겁니까? 술도 없고….”
출국 전날인 6월 17일 밤늦은 시각, 마트에서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을 고르던 중 8000m급 14개 거봉 완등자인 한왕용씨(에델바이스)의 K2 청소등반 동행 취재에 나선 최보식씨(조선일보 기자)에게서 위성전화가 왔다.
“채석장 같고 술도 없는 이곳이 뭐가 좋다는 말이냐?”는 그의 말투에서 지난 며칠간의 힘겨웠을 과정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터졌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트레킹은 네팔 트레킹과는 분명 다르다. 네팔 트레킹이 부드러운 시골길을 따르며 아름다운 설산을 둘러보는 여유로운 여정이라면, 파키스탄 트레킹은 바윗덩이 널린 돌밭이나 얼음, 또는 눈 빙하를 거슬러 오르며 위압적인 고봉과 험산을 바라보는 힘겨운 여정이다. 때문에 파키스탄 트레킹은 강한 체력과 질긴 인내심을 요한다.
히스파 패스 트레킹역시 그러했다. 비아포와 히스파 두 빙하를 이을 경우 122km 길이로, 히말라야에서 가장 긴 빙하 트레킹 구간이다. 길이에서 오는 부담도 부담이지만, 사막과 같은 더위 속에서 바윗덩이로 들어찬 퇴석지대와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는 빙하지대를 가로지르고, 세락이 형성될 정도로 가파른 해발 5,150m 높이의 패스를 올라서는 과정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답사중인 6월 24일 체코팀과 일본팀이 포기한 것만 보더라도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산> 필자인 맹헌영 선배와 김창호씨, 기자, 그리고 가이드와 포터 10명이 참가한 히스파 패스 트레킹은 즐겁고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6월 18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그날밤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인 라호르에 도착하자마자 야간버스를 타고 이슬라마바드까지 이동하고 19일 오전 8시발 비행기로 파키스탄 북동부에 위치한 발티스탄의 주도인 스카르두(Skardu)에 도착해 그날 오후 포터 고용과 식량 구입을 마치고 20일 오후 K2와 가셔브룸 1, 2봉 캐러밴 기점인 아스콜레(Askoleㆍ3,060m)에 도착하는 쾌속 행진을 벌였다.
국내선을 못 탔을 경우 2~3일, 포터 구하고 식량 구입하는데 걸릴 이틀을 벌어 적어도 4~5일은 앞당겨 아스콜레에 도착한 셈이다. 더욱이 현지 여행사의 무성의로 대기자로 밀려났다가 스카르두행 비행기를 탄 것은 행운중의 행운이었다. 그런데 21일 아스콜레를 출발해 남라(Namlaㆍ3,400m)에서 묵고 22일 망고1(Mango 1ㆍ3,700m)로 향하는 사이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망고에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qlrk 너무 많이 내려 바인타(Bainthaㆍ4,000m)까지 가는 것은 포터들에게 무리입니다.”
가이드 알리 칸이 오늘 일정에 대해 조심스레 말한다. 어제 아스콜레에서 남라까지 걸어올 때는 폭염이다 싶을 정도의 더위와 돌길에 시달렸는데, 이제 비와 추위에 곤욕을 치른다.
“거 참, 곧 잡아먹을 거면서 되게 아끼네.”
빗방울이 굵어지자 아스콜레에서부터 끌고 올라온 염소가 바들바들 떤다. 포터가 안고 있는 닭은 고소증세가 심각하다. 어제부터 아예 눈을 감고 있다. 그 모습에 포터가 닭은 품에 꼭 껴안고 염소 등을 덮어줄 만한 게 없냐고 손짓발짓하며 묻는다. 파키스탄 트레킹 규정상 포터들에게 고기를 일정량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때문에 트레커들이나 원정대는 염소나 양 또는 소를 마지막 마을인 아스콜레에서 사서 끌고 올라가다 둘째 날이나 셋째 날 잡아 포터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이다. 우리의 염소역시 이러한 신세였다.
그렇지만 현지인들의 가축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여름철에는 집밖 우리 안에서 키우거나 4000m대 목초지에서 방목하다가도 9월말 이후 이듬해 3월초까지 5~6개월간 추위가 닥칠 때면 집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지내다 보니 가축에 대한 애정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망고에서 밤새 비에 시달린 일행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다 비가 멎자 오전 8시 바인타로 향한다. 이제 또다시 빙하를 가로질러 어제 따르던 얼음빙하로 들어선다. 비아포 빙하 트레킹은 빙하 한가운데 띠를 이루며 뻗은 얼음 빙하를 거슬러 오르다가 그날 캠프지가 다가올 즈음이면 가장자리로 빠져나가곤 한다. 캠프지 모두 빙하 가장자리의 초지나 평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3~4km의 폭, 그것도 바윗덩이가 널리거나 시커먼 흙더미가 산등성이를 이룬 퇴석지대를 오전 오후 두 차례 가로질러야 하기에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푸른 빛이 감도는 망고에서 생동감 넘치는 삶과 생존이 느껴진다면 검은 빙하퇴석에서는 죽음, 절망이 연상된다. 히말라야에서 죽음의 지대는 꼭 해발 8000m 이후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들어선 이 빙하도 죽음의 지대이다. 흙빛 빙하, 흙과 바위, 얼음이 뒤섞인 빙하퇴석지대는 그 어떤 생물체의 생존도 거부하는 느낌이다.
오늘 시작 초반에 넘어설 세락 역시 마찬가지다. 빙하 왼쪽에 50여 m의 높이의 세락을 형성하고 있지만 흙빛 거무틔틔한 빛깔은 여느 세락과 달리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빙하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녹으면서 흙과 바위가 드러나 죽어있는 채석장 같지만, 끊임없이 밀려 내려가고 그 밑으로 생명수가 흘러내려 기나긴 인더스강을 이루는 것이다.
빙하퇴석이라고 지저분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간혹 특히 위로 오를수록 깨끗한, 누구나 머릿속에 그려지는 하얀 빙하도 나타난다. 게다가 빙하 양옆에는 6~7000m급 설봉과 암봉도 솟구쳐 있다. 날이 좋다면 지금 우리 앞에 솟구쳐 있을 바인타브락(7,285m)도 그중 한 봉우리요, 이틀 전 남벽 BC로 잘못 들어섰다가 북벽 BC로 이동하기 위해 빙하를 내려서던 아르헨티나 클라이머들이 노리는 라톡(Latoksㆍ7,145m) 역시 그중 한 봉우리일 것이다.
채석장 같은 돌밭을 지나고 좁게 띠를 이룬 얼음 빙하를 가로질러 메인 얼음빙하로 올라선다. 완경사의 얼음빙하는 그야말로 끝이 없을 듯 길고 완만하다. 이래서 비아포 빙하 상단부가 ‘비아포 하이웨이’라 불리는 것일 게다.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속속들이 답사한 바 있는 김창호씨는 “비아포 빙하와 히스파 빙하를 합치면 면적은 발토로 빙하에 비해 뒤지지만 길이는 세계 최장”이라며 비아포 빙하 주변 캠프지와 암봉 이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가 바인타브락이라 알고 있는 오거(Oger)는 초입 목초지인 밴타와 암봉을 일컫는 브락에서 비롯된 산명인데 일본식 발음으로 잘못전해져 바인타브락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바인타 이후의 캠프지인 낙포고로(Nakpo Goro), 마르포고로(Marpo Goro), 카르포고로(Garpo Goro)의 낙포 마르포 카르포는 검정 빨강 흰색을 뜻하고 고로는 돌밭을 의미한다.
김창호씨는 “히스파 빙하 트레킹이 예전에는 15스테이지로 나누었는데, 현지인들이 임금을 더 받으려고 스테이지 수를 늘리다보니 현재 22 스테이지로 늘어났고, 언젠가는 30 스테이지를 넘어설 것”이라고 현지인들의 불합리한 처신에 불만을 토로한다. 파키스탄 트레킹의 임금은 스테이지별로 정해지고, 그러다보니 하루에 심하면 4스테이지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남라를 출발한 지 4시간쯤 지나자 알리는 얼음 빙하 위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포터들은 얼음을 싫어한다. 아무래도 신발이나 의류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코파이나 찰떡파이깥은 간식거리로 점심을 해결하지만 포터들은 어제 저녁 구운 호떡 같은 밀가루빵인 짜파티에 짜이라 불리는 미크티를 마신다. 차에 분유와 설탕을 섞어 끓인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망에 걸러내지만 비위가 약하고 고소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잘 마시지 못한다.
점심을 먹는 사이 알 리가 오늘 샤풍(Shafungㆍ3,930m)에서 마무리 짓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포터들이 비에 젖어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면 일정대로 맞출 수가 없다. 포터들은 그들에게 편한 쪽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빗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포터들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걷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이들이 하루에 받는 임금은 화목을 구할 수 없는 바인타 이후 식량 연료 포함해 한 스테이지 당 240루피, 하루에 두 스테이지씩 걷는다고 해봤댔자 우리 돈으로 1만원 안팎, 전구간 끝나면 보너스 포함 6,000루피쯤 받는다. 그렇지만 10년 경력의 군인 월급에 해당한다고 하니 이 나라에서는 적은 돈이 아닌 것이다. 물론 트레커 입장에서도 적은 돈은 아니다. 10여 일간 트레킹을 하자면 트레커 한 명 당 서너 명의 포터를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음빙하 띠를 거슬러 오르다 정오가 넘어선 뒤 서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또다시 채석장과 죽음의 퇴석지대를 가로질러 건너편 산기슭의 띠를 이룬 둔덕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다. 해발 4000m에 접근하면서 고소증세가 왔다갔다 한다. 이것도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중 하나다. 컨디션을 조절해가면서 높이를 차츰 높이노라면 어느 순간 목표삼았던 지점에 도달하고, 그 순간 장엄한 히말라야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가슴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오늘도 그런 희열을 맛보기 위해 먹구름과 빗속에서도 한 발 한 발 오르고 있다.
“와~, 이런 오아시스가 숨어 있다니.”
퇴석 뒤편 둔덕 위에 돌탑과 두 사람이 보인다. 그 언덕 뒤에는 초원이 숨어 있었다. 둔덕에 올라서자 맹헌영 선배가 감탄스런 표정을 짓는다. 둔덕 뒤에는 푸른 잔디밭과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이 숨어 있었다. 둔덕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10대 중반의 소년들은 외국팀 짐을 지고왔다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아스콜레 청소년들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벡스(Ibexㆍ야생염소)가 수십 마리씩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던 곳입니다.”
알리의 말처럼 아이벡스가 보이지 않더라도 바인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둔덕을 경계로 바깥쪽은 죽음을 연상케 하는 퇴석지대이거나 얼음빙하이건만 안쪽인 바인타는 푸른 초원지대에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그 뒤로는 웅장하면서도 푸르른 절벽 사면이 솟구쳐 있어 풍요로웠다. 게다가 행운이 찾아왔는지 텐트를 치는 사이 하늘을 꽉메웠던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쏟아지면서 검은 벽, 검은 봉, 흰 벽, 흰 산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날 먹구름에 시달리던 산봉들이 모처럼 내리쬐는 햇살에 신이 나 불쑥불쑥 솟구치는 형상이다.
이제 빙하 오른쪽으로 소카룸부(Gama Sokha Lumbuㆍ6,282m)에서 망고브락(Mango Brakkㆍ5,355m)으로 이어지는 침봉들과 왼쪽으로 동바르(Dongbarㆍ6,282m)에서 불라르(Bullarㆍ6,294m)로 이어지는 암봉들뿐 아니라 빙하 바깥쪽의 바코르다스(Bakhor Dasㆍ5,809m)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비하포 빙하를 거슬러 오르며 마주할 소스분브락(Sosbun Brakkㆍ6,413m)도 창끝처럼 날카롭게 솟구친 형태로 바라보인다.
둔덕에 올라 광활한 비아포 빙하의 주변 침봉, 암봉들을 넋을 잃은 채 감상하고 바인타 위쪽의 호숫가로 다가가 산을 머금은 호수의 정취에 빠지기도 하다가 텐트에 돌아오자 맹헌영 선배는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자연을 바라 본 것으로 만족한다.”며 “내일부터 보는 것은 모두 보너스로 생각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난 1년간 굳게 지켜왔던 금주 결심을 깨고, “오늘 같은 날 한 잔 안하면 언제 하겠냐?”며 배낭 깊숙이 넣어두었던 술병을 꺼낸다. 술 한 잔, 차 한 잔 마셔가며 저녁노을에 물드는 소스분브락을 바라보는 맛은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경이었다.
이렇게 우리가 히말라야의 풍광에 흠뻑 취해 있을 즈음 포터들은 바빴다. 바인타에 도착했을 때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바위굴이나 바위처마 아래서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해먹고는 포터용으로 설치한 대형텐트에 모여 빵을 굽고 튀기느라 바쁘다. 얼음이나 눈 빙하에서 먹을 식량들이다.
“허 참, 말이 씨가 되었나 보네요. 어제 오늘 본 것으로 만족하고 이후 보너스로 생각하겠다고 말한 것 말입니다.”
히말라야의 날씨는 참으로 종잡을 수 없다. 엊저녁 별이 반짝일 정도로 날씨가 좋았건만 새벽녘 빗방울이 텐트를 후득이더니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오전 10시가 넘어섰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전문가인 김창호씨도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른다.이런 날은 움직일 수가 없다. 특히 오늘은 크레바스가 많은 빙하로 들어서는 날이기에 더욱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시간 죽이기에 들어간다. 김창호씨는 히스파-비아포 빙하 탐험사와 빙하 주변 봉우리들의 등반사를 얘기해 준다. 어제 날씨가 좋으면 바인타에서 4800m 높이 산등성이에 오르기로 했었다.
바인타브락과 라톡, 우준브락(Uzun Brakkㆍ6,422m)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꿈이 깨지자 이제 히스파 패스에서 워크맨피크(Workman Peakㆍ5,885m)를 오르기로 했다.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2분의 1이 조망되는 봉우리란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트레킹 종착 마을인 히스파에서 지프를 타고 나가르로 빠져 나가다가 또 다른 봉우리를 오르기로 했다. 꿈은 원대한데 지금 날씨로 봐서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어질는지 걱정이다.
오후 3시가 다가오면서 굵은 장대비를 맞으며 한 떼의 포터들이 올라온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스카르두까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일본 여성 트레커들의 포터들이다. 가이드 2명과 쿡, 치킨보이 등 60명에 이르는 현지인들이 다 올라온 뒤 60대 전후의 일본 여성 트레커 3명이 올라왔지만 모두들 풀이 죽어 있다.
그리고 2시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위쪽에서 8명의 클라이머들이 내려온다. 한 달 가까이 이 일대의 암봉을 정찰하고 히스파 패스를 넘어 나가르쪽으로 하산, 멋지게 마무리지으려던 체코 산악인들이었다. 이들은 많은 눈과 히든 크레바스에 이틀간 곤욕을 치르다 패스 횡단을 포기하고 아스콜레로 하산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었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코스를 바꾸는 게 어때요? 나한테도 부담 가질 것 없이….”
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는 초원 위에 흰 눈이 수북히 쌓여 있다. 게다가 함박눈까지 퍼붓는다. 일본팀도 체코팀도 텐트 안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포터들 역시 마찬가지다. 맹헌영 선배는 오전내내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아스콜레까지 예상보다 2~3일 빨리 들어왔고 그만큼 날짜를 벌어놓았기에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처음 눈을 맞은 맹 선배로서는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히말라야의 날씨는 알 수가 없었다. 오전에 상체도 흉측스럽고 배꼽아래 커다란 물건까지 달린 눈사람을 만들어 여유를 보이던 체코팀이 하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그러자 일본팀 리더가 우리 텐트에 찾아와 계획을 묻는다. 우리는 내일 무조건 출발한다고 대답하자 그는 아직도 생각중이라고 대꾸한다. 꽤 많은 돈을 들여 트레킹에 나섰기에 웬만하면 강행하리라 예상했건만. 역시 나이든 여성 트레커들이라 매사에 조심스러운 듯 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날씨다. 엊저녁에는 초승달이 보일 정도로 밤하늘이 맑았건만 이튿날(26일) 아침이 되자 또다시 눈발이 날린다. 알 리가 텐트 앞에 다가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도 더 이상 밀었다가는 귀국행 비행기 타기가 쉽지 않다. 계획을 바꾸어 가르포고로까지 하루에 가려던 계획을 마르포고로에서 끊어 이틀에 나누어 가기로 했다.
오전 8시, 빗방울이 후득이는 궂은 날씨 속에서 일본 여성 트레커들의 환송을 받으며 바인타 도착 첫날 산봉을 집어삼켰던 호수를 끼고 언덕을 넘어 널찍한 평원을 지난다. 평원에는 커다란 돌들이 널려있다. 집채만한 크기에도 절벽에서 떨어지며 텅텅 튀긴 흔적을 남겨놓은 바윗돌도 보인다. 어제 폭음을 내며 떨어진 돌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김창호 씨는 1892년 뢰국인으로서 비아포 빙하를 처음 답사한 마틴 콘웨이(W. Martin Conway)가 쌓아놓은 돌탑이 그대로 남아있는 바인타2를 거쳐서 가려고 했으나 알리는 평원을 지나자마자 곧바로 빙하쪽으로 방향을 튼다.
얼음 빙하는 이틀간 내린 눈으로 순백의 옷을 입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눈속임이다. 흰 눈에 마음 놓고 걷다가는 옷주름에 걸려 넘어지거나 옷주름 사이로 빠져들고 만다. 아무튼 비아포 빙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출렁인다. 그래도 오늘은 보려니 기대했던 바인타브락과 라톡은 먹구름에 가려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 이번에도 못 보네….”
김창호 씨는 우준브락 위쪽의 룩필라브락(Luk Pilla Brakk)을 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가 보다. 2000년 5월 비아포 빙하를 처음 들어섰을 때는 날씨가 나빠 보지 못하고 또한 빙하 상단부의 크레바스 지대가 너무 위험해 히스파 패스 횡단을 포기했었다. 그 한 달 뒤 히스파쪽에서 진입했을 때도 닷새 연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또다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때문에 날씨를 한탄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김창호씨일 수밖에 없었다. 바인타브락쪽에서 짐승 울음 소리가 들린다. 알리가 아이벡스가 우는 소리라고 일러준다. 짐승도 궂은 날씨를 탓하고 있는 것일까.
설원에서 포터들이 짜이를 끓이는 사이 햇살이 서서히 퍼지더니 비아포 빙하 전역이 환하게 빛난다. 이제 우리가 기대하던 스노레이크 설원과 히스파 패스 일원도 멀리 보인다. 뜨거운 햇살 아래 입을 쩍쩍 벌린 크레바스를 피해 길을 찾아나가는 것은 개미굴 찾기 게임이나 다름 없다. 하나 피하겠다고 크게 돌면 너무 힘들고, 그러기에 적당한 폭의 크레바스는 뛰어넘으면서 나아가야 한다.
한동안 엄청난 폭의 크레바스에 놀라거나 신기해 하기도 하고, 스노브릿지를 딛고 크레바스를 건너설 때는 짜릿한 스릴도 느꼈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하얀 빙하를 걷는다는 것은 금세 체력이 떨어지기 마련인 일이다. 결국 빙하를 지나 퇴석지대를 가로지르는 사이 결국 지치고 만다.
오늘 묵을 캠프장은 마르포고로, 붉은 자갈밭이란 뜻이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널찍한 초지와 모래밭이 형성돼 있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김창호 씨가 그리도 보고파 하던 룩필라브락이 캠프장 뒤편에 우뚝 솟아 있었다. 텐트를 치고 낮잠까지 자고 일어나자 히스파 패스쪽도 구름이 걷히더니 날카롭게 치솟은 침봉인 소스분브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곤 암봉들이 하나하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