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지 내에 위치한 작은 와이너리, 포도밭을 앞에 두고 자그마한 건물이 외롭게 자리하고 있다.

여행은 외로워야 한다.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예전에 직장에서 모시던 상사분께서 여행에 관해 하신 말씀이 있다.
여행은 혼자 다녀 봐야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된다고,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일어나면 나는 데로
버스를 타고 가다, 문득 내리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내려서 장터에서 국밥도 사 먹고, 시골 한적한
정거장에서 무료하게 버스를 기다려 보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터덜터덜 지칠 때 까지 걸어도
봐야 혼자라는 외로움이 주는 홀가분함까지 더해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된다고,
그때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는커녕 오히려 궁상맞게 혼자서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할까,
언젠가 몹시 추웠던 겨울에 문득 여행을 혼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짐을 꾸려 혼자 여행길에
나선 적이 있다. 고창 인근, 눈길을 헤치며 성터에도 올라보고 고인돌 무덤도 찾아보고 그분의 말씀대로
정말 외롭게 여행을 하노라니, 그분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선술집에서 혼자 막걸리도 마시고
맥주 몇 병을 사 들고 여관을 들어설 때면 혼자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리기도 했다.
그 후 일본을 혼자 다녀온 적이 몇 번 있고, 그중 아주 한적한 미사사(三朝) 온천이라는 곳에 대한
좋은 기억은 오랫동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공항에서 내려 호텔에서 마중 나온 버스를 달랑 혼자
타고 갈 만큼 외지고 한적한 온천 마을이 미사사 온천이다. 저녁에 술이라도 한잔, 하는 마음에 나서보니
온 천지가 깜깜해 길이라도 잊으면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한적한 마을이라 길을 걸으면서도 돌아올
걱정에 주변을 눈여겨봐 둬야 할 정도로 한적한 마을이었다.
어둠 속에 자그마한 간판을 단 선술집에서 취하도록 마시고 한국 아줌마 같은 주모와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유쾌하게 떠들다, 혼자 비척거리며 여관을 찾던 기억은 두고두고
좋은 추억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미사사 온천 마을은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 한적한 마을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주친 반가운 선술집 간판,

단체 여행은 여행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 일행을 놓칠까 하는 조바심과 소변까지도 미리 챙겨둬야
하는 속박에 더해, 어디를 가든 관광지 특유의 상업적 환경이 여행의 흥미를 잃게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단체 여행에 끼여 다녀오게 되었다.
손주 녀석이 나가사키 네덜란드 테마파크(하우스 텐 보스) 조명 축제를 보고 싶어 하기에 개학 전에
다녀오려면 서둘러야 하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 보면 계획에 없던 여행이 오히려 좋았던 적이 많았으니
하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단체 여행은 여행의 묘미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머리 쓸 일이 적긴 하다)
그동안 자신을 위한 여행을 여러 번 다녔으니 이번 여행은 손주 녀석 위주로 하자고 마음을 미리 정했다.
어쩌면 단체 여행에 대한 기대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 나가사키에 있는 네덜란드 테마 공원(huis ten bosch) 조명 축제의 한 장면, 화려하고 볼 만 했다.

* 숙소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 나가사끼 짬뽕은 유명하다. 맛이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일본에서 먹어 본 면(麵) 중에서 가장 맛이 없어 남겨야 했다.

남과 어울려 다니다 보면 볼 때는 좋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다녀온 곳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되면 뚜렷이 기억되는 것이 없거나 여러 기억이 서로 얽혀 있기도 해서
모른다고 하기도 그렇고 남들 말에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어설픈 기억력이지만 이상하게 혼자 다닌 여행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오래 남았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면, 혼자 간 여행지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곳이었고, 혼자라는 것, 외롭다는
느낌이 절실히 가슴에 닿았던 곳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손주를 동반한 번잡한 여행이라 생각하고 나 자신이 여행에서 뭘 얻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아소 산 고원에서의 하루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혼자 다니던 여행이 주변이 낯설고 분위기가 호젓해 혼자라는 느낌이 가져다준 잔잔한 충격이라면,
이번 여행에서 느낀 호젓함은 820 고지에 자리한 큐주코켄코티지(久住高原cottage)라는 숙소가
자리한 터전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왔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우리가 머무는 세상의 時空은 기껏 千年 세월을 아득하게 생각하는 데, 十 萬年, 千萬 年, 의 세월을
품은 땅 위에 그것도, 화산 봉우리가 신화 처럼 두르고 있는 신비의 땅에서 감회가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소 산 盆地 가운데 섬처럼 달랑 위치한 쿠슈코켄코티지가 주는 분위기는 경험해 보지 못한 自覺이었다.
사방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초원만 보일 뿐, 멀리 분화구 주변에 형성된 봉우리가 바깥 세계와의 경계선
같이 둘러쳐져 있어 흡사 사막에 고립된 느낌이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 .
* 숙소는 울타리가 없다. 식당을 가고 오는 길에 눈 만 돌리면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고 에워싼 봉우리가 멀리 보인다.





아마, 숙소 건물이 집약된 고층 구조였다면 안에서는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지막한 단층 구조가 길게 개방된 복도로 이어져 있는 숙소는 어디를 봐도 울타리도 없는 초원만이
시야에 가득했고, 인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원에 나무도 심어있지 않아 어디서 바라봐도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 이렇게 툭 터진 원경을 육지에서는 본 적이 없기에 버려진 듯 외롭게 존재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숙소가 참 외롭겠다는 시인다운 엉뚱한 발상에 혼자 웃었다.
* 숙소 주변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개방된 구조이기에 더욱 자연에 파묻혀 있는 느낌이 든다. (사진, 큰 손주)

* 온천탕, 주변에 시선을 차단하는 가리개가 없다.

* 말 그대로 분지 가운데 홀로 외롭게 자리한 숙소의 해 질 녘 전경,

사방 몇 킬로 안에 인위적인 시설이 없는 곳에 홀로 놓였다는 존재감,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몽골 사막이 아닌 일본 땅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개발한다고 들쑤셔 놓지 않은
그들의 식견에 감탄하기도 했다. 해가 뜨고 지는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운 장엄을 숙소에 앉아서
바라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린 것으로 이번 여행은 보람이 있었다고 하겠다.
* 숙소는 개방된 복도로 길게 이어져 있어 어디서도 밖을 볼 수 있다. 식당에서 오던 길에 손주 뒷모습을 밤하늘을 배경으로,

이곳에서는 밤에 술 한잔하러 갈 수도, 갈 곳도 없다.
식당에서 일본 술을 한 병 시켜서 기분 좋게 마셨다. "밤에 하늘을 한 번 보세요, 별이 정말 총총해요"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 위에 달빛만큼 밝은 별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와 달이 두 개네"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뛰어들었다는 시인 이태백이 생각났다.
소운도 시인이지만, 뛰어든다고 관심 가져 줄 사람도 없으니 뛰어들 물이 없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 아소 산의 칼데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칼데라이며, 분지 안의 면적은 380km2, 동서 18km, 남북 24km
에 이르는 현재도 활동 중인 화산을 품고 있다. 3천 만 년 전에 폭발하여 계속 활동 중이며, 현재의
모습은 1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칼데라는 가마솥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 분화구가
침식되어 형성된 지형을 뜻하는 말이다)
여행의 의미, 소운/박목철
온 곳을 모르니
갈 곳이 불안해서
낯선 곳을 기웃거리나 보다
백 년도 버거운 인생
삼천만 년 자연 앞에 넋을 잃었다.
여로(旅路)에 지친 몸
한잔 술에 기대어
행복한 꿈을 꾸나 했는데
문득 깬 잠
여기가 어딘가 한참을 더듬었다.
삶이 여행길인데
안락(安樂)한 쉼터가 어디 있다고,
*글을 쓰면서 어휘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실력이 부족한 건지, 단어가 부족한 건지 한참을 생각했다.
첫댓글 수필과 사진과 시가 잘 어우러진 멋진 글 입니다.
여행은 혼자 다녀야 그 참 맛을 느끼게 된다는
말씀에 절대 공감 합니다.
고독을 선호하는 제 경우 혼자 다니면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사색과 기도와 사진촬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에 가까운 거리라도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재직 중에는 장거리 여행 시 팀원들과
종종 같이 다녔지만 카메라를 구입한 뒤로는
가급적 홀로 자유롭게 현지를 돌아 다니면서
외국의 풍물을 촬영하였지요. 그리고
퇴임 후에는 역시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사진을 만들 목적으로 배낭에 카메라와
작은 책자와 간식을 넣은 후 최근까지
수도권의 명소를 부지런히 답사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떠들썩 하게 다니면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기 어렵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관심이 사람 마다 다르니 집중해서 보고 싶어도 주변
때문에 지나치는 경우가 늘 여행의 아쉬움이기도 했습니다.
리피터님의 사진이 집중도가 높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냥 샷터 만 눌러서 찍어지는 사진과는 다르다는,
특히 사진은 같은 장소이지만 시간, 계절, 혼잡도에 따라
아주 다른 결과가 나오니, 리피터님의 말씀이 이해 됩니다.
휴일 입니다. 성당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계시겠지요,
행복하세요,
혼자 하는 여행도 의미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도 의미가 있고...
단체여행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기합니다.ㅎ.
그 때 그 때 달라요.^^*
저도 혼자 하는 여행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죽을 때까지 혼자 여행해야된다면 그건 절대 못하지요.ㅎ.
아주 지당한 말씀입니다.
일상은 일행과 어울린 떠들썩한 여행이기에
때로는 혼자하는 여행도 좋다는 의미 입니다.
소운도 늘 혼자 다니라 한다면 그건 싫습니다.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카페에 올린글은 대부분 읽지 않고 형식적인
댓글을 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읽어 주시고 댓글도 정성 껏 달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가뭄에 비 나리듯 하는 이런 댓글 떄문에 글을 쓴답니다.
감사합니다. 숲속다락방님, 행복한 휴일 되시기 바랍니다.
밀양 영남루에 갔을 때 혼자 다니는 나이든 여자분이 많아 저도 곧 용기를 내 보려고 합니다.
여자라는 위험이 불안을 만들어 많은 긴장과 제약을 받습니다.
함께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 여자분들에게는 해당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던 차 입니다.
사실은 일상에서 받는 여러 스트레스 라던지 가족 간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 등
여자 분들이 받고 있는 일상의 압박이 더 심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할 수 만 있다면 혼자만의 여행이 더욱 절실한 분은 여자분들이거든요,
밝은 세상이 와서 여자 분들도 훌훌 자유롭게 다니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혼자 산행을 해 보아 여행도 혼자하는 것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보려는 이들이 한번쯤은 행동에 옮겨보는 것도 정말로
괞찮아 보여요 글도 맛깔나게 잘 쓰셨네요 좋은 하루가 되시길 …
공감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일행과 어울린 떠들석 한 여행도 나름 장점이 있지만,
여행의 깊이는 혼자 다녀봐야 절실히 느끼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잘보았읍니다
네, 잘보셨다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