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러 달려야죠? 찰리의 자전거 세계일주 처럼...
라오에서 두 번째 만난 베트남 아저씨의 하루도 일찍 시작된다.
나도 덩달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콘센트에 물려놨던 충전지들을 뽑고 떠날 준비를 한다.
베트남 번호판만이 그대로 달린 동 아저씨의 오토바이엔 다양한 크기의 용기들이 실여있고
베트남에서 가지고와서 라오에서 소매한다고 한다.

아저씨의 집을 떠나 아침으론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또 국수를 먹고
더 달리다가 음료수를 마시러 슈퍼에 들렀다.
원래 항상 물만 사마시지만 오늘은 오전부터 너무 더워서
물로 해결되지 않은 갈증을 탄산음료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라오 국도의 일반슈퍼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시원한 음료가 없을 것 같지만 나름 비법이 다 있다.
얼음 공장으로부터 얼음은 늘 공급이 되니깐 얼음 담은 비닐봉지에 콜라를 붇고
휴대하기 편하게 끈으로 비닐의 입구를 묶어서 준다.^^
조금 더 가서는 신기한 간식거리가 보여서 또 멈췄다.
찐 계란 같은데 찌기 전에 계란 윗부분을 살짝 까서 끓임으로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는 동시에 부풀려 나와서인지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맛은 어떨지 궁금해서 몇 개 달라고 하고
요번 슈퍼엔 냉장고도 있고 그 안에 즐겨 마시는 두유가 있어서 마시고 있는데
밥 먹던 슈퍼 아저씨가 같이 밥 먹자고 한다.
내 얼굴에 라오말로 ‘저 배고파요’가 적혀있나?
지금까지 지겹도록 언급했지만 라오인들 정말 인심 좋다.
보통 같았으면 예의상 한번 거절하고 계속 같이 먹자고 해야 먹겠지만
그런 실용적이지 못한 예의는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사라진지 오래다.ㅋ
이집도 메콩강에서 잡은 듯한 짠 민물고기요리와 찰밥 찍어먹는 양념이 있고
추가로 이상한 열매도 반찬으로 같이 먹는다.
이제 찰밥에도 제법 익숙해 졌다.
계란을 포함해서 오늘은 반찬이 네 개라는 것에 기뻐하면서 먹는데
계란이 내가 아는 계란의 그 맛이 아니다.
말이 안 통해서 궁금증이 해결되진 않았지만
찌기 전에 양념을 뿌렸을 수도 있고 닭의 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달리다 보니 해는 져가고 나는 또 식당 찾아 삼만 리다.
그래도 내일이면 팍세(Pakse)라는 도시에 도착 할 수 있어 위로가 된다.
하루만 참자.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달라진 것이 있는데 바로 지금까지 달리면서 못 봤던 초록이다.
계속해서 도로 주변은 쓰지 못하는 황량한 지대였지만
이곳에는 건기에도 물을 논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기술이 있는지 초록 논이 길게 이어진다.
3모작이 가능한, 쌀 세계수출 2위국인 베트남에서는 초록 논이 많아서 그냥 당연히 여겨졌는데
라오에서 보니깐 초록색이 금색처럼 귀하게 느껴진다.
있을 땐 당연한 줄 알지만 없으면 바로 힘들어하는 어리석음.
있을 때 행복한 줄을, 감사한 줄을 알고 잘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각성한다.
지금 자전거 타고 하는 고생길은 그냥 고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마치 인생의 중요한 노하우들을 꼭꼭 짚어 가르쳐주는 족집게 선생과 같이 하는 것 같다.
예전에 생각했던 시련도 고통도 나쁜 일도 더 이상 시련도 고통도 나쁜 일도 아니란 것이다.
그러다보니 고통을 사랑하게 되고 고통을 즐기게 되는 사이코 단계에 와있다.

다음 마을로 가봐라, 조금만 더 가봐라 를 몇 번 듣고 어두워지고 난 후에야 식당을 찾았다.
“또 국수야?” 라는 생각보다는 이런 깡촌에서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국수집이라도 찾아서 너무 다행이다.
국수를 다 먹고 나서는 오늘 밤이 고민된다.
앞으로 팍세 시까지 40km 정도 남았고 오래간만에 침대에서 편히 잘까 하고 계속 달릴까 했는데
한번 자리 잡은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하긴 오늘 맞바람과 싸우며 120여km를 달렸으면 피곤해 할만도 하다.
오늘은 도로에 경운기도 안 보여서 일명 “피빨기”(뒤에 숨어가기)도 못하고
역풍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레이엄이 준 논라(베트남 고깔)의 끈이 끊어져서 바람타고 날아가 버렸다.

우선 좀 더 쉬어보자 하고 다이어리 정리하고 있는데
슈퍼아저씨가 직접 담근 듯한 약주를 꺼내더니 마셔보라며 한 잔 준다.
돌 같은 게 들어있는 줄 알았는데 나무껍질처럼 느껴지는 게 말린 약제를 넣은 것 같다.
오늘 더 이상 달리기는 글렀다 싶어 슈퍼 앞에 텐트 쳐도 되냐고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밖은 위험 할 수 있으니깐 슈퍼 울타리 안에다 치라며
넓은 대나무 의자 위에 자리를 만들어준다.
나는 텐트를 치고 짐 넣는 사이에 아버지는 가게 문 닫을 준비 하고 엄마는 저녁밥을 준비한다.
같이 먹자고 해서 요번에도 거절 없이 앉았는데 저번에 시장에서 봤던 흰개미 알이 반찬으로 나와 있는 것 아닌가.
못 본 척 하고 그냥 밥에 양념장만 찍어 먹는데 내가 편식하는 것이 어머니 눈에 딱 걸렸다.
아줌마가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느냐고 먹어보라고 권하자 그냥 미소 짓고 얼버무려 넘기려고 하니깐
아저씨까지 먹어보라고 한다.
초대해준 것도 감사한데 음식을 가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두 눈 딱 감고 흰개미알 몇 알 집어서 입에 넣었다.
톡톡 터지는 느낌이 묘하지만 맨입으로 삼킬 용기가 없어서 찰밥 한 뭉치 집어서 같이 꿀꺽 삼켜 버렸다.
그래서 맛은 못 느꼈지만 표정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유지하고 맛 괜찮다고 하고 관문을 통과했다.
몸도 많이 피곤한지 머리가 바닥에 닿기 무섭게 잠들고
잠깐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눈떠보니 바로 다음날 아침이다.
지난번에 만난 네덜란드친구가 준 제 역할 잘하는 빠방한 매트리스 덕에 요즘 잠자리가 한결 편하다.
다시 떠나는 세계로의 한 발자국.
자전거를 대충 점검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앞바퀴 옆구리에 상처가 눈에 띈다.
옷. 예전에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넘어오자마자 뒷바퀴의 옆구리가 터져서
마지막 예비 타이어를 다 써버린 이후로 제대로 된 자전거 가게를 못 찾아서 그냥 다니고 있었는데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이 드디어 와버렸다.
불행 중 다행은 그나마 다음 도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전문 자전거 가게는 없겠지만 무엇이든 맞는 것은 하나 찾을 수 있겠지.
조심조심 달려서 팍세란 시까지 빡세게 왔다.
도시의 규모가 작아서 해결해야하는 문제들 처리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도시로 향하는 길에 크진 않지만 공항이 보이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꼭 해야 할 것은 깜순이에게 맞는 타이어를 찾아서 수리하는 것과
남쪽 캄보디아와의 국경을 넘기 위해 여행사에서 비자발급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 외에 희망사항은 오래간만에 인터넷 구경하고 여권 맡겨 놓고 떠날 수 없으니깐
팍세에서 동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타들로(Tadlo)에 가서 코끼리 타면서 오래간만에 휴양을 즐기다가
볼라벤 고지대(Bolaven Plateau)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다.^^
아, 그리고 라오에서 계획 보다 오래 머물게 되어 돈을 더 환전하던지 뽑던지 해야 하는 구나!
머릿속으로 처리해야할 새로운 미션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달리다보니 팍세 중앙도로에 도착했다.
그런데 길모퉁이에서 이상한 자전거를 탄 외국인이 나를 기다린 듯 바라보고 있다.
서로 모르지만 뭐에 끌렸는지 인사를 하고 얘기를 하는데
엊그제 사반나켓에서 버스를 타고 이쪽으로 오다가 도로에서 나를 봤다고 한다.
자기는 버스타고 5시간 만에 왔는데 나는 2틀이 돼서 오냐고 한다.ㅋ
그나저나 그 자전거는 뭐냐고 하니깐 6개월 계획하고 동남아에 배낭여행 왔는데
버스 타고 몇 개월 다니다가 지루해져서 베트남 국경에서 자전거를 100불 주고 샀다고 한다.
자전거를 가끔 차에 싣고 이동하기도 하고 배낭은 쌀자루에 넣어 짐받이에 싣고 다닌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냐고 물어보니깐 팍송(Paksong)에 갈 생각이라고 한다.
“거기는 왜?”
“그냥 어디론가는 가야하지 않겠어?”
라는 여유 있어 보이는 대답이다.
이 친구도 보통 친구가 아니구나.
팍송은 산악 지역이고 특별히 볼 것이 없을 것 같아 당기지가 않아서
나는 코끼리 타러 타들로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여권을 찾고
남부의 시판돈(4천개의 섬) 들려서 캄보디아로 넘어 갈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통과 할 수 있는지 먼저 알아보고.
내 계획도 좋다며 같이 가자고 마음이 맞았다.
근데 너 어디서 왔냐고 하니깐
독일에서 왔다고 한다.
그래? 진작 말하지 그랬어.ㅋ
영어보단 독어가 더 편한 찰리이다.
니얼스(Niels 25)란 친구는 드레스덴에서 공부 하는 학생이고 한 학기 휴학하고 여행 하는 중이다.
나는 우선 캄보디아 비자 발급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러 여행사에 들릴 것이라고 하니깐
그럼 자기는 지금 현금 인출하고 나서 내가 가는 여행사로 가겠다고 한다.
그럼 나중에 보자~

여행사에 찾아 갔는데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2년 전부터 라오-캄보디아 국경에서 국경비자(Arrival Visa)를 발급해 주니깐
미리 비자를 발급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미리 받아야 한다면 대사관에 여권을 보내 야해서 1주일 이상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 벌었다.
다음 미션을 위해 자전거 타이어는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전문 자전거 가게는 없고
2km 동쪽으로 떨어진 마켓에 가서 한번 찾아보라고 알려준다.
니얼스는 영업하는 은행을 못 찾았다며 내가 있는 여행사로 찾아 왔다.
이상하게 ATM기도 모두 잠겨있고 3일 후에 연다고 한다.
얼마 있냐고 물어보니깐 5만킵 있다고 한다.
나도 사실 돈을 뽑아야하긴 한데 나랑 생활하면 그 정도로 1주일은 충분히 버티니깐
우선 떠나고 나중에 다시 돌아오면 뽑자고 했다.

시장으로 가기 전에 중앙 도로에서 인터넷도 한 시간만 하고 가자고 했다.
니얼스는 이미 이틀 전에 와서 할 거 다 했을 텐데 고맙게도 인터넷은 언제나 해도 좋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같이 여행한 그레이엄도 이쯤에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메일을 확인해보니
그레이엄도 나처럼 계획을 바꿔서 베트남 훼(Hue)에 있다며 나보고 언제 오냐고 묻는 내용이다.
서로 길이 엇갈린 것이다.
나는 그레이엄이 이쪽으로 올 줄 알고 이쪽으로 오는 것이 더 끌렸는데
그레이엄은 내가 베트남 중부로 해서 남부로 갈 줄 알고 중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으니 나도 계획을 바꿨다고 하고 가끔 연락하다가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고 답장을 했다.

그리고 시장에 가서 어렵게 26인치 타이어를 찾아 25000킵(2.77$)에 하나 사고
시장국수 한 그릇 먹고 출발.

타이어는 오늘 자리 잡고 나서 갈기로 하고 우선 늦기 전에 타들로를 향해 달리기로 했다.

음료수 마시기 위해 잠시 들렀던 슈퍼 뒷골목의 아이들.
뭔가에 빠져있어서 누가 와도 신경도 안 쓴다.ㅎㅎ

오늘 타들로까지는 못 갈 것 같아서 중간 지점에서 묵고 가기로 했다.
니얼스는 어제 다른 배낭여행자들과 오토바이 빌려서 이곳까지는 와봤다며
텐트 치기 좋은 폭포 공원이 있으니깐 그리로 가자고 한다.
폭포로 가는 길에 만난 거대한 나무.
길에 보이는 개미 같은 점은 지나가는 오토바이.ㅋ

Tadxe Phasouam이라는 폭포에 도착했다.
우리는 당연히 제일 먼서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이 공원과 레스토랑의 오너인 아저씨에게 텐트를 치고 자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직원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만난 라오 사람과 많이 다르다.
들어올 때 이미 입장료를 500킵씩 냈는데
한쪽 구석에다 텐트를 치는 비용을 상상 이상으로 따로 내라고 한다.
그렇다고 캠핑 시설이 있는 공원도 아니다.
텐트 하나에 그 가격이냐고 물어보니 1인당이라고 한다.
그냥 혹시나 해서 라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깐 태국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뭐 상업 목적으로 온 사람이라니깐 큰 기대는 않는다.
라오 정부는 1988년 외국인 투자법을 공포시켜 외국인의 직접투자와 해외 자본 유치를 이루면서
태국이 총 외국인 투자 승인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금 그럴싸하게 사업하는 곳은 대부분이 태국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고
라오의 태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크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타이식 해물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니얼스는 텐트가 없기 때문에 자전거는 밖에다 새워 두면 되니 한 텐트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좁은 곳에 미리 들어가 있을 필요 없으니 음식점 끝날 때까지 앉아서 서로의 지나온 재미난 일들을 나눈다.
요번에도 경비를 합쳐서 니얼스에게 관리해달라고 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의논한다.
뭐든지 혼자가 아닌 같이 할 때는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 의견을 들어보면서 계획을 짜야지
트러블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신철이, 베트남에선 그레이엄, 라오에서는 니얼스.
자전거 여행 떠나서 3번째 동행자와 다시 함께 하니 현금이 바닥을 보여도 든든하고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옆에서 바로 도울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앞으로 며칠간은 마음 편히 다닐 수 있겠다.^^

2008년 3월 1, 2일
1일 이동거리 : 126km
2일 이동거리 : 89km
세계일주 총 거리 : 7437km
마음의 양식 : 고린도전서 5, 6장
잠결에 쓰고 읽어보니깐 제가봐도 재미없네요.ㅋ
쓴게 아까워서 그냥 올립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