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성가족재단/ 대구 집 여성, 2020>
집의 흔적, 삶의 흔적
최 상 대 (한터시티건축, 전 대구경북건축가회장)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 3가지 요건을 의衣 식食 주住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주거住居라하겠다. 주住는 한곳에서 오래토록 머물며 삶을 영위하는 정주定住의 개념으로 복합적이며 종합적이다. 따라서 시간적 공간적 환경적 경제적 조건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세계적 건축가 르 꼬르뷰제는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다’라고 정의한다. 특히 현대생활에서의 주거는 살기에 편리한 기능적 가치를 벗어나 경제적 가치로 치닫고 있다. 18C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발달과 인구의 도시집중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6, 70년대 근대화 산업화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아파트 공동주택으로 주거의 변화가 진행 되었다. 도시 마을과 동네는 재개발 재건축으로 아파트 단지 고층아파트가 채워지고 전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아파트 공화국 시대가 되었다.
‘보금자리’는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포근하고 아늑한 둥지이다. 단독주택이든 공동주택이든 그 안에서 가족이 소중하게 보호되는 따뜻한 곳이다, 따라서 집은 그 사람의 삶이 아로새겨진 정감어린 ‘보금자리’인 것이다.
7명 여성이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인생 여정은 곧 그 사람이 집(住居)에서 살아온 특별한 이야기가 그 바탕을 이룬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서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집(시집)으로 떠나간다. 고향집은 친정집으로 어머니는 친정어머니로 변해버린다. 새집 새 가족, 시집 남편 시부모님과 함께 인생 여정을 살아가게 된다. 결혼 출산 월세 전세 이사 정착,,,, 삶의 여정은 곧 집(住居)과 함께하는 여정이다.
이야기하는 삶의 집(住居) 유형을 분류해보면 오래된 아파트, 평범한 단독주택, 전통한옥마을, 적산가옥, 농가주택, 도시쪽방 등 다양한 집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이미 지나온 오래된 삶의 이야기와 함께 시간과 함께 사라지거나 변해가는 집의 시간 공간을 기록하는 건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구술자들의 삶 이야기에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집과 건축 이야기를 더 하고자 한다.
동인시영아파트 (홍두리, 중구 동인시영아파트) ------------------------------------------
1969년 건립된 동인시영아파트는 대구 초창기 아파트로서 지역의 건축학(주거학) 사회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5개동 아파트는 지금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1960년대 산업화 시대를 맞아 농촌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도시는 주택부족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지금처럼 LH, 민영아파트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대구시가 개발 운영하는 시영아파트 건설 사업이 시작되었다. 현재의 아파트 개념과는 차이가 있지만 당시에는 현대화된 주거방식의 혁신이었다.
이 아파트 외관에 크게 보이는 원통형 경사로는 다른 아파트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당시 연탄난방 취사방식이 일반적이었던 시절, 아파트 구조에도 연탄방식이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연탄과 이삿짐의 운송수단도 리어카였다. 리어커로 끌고 미는 운송수단의 일상화는 6,70년대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으며 엘리베이터 도시가스가 없었던 시절의 애환이다. 현대건축에서 장애인시설인 경사로 램프는 법적 의무화 되어있다. 그러나 현대의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그 경사로를 대신하기에 경사로 램프는 1층에만 있다.
당시 시영아파트는 기본공사만 되었고 입주자가 내부시설을 하였다 한다. 대담자는 입주 당시 그 실상을 이렇게 말한다, ‘연탄아궁이는 큰방 작은방 부엌이 두 군데 있었고 마루도 없는 벌판이지. 시멘트 바닥 위에 부엌 화장실만 있어서 싱크대도 넣고 바닥마루 공사도 했지. 수리도 안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연탄 때는 집이 있었어요.’
특히 아파트 준공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참석, 먼발치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동인아파트는 지역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특별한 아파트였다. 그러나 50년의 시간과 공간은 철거로 사라져 버리는 운명이지만 구술자의 이야기는 남아있을 것이다.
전통한옥 (김옥선,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길 56-3) ---------------------------------
거창 시골마을에서 자라난 구술자는 뼈대 있는 전통한옥마을 사육신 후손 순천 박 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50여 호가 모여 사는 마을 안, 대가족 양반가문의 기와집은 대문 밖에서부터 위용이 드러난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마당의 크기에서 살림집 규모를 짐작하게 된다. 마당은 그 집안의 농사 토지의 규모에 따른 일꾼 식솔들의 사시사철 작업마당이다.
마당 왼편으로 치우쳐져 ‘ㄱ’ 자 안채와 아래채의 팔작지붕이 조화롭게 나래를 펼치고 있다. 계자난간 대청마루 전면 2칸 건물은 품위 있는 사랑채인양 전면에 나서있다. 남성공간인 사랑채가 전면에 여성공간인 안채가 뒤에 배치하며 내외 벽으로 구분되는 것이 전통한옥의 배치이다. 이집은 사랑채 안채 두 역할의 건물이 ‘ㄱ’ 자로 일체화된 특이한 배치이다.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난 안채 앞 작은 마당공간은 여성들의 살림 안마당이다. 동편 작은 문밖에는 텃밭과 축사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양반집의 구성과 골격에서 여인네들의 안살림살이를 유추할 수가 있겠다.
마을길 끝에 조성된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75년 ‘유적정화사업’으로 건립되었다. 이 마을은 2,000년에 아름마을로 지정되어서 전통마을로 보호되고 있다.
농가주택 (최금이, 동구 도평로 679) ---------------------------------------------
도평동道坪洞은 도동과 평광동이 합쳐서 1998년 행정 개편된 이름이다.
팔공산 줄기아래 이곳 마을은 복사꽃 사과꽃이 아름다운 산골마을이다. 도시와 가까운 동네들은 고속도로가 생기고 도시계획이 확장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동네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이 집에서 6남매 키우고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모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폈다. 그야말로 토박이 인생살이가 한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금자리인 것이다.
옛 부터 살아온 친정집을 개조하고 증축한 집은 작업공간인 마당을 중심으로 4채의 영역으로 연결된다.
1-고동색 타일 외형의 본채,
2-수성페인트 외형의 아래채,
3-대문간 채,
4-본채와 대문간을 판넬 지붕으로 연결한 집과 공간은 마당을 둘러싸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남향의 본채가 마당을 앞에 두고 가장 먼저 있었다. 가족이 늘어나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아래채를 증축했을 것이며, 대문간에는 연탄창고 농기구 창고 화장실 등의 농사를 위한 부속시설이 있을 것이다. 방과 공간들은 마당을 향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집 마당은 집의 중심이자 다양한 활동공간이다. 수도펌프의 세면장 설거지 김장 등의 다용도 장소이다. 집의 개량화 현대화 되면서 부엌 주방 화장실이 집안으로 들어와 있다. 집의 채가 늘어나고 본채 집의 외장타일과 유리 알미늄 샤쉬로 개조 업그레이드 한 모습이다. 삶에서의 형편 경제력이 나아지는 행복의 방증일 것이다.
농촌마당을 중심으로 단계적 집채의 증축과 확장, 변화의 공간구성을 보여주는 도평동 농가주택의 모습에서 삶의 여정을 유추해 보게 한다.
영선아파트 (김경애, 남구 대명동 영선아파트 ) -------------------------------------------
도시의 서민들이 모여 사는 영선아파트는 3개동으로 배치되어있다. 동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틈새 중정공간이 생겨나있다. 요즈음의 대단지 아파트나 주상아파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간적인 스케일과 풍경이 있다. 조경이나 주차장 조성은 아니라 남북 일조간격으로 생겨난 최소한의 거리이다. 동네 사람들의 만남과 교감이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자 다용도의 공간이다. 문 앞에는 화분과 살림살이도 내어놓는 마당공간이다. 평상에 둘러앉으면 경노당이 된다. 경차가 주차되어있다.
동서 양편으로는 마당을 보며 오를 수 있는 오픈계단이 있다. 한곳은 연탄과 이삿짐 리어카가 오르는 경사로구조로 되어있다. 1층은 상가이지만 주거용도로 개조했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고 한다. 2,3,층은 어두운 안쪽복도를 따라서 연결되며 복도바닥은 모자익 타일로 마감 되어있다. ‘숨바꼭질’ 영화의 장면 혹은, 홍콩영화 속의 아파트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구술자의 이곳아파트 관리인으로서의 애환과 경험은 지금의 아파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도시 변방 서민들의 생활상 이야기들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그야말로 공동주택에서 공동으로 살아가는 인간미가 물씬 나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아파트는 공동의 벽으로 철저히 차단한 독립주거인데 비하면 인간적 흔적의 주거이다.
30년 전 영선아파트 1층에 이사를 와서 길옆 점포 안쪽에 방2개와 주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윗 층으로 이사를 했다, 공사당시 이 아파트의 건설회사는 3차례나 부도를 냈고 4번째 회사가 76년도 완공했다. 불경기에 부실공사로 인하여 거주하면서 고생했다고 한다. 지금도 물이세고 반듯한 집이 없이 집집마다 구조가 다르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이수덕 김영숙, 중구 남산동) -------------------------------------------
도심 골목 여인숙 (이복하, 중구 달성공원로) -------------------------------------------
도심 양옥 과도기 주택 (박춘자, 남구 이천로) -------------------------------------------
아파트와 집들은 언젠가 도시계획으로 가로주택정비사업 재건축 재개발로 철거되어 사라질 것이다. 집은 사라질지라도 그 안 ‘보금자리’에서의 따뜻한 인생과 삶의 이야기들은 전설이 되어서 오래토록 전해질 것이다.
첫댓글 글도 글이지만 그림이 진짜 그림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조명래회장님 수채화가 독창적이듯, 글이 그렇듯, 각 각 표현 느낌이 다르겠지요.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스케치를 보고 글을 읽으니 쏙쏙 삶과 집이 보입니다.
현대 아파트 삶은 보금자리인지 부동산자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