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11)
江村(강촌)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 杜甫(두보 712-770)
강마을
맑은 강 한 굽이가 마을을 안고 흐르는데,
긴 여름 강촌에 일마다 한가롭다.
절로 가며 절로 오는 것은 집 위의 제비요,
서로 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은 물 위의 갈매기라.
늙은 처는 종이에 그려 장기판을 만들고
어린 애는 바늘을 두드려 낚시바늘을 만드네.
많은 병에 필요한 것은 오직 약물이니
하찮은 몸이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요?
- 『杜詩와 杜詩諺解 권7』, 李賢熙ㆍ李浩權ㆍ李鍾黙ㆍ姜晳中 共著, 신구문화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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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폭염과 한밤의 더위가 다 가신 건 아니지만 선선해진 바람을 맞고 보니 여름이 가기는 가나 봅니다. 여름의 막바지에 두보의 시 한 편을 올립니다. 이 시는 760년 두보의 나이 49세 때 쓴 시라고 알려졌는데 두보의 많은 시에서 보이는 정서와는 달리 매우 안정적인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때 두보는 강촌에 집을 짓고 두보의 생애사를 보건대 드물게 가족들과 함께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을 살았었나 봅니다. 두보가 시에서 그린 강촌이 혹 떠오르시나요. 저는 강이 굽이 돈다는 표현에서 우선 무섬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올여름에 지인들 몇몇과 영주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에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 들러 와서일 겁니다. 장기판을 만드는 아내와 낚시질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 마루에 앉아서 물끄러미 강 건너 산을 바라보고 있는 노시인. 떠오르는 풍경은 평온한데 多病이라는 시어 때문일까요, 번잡한 도시인의 눈에 비쳤던 무섬의 적막한 풍경과 겹쳐서일까요, 한편 떠오르는 풍경이 또 쓸쓸하기도 합니다. 이건 두보의 생애사를 대충이라도 알고 있어서 오는 연상이기도 할 겁니다. 병이 왔을 때를 대비해 약만 구해 놓으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겠다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은 병원이 가까우면 더없이 좋겠다 생각하는 지금의 노년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때나 지금이나 궁극적인 삶의 모습은 비슷해 보이는 데도요. 아는 것이 병이라더니 아는 것이 자유로운 상상을 가로막기도 하는군요. 하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 떠올리는 연상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과하다 나무라기부터 할 건 또 아닙니다. 그 인지상정이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상식적인 해결이 우선입니다. 상식적인 해결은 상식적인 대안에서 나옵니다. (230913)
첫댓글 두보님의 "강촌"과 보광님의 해설을 잘 읽었습니다. 이 가을 초입에 강촌이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