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꽃밭에서
아파트 후원에 핀 매화향기 따라
아부지 퉁소 소리가 잔잔하다
상냥한 바람결에 실려온
고향집 화분 흙냄새가 꽃비처럼 흩어지고
전보다 부지런하게 눈 뜬 참꽃 분홍빛에서
어린시절 푸르스름한 기억이 쏟아지고 있다
가을부터 준비 해 둔 봄뜻을 뿌린다
매초롬히 발아하면서
단단하게 밀봉된 어린시절들이
연둣빛으로 화사한 사월이다
누런 편지 봉투 반으로 잘라 여며 넣어둔 지난해 약속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나팔꽃
아부지랑 함께 만든 꽃밭에서
희망이 쫑알쫑알 속삭이고 있었다
동생들과 쑥쑥 자라던 그윽한 뜨락이 새삼 안겨온다
구순 아부지는 대문앞 화분에
엄마 냄새가 나는 분꽃을 심으신다
고향집에 달려가면 부모님 보다 먼저 반기는 꽃
올해도 씨를 심으셨다고,
설레는 마음이 핸드폰벨 소리에 실려온다
큰딸이 좋아하는 꽃밭을
커다란 화분에 듬뿍 담아놓으신 노안의 미소
마치 따스한 봄날 같다
*벚꽃 유감
부러워 우러르는 모습
역시 기다린 것이 확실하다
그윽이 웃는 얼굴 빤히보며
어찌나 어지럽게 쏘아보는지
겨우내 접어둔 넋두리 소르르 풀리고
오늘 좋은 황홀한 몫으로 웃고 있는데
저 환호의 진액이 내 혈관을 타고 돌다
마음 깎는 고통이 얹혀지면서
맑은 여유 제대로 퇴고하지 못하고
저들에게 꺾이는 허전함이 짙게 우러난다
합리적인 눈맞춤도
눅눅하게 흩어져 추단하기 어렵지만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알갱이 더듬더듬 들리는
젖은 바람 소리로 사그라지고
혀차는 햇살 허공에 매달려 반복되는
한결같이 범하는 무례를 모른다
*오월 이니까
지스락에 걸린 거짓말이
부풀어 오를대로 부어올랐다
나즈막한 언덕이 온통
회색 빛이라 마뜩잖아서
가까운 먼길이
조금씩 다가와 열리길...
봉인할 수 없는 듣기 거북한 주장
메아리없는 깊은 골짜기에
비릿한 생각이 오랫동안 부유하고 있다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생소한 단어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손흔들지 않을수 없고
가로챈 추억은
견딜만한 정도를 넘어서서
곳곳이 시퍼렇게 멍들어
신음소리 거세지고 있다
에움길 돌아돌아 더디더라도
또 한 세상을 건너가고 말겠다고
*그 날을 리셋하다
아청 바다 언저리에 숨죽인 더위
바람 머금은 하늘을 쏘아보고 있다
직녀 머리맡으로 둥둥 떠다니는
잠겨진 시간의 싸라기들이
도글도글 뛰는 별무리에 얹혀져
화사한 침묵의 떨림으로 밟고 간다
내풀로 길을 내고 삼킨 뜨거운 정적
깨뜨려 어느 곳에 닿을텐가
햇살 스쳐도 마음고픈 날엔
시린 통증이 불면의 밤을 넘나든다
낯선 새벽 확장된 음역의
너비를 가늠하여 행구어낸 생각들
속긋을 넣어 뇌이고 되뇌이며
가슴으로 훔쳐낸 감정의 근원은
옹이로 박혔지만
엔굽이치는 마음
한 방울로 응집된 미련한 꿈을 빚어낸다
*미나리꽝을 지나며
산들바람이 던진 미끼
덥석 물고 쑥부쟁이 하얗게 웃는다
소르르 품에 드는 햇살 껴입고
담장위에 맴도는 겹겹이 포개진 추억
멋쩍어 하는 표정에
-오늘은 주모 인심이 야박하구나
잔꾀 모를리 없지만 딴청이시다
-숙아 막걸리 한 되 받아 오너라
그때 이미 아셨을 아부지
거머리 매달린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푸른 미나리 수런대는 속삭임을 건져 올렸다
동구 밖 휘감는 바람의 눈썹에
몸속 깊이 퇴적된 그리움이 돋아난다
앙큼스레 막걸리 주전자에 입 대고 마신
몽롱했던 시간 어느덧 산기슭 까지 차올랐다
얼음손가락으로 지워나간 시간은
지워지지 않고 눈부신 낙엽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피곤의 알갱이에 업힌 바람 털어낸
허리 굽은 새벽이 선명하게 피어나고 있다
은빛실타래 허둥거리는 사이
허공으로 달아난 삶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데
*약력:2018년 '한국시원' 봄호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청시 시인회 회원, 은평문협이사
2022년시원문학상 작품상 수상
시집 '라온제나' 동인지 다수
*시인의 말:흩날리는 노을 소리 가득한 들녘에
참았던 기억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더위 탓으로 멍 놓고 있어도
대답없이 안겨오는 개와 늑대의 시간*
만신 굿당의 청회색 넋두리에
더께더께 낀 세월의 속삭임을 엿듣는다
첫댓글 짝짝짝.
함께하심 고맙습니다.
곱게 펼치신 4월에 잠시 빠져들어봅니다. 감사합니다. 예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