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글을 쓰며 러스킨이 누구더라 낯이 익다 싶었는데, 자료실에 찾아보니 있더군요.-
죤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
작가, 비평가, 사회운동가로서 또 미학의 귀재로서 당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는 생애에 걸쳐 알프스로부터 줄곧 짙은 인상을 지닌 채 정열을 바쳤으면서도 실제 등반에서는 뷰에, 살레브, 리펠혼 등 여행자들이면 족히 오를 수 있는 높은 고개를 넘는데 그쳤다. 허나 그만큼 알프스의 산록을 가슴 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러스킨도 당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훌륭한 산악인이 되기를 바랬으나 그의 양친 특히 모친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으며 소유욕과 보호본능이 지나치게 강했던 부모의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게 되면서까지도 부모의 영향하에서 성장했다.
알프스의 전경에 대한 러스킨의 깊은 감성은 새롭게 결성된 알파인 클럽에 의해 제지 당하기도 하였는데 "들깨와 백합들"이라는 저서에서 나타나듯 "여러분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이 그렇게도 경건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알프스 그 자체도 실은 곰을 가둔 우리에 세워놓은 비누칠한 기둥을 올려다보는 것 같아서, 여러분 자신들도 그걸 올라갔다 미끄러져 내려오면 환희의 함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기쁨의 환호를 음절로 끊어지도록 명확하게 말할 수 없이 그 환호를 지나치고 나면 여러분들은 대포소리로 계곡의 평온을 채워 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달려가 외부로 표출된 자만심의 분출로 인해 흥분하게 되거나, 자기만족에서 오는 감동으로 수다를 떨게 될 것입니다."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화약 연기란 특히 몽블랑이 등정된 이후, 샤모니에서 벌어진 대중 행사시에 쏘아댄 축포를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러스킨은 1851년 앨버트 스미스가 몽블랑을 등정할 당시 "진정한 자연에의 경외심이란 알프스의 설산에서 회유하듯, 체력단련을 위해 보붸 (Beauvais) 성당의 성가대 뒤에 있는 커다란 기둥을 클라이밍하는 것을 생각하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고 알프스의 등반 활동을 비꼬는 어조의 글을 남겼으나 1869년 알파인 클럽에서는 그를 회원으로 선정하였다.
지질학을 수학하기도 한 그는 틴달이나 랩지가 포비스와 대적하는 입장을 옹호해 주기도 했다. 지질학 덕분에 그는 알프스 산의 구조와 빙하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므로 지신의 스케치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미학자로서 걸출한 알프스의 예술적 수준이 높은 스케치와 수채화를 상당수 남겼으면서도 자신이 예술가로 불리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1849년 자신이 마터호른 최초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주장했던 러스킨은 "현대 화가들"이라는 미술 비평서를 통해 미술비평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이룰 수 있었다.
선진의 관념을 지니는 새로운 사회구조 이론을 펼쳐 시대를 앞서 나가기도 했던 그의 생애는 지극히 풍요로운 것이어서 20만 파운드 정도의 자신의 재산을 포기할 정도로 관대한 인물이었다. 생애 마지막을 브랜트울과 코니스톤에서 보낸 그는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201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