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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소 기독 연구 스크랩 `하나님` 이란 거룩한 이름은 고조선 순(舜)나라 때부터 써 왔다
고-건은준 추천 0 조회 26 15.03.19 13: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3402 

 

'하나님' 이란 거룩한 이름은

고조선 순(舜)나라 때부터 써 왔다


글 : 오소운 목사


 

블로거 제위(諸位)의 양해를 바랍니다 :

아래 기사 중, 「하?님」이라고 나온 누락된 부분은「아래 나 자」인데,

인터넷 문서에서는 한글 옛체가 아직 변환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서,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신명(神名) 이상으로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하늘에 계신(하나+님) 유일신(하늘+님)을 나타내는, 이「하나님 신앙」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일까?


 한자(漢字)1)로는 하나님을 상제(上帝)라고 쓰고, 중국어로는「샹다이」라고 읽는데, 샹다이는 히브리어 ?샤다이?에서 온 말이라는 게 신학자들의 통설이다.

 

1) <漢字>라는 말은 일본인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참글(眞書)>, 곧 <진서>라고 일컬어 왔다. 이 <진서>는 <漢>나라가 생기기 수 천 년 전부터 동이족(東夷族)이 만들어 써 온 글이다. 굳이 이런 식으로 쓴다면 <韓文>이라 쓰는 게 맞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라는 뜻으로 이 말을 썼다.2)


 2)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 출애굽기 6:3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바로 이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고 한다.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창세기 17:1에서 이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야곱에 대해서는 창세기 28:3, 35:11, 43:14, 48:3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上帝?란 말은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순(舜, 주전23세기)2)나라 때부터 쓴 말로서, 동이국가인 은(殷, 주전 1760~1520)나라 족속인 공자(孔子, 주전 551 ~ 479)2)가 편찬한《서경(書經)》에 32회,《시경(詩?)》에 32회,《사기(史記)》에 20회가 씌어 있고,《중용(中庸)》에는 58회나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요순시대부터「상제(上帝)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살아온 것이다.

 

2) 孟子 曰; 舜生於諸馮, 遷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孟子: 卷八 離婁章句下 一》

3) 공자는 죽기 1주일 전 자기 제자에게 자기는 은나라 사람임을 밝혔다. 

殷人殯於兩楹之間,則與賓主夾之也;周人殯於西階之上,則猶賓之也. 而丘也殷人也. <禮記>



 ?하나님?이란 말이 한글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책으로 최초의 것은, 400여년 전인 선조(宣祖) 때 사람,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시에 처음 나타난다. 그 이전에는 한자로 ?一神?, ?天神?, ?上帝? 등으로 썼지만, 말할 때는 모두들 ?하나님?, 혹은 ?하눌님?이라 했다. 박인로는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서 호는 노계(蘆溪)다. 9편의 가사와 70여 수의 시조를 남겨,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 1593),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와 더불어「조선의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꼽힌다. 그가 임진왜란 때(1592~98) 쓴【노계집, 蘆溪集】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원문> 

時時로 머리 드러 北辰을 바라보고

남모라난 눈물을 天一方의 디이나다

一生애 품은 뜻을 비옵나다

하나님아!


<번역문>

때때로 머리 들어 북쪽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남몰래 눈물을 하늘 저편에 떨어뜨리며,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내다.

하나님이시여!


만주에서 발행된 최초의 우리말 성경인《로스역성경,1882》초판에는?하느님?으로 썼다가, 이듬해 재판부터 ?하나님?으로 모두 고쳤다.

 

                           

《로스역 신약성경, 1883》의 요3:16 부분


박영효(朴泳孝, 1861~1939)와 함께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로 가서 일본인 야스가와(安川亨, ?~1908)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1883. 4.) 이듬해《현토한한신약전서(縣吐韓漢新約全書)》를 번역 출판한 이수정(李樹廷, 1842~1886)은, 한자로 된 일본 성경에 토만 달았기 때문에, '하나님' 이란 말 대신 일본식으로 '神' 을 그대로 두었다. 이수정은 자기가 미국에 요청하여 한국 선교사로 오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 등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영어성경에서 마가복음을 순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한《신약마가젼복음셔》를 선물하여, 최초의 한국 선교사들은 제물포에 상륙할 때(1884. 4. 5.), 이수정 역의 한글판 마가복음을 들고 들어왔던 것이다.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 한글판


  장 · 감 두 선교회는, 선교에 있어서 찬송가의 위력을 잘 알았기 때문에, 성경보다 먼저 찬송가를 출판하기로 하고 작업 중, 영어 'God' 를 어찌 표기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다가, 1894년 번역자회의에서 가톨릭 식으로「텬쥬(天主)」로 하자, 아니 모든 국민이 다 아는「하?님」으로 하자, 하고 논쟁하다가 투표를 하였는데, 3대 1로「텬쥬」가 채택되었다. 허나《찬미가, 1892》에서 이미「하?님」을 쓰고 있는 감리교단에서 투표 결과에 승복하지를 않아 투표는 무위로 돌아갔다. 감리교는 1892년에 한국 최초로 배재학당의 존스(趙元時, George Heber Jones, 1867~1919) 목사와 이화학당의 로스와일러(L. G. Rothweiler) 양이 편찬하여 감리교 선교부(Methodist Episcopal Mission)에서 낸《찬미가, 1892》에「하?님」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언더우드는 감리교 측 《찬양가》편찬위원인 존스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성급한 마음에, 단독으로 한국 최초의 곡조 찬송가인《찬양가, 1894》4)(117편 수록)를 내었는데, '하?님' 이란 말은 전혀 안 쓰고, '하늘 아버지', '상제(上帝)', '쥬', '여호와' 등으로 번역하여 책을 내었다.

 

4) 《찬양가》는 1894년에 출판하였지만, 채택이 안 되는 바람에 1895년에야 다?생산을 하였던 것이다.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가 낸《찬양가, 1895》안표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존스 목사는 언더우드의 단독 출판에 항의하고, 이의 사용을 거부한 후, 서둘러 1896년에《찬미가, 1892》를 증보하여 출판하였는데 무곡인데, 모두【하?님】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북장로교 선교부에서도 이에 동조하여 새로《찬셩시, 1995(무곡)》를 출판하면서「하?님」으로 통일하였다.

 

                                                                      

 북장로회 선교부에서 발행하여 서북지방에서 사용된《찬셩시, 1895》 

 

 

 언더우드와 그 외 장로교 선교사들은 당황하여,「하나님」이란 성호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마침내 한국은 고대부터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임을 깨닫고 놀라움과 함께 이런 글들을 남겼다.


1. 언더우드 선교사의 글:

언더우드 선교사는 감리교의 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개신교 선교사로서 한국 땅에 첫발을 디딘 장로교 초대 선교사이다.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고종황제와 왕비에게 전도를 하고,《찬양가》를 내었을 뿐만 아니라, 연희전문학교를 세우는 등 셀 수 없는 큰 공헌을 하였고, 그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지금도 한국에서 선교사로큰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언더우드 선교사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The Kingdom of Kokureo)에서는 하나님(Hananim)이라 일컬어지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Hananim)은 크고, 유일한 하나(Great only one)를 가리키는 말이다.”


2. 게일 선교사의 글:

게일 선교사는 한국에 와서 여러 곳을 순회하며 말과 풍물을 익힌 다음, 1890년부터 성서공회 전임 번역위원이 되어 성서를 번역하고, 1900년 연동교회를 담임하였고, 한국셩교셔회(韓國聖敎書會, 현 대한기독교서회) 창립위원이 되는 등 문서선교의 기틀을 잡았다. 한국 최초의【한영대자전, 韓英大字典】을 편찬했으며, 후에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많은 인재들을 그리스도교회로 인도하였다. 그의 글을 소개한다.

 

       

           게일 선교사                                 


“우리의 색슨(Saxon)어 ‘God’ 는 복수로 사용되었고, 이방 신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바 목적에 사용되기 전에 많이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어 'Theos'나, 일본어 'Kami(神)'는 소위 많은 신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고, 중국의 상제(上帝) 또한 많은 신위(神位) 중에서 최고신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이름들이 오랜 기간동안 사용 시기를 거치면서 애써 도달하려 했던 의미(?유일신?이란 뜻 ? 필자 주)를 일시에 획득하고 있다.”


3. 헐버트 선교사의 글:

헐버트 선교사는 고종황제 측근으로 쓸어져가는 나라 세우기에 많은 일을 한 한국의 은인이다. 특히 최초의 한글로 된 인문지리서인【사민필지(士民必知)】의 저자다. 1891년에 간행된 이 책은 지구와 천문, 기상 등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과 지구총론, 인종총론 및 유럽 총론 등의 개론을 붙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한국의 은인 헐버트 선교사는 해방 직후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돌아가 양화진에 묻히셨다 

 

“「하나님?을 믿는 한국인은 엄격한 일신론자(一神論者, monotheists)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종교적 개념은 외래적 의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4. 윤치호의《찬미가, 1907》제14장 애국가

 모르는 사람 중에 윤치호가 작사한 애국가에「하?님이 보우하사」로 되어 있다며, 아래아 자는「ㅡ」로 갔으니까「하느님」으로 써야 한다는 사람을 보았다. 아니다.


 1905년에 윤치호 장로는《찬미가》라는 소책자를 내었다. 자기가 소속한 남감리회를 배경으로 1906년에 개성에 설립한 한영서원(현 송도고등학교)에서《찬미가》의 애국찬송을 가르치며「애국찬송」운동을 벌여 전국적인 호응을 받았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책은 작고하신 선배 목사님에게 물려받은 재판(隆熙二年, 1908년)이다. 표지까지 합쳐서 B5판(182×257) 용지 12매에, 좌우 두 쪽씩 실어, 한 면만 인쇄한 후 이를 반으로 접어, 찍개로 두 번 찍고 표지를 붙이었다. 오른 열기에 세로짜기를 했다. 역술자(譯述者)는 윤치호(尹致昊), 발행자는 김상만(金相萬), 인쇄소는 탑인사(塔印社), 발행소는 광학서포(廣學書?), 값은 2전 5리(二錢 五厘)이다.  머리말이나 차례 따위는 없고, 15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우리 황상폐하 텬지일월 갓치 만수무강 (윤치호 작사)

 2장: 나 사랑하난 예수 품속에 들이소사 (441장)

 3장: 성재 성재 성재 전능하신 주여 (9장)

 4장: 서라 십자가 군사 예수 위해 서게 (390장)

 5장: 벳네헴 새벽별은 창공에 찬란하고 (126장)

 6장: 아참 날이 도드니 어둠이 다 가네

 7장: 일하세 밤 되나니 아참에 일하세 (37장),

 8장: 내 믿고 발아난 십자가 속죄한 구세주여 (435장)

 9장: 그리스도 군사 앞서 나가세 (389장)

10장: 승자 신손 천만년은 우리 황실이오 (윤치호 작사)

11장: 귀하다 우리 맘 서로 맷난 사랑 (525장)

12장: 쥬를 밋난 자의 견고한 터가 (합동 434)

13장: 해는 지고 밤은 갓가오니 (531)

14장: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윤치호 작사)

15장: 끄릴난 어름 산과 인도 산호섬과(273장)

 

1장에 실린 윤치호 작사의 <우리 황상폐하>는 고종황제 탄신축하식 때, 배재학당 남성합창단이 불러 기립박수를 받은 황제찬가다.

                                                                                                   

이 곡조는 영국, 미국 등의 국가 곡조로서, 79장 <피난처 있으니>도 이 곡조로 부른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4장「동해물과 백두산이」이다.  영문 노래제목은 'Patriotic Hymn' 곧 ?애국 찬송?으로서, 본디 찬송으로 작사한 것이다. 곡명(TUNE)은「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으로서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부르던, 5음계 노래인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 로리? (Annie Laurie) 곡조요, 가사는 현 애국가 가사와 일치한다.

                                                                                      

  《찬양가》14장에 실려 있는 윤치호 작사 애국가, 이 밖에도 1장과 10장도 그의 작사다. 

 

 한동안 애국가 작사자로 거론된 사람은 윤치호와 안창호였다.《통일 찬송가》30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작사자 주요한(朱耀翰, 1900~1979)은 경향신문(1955. 4. 19)에 기고한 ?愛國歌 作詞者는 누구??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春園 李光洙가 島山 安昌浩에게, ‘애국가는 선생이 지으셨지요?? 하고 물었을 때, 島山이 笑而不答(주 : 웃기만 하고 대답 않음)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或은 그 時節의 安 ? 尹 兩氏의 合意로 새로운 歌詞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5)

 

5)  閔庚培:《韓國敎會讚頌歌史》62쪽에서 재인용.


  

   <붙임> 애국가 안창호 작사설을 주장하는 사람 중엔, 윤치호가《찬양가》제 14장에 애국가를 실었지만, 그 책 판권에 보면 <역술(譯述)>이라 적어 넣은 것으로 보아, 그의 작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 있는 찬송 중에는 번역한 것이 더 많았으므로, 겸손하게 [역술] 이라고 쓴 것이라 생각된다. 작사한 것은 위에서 본 대로 1장, 10장, 14장 세 편이고, 남어지 12편이 번역이다.

  


 

주요한의 ?안창호와 윤치호의 합작설?은 한동안 여기저기 회자되었으나 억측이었다. 윤치호와 안창호는 같은 시대의 민족 지도자였지만, 평생 한 번밖에는 개인적으로 만난 사실이 없다. 윤치호는 그의《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6)

 

6) 김상태 편역;《윤치호 일기》(1916~1943) 역사비평사 간, 626~7쪽.



가. 1935년 3월 24일 일요일

“오후에 중앙호텔에 머물고 있는 안창호 씨를 방문하였다. 그를 단독으로 면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극심한 반남(反南) 파벌주의자라는 내용으로 자기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난을 반박했다. 그의 설명이 모두 사실이라면, 안씨와 관계를 끊은 쪽이 오히려 이승만 박사였다. 안씨는 훌륭한 얘기꾼이었다. 그는 조선인들에게 지역적 적대감을 부추기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말로 자기 얘기를 마무리했다.”


윤치호와 안창호 두 사람은, 같은 시대 민족지도자이면서 평생 한번 밖에 독대할 기회가 없었던 까닭은,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뿌리 깊은 지역감정 때문이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온갖 벼슬은 일부 양반 계급인 ?기호(畿湖) 사람들?이 독점하였고, ?서북(西北) 사람들?은 완전 소외되어 왔다. 윤치호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니 기호사람이고, 안창호는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으니 서북사람이다. 그때 상황을 윤치호의 일기에서 보자.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 장로


나. 1933년 10월 4일 수요일

… 그런데 안씨는, “일본인들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적이지만, 기호인들은 500년 동안 서북인들의 적이었으므로, 먼저 기호파를 박멸해야 한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 안씨가 이런 말을 했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호파 인사들은 이를 사실로 여기고 있으며, 안씨가 이보다 더한 말도 했다고 믿고 있다…7)

 

7) 김상태 편역;《윤치호 일기》624쪽.



 이런 두 지도자가 애국가를 합작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환상일 뿐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대로, 윤치호는 친필로 자신이 1907년에 애국가를 작사했음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8)

8) 윤치호 작사 육필본 애국가, 미국 뉴욕시립도서관 소장.

 

       

       애국가가 자신의 작사임을 밝힌 윤치로의 친필 애국가



 한편 朝鮮日報는 2003년 12월 17일자에서 김용운 기자의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확인” 이라는 기사를 다음과 같이 실었다.

 

  ‘동해물과 백두산…’ 애국가 가사를 독립신문 사장과 대성학교 교장을 지낸 윤치호(尹致昊, 1865~1946)가 지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가 미국에서 발견됐다. 기독교 서지연구가 신인수(서울 회현교회 장로)씨는 ‘윤치호 쟉(작)가 애국가’를 수록한 ‘셰(세)계명쟉(작)가곡집~무궁화’ 책자를 미국 LA에서 입수해 16일 공개했다. 1931년 LA 종우서관이 펴낸 노래집으로, 편집 ? 발행인이 LA 리들리(Reedley)지역에서 교육자로도 활약한 한석원 목사다.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Scotch folk song’(스코틀랜드 민요)이라 적은 올드랭사인 곡조에 ‘동해물과 백두산…’부터 ‘이 긔(기)상과 이 맘으로…’ 까지 1~4절 가사와 함께 노래집 앞부분에 담겼다.

 

                                                                                                                      


        미국 LA에서 발견된 애국가, 안찬호의 본거지인 LA에서 낸 이 책에 "윤치호 작사"라 명기되어 있다.      

 

서지학자 겸 애국가 연구가 김연갑씨는 “이번에 발굴한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일제의 한국 강점기 국내외서 출판된 인쇄물 가운데 윤치호를 애국가 작사자로 명기한 최초의 자료” 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도산 안창호가 이끈 신민회가 주관한 ‘신한민보’ 1910년 9월 21일자에 애국가 가사와 일치하는 ‘국민가’가 ‘윤치호 작’이란 이름으로 실렸지만, 제목이 ‘애국가’가 아니어서 논란이 돼 왔다” 면서 “이번 윤치호 작사 애국가는 곡명과 가사, 작사자가 정확히 일치해 애국가연구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현재 부르는 애국가는 안익태가 1935년 11월 작곡,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채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1933년 한글학회가《한글 맞춤법 통일안(案)》을 낼 때,【아래아 자】를【ㅏ, ㅡ, ㅐ】등으로 바꾸는 바람에, ‘하?’은 '하늘'로 되고, '하?님'은 '하느님'으로 바뀌어 표준어로 채택되었다. 우리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성경 찬송 등 모든 문서에, 어래아 자를 써서「하?님」으로 써오다가, 맞춤법통일안과 표준어가 발표된 이후, 이 작업에 참여했던, 한글학회 이사로서, 별명이 ?한글목사?로 유명한 강병주(姜炳周) 목사(새문안교회에서 은퇴한 강신명 목사의 선친)가,《신편 찬송가, 1937》(새철자 판) 책임교정자로 일하면서, 표준어를 따라 모두「하느님」으로 고쳤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였는데 마침내 1948년《합동 찬송가, 1948》를 출판할 때 모두「하나님」으로 되돌려 놓아 오늘에 이르렀다.

 

  한편 한글학회에서는, 왜놈들의 핍박으로 중단되었던 《우리말 큰사전》편집을 서둘러, 1947년 우리나라 처음으로《우리말 큰사전(전6권) 을 펴냈는데,「하나님」과「하느님」두 항목을 모두 채택하고,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다. 하나님 

① = 하느님①.[이름씨] 

② <예수교> 스스로 있으면서 우주 만물과 인류를 창조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참된 사랑의 섭리와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는 유일신 여호와.[한자] 신10


라. 하느님 (⊂=하?님)9) [이름씨]

9) ⊂ 표시는 <하?님>이 어원임을 이른다.


①‘하늘’의 높임말로서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신앙의 대상을 가리킴. [한자] 상제9, 상천3 

②<천주교> 창조의 절대 능력과 구원의 완전한 사랑으로 우주 만물과 인류를 다스리는 유일신 야훼. [한지] 상주10,10.

③주1 ②, 천주1

[하느님 맙소사] 기막힌 일을 당하거나 보거나 할 때 몹시 탄식하는 소리


이렇게 풀이해서,「하나님」이란 말은 그리스도교 용어요,「하느님」이란 말은 가톨릭 용어로 굳혔다. 그 이후에 나온 모든 국어사전들은 모두 이에 따랐다.

 그러나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신구교 공동으로 성경을 번역할 때, 개신교 식으로「하나님」으로 할 것인가, 가톨릭 식으로「하느님」으로 할 것인가, 를 놓고 장시간 논란을 하였는데, 개신교 측의 문아무개 가 차제에 표준어로 돌아가자, 고 강력히 가톨릭의 편을 들어, 공동번역 성경에는 하느님으로 표기되었다 한다. 공동번역이 출판되자, 우리 교계에서는「하나님」과「하느님」의 이름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져 격렬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 그러자 일반 매스컴은「하느님」편을 들어, 이후에 나온 국어사전들은 앞을 다투어「하나님」항목을 삭제하였는데, 유독《한컴사전》만은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마. 하나-님

[명]?기독교?'하느님②'을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 ≒신09(神)③.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이시요, <한분 뿐이신 우리의 창조주>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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