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고국은 장맛비가 한 여름을 향해 질주하는 계절일 게다.
적당한 햇살과 비바람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예약할 수 있을
터인데, 그리 되었음 좋겠다. 어차피 세월 따라 흐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지만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꿈을 꾸는 파랑새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감수성
풍부하던 학창시절에 읽었던 안톤 슈냑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여러 가
지 슬픈 모습들이 떠올랐다. 이곳 벤쿠버 거리에는 삶에 지쳐 노을을 등진 이민자
의 슬픈 표정들이 날마다 내 얼굴과 겹쳐지곤 한다.
캐나다 본토의 원주민이 인디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헨리 영국
국왕이 보낸, 존 캐빗이 캐나다에 처음 도착할 15세기 말 즈음 캐나다 대륙엔 인
디언과 이누이트(에스키모)가 전부였다고 한다. 지금도 노스로드 한인 타운 건물
의 땅과 웨스트 벤쿠버 어느 골프장의 땅 주인은 인디언이라고 들었다. 내가 살
고 있는 이곳에도 인디언이나 이누이트 족이 캐나다의 원주민이 주인이라는 뿌리
는 곳곳에 숨어 있는 모양이다.
미국이 사이판이나 괌을 흡수한 것처럼, 캐나다는 영국이 신천지를 통치하면서
원주민을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냈다. 이 거대한 나라의 주인인 인디언
후예들은 지정된 주거 지역에서 정부에서 지급하는 연금으로 생활한다.
그들은 리퀘어(술 도매상) 스토아 같은데서 담배나 술을 구입하는가 하면, 때로는
마약까지 손을 대고 있다. 그것을 캐나다 정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체 방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현재 인디언의 후손들이 조합을 결성하여 항의나 자신들의 요구를 내세우며 권
리를 주장한다고 하지만 우리 속담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은 나를 슬
프게 한다. 가끔 슈퍼스토아나 코스코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는 원
주민의 후손들. 한결 같은 남루한 옷차림에 여유롭지 못한 삶의 애환을 느낄 때면
'주객이 전도 되었다’는 생각이 꼬리에서 꼬리를 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관광명소로 유명한 벤쿠버의 심장부인 스태니 팍(Stanley park)입구! 우뚝 서
있는 토템폴(totem poles)은 우리나라의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을 연상케
한다. 높은 아름 들이 통나무에 손끝으로 조각한 그 정교한 예술의 혼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가격을 따질 수 없는 원주민의 숨결이 호흡하는 수 공예품들. 그들
의 시공時空에 서린 한恨이 새겨진 뿌리와 전통을 상징하는 포템 폴. 원주민의 정
신은 인정하면서도 교육이나 문화를 외면하고 그들에 대한 예우도 형편없이 무관심
한, 캐나다 정부의 이중적인 두 얼굴의 속셈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기우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너 나 한것없이 컴퓨터 문화의 실 수효로 코리아가 세계적으
로 부상하고 있지만, 백년대계인 어린이의 정신교육과 성장건강이 걱정이 되는 것
은 답답한 노파심일까.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손녀에게 밥 먹고 보라는 할머니 “보리 고개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말도 채 끝나기 전에 “먹을 것이 없으면 라면 먹고, 자가용이
없으면 콜택시 타면 되지…”라고 손녀딸이 할머니를 놀리는 세상이란다.
이것이 살아 있는 이민 3세대의 현실로 세대 차이에 따른 가치관이다. 우리 선
조들이! 겪은 임진왜란의 굴욕이나 이민 1세들이 당한 일제 제국주의 압박과 고문,
6.25 한국동란의 폐허와 치욕 ㅡ 이산가족의 아픔과 시련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
에 흘러가는 이야기일 뿐. 빵 보다는 시간을 먹고 따지며 살고 있는 내 열매들의
모습임을 어찌하랴. 자유 천지인 이곳에서도 우리는 같은 동포끼리 상대방으로부
터 행여 무시당할까 봐… 있는 척, 배운 척, 잘난 척, 세가지 척 병에 걸러있다.
건드리면 고슴도치 같은 자존심의 상실로 마땅한 일자리는 찾기 어렵고 관광지
로 소비 도시인 밴쿠버의 거리는 이렇듯 여름 속에 졸고 있다.
유년시절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던 소련의 클레물린 궁도 무너지고. 이데올르기로
분단되었던 철의 장막 독일도 하나가 된지 오래이다.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작은 땅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슬픈 자화상. 타국을 도와 준 것도 아닌데
"햇볕 정책"의 뒷맛이 왜 이렇게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일부 독일 언론에서는 '한국은 큰 소리만 내면 다 얻을 수 있는 이상한 나라’라
는 비아냥이 민족적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지금 밖에서 보는 우리나라는 희망의
파랑새마저 날려 보낸 소시민의 창백한 얼굴. 이에 맞물려 겹쳐지는 인디언들의 힘
겨운 모습은 정말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마치 장마를 몰고 오는 우울한 여름
비와도 같이.
밴쿠버교민신문 한국일보 04,8.6 연재
첫댓글시작하셨네요. 근데 우울한 얘기군요. 캐나다 밴쿠버 하면 기회의 땅으로만 알고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실상은 그렇군요. 하긴 거기도 남의 땅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유렵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알고는 있을까요? 역사란 것이 강자의 기록이라지만 당하고만 있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첫댓글 시작하셨네요. 근데 우울한 얘기군요. 캐나다 밴쿠버 하면 기회의 땅으로만 알고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실상은 그렇군요. 하긴 거기도 남의 땅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유렵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알고는 있을까요? 역사란 것이 강자의 기록이라지만 당하고만 있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있는 척, 배운 척, 잘난 척....스스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죠.
그러게요. ^^
좋은 내용이네요. 모두들 알아야할 사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