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7일(金)
새벽 5시까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인도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소음에 익숙해서 무반응인지 몰라도 아무튼
서민계층의 인도인들은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무식한 놈들이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류정님의 설명에 의하면 오디오 시스템을 구입하면 이를 자랑하기 위해서
기본으로 3일간은 이렇게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려 틀어 놓는다고 한다.
07:30분경 옥상으로 올라가 타지마할을 보려고 했으나 뿌연 스모그 현상으로 인해
희미한 자태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5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극심한 매연으로 인해
마스크를 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오토릭샤의 연료를 LNG로 대체해서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시장에서 당근과 감자를 각 1kg 당 10Rs씩을 주고 사가지고 왔다.
한정숙대원은 승기군이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며 누룽지를 끓여 먹였다.
이게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수재비로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타지마할로 갔다.
타지마할을 입장하는데 입장료가 내국인은 단돈 20루피이나
외국인에게는 5달러 또는 750루피를 받는다.
소형 짐을 맡기고 외국인에 한해 물 한 병과 덧버선이 주어졌다.
이것도 가려져 있던 글씨를 내가 발견해서 챙긴 것이다.
덧버선이 없으면 신발을 벗어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른다.
그리고 입장할 때는 먹을 것의 반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소지품 검사는 입구에 검사대가 설치되어 있어 아주 철저히 하였다.
2단계에 걸쳐 검색을 하였다.
또한 타지마할 내에서 사진은 찍을 수 있으나 묘소가 있는 실내에서는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비디오 촬영은 입구에서만 가능하고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보관소에 맡겨야만 했다.
포토 포인트에서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분수대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왔다.
나무와 못은 전혀 쓰지 않고 대리석만으로 축조한 타지마할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아그라 교외 아그라 성(城) 동쪽 약 2km,
야무나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소재하고 있다.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인 샤․자한(재위 1628∼1657)이
1631년 14번째 아이를 낳다 39세로 죽은 동갑내기 왕비인 ‘무무타즈’를 위해 세운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1632년부터 년 인원 2만 명씩을 동원해
세계 각지에서 여러 보석과 미술 공예품을 수집하고 기술자를 데려와
22년 동안 공사 끝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완공한 건축물이다.
'선택된 단 하나의 궁전'이라는 뜻의 타지마할은
사실 궁전이 아니라 거대한 무덤이다.
타지마할의 외벽에는 코란 한 권이 모두 새겨져 있고
세계 도처에서 수집한 보석들인 다이아몬드, 터키석, 사파이어 등을
페르시아 꽃무늬 안에 상감(象嵌)되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난 이 타지마할을 감히 ‘이승에 세워진 저승의 집으로
사랑의 영혼을 담은 인도의 얼굴’이라 말하고 싶다.
그래도 샤․자한이 건축광답게 타지마할이라는 훌륭한 건축물을 세웠기에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타지마할 측면
사진.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표동무(별을 따서 만든 목걸이)
타지마할을 한 바퀴 돈 후 그늘진 곳에 앉아 야무나 강을 바라보며 다리쉼을 하였다.
그런데 2시경이 되자 경찰들이 호각을 불며 관광객들을 나가라고 하였다.
아니 내쫒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성 싶다.
무슨 일인가 싶어 경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는데 내 귀에 호각을 대고 멍멍할 정도로 부는 게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육두문자를 써가며 인상을 써주었다.
마치 한 대라도 칠 기세로 말이다.
이 녀석 주눅이 들었는지 꼬리를 내리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 벌써 나가라고 하느냐고 물으니
헝가리 대통령이 오기 때문에 오후 5시까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다는 것이다.
하는 수없이 쫒겨 나다시피 타지마할에서 나왔다.
이것이 인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에서 급히 나오다가 24∼70mm렌즈를 떨어뜨려 보호렌즈에 금이 갔다.
보호렌즈에 금이 갔을 뿐만이 아니라 빠지지가 않아 사용을 못하다가
일본에서 4박 5일 동안 스톱오버 하면서 캐논 수리소를 찾아 고쳤다.
감자를 사가지고 GH로 돌아와 전기 쿠커에 넣고 삶다가 물이 넘치는 바람에
합선으로 고장이 나버렸다. 인도에서 고칠 수도 없고 막막했다.
저녁에는 모르게 버펄로를 잡아 파는 곳을 알아두었기 때문에
한 사람당 100루피를 내서 버팔로 고기를 사서 영양보충을 하기로 했다.
시장에 가서 대형 석류(인도에서는 ‘anar’라고 함) 1kg에 60Rs씩을 주고 3kg을 사가지고 오면서
가마니로 문을 만들어 모르게 버팔로 고기를 팔고 있는 곳에 가서 고기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Shanti Lodge 바로 옆에 있는 ‘Join us’라는 식당에서
종업원인 ‘보비’에게 부탁해 도마와 칼을 빌려왔다.
보비는 인터넷상에서 아주 양심적이고 친절한 ‘보비아저씨’로 이름난 사람이다.
류정님과 한정숙대원이 고기 손질을 하는 동안
서종규, 윤영조대원은 옆에서 말로만 기쁨조 노릇을 하였다.
고기 손질 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나가라고 했더니만
서종규대원 曰, 이렇게 옆에서 우왕 끈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기홍대원은 어느 새 나가 마늘과 양파를 싸와 껍질을 벗기고,
표동무와 김은영 그리고 김효경대원은 야채를 씻고,
난 고기를 먹으며 양파 등을 찍어 먹기 위해 참깨와 참기름을 넣어 맛있는 된장을 만들었다.
사진. 고기를 손질하는 장면
사진. join us의 보비아저씨
사진. 조인 어스 옥상에서 버팔로 고기를 먹으며 한잔.....
버팔로 고기를 맛잇게 먹는 수현양과 연주양
사진. 버팔로 고기
Join us식당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곁들여 버팔로 고기를 맛보았다.
인도를 여행 중인 여대생도 합석했다. 그
런데 버팔로 고기를 손질할 때는 빛깔도 좋고 연해 보였는데 막상 구어서 먹자니 엄청 질겼다.
그래도 수현양과 연주양은 맛있다며 잘도 먹었다.
물론 내가 만든 된장 맛도 속된 표현으로 기똥찼다.
다시 Shanti Lodge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 고기를 먹은 후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대화 중 류정님의 말에 의하면,
베트남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 미국이 베트남한테 원조를 해주겠다고 하니까
호치민 曰 “전쟁에 진 나라가 어떻게 이긴 나라한테 원조를 해준단 말이냐?
오히려 우리가 미국에게 원조를 해주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과연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호치민다운 베트남민의 자존심의 표현이지 않는가.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쟁에서 진 나라가 이긴 나라에 원조를 주겠다는것은 미국다운 발상
9월 25일 뉴스에서 그러는데 저 아름다운 건물인 타지마할묘가 물에 잠겼다네요. 주변 강이 범람하여. 비가 많이 와서요.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저 버팔로 소고기 1kg에 우리 돈 1700원 정도였다니까요.(인도에서는 버팔로 소고기만 먹을 수 있답니다.)
오메, 내가 베이징에 있을 때였구먼. 타지마할이 물에 잠기다니......세상에 이런 일이....
니들이 버팔로 맛을 알아 ~~~ ㅎㅎㅎ 인도 아니면 먹을 수 없었던 버팔로 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
정말 새롭네요~~~~~~ 타지마할 전경사진이 넘 멋져요~~
인도의 저력을 봅니다. 친근한 얼굴이 보이네요
언제 다시 타지마할 가보려나...........